185화. 외전 6
"너...... 미쳤어?"
나는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다 급하게 속삭였다. 지그문트의 표 정은 수 세기간 도만 닦아 온 사 제처럼 태연해서 내 혈압은 더욱 수직 상승했다.
"하! 딱 봐도 평민이군! 그 우스 꽝스러운 가면은 뭐지? 연극이라 도 하는 거냐?"
남작이 가면을 비웃었다. 나와 지그문트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 다. 그와 내가 쓴 가면은 카라쇼 의 선물이었으니까.
"이리 나오지 못할까! 그 꼬맹이 대신 널 손봐 주지!"
남작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저열한 놈.'
이를 으득 간 내가 검을 잡고 나서려 할 때.
우뚝.
익숙한 기운의 마나에 휩싸인 몸이 메두사의 눈을 정통으로 본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금방 다녀오지."
툭.
지그문트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소행이었
그를 향해 욕을 기관총처럼 갈 기고 싶었으나. 혀까지 굳은 탓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나 를 울려 지그문트에게 전언을 보 냈다.
'야! 이거 안 풀어? 왜 끼어드는 데! 감자밭에 묻혀서 쑥쑥 자라 보고 싶냐? 온몸에 토마토소스 바르고 식인종 마을에 떨어져 볼 래? 하수구에 얼굴 집어넣고 동 요 완창할 놈......!'
'몸이 굳어도 그 성질은 안 죽는 군. 얌전히 있어라.'
어쩐지 웃음기가 섞인 것 같은 말투와 함께 연결이 뚝 끊겼다. 일방적인 교신 거부였다.
걱정과 다급함, 빡침을 한 번에 느낀 나는 그의 결박에서 벗어나 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아직은 지그문트가 나보다 강했다. 그의 결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치를 떨며 몸부림치는 사 이, 지그문트는 남작 앞에 섰다.
지그문트는 분명 평민일 텐데도 위압적이고 고귀한 분위기를 가지 고 있었다. 딱 얼굴만 봤을 땐 용 병이 아니라 비극적인 사연을 숨 기고 있는 황자 같았다.
남작도 그걸 느낀 건지, 지그문 트를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너, 너 귀족 시해가 얼마나 무 거운 죄인지 아나? 내게 칼을 던 진 죄로 순찰대에 넘어가면 너는 곧장 감옥행이다!"
'염병, 새끼손톱만큼도 안 베였 으면서!'
나는 단도의 끝을 아이의 옷자 락에 정조준했고, 남작은 아이에 게서 lm도 더 떨어져 있었다. 귀 족 시해라는 죄목은 순 억지였다.
'하지만 순찰대에게 가면...... 순 찰대는 정황도 살피지 않고 남작 의 손을 들어 주겠지.'
뭣도 없는 평민 용병 나부랭이 와 비싼 옷을 입은 남작. 순찰대 가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는 너무
도 명백했다.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이로 입술을 짓씹었다. 발악 하듯 몸부림친 덕분에 서서히 마 법이 풀리고 있었다.
지그문트가 남작을 물끄러미 내 려다보았다. 투명한 자수정 같은 두 눈은 늘 그렇듯 차가운 온도에 머물러 있었으나, 평소와 조금 다 른 빛을 띠고 있었다.
완벽한 무생물을 보는 눈빛. 살 아 있는 인간의 눈이 아니라 얼어 죽은 시체의 눈 같았다. 창백하 고, 무감각했다.
내겐 보여 주지 않는 눈빛이었
나는 순간 지그문트가 아니라 남작을 걱정했다. 지그문트는 개 미 밟아 죽이듯 아무렇지 않게 남 작을 개박살 낼 것 같았다.
지그문트를 가로막아야 하나 혼 란스러워하던 찰나.
"죄송합니다."
지그문트가 허리를 굽혀 사과했
나는 정지 마법으로 인해 굳었 던 것보다 더 뻣뻣하게 굳었다. 내 눈으로 본 것을 믿을 수 없었 다.
나는 근 1년간 지그문트가 사과 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 었다. 용병 일을 하며 만났던 사 람들에게는 물론이고, 내게도, 심 지어는 카라쇼에게까지도 사과하 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지그문트가 사과할
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기 도 했다. 완벽을 추구했고, 쉬이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으니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뒤탈은 없을 겁니다.'
정말 드물게 사과해야 하는 상 황이 생겨도 지그문트는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물러서지 않고 자신 의 과오를 마주하며 이성적인 대 책을 얘기했다. 공연히 사과를 뱉 지 않는 것은 그의 긍지였다.
그런 그가 허리를 숙여 사과하
는 모습은 내게 누군가 거대한 망 치로 내 머리를 내리친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사, 사과만 하면 단 줄 알아!"
지그문트에 기에 눌려 있던 남 작은 지그문트가 숙이고 들어가자 금세 의기양양해졌다. 자신이 조 금 전 받은 사과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꿈에도 모를 터였다.
"겨우 그런 말로 더러워진 내 옷과 명예의 몫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냔 말이다!"
남작이 무례하게 삿대질하는 와 중에도 지그문트는 무심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으나, 나는 멀쩡한 당사 자 대신 격노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내가 벌인 일이었다. 그가 그리 도 미련하다 칭하던 이유 없는 이 타였고, 그 미련함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 맞았다.
지그문트는 상냥함이나 이타심
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나를 대신해 책임을 지고 나 선 이 상황을, 나는 이해할 수 없 었다.
"어떻게 책임을 지면 되겠습니 까."
지그문트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작이 염병을 떨면서도 저도 모르게 지그문트의 눈치를 보는 것에 비해, 지그문트는 변함 없이 태연했다. 분명 굽히고 있는 상황임에도 관계의 우위는 지그문 트가 쥐고 있는 것 같았다.
"......하! 책임을 지겠다고!"
남작이 거만하게 코웃음을 쳤다.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는 주제에 자존심은 못 버리는 모양이었다. 잠시 두리번거린 그는, 이내 자신 이 쥐고 있는 말채찍을 내려다보 았다. 그리고 저열하게 웃었다.
"이걸로 내 속이 풀릴 때까지 맞으면 용서해 주지."
남작은 내 예상보다 잔인한 인 간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남작은 일신의 무력이 아예 없 는 일반인이었다. 지그문트라면 단번에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지그문트가 굽히고 있다고 해도 저런 말에 수긍할 리가 없었 다.
지그문트는 물끄러미 채찍을 내 려다보았다. 말을 치던 채찍으로 맞으라니, 그건 그를 가축 취급하 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분노한 지그문트가 남작을 메쳐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죠."
그리고 그것까지도 오산이었다.
지그문트가 가볍게 뒷짐을 지고 섰다. 기사들이 얼차려를 받을 때 취하는 자세였다.
"이번 일은 이걸로 끝입니다."
그가 담담하게 고개를 숙일 때, 나는 여태껏 내 머릿속에 쌓아 둔 지그문트에 대한 판단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사고 회로 가 고장 나 몸부림치는 것도 잊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지그문트의 담담한 순응에 남작 은 이겼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권력과 폭력으로 사람을 짓누르며 즐거워하는, 끔찍한 인간이었다.
헤벌쭉 웃은 남작이 채찍을 든 손을 높이 들었다.
'안 돼.'
눈앞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뇌가 뒤틀리는 듯 아프기를 반복하다 결국 생각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나는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내 몸 속의 마나를 터트리듯 방출시켰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남작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채찍이 지그문 트의 뺨을 길게 긁었다.
스르릉.
"그거 내려놔."
그와 거의 동시에 정지 마법을
찢어발긴 내가 날아가듯 달려가 남작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히이 익!"
공포에 질린 남작이 채찍을 던 지듯 손에서 놓았다.
' 지그문트.'
지그문트의 앞을 막아선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상태를 확인했 다. 그의 왼쪽 뺨을 크게 가로지 른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얕지도 않았다.
나조차도 지그문트의 얼굴엔 주 먹 한 번 갈긴 게 다건만, 이런 치가 그의 얼굴에 저런 상처를 낸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당신은 누군데......!"
"이 자식은 내 샌드백이란 말이 다!"
머리가 회까닥 돈 나는 지그문 트를 향해 삿대질하며 크게 소리 쳤다. 남작도, 지그문트도 멈칫했
"이 자식은 패도 내가 패고 죽 여도 내가 죽인다! 건드리지 마 라!"
친우라고 보기엔 사이가 나쁘고, 우정이라고 보기엔 투박하다. 나 는 지그문트를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 주 해 왔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내가' 손봐 주고 싶었다는 거다. 다른 사람이 그를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내 고함에 남작의 표정이 멍청 해졌다.
나는 거세게 숨을 내쉬어 분노 를 누르고 천천히 검을 내렸다. 마음 같아선 남작의 얼마 없는 머 리털을 다 쥐어뜯어 버리고 싶었 지만, 이곳은 목격자가 너무 많았 다.
이 일이 카라쇼의 귀에 들어가 면 나는 당신의 제자가 이렇게 철 이 없다는 것이 치욕스럽고 죄송 해서 그만 자결해 버릴지도 몰랐
감정이 폭발해 일을 벌이기 전 에 지그문트를 들고 가려 할 때였
"쓰, 쓰레기를 교육시켜 준 게 뭐가 문제지! 감히 내게 대든 저 치는 좀 더 맞아야 한다!"
남작의 마지막 발악에 나는 행 동을 멈췄다. 이성의 끈이 갈가리 찢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눈을 시퍼렇게 뜬 채로 검 을 세웠다.
"이 새끼가 돌았나......
"진정해라. 안 된다."
지그문트가 검을 죽창처럼 내리 꽂으려는 내 팔을 단단하게 붙잡 았다. 눈이 돌아간 나는 몸을 뒤 틀었다.
"아니, 놔 봐. 죽이진 않을 거니 까. 놔 보라고! 저 혀만 도려내게! 오늘 귀족 나리 혀로 스튜 한번 끓여 보자! 놓으라니까! 야, 이 개 자식아! 입 밖으로 뱉는다고 다 말인 줄 알아! 놓으라고!"
"......하."
내가 육지에 나온 생선처럼 미 친 듯이 팔딱거리자 지그문트는 아예 내 허리를 안고 나를 허공으 로 들어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대롱대롱 들린 상태로 발버 둥을 쳤다.
남작은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굴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굳으며 주춤 물러 섰다. 눈이 돌아도 많이 돈 상태 인 모양이었다.
"너, 내가 반드시......!"
" 텔레포트."
내가 살벌한 경고를 내뱉으려 할 때, 낮은 목소리가 난동을 부 리는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파앗!
빛이 터져 나오고, 공간이 뒤틀 렸다. 나는 습관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떠라."
나직한 속삭임에 눈을 번쩍 떴 다. 용병 길드 옆 외진 골목이었 다. 잠시 멍하니 골목길을 바라보 던 나는, 눈매를 뾰족하게 세우고 지그문트를 휙 돌아보았다.
"이렇게 올 수 있으면 진작에 오지......!"
"그 남자는 귀족이다. 순간이동 을 했으면 그 순간은 모면했을지 도 모르지만 남작이 앙금을 품고 너를 쫓았다면 너는 계속 위험한 거다. 차라리 내가 그 자리에서 몇 대 맞고 끝내는 편이 나았다."
지그문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몽환적인 보랏빛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런데 네가 그 상황에서 난리 를 쳤으니...... 이제 우리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질지도 모르지."
책망 혹은 체념처럼 들리는 말 이었으나, 그런 것치곤 목소리가 상당히 밝았다.
그래. 지그문트는 조금 기뻐 보 였다.
그 목소리를 몇 번 곱씹어 보던 나는 혀를 쯧 찼다,
"그 새낀 못 쫓아. 내가 칼 겨누 니까 바로 채찍 놓는 거 못 봤 어? 그만큼 깡 있는 놈이 아니 야."
나는 지그문트와 똑바로 눈을 맞추었다. 뺨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와 또 열불이 났지만, 그의 서늘한 두 눈은 마주하는 것만으 로도 기분 좋은 시원함을 전해 주 었기에 분을 삭일 수 있었다.
"너,왜 나 대신 나선 거지? 나 한테 미련하다, 미련하다 하더니 옮은 건가?"
이것이 가장 큰 의문이었다. 그 는 내가 카라쇼에게서 배운 이타 를 실행할 때마다 미련하다고 일 침을 놓았건만, 어째서 나 대신 채찍을 맞는 미련한 짓까지 했냐 는 것이다.
지그문트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나를 안지 않은 손으로 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흰 뺨에 길게 벌어진 틈새로 붉은 피가 배
어났다.
"나도 모른다."
"뭐?"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생 각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그가 희 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확실히, 지그문트는 행동보다 생 각이 먼저인 인물이었다. 충동적 이고 감정으로 움직이는 그는 상 상도 가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그의 모습에 묘한 충격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건 너처럼 미련한 이타 때문이 아 니었다."
지그문트가 나와 똑바로 눈을 맞추었다.
아주 찰나, 그의 눈동자에는 이 전에 본 적 없는 감정이 스쳐 지 나갔다.
"너라서 나선 거다. 그 자리에 있는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서 지 않았다."
심장이 느리게 떨어졌다.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빠르게 솟 구쳤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거 센 폭포를 타고 추락하는 것 같다 가도, 잔잔한 수면에 등등 떠다니 는 것 같았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 기이하고 생경했지만, 확실한 건 나쁘지 않 았다는 것이다.
"너••••••
까아악.
내가 입술을 뗄 때, 하늘에서 새 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지 그문트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새까만 까마귀가 용병 길드 위를 맴돌고 있었다.
"......편지군."
엄지와 검지를 입에 문 지그문 트가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냈 다. 그 소리에 반응한 까마귀가 빠르게 낙하해 지그문트의 팔 위 에 앉았다. 지그문트는 까마귀의 발에 묶인 리본을 풀더니 작은 통
에서 쪽지를 꺼냈다.
"잠시."
지그문트가 나를 안았던 팔을 풀었다. 나는 그제야 그가 나를 여태껏 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 다. 내게서 두어 걸음 물러난 지 그문트는 빠르게 쪽지를 펼치고 읽어 내렸다.
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무슨 일 있냐?"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뀌는 걸 목격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
그의 표정은 기쁜 듯하면서도 무섭게 굳어 있었다. 동공이 미세 하게 떨리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표정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만을 알려 주었다.
"......나, 가 봐야 할 것 같다."
한참 쪽지를 응시하던 지그문트 가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이 생기
를 잃고 죽어 있었다. 쪽지를 쥔 그의 손에서 화려한 화염이 치솟 더니 재도 남기지 않고 쪽지를 태 웠다.
"지금 간다고? 야, 오늘 마수 토벌하러 가는데......
"스승님과 먼저 의뢰 장소에 가 있어라. 금방 뒤따라가지."
지그문트는 다급해 보였다. 그가 이렇게까지 큰 동요를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가 물어봐도 답해 주지
않고, 잡아도 잡혀 주지 않으리라 는 걸 직감으로 눈치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내 주는 것뿐이 었다.
"아, 그리고."
까마귀를 날려 보내고 빠르게 떠나려던 지그문트가 나를 돌아보 았다.
그의 두 눈이 희미하게 일렁이 다, 날카로운 눈꼬리가 살짝 풀어 졌다. 그의 오른쪽 눈 아래에 찍 힌 검은 점의 위치가 내려갔다.
"지금의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 는지,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분명 웃었다.
"대답 들으러 오겠다."
땅을 박차 오른 지그문트는 날 듯이 뛰어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짧 게 헛웃음을 뱉었다.
그땐 '다음에 말해주면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때 지그문트를 보내선 안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