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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검이 되려 했는데-201화 (201/254)

2()1 화

"기사단 정복은 어떠십니까? 멋 도 중요하지만 역시 편한 게 제일 이지요. 불편하진 않으십니까?"

노아 아인하르트가 내게 걸음을 맞춰 걸으며 물었다. 인자한 목소 리와 오랜 세월 다듬어진 바위의 겉면처럼 부드러운 눈길은 저절로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네. 굉장히 편합니다. 움직일

때도 걸리적거리지 않고요."

나는 옷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색을 즐겨 입는 탓에 새하 얀 정복이 어색하긴 했지만, 불편 하진 않았다.

"아, 그리고 말은 편히 놔 주세 요."

"말을요? 저는 이대로도 괜찮습 니다. 어찌 공녀님께......

"아뇨. 말을 놔 주셔야 합니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노아 를 돌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지금부터 공녀가 아니라 기사단장님의 부관 아닙니까. 부 관에게 존대를 하는 상관은 없습 니다."

나는 특별대우를 받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내 혼들림 없는 시선에 나를 빤 히 바라보던 노아가 만족스럽게 웃음 지었다.

"그럼 그리하지."

나보다 몇 배는 나이가 많은 어 르신에게 존대를 듣고 있는 게 내 심 불편했건만, 이제야 막힌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각오는 됐나? 첫 출근인데."

훈련장 문 앞에 선 노아가 즐겁 다는 투로 말했다.

오늘은 내가 노아의 부관으로서 처음 출근하는 날이었는데, 그는 내 출근을 나보다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욕이나 얻어먹지 않으면 다행이 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갑자기 나타난 공녀가 제1기사단 장의 대리인으로서 자기들을 가르 친다는데 좋은 눈으로 볼 리는 없 었다.

'언니. 첫 출근엔 기선 제압이 중요한 거야. 내가 마법으로 머리 카락 위로 세워 줄게. 길게 올려 버려.'

'......오금까지 오는 머리카락

을?'

'그래. 언니 키만큼 더 커지는 거지.'

'넌 헛소리 좀 하지 마라. 슈슈, 재산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건 어 떤가. 열 손가락에 다이아 반지를 끼고 나가는 거다.'

'오••...

'괜찮지?'

'그냥 가겠습니다.'

그걸 염려한 아리아와 칼로 인 해 나오기 전에 짧은 해프닝이 있 기도 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다 노아의 시선을 느끼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됐습니다."

내 대답에 노아가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힘내게. 나는 그대를 늘 응원하 고 있으니."

웃음기 섞인 그 목소리는 분명 응원이었음에도 어쩐지 각오하라 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야외 공터가 보였 다. 모여 있던 수많은 기사들의 시선이 나와 노아에게로 쏠렸다.

"안녕하십니까, 기사단장님!"

한목소리로 합쳐진 기사들의 쩌 렁쩌렁한 목소리가 귀 아프도록 울려 퍼졌다. 익숙하게 인사를 받 은 노아는 기사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앞에 섰다. 나는 그를 따 랐다.

"오늘 이렇게 모이라고 한 이유

는 새로운 훈련관을 소개시켜 주 기 위해서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 노아는 나를 돌아보았다. 인사하라는 뜻 인 것 같았다.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 다. 쏟아지는 시선이 뜨거웠다.

웅성거림이 크게 퍼졌다.

'그래. 놀랍겠지. 갑자기 훈련관 이라고 나타난 사람이 초면인 공 녀라면.'

나라도 이게 뭔가 싶을 것이다. 나는 수군거리는 소리 사이로 악 의들까지도 너무 잘 들려 조금 곤 란해진 탓에 눈을 굴리다가 정중 하게 허리를 숙였다.

"기사단장님의 부관으로서 대리 로 훈련을 주관하게 된 카슈미르 크리시스입니다."

깔끔하게 인사했으나. 웅성거림 은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워낙 시끄러워 뒤까지 내 목소리 가 들리긴 했을지 의문이었다.

"다들 조용!"

노아가 눈짓을 보내자 기사단을 통솔하던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군기는 확실히 잡혀 있는 건지, 그 한마디에 목소리가 뚝 끊겼다.

"이자는 내 부관으로, 실력은 이 미 입증된 사람일세."

노아는 딱 그 한마디를 더했다. 여기까지가 그가 도와줄 수 있는 정도이니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라는 듯. 기사들로부터 직접 인

정받으란 뜻 같았다.

'해 봐야지.'

이 정도도 못 하면 자신하며 온 것이 부끄러울 터였다. 나는 주눅 들어 보이지 않게 고개를 쳐들며 나를 응시하는 기사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아는 나를 소개시켜 준 지 얼 마 지나지 않아 일이 있다면서 훈 련장을 나섰다. 노아 때문에 절제 하고 있던 이들도 내게 뜨거운 시 선을 쏘아 대기 시작하며 나 자체 가 핫플레이스가 되어 버린 것 같 았다.

'아침 훈련을 주관하면 된다고 했지.'

훈련 계획은 진작에 노아로부터 검사를 받은 상태였다. 계획을 짜

는 건 세레논의 스승이 되며 익혀 뒀던 것들이 꽤 도움이 됐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여 러분의 아침 훈련을 맡게 될 겁니 다."

나는 말끔하게 웃으며 사근사근 하게 말을 시작했다. 초반엔 상냥 해야 인상이 좋다니 말이다.

"제가 가르치게 될 부분은......

"저 공녀가 진짜 미르일까?"

"검술 대회 날 두 눈으로 봤는 데도 솔직히 잘 못 믿겠어."

"오러가......

굉음과 함께 훈련장 일대가 크 게 흔들렸다.

떠들던 이들의 목소리가 확 잦 아들었다. 나는 놀란 듯 커진 눈 들을 보며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 곤 바닥을 찍었던 검을 뽑아 다시 검집에 넣었다. 검신이 마나의 파 동으로 파르르 떨렸다.

"제가 가르치게 될 부분에 대해

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계속 얘기 해도 되겠습니까?"

기사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위아 래가 명확하다. 때문에 나를 의도 적으로 깔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 런 기사들에게 진정으로 인정받는 훈련관이 되려면 그 기본은 명백 했다.

내가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걸 각인시켜 줘야 했다.

훈련장 일대가 고요해졌다. 미르

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이것 으로 정리된 것 같았다. 나는 만 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계속 얘기해 보 죠. 앞으로 여러분이 제게 배울 것은 마수를 상대하는 방법입니 다. 마수를 테이밍하는 북부를 상 대하기 위해서죠."

또다시 가볍게 소란이 일었으나, 이번엔 내 목소리를 넘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굳이 지적하지 않았 다. 나는 손가락을 천천히 꼽았 다.

"마수는 작은 것과 큰 것, 나는 것과 기는 것, 지능이 없는 것과 영악한 것 등, 종류가 아주 많습 니다. 저는 그런 가지각색의 마수 들을 수없이 상대해 보았고, 관찰 해 보았습니다."

그 경험은 어떤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자리에 서겠다고 당당히 선포한 이유였다. 나는 여유롭게 미소 지 었다.

"마수들은 상대하는 방법을 아

느냐에 따라 드는 시간과 수고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대단히 강한 만큼 약점도 확실한 것들이거든 요. 구체적으로 세분화해서 알려 주긴 힘드니 속성으로 빠르게 갈 겁니다. 이 훈련 끝자락엔 하라바 나나 바실리스크 같은 대재앙을 상대하는 방법도 배우게 되겠죠."

대재앙은 나와 카이사르, 노아 선에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았으 나, 전쟁에서는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일반 기사들도 배워 둬야 했다.

"혹시 여기서 마수를 마주해 본 사람 있으십니까?"

생각보다 집중해서 듣는 기사들 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은 나는 손을 들어 보이며 인원수를 확인 했다. 황궁 기사단은 수도 출신이 많은 만큼 손을 든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거기."

나는 얼마 되지 않는 이들 중 한 사람을 짚었다. 검은 단발머리 에 시리도록 푸른 눈을 가진 여자

였다. 내 지목에 여자는 눈을 부 릅떴다. 차갑고 예민해 보이는 그 녀는 원한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내 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마수를 마주해 봤다면, 마수를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알고 있습니까?"

내 물음에 여자의 눈이 시리게 빛났다. 그 가운데 나는 조금 놀 랐다.

"......마기 앞에서도 혼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입니다."

여자는 강한 마수를 제대로 마 주해 본 적 있는 사람의 눈을 하 고 있었다.

그 아득한 공포를 직면한 이들 에겐 특유의 혼적이 남아 있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그녀는 나를 삼지창에 꿰뚫어서 어디 모 닥불에 구워 먹을 듯이 빤히 보고 있어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렇죠. 사람마다 의견은 다르 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대는 저와

의견이 같군요.

뜨겁게 나를 따라붙는 여자의 푸른 눈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린 나는 말을 이었다.

"물론 강함도 중요하고, 요령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버티 고 서 있어야 하죠. 마수를 상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겁니 다. 마수에게서 느껴지는, 그들 특유의 버티기 힘든 기운을요."

마수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마기 는 사람의 정신을 뒤혼들었다. 나

야 지나치게 익숙해져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으나, 아마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들은 그 기운에 적응 하는 데에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나 또한 처음엔 그랬으 니.

"아무리 실력이 좋고 강해도 정 신력이 좋지 않다면 픽 쓰러지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께 정신력을 키우는 법부터 알려 드리고 싶습 니다."

나는 느리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수준만 볼까 요."

원래는 마수를 풀어놓고 적응시 키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런 걸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데다 기사 들의 수준을 모르는 상태에서 아 무런 마수나 데려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준비한 건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쉬이익!

거센 마나의 바람이 일대를 헤

집었다. 놀란 기사들이 주위를 두 리번거리다, 어느 순간부터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저 흐를 뿐이던 공기가 거대 한 손에 꽉 붙잡힌 듯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꼭 고산지대에 있는 것 같은 숨 막히는 기운 때문이었 다.

최대한 관리하고 있던 소드 마 스터의 존재감을 조금 푼 것뿐이 지만 아득한 강함은 그 자체로 경 이고, 공포다.

나는 순식간에 안색이 나빠진 기사단 앞에서 부드럽게 미소 지 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버티며 평 소 하는 훈련을 평소처럼 이어가 보는 걸 목표로 해 봅시다."

이것이 내 첫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 10분은 다들 꽤 잘 버텼다. 다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지만.

거의 공기를 짓누르다시피 하는 소드 마스터의 존재감을 버티라고 한 건 너무한 건가 싶었으나,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한다면 하라바나 는 만나는 즉시 기절하는 것과 다 름없었기에 강행하고 있었다. 훈 련할 시간이 많지 않으니 급하게 가야 했다.

"진짜 간다고? 야! 저 미친 ......

각자 훈련을 하던 그때, 훈련장 한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

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 려 보니, 한 기사가 성큼성큼 나 아가는 다른 기사의 뒷모습을 식 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훈련관님."

그리고 나아온 기사는 나를 불 렀다. 다들 힐끗거리고 웅성거리 기만 할 뿐 내게 온 건 처음이었 기에 나는 조금 놀란 채로 그를 응시했다.

검은 단발머리에 파란 눈. 차가 운 인상. 처음 내 질문에 답했던

그 기사였다.

"아, 실례지만 이름이?"

"카시아. 카시아입니다."

"그래요, 카시아 경. 무슨 일입 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딘지 익숙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자주는 아닌데 한 번쯤 본 얼 굴이었다.

'그냥 지나가다 본 사람인가.'

내가 헷갈려하고 있었을까. 누구

하나 찢어 죽일 듯 싸한 표정의 카시아는 폭탄 발언을 꺼냈다.

"싸우고 싶습니다. 저와 대련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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