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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검이 되려 했는데-234화 (234/254)

234화

"유터스 지방으로 올 게 분명합 니다. 그쪽 말곤 길이 없습니다!"

"타티노 지방이 뻔히 뚫려 있는 데요? 멍청이도 이 길을 선택할 겁니다!"

"그놈들이 멍청이도 생각할 만 큼 뻔한 전략을 펼치겠습니까? 어찌 한 치 앞만 내다보냔 말입니 까!"

양쪽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목

소리들은 내 귀를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레오도 지겨워하는 표정 을 짓는 가운데, 나는 한숨을 쉬 었다.

아타라에서 진행되는 첫 회의는 난잡하게 느껴질 만큼 떠들썩했 다.

"그만!"

쾅!

레오가 탁자를 내리쳤다. 귀족들 은 일대가 웅웅 울리도록 진동이

퍼지고 나서야 말들을 멈췄다. 그 가 제 이마를 짚었다.

"멀리서 오신 손님들도 있는데 언성 높이지 말도록. 부끄럽지도 않나?"

레오의 서늘한 한마디에 눈치를 살피던 이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숙였다. 이러다간 정말 두개골이 깨질 것 같았는데 이 소란을 멈춰 준 그에게 고마웠다.

이 회의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 오른 안건은 바로 북부의 침입 경

로였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경로로 손꼽힌 것은 유터스와 타티노였다.

'둘 다 일리가 있긴 하지.'

나는 쓰디쓴 입 안을 혀로 훑으 며 탁자에 크게 펼쳐진 지도를 내 려다보았다.

유터스는 북부 지역과 이어지는 지역으로, 북부에서 걸어올 수도 있었다.

지도를 펼쳐 두고 아타라의 허 점을 찾아보라고 했을 때 누구든 간에 가장 먼저 짚을 만한 곳이었 다. 어찌 보면 정석적이고, 어찌 보면 뻔했다.

타티노는 그 반대였다. 북부와 맞닿은 지역이긴 했지만 굽이진 협곡이 중간에 있어 건너오는 것 만으로도 병사들이 지칠 만한 경 로였다.

하지만 불가능하냐 묻는다면, 그 건 아니었다. 건너올 수는 있었

다.

그리고 어려운 경로를 택한다는 것은 상대측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조차도 북부가 이 경로를 선택한다면 놀라울 것 같았으니까.

'이런 거나 소설에 써 두지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요정의 밤> 원작에 대한 기억을 들춰 보다 그만두었다. 그 쓰레기 같은 소설에 유용한 정보

가 적혀 있을 리 없으니까.

만약 내 손에 그 소설이 쥐여진 다면 나는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 고 불쏘시개로 쓸 터였다.

침입 경로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전쟁에서 패배하진 않는다. 하지만 초반 병력 배치는 경우에 따라 아주 큰 수가 되기도 했다. 병력을 이동시키는 건 늘 까다로운 일이니 말이다.

"조나단 에이머리 경. 자네는 어 떻게 생각하지?"

분위기가 한층 차분해진 가운데,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다 가 내 옆에 앉아 있는 조나단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하 는 듯싶던 조나단은 이내 지도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당황한 건지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홍 채와 동공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 도로 검은 눈이 지도 위를 굴렀 다.

" 확실히 유터스도 가능성이

있겠으나, 저는 타티노일 가능성 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 이유는?"

"너무 뻔하다는 것도 있지만, 유 터스로 침입하게 되면 수원으로 삼을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티타 노 지방엔 계곡이 길게 흐르니까 요."

확실히, 유터스는 침입엔 용이했 으나 물을 얻을 곳이 마땅치 않아 장기전을 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곳을 선택하는 건 멍 청한 짓이었다.

"지금 유터스가 위험하단 말일 세!"

빌헬름이 탁자를 쳤다. 계속 북 부가 유터스로 침입해 올 거라고 주장하던 그는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낯이었다. 나는 조나 단이 내게 귀띔해 주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빌헬름의 영지가 유터스 지방이 라고 했지.'

그럼 저렇게 집착적으로 유터스 를 주장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자신의 영지에 병력이 들어와 안 전하게 지켜 주길 바랄 테니까.

나쁘다고 할 순 없으나, 섣부른 생각에 지역 이기주의적인 마음이 니 지도자로서 적절한 태도는 아 니었다.

"고집 좀 그만 부리시죠. 티타노 쪽이 맞습니다!"

"뭐야? 당신이 뭘 안다고 떠들 어?"

여기저기서 점점 더 언성이 높 아지더니 2차전이 시작되었다. 여 기저기서 날카로운 소리가 오갔 다. 나는 늘 고상하게 굴던 귀족 들이 이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 다는 걸 처음 알았다.

쩌억.

"내 말이 말 같지지가 않나?"

결국 레오가 한 번 더 나섰다. 그가 탁자 한가운데로 던진 단검 때문에 탁자가 지진 나듯 반으로

갈라졌다. 탁자가 굉장히 단단한 재질이었다는 것까지 감안할 때 무척 살벌한 위협이었다.

모두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나는 잠시, 레오를 적으로 두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유터스와 타티스가 유력하다는 것과 각각 근거도 있다는 건 아주 잘 알았다. 하지만 추측만 하고 끝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확실 히 결정해야지."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고 싸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원군이 왔다고 반기며 연회를 열어 준 게 바로 어제건만, 그 다 음 날 곧바로 이렇게 어려운 일을 시키는 아타라의 매정함에 한숨이 다 나왔다.

"크리시스 지휘관. 그대 생각은 어떻지?"

"••••••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시익거리 며 숨을 식히던 빌헬름이 날 휙 돌아보았다. 갑자기 튄 불똥을 맞

은 나는 조금 당황하다 지도에 시 선을 고정시켰다. 절로 한숨이 나 왔다.

내가 이 사태에 쉬이 의견도 내 지 않고 다른 이들보다 더욱 착잡 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그문트 하이드, 이 개새 끼......

힐다를 걸고 했던 거래에서, 지 그문트는 북부의 침입 경로를 미 리 말해 주었다. 만약 정말이라면 상황은 간단해졌다.

하지만 과연 지그문트가 사실을 말했을까? 이렇게까지 어긋나 버 린 상황에서 거짓을 말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거짓말일 거라고 판단한 내가 이 지역을 의도적으로 배제 하는 것까지 예상한 거라면? 정 말 완벽한 작전이다. 지그문트라 면 그런 약은 수를 쓸지도 몰랐 다.

'그냥 이걸 물어보지 말걸.'

나는 지그문트가 말한 지역을 태울 듯 노려보았다.

완전히 터무니없었다면 미친놈 이 거짓말을 했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가겠으나, 그에 대한 사감을 완전히 떼어 낸 채 지역을 보고 또 봐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분명 이곳이다' 정도로 강렬한 느낌이 오는 것도 아니었 다.

지그문트는 내게 진실을 말했는 가?

나는 팔자에도 없는 두뇌 싸움 을 하고 있었다.

내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내 대답을 기다리던 빌헬름이 얼굴을 구겼다.

"거 무슨 생각을 하는데 답이 이렇게 늦는 건가."

성격 급한 그가 재촉했다.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른다면...... 그냥 우선 뱉고 같이 생각해 보는

편이 낫다.'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 두 지역 말고 다른 지역일지도 모르잖나."

"뭐라고?"

빌헬름이 얼굴을 구겼다. 조나단 이 미간을 찌푸렸다.

"둘 중 하나로 정해진 거 아니 었습니까?"

"섣불리 판단할 순 없는 법이지. 그러니까, 만약......

꾹.

나는 지도의 한 곳을 짚었다.

"여기라면 말이야."

그곳은 거대한 강이 가로지르고 있는 파블로스 지방의 국방이었 다.

"......지금 장난하는 건가? 거기 로 건너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 나?"

얼굴을 구기다 못하게 험악하게 만든 빌헬름이 역정을 냈다. 나는 착잡해진 마음을 숨기고 당당한 표정을 지어내며 고개를 쳐들었 다.

"의견 정도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 그놈들이 미쳤다고 강을 건 너오겠나? 뭐, 나뭇잎으로 돛단배 를 만들어서?"

평생을 북부에서 마수들과 말싸 움을 하며 산 것인지 말솜씨가 신 랄했다. 이리저리 꼬인 그의 말을

한숨과 함께 소화해 낸 나는, 머 릿속을 둥둥 떠다니던 가정 하나 를 입 밖으로 꺼냈다.

"강을 얼려서 올 수도 있지 않 나."

모두의 시선이 단번에 내게로 쏠렸다. 나는 착잡한 마음에 입 안 살을 짓씹으면서도 이곳에 오 기 전 속성으로 공부했던 아타라 의 지리와 생태를 머릿속에서 그 려 냈다.

"멀쩡히 흐르는 강을 꽝꽝 얼리 는 건 미친 짓이겠지. 하지만 파 블로스는 추운 지방이라 초겨울만 되어도 강물이 얼지 않나. 건널 수만 수 있다면 강은 좋은 수원지 가 되어 줄 테고. 왕성까지 넓은 길이 나 있어 중앙으로 침투하기 도 용이하지. 완벽한 침입 경로 야."

" 하지만......! 초겨울엔 병력이 다 건널 만큼 강하게 얼지 않을 겁니다!"

조나단이 다급하게 반문했다. 나 는 확장된 그의 동공을 보며 고개

를 피식 웃었다.

"물에 얼음 마법을 거는 건 고 난도지만 이미 있는 얼음을 단단 하게 강화시키는 건 초급 마법사 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야."

늪의 진액으로 원하는 형태를 만들긴 어렵지만 점토로는 얼마든 지 만들 수 있는 것과 비슷했다.

강을 완전히 다 얼리려면 대마 법사 정도는 와야겠지만, 이미 얼 어 있는 표면이 병력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강화시키는 건 초급 마

법사 여럿만으로도 충분했다.

기상천외하다 싶지만 불가능하 진 않다. 이게 내가 지그문트의 그 한마디를 떨쳐 내지 못하는 이 유였다.

"흥미롭군."

레오가 제 턱을 매만지며 중얼 거렸다. 새로운 의견으로 주위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침공할 곳은 파블로스 지방의 국경이다.'

나는 거짓인지 진실인지 모를 내용을 속삭이던 낮은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말의 신빙성과 별개로 그의 말이라면 우선 불신하고 봐야 맞 을 텐데. 이상하다. 정말 이상했 다.

'나는 너를 믿는 건가.'

난 그가 던진 질문에 아직도 답 을 찾지 못했다.

혼돈의 도가니 같던 회의가 끝 나고, 나는 진이 빠진 채로 혼자 회의장을 나왔다.

세 곳 중 어느 곳에 지원군을 배치할지 결국 결정이 나지 않았 다. 정황을 보아 아직 두 번째 침 략까지 여유가 있는 것 같으니 조 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게 중론이었다.

끝자락엔 내가 낸 의견이 미세 한 차이로 가장 많은 힘이 실렸기

에 아마 내가 그 의견을 적극적으 로 지지했다면 지원군은 즉각 파 블로스로 가게 되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확신이 없었기에 흐지부지한 태 도였고, 때문에 결정되지 못하고 무산되어 버렸다.

이런 무거운 자리에 앉으면 뭐 라도 될 줄 알았건만, 나는 아직 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파블로스를 밀었어야 했나...... 아니, 그냥 파블로스에 대해 말하

지 말걸 그랬나......

나는 내 머리카락을 벅벅 문질 러 흐트러트렸다. 요즘 들어 지휘 관이라는 자리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하면서 탈모가 올 것 같았다.

'산책이라도 해야겠네.'

이대로 들어가선 어차피 상념만 가득할 것 같아 정원으로 발걸음 을 돌릴 때였다.

' 어.'

나는 익숙한 인기척에 뒤를 돌 아보았다.

"슈슈."

나를 급하게 좇는 인영은 회의 장에서도 봤던 레오였다. 헐레벌 떡 나를 따라왔는지 그의 머리카 락은 바람에 살짝 흐트러진 상태 였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어?"

흔하지 않은 그의 다급한 내가

경계 태세를 갖춘 채 물으니, 레 오가 한숨처럼 웃었다.

"은빛 늑대 수인족을 함께 만나 러 가 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 지."

" 아."

나는 짧게 탄식했다. 잊을 리 없 었다. 제국의 술집에서 또 우연히 레오를 만났을 때 그와 했던 약속

O

레오가 내 손끝을 붙잡았다.

"지금 가자.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레오는 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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