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팟!
나와 레오는 동시에 땅을 박차 고 교차하듯 뛰어올랐다. 한마디 도 하지 않았으나 전장에선 눈빛 만으로도 강하게 교감할 수 있었 다.
"너무 날뛰지 말고 내 뒤나 봐 줘!"
"뒤를 봐? 내가?"
씨익 웃은 레오가 거침없이 검 을 휘둘렀다.
"나도 싸울 거거든!"
그의 눈 색과 쏙 빼닮은 형형한 형광 연둣빛 오러가 넓게 허공을 갈랐다. 빠르게 날아간 오러는 늑 대 중 하나의 꼬리에 상처를 입혔 다.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그와 함께 바실리스크를 상대한
적은 있으나, 그때 레오는 미끼일 뿐 내가 다 해치운 것과 다름없었 기에 함께 싸웠다고 보긴 어려웠 다.
그와 정식으로 함께 싸우는 것 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 너답다.'
라이너와 함께하는 전투는 하나 의 줄로 이어진 협동이었다. 그는 기꺼이 내 뒤를 맡아 주었고, 균 형적으로 움직여 주었다.
하지만 레오의 기세를 보니 그 와의 전투는 두 줄이 폭주하며 마 구 날뛰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았 다.
크아앙!
늑대 한 마리가 내 어깨를 노리 고 달려들었다. 나는 몸을 가볍게 돌렸다.
"숙여!"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소리친 레오가 검을 길게 휘둘렀다.
촤아악!
캬악!
달려들었던 늑대가 레오의 오러 에 복부를 길게 베이며 나가떨어 졌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내 얼굴까지 더럽혔다. 나는 기겁 했다.
"야! 죽이면 안 돼, 미친놈아!"
"죽진 않았어."
"죽기 직전도 안 돼! 근거지에 가자마자 내쫓기고 싶냐?"
"쳇."
"유모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놈 이......
레오가 제 검날을 어깨에 걸치 며 혀를 찼다. 피를 뒤집어썼는데 도 불쾌해하긴커녕 얼굴에 즐거움 이 만연했다.
'그래, 네가 좋으면 됐다......
나는 굳이 따지고 들지 않기로 하며, 동료의 상처에 분노해 울부 짖는 늑대들을 향해 검을 세웠다.
"내가 셋 잡을 테니까 네가 하 나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무 조건 둘둘이야."
"그래, 그래. 하여튼 잡는 거 다."
"내기도 할까?"
악동처럼 웃은 레오가 늑대들을 향해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누가 더 빨리 잡는지!"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소드 마 스터에게 그런 승부를 걸다니, 어
처구니가 없었다. 그의 패배가 확 실했다.
"한번 해 보든지."
그리고 나는 무턱대고 용감한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레오가 늑대 한 마리를 상대하 는 동안, 다른 늑대 두 마리가 동 시에 내게 뛰어들었다.
나는 살기를 내뿜으며 내 맞은 편으로 다가온 늑대에게 오러를 휘둘렀다. 늑대들이 주춤하는 사
이, 적당히 송출한 오러가 한 마 리의 몸을 길게 베었다.
캬아악!
오러를 맞은 늑대가 비명과 함 께 쓰러지고 주춤했던 다른 늑대 가 날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쉬이익!
살벌한 발톱이 내 뺨을 아슬아 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베인 뺨 을 따라 길게 상처가 났다.
몸을 뒤틀며 허공을 박차 오른 나는 검 등으로 늑대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늑대의 몸 이 내팽개쳐졌다. 힘 조절을 하느 라 애매하게 친 것 같은데, 다행 히 한 방에 기절한 것 같았다.
'다행히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 네. 그랬으면 제압하기 어려웠을 텐데.'
죽이는 것보다 제압이 더 어렵 다. 다행히 목숨에 위협이 갈 정 도로 다치진 않아 안심하고 쭈그 렸던 몸을 일으켰다.
"레오. 나-"
퍽!
날카로운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빠르게 그곳을 바라보았다.
레오가 별 감흥 없는 표정을 지 은 채 검집으로 늑대를 무참하게 쥐어 패고 있었다.
"쓰러졌잖아."
이미 제압된 상대다. 불필요한 폭력이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레오의 행동을 막으니, 레오가 쯧, 혀를 찼다.
"자꾸 내 옆구리를 물려고 하잖 아."
"옆에서 보면 동물 학대 같다 고."
내가 레오를 조금 채근하고 있
었을까, 무언가가 내 발등을 콕콕 건드렸다.
낑••....
얻어터져서 그냥 보기만 해도 처량해 보이는 늑대가 불쌍한 소 리를 내며 내 발등에 제 코를 비 비적거렸다.
나는 눈을 끔뻑였다.
아무래도 레오를 말리는 내게 동정표를 받아 살아 보려는 것 같 았다.
"늑대가 아니라 여우 새끼였네."
"아, 좀."
검집에서 검을 뽑으려는 레오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늑대가 마음 에 들지 않는지 눈을 치켜뜬 채 늑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자식은 내가 업고 갈게."
레오가 늑대를 들쳐 멨다. 늑대 는 거칠게 반항했으나 레오의 거 친 손길 한 방에 얌전해졌다.
나는 텐트를 대강 정리하고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오늘 잠자긴 글렀네."
이렇게 환영 인사를 해 주시니, 한시라도 빨리 가서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애초에 은빛 늑대족의 근거지까 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으니 빠르게 도착했다. 늑대 두 마리를 양손으로 잡고 질질 끌며 그들의
근거지에 도착한 기분은 참 묘했 다.
"들어가는 방법은 알아?"
"아니. 여기서 늑대족의 혼적이 끊겼다는 것만 알아."
나는 조금 떨떠름한 심정으로 눈앞에 광경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입구 가 돌로 꽉 막힌 동굴이었다.
"그냥 부수고 들어가자."
"너 은빛 늑대족이랑 대화를 해
볼 생각은 있어?"
시종일관 과격파인 레오를 흘겨 보았다. 그는 내 눈총을 받곤 눈 을 피했다.
"야, 너 죽은 척하지 말고 일어 나. 여기 어떻게 들어가는데."
직접 들쳐 멨던 두 마리의 늑대 중 끝까지 팼던 한 마리의 늑대를 땅에 패대기친 레오가 늑대를 발 로 툭툭 찼다. 늑대는 움찔거리면 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봐. 내가 말해 볼 테니 까."
끌고 온 늑대들을 적당히 던져 둔 나는 레오를 옆으로 밀어내고 늑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늑대는 이제 안쓰럽게도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갑자기 침 입자가 나와서 놀라셨죠? 물리쳐 야 하는데 갑자기 제압당해 버렸 고요."
나는 죽은 척하는 늑대를 토닥 여 주었다. 늑대가 슬쩍 눈을 떴 다.
"하지만 저희가 꼭 들어가 봐야 해서 말입니다."
人、3 르
' O •
나는 검을 뽑아들어 검 끝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입구가 개박살이 나서 모두가 힘들게 되는 게 나을까요, 당신이 도와줘서 간단하게 끝내는 게 나
을까요?"
검날 위로 검은 오러가 흉흉하 게 타올랐다. 늑대의 얼굴이 새파 랗게-짐승 얼굴이 새파랗게 질릴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질렸 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 으로 무섭게 웃었다. 늑대가 살벌 한 이빨을 덜덜 떨었다.
스르륵.
그리고 늑대의 몸이 서서히 인 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 어?'
늘씬하던 앞다리와 뒷다리가 건 장한 성인 남성의 팔다리로 변하 기 시작했다. 길쭉했던 주둥이는 들어가고, 털로 복실복실하던 몸 은 매끈해졌다.
수인의 변화를 처음 본 나는 놀 라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 다.
"흑, 흐윽, 듣지 않으면 날 엉망 으로 만들어 버릴 셈이지!"
곧이어 귀와 꼬리만 제외하고 완전히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변한 이름 모를 늑대 수인이 울상 을 지으며 자신의 알몸을 스스로 꽉 껴안았다.
"뭔••••••
"미친, 저런 거 보지 마!"
"흐아악!"
쾅
레오가 내 앞을 막으며 자신의 검을 그의 가랑이 사이로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남자는 애처롭 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바들바들 떨었다.
'오
창백한 피부에 은빛과 달빛, 잿 빛 사이의 신비한 머리칼, 신비로 운 보랏빛 눈동자까지. 늑대 수인 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신기한 마음에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니, 남자가 치욕스 럽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벗은 몸은 부끄럽지도 않은지 아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데 대 체 어느 부분에서 치욕스러워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지금 죽여라! 명예롭게 죽겠다!"
"젠장, 다리 벌리지 마!"
스스로 두 눈을 찌른 레오가 제 망토를 찢듯이 벗어서 남자의 몸 에 덮어 주었다. 남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만의 연극을 계속했다.
"흐윽, 페이샤 님께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페이샤고 나발이고! 박제해 버 리기 전에 가만히 있으라고!"
남자의 뒤척임으로 망토가 펄럭 이는 것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 다간 정말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게 될 것 같았다. 나는 고군분 투하는 레오를 뒤로한 채 슬쩍 눈 을 돌렸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은빛 늑대 수인족과 만나는 것뿐입니다. 문 만 열어 주시면 유혈 사태 없이 잘 끝날 겁니다."
어르는 투로 설득했다. 내 말에 동공이 희미하게 혼들리던 남자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고개를 휘저 었다.
"아, 알려 줄 수 없다! 우리 늑 대족의 기밀! 차라리 날 죽여라!"
"슈슈, 그냥 소원대로 죽여 주면 안 돼?"
팔딱거리는 남자의 복부를 짓밟 아 고정시킨 레오가 짜증스럽게 말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휘몰아 치는 총체적 난국에 그러라는 말 이 반쯤 나올 뻔했으나 간신히 진 정했다.
쾅
"조금 전에 한 말 못 들었습니 까? 당신이 안 열어 주면 부술 거라고요."
최대한 상냥하게 가려고 했지만 말이 안 통했다. 나는 거칠게 검
을 땅에 꽂으며 사납게 웃었다. 땅에 부르르 진동이 일었다.
"제가 못 부술 것 같습니까?"
돌로 아주 꽉 막힌 입구는 얼핏 느끼기에도 수많은 마법이 중첩되 어 지켜지고 있지만, 내가 마음을 먹는다면 못 뚫을 정도는 아니었 다.
조금 많이 지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반드시 부술 수 있었 다.
"열어요, 당장."
목소리를 깐 채 음산한 어조로 위협했다.
"흐윽 페이 샤님
훌쩍거린 남자가 천국에 가야 하는데 지옥으로 굴러 떨어져 버 린 억울한 중생처럼 느릿느릭 기 어서 문 앞으로 갔다.
레오가 다시 한번 제 두 눈을 푹 찌르고, 나는 그 모습을 외면 해 버렸다.
몇 번이고 흐느낀 남자가 바위 위에 손을 얹었다. 돌에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이 번쩍거렸다.
"열려라, 흑! 참께......
스르륵.
그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부드럽 게 바위가 열렸다. 나와 레오는 열려 있는 바위와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암호 진짜 대충 정했군......
"그러려니 하자."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저 바위 위에 손을 얹 는 의식부터 막혔을 테니 보안엔 문제없겠거니 싶었다.
"아아, 페이샤 님, 절 용서하세 요......
나는 레오가 던져 준 망토를 끌 어안은 채 자기 혼자 신파극을 찍 는 남자를 뒤로한 채 바위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감탄 했다.
우거진 숲 뒤로 이런 마을이 존 재할 줄 상상도 못 했다.
거친 정글과 사람 사는 동네가 합쳐진 것 같은 신비한 광경. 다 른 세계를 향해 가는 문을 연 것 같았다.
"......여기가 레이샤가 태어난 곳일까."
"으음......
마찬가지로 조금 멍하니 그 모 습을 바라보던 레오가 중얼거렸
다. 나는 눈을 떼지 못한 채 탄식 했다.
우리는 기어코, 아주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 중 하나 이던 은빛 늑대 수인족의 주거지 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