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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검이 되려 했는데-250화 (250/254)

250화

"수가...... 적지 않군요."

순식간에 진지한 낯으로 변모한 유니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수적으로 압도적이라는 것이 우 리 연합군의 강점이건만, 북부는 이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단단 히 준비한 건지 숫자가 만만치 않 았다.

'마수들은 보이지 않네.'

수많은 북부인들이 호수 앞 평 지로 진군하는 가운데, 마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북부가 마수라는 최고의 무기를 두고 올 리 없으니 아마 숲속에 숨겨 둔 것일 터였 다.

'어떤 마수들이 왔는지 알면 병 사들을 교육시켜 대비할 수 있을 텐데.'

그들은 현명하게도 패를 노출시 키지 않았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온 신경을 집중해 숲속을 응시했지만, 무성 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확인이 불가능했다.

'젠장. 도착하자마자 강 너머에 염탐꾼을 보내놨어야 했는데.'

마지막으로 북부의 움직임이 확 인된 지역에서부터 여기까지는 제 법 거리가 있었기에 벌써 도착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강도 높은 행군을 하다 이곳에

온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았으니 병 사들이 휴식할 수 있게 시간을 주 자고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안일한 판단을 자책하고 있었을 까, 유니스가 자신만만하게 웃었 다.

"어제 저 너머로 미리 염탐꾼들 을 파견시켜 놓았습니다. 북부의 병력을 확인하는 즉시 연락이 올 겁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유니스를 돌 아보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

아 그의 수완이 어느 정도인지 긴 가민가했건만, 허투루 감투를 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 었다.

"숲속에 마수들이 있나 살펴보 고 어떤 마수인지 말해 달라고 전 해 주세요. 이름을 모른다면 특징 이라도 말해 주면 됩니다."

" 알겠습니다."

마수의 종류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번 전투의 승기를 반 이상 가져

올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예감 에 표정을 풀고 하늘을 올려다보 았다.

"강 앞에 감시하는 병사들을 더 배치해 두고, 빨리 회의를 하도록 하죠."

칙칙한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송이를 내뱉을 것 같았다.

짧은 식사를 마친 뒤 중앙 파견 군에서 준비한 막사로 이동했다.

그곳에선 유니스가 기다리고 있었 다.

"염탐꾼과는 연락이 닿았습니 까?"

"통신이 굉장히 불안정합니다. 북부군이 마력 통신을 방해하는 전파를 퍼트리고 있는 것 같습니 다."

수정구슬 모양의 통신구를 붙잡 고 씨름을 하고 있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수정구슬을 만지작거리다 몇 번 두드려 보기까지 한 유니스는 한

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 했을 때의 대책도 생각해 뒀어야 했는데 • "

"자책하지 마시죠. 예측했기 힘 든 상황 아닙니까."

나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 리에 걸터앉았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 건만,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원군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착석했을 때 유니스가 입을 열었 다.

"우선 계속 통신을 시도해 보겠 습니다. 오늘 안에 연결이 되지 않으면 곧바로 철수 통지를 내리 겠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데 적어 도 하루 이틀은 걸릴 테니 정보를 전해 받는 것이 늦긴 하겠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북부군이 진지를 친 상황 인데 무사히 건너올 수 있겠습니 까?"

마력을 방해하는 전파가 퍼진 상황이니 순간이동 아티팩트 사용 도 어려울 터였다. 내 염려에 유 니스가 시원스럽게 웃었다.

"제가 보장하는 실력자들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히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목소리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 다.

'느낌이 안 좋은데.'

그 자부심에 함께 안심할 수 있

으면 좋을 텐데. 거미처럼 폐부를 타고 오르는 껄끄러움을 지우지 못해 웃지 못할 때였다.

지 지 직 -

-사, 령- 님!

그 순간 통신구에서 귀 따가운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끊기는 음 질 좋지 않은 목소리가 퍼져 나왔 다.

" 연결됐습니다!"

두 손으로 통신구를 꽉 붙잡은 유니스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탁자를 으스러져라 붙잡았 다. 통신 상태가 언제 끊겨도 놀 랍지 않을 만큼 나쁜 상태라 절로 마음이 급해졌다.

"펠릭스, 보고해라! 병력은 어느 정도지? 그곳 상태는......!"

"그거 말고! 어떤 마수가 있는지 부터 물어보세요!"

초조해졌는지 두서없이 묻는 유 니스를 저지했다. 기회가 많지 않

다면 그들의 필살기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이치에 맞았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유니스는 심호흡 후 한층 차분해 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숲속에서 마수를 발견했나? 어 떤 마수가 있는지 보고하도록."

-지금 쫓- 화살- 오니스는 주, 죽었- 저는 위, 험합, 니다!

정신 산만하도록 끊기는 목소리 가 귀를 아프게 했으나 누구도 그 걸 지적하지 않았다. 제대로 전달

되진 않지만 그곳의 상황이 심각 하다는 것은 앞뒤 문맥으로 충분 히 파악 가능했다.

"빌어먹을, 그래. 수고 많았다. 자네라도 돌아와! 정신없겠지만 어떤 마수가 있는지만 보고해 주 게!"

표정이 일그러진 유니스가 연달 아 마른세수를 했다. 수하를 잃었 으니 마음이 복잡할 텐데도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타다닥! 쉬이익!

도망치고 있는 건지 거친 발걸 음 소리가 통신구를 통해 울려 퍼 졌다. 화살이 날아다는 듯 날카로 운 소리도 잇달았다.

막사 안에 숨 막히는 정적이 이 어 졌을까.

-독- 숨이 막- 거대하, 고, 나 무가- 배......•

푹!

뒤늦게 두서없이 이어지던 목소

리는 살이 뚫리는 소름 끼치는 소 리와 함께 뚝 멈췄다.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유니 스의 얼굴에 절망이 물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다.

막사 내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 는 가운데, 통신구 너머로는 소음 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스럽게 부스럭거리는 소리, 시끄러운 발소리, 웅웅거리는 사

람들 목소리가 울리더니 어느 순 간 최악을 달리던 음질이 깨끗해 졌다.

-아아, 들리나? 전파 교란 장치 도 잠시 껐는데.

여자의 낮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콰직.

나는 순간 힘 조절에 실패해 꽉 쥐고 있던 탁자를 부수고 말았다.

"힐다 베스토......

그날 보았던 독기 어린 잿빛 눈 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쥐새끼 같은 염탐꾼을 둘이나 보냈을 줄이야. 마지막 놈은 날래 서 꽤 고생했다.

마음 졸였던 조금 전과 대비될 만큼 원활한 통신에 화가 날 지경 이었다. 빠득 갈리는 이를 고집스 레 악물고 있을 때,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카슈미르 크리시스. 그곳에 있 나?

막사 안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이곳에서 힐다를 선두로 한 북 부군의 습격을 받았던 지원군 2 군에 속했던 이는 조나단밖에 없 으므로, 다들 힐다가 나를 아는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조용히 수정구를 노려보았 다.

"그래."

-이번엔 도망치지 않을 거다.

목소리는 단단히 악에 받쳐 있 었다.

-날 살려 둔 건 잘못된 선택이 었다. 후회하게 해 주지. 기다리 고 있어라.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람을 살려 두었기 에 사람이 죽는, 숨 막히는 딜레 마가 내 숨통을 죄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코 시선을 떨 구지 않았다.

"내 선택은 완벽했다. 감히 네가 평가할 것이 아니야. 네가 내게 대단한 위협이라도 될 거라고 자 만하나, 힐다 베스토? 그날 우리 의 승리는 운이 아니다."

'모든 선택에 확신을 가져라. 너 스스로는 끊임없이 곱씹고 성찰하 더라도 사람들에겐 조금의 의심도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네가 네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네 뒤를 보고 가는 이들도 널 의심하

게 될 거다.'

카이사르의 낮은 목소리가 머릿 속에서 웅웅 울려 퍼졌다.

끊임없는 딜레마는 오로지 나만 의 과제여야 했다.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겐 결코 약한 모습을 보여 선 안 됐다.

-하! 오만하기는.......

통신구 너머에서 노기 어린 웃 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힐다 베 스토를 바라보듯 통신구를 노려보

았다.

"기다려야 할 건 너다. 그날 반 으로 갈랐던 협곡처럼 너도 반으 로 갈라 주지. 너희 군사들도, 네 가 끌고 온 역겨운 마수도."

나는 굳어가는 입꼬리를 한껏 비틀었다.

"이번엔 도망가지 마라. 두 번이 나 도망가는 비겁한 미꾸라지는 그 망할 요르하도 거부할 테니 까."

북부인들에겐 전사들의 낙원인 요르하에 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이, 개자식이! 감히......!

"수장과 연락 정도는 하고 있겠 지? 지그문트 하이드, 그 새끼한 테도 전해."

그녀의 분노를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이 전쟁을 일으켜 내게 수많은 딜레마를 안겨 준 장본인.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내가 가장 강하고 짙은 감정을 품 고 있는 존재.

"착각하지 마. 난 널 죽일 수 있 으니까. 다시 만나는 날엔 내가 내 스승을 어떻게 죽였는지 직접 알려 주지."

여전히 카라쇼를 사랑했다. 하지 만 더는 카라쇼의 신념이 내 신념 과 같지 않았으며, 그녀의 마음이 내 마음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손수, 그분 곁에 처박아

주마."

나는 이제야 나로서 바로 서고 있었다.

-이 미친 천둥벌거숭이가! 지그 문트 님께서 어떤분인줄 알 고

쨍그랑!

나는 유니스가 들고 있던 통신 구를 낚아채 막사 벽에 힘껏 던졌 다. 수정구슬이 개박살 나고 막사 벽이 움푹 파였다.

"괜한 말이 나와 병사들의 사기 만 떨어질까 염려했습니다. 부디 돌발 행동을 용서하시지요."

"어, 어, 네......

후, 길게 숨을 뱉곤 눈을 휘었 다. 통신구를 들고 있던 손 그대 로 어정쩡하게 굳은 유니스가 멍 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벌떡.

나는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들이 어떤 종류의 마수를 끌 고 왔는지 파악하는 건 전략적으 로 아주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대비할 것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니 까요."

'독, 거대하다, 나무.'

좋지 않은 통신으로 간신히 들 은 것은 이 세 가지에 불과했다.

'겨우 이걸로는 어떤 마수인지 예측하기 어려워. 독이 있고, 거 대하며, 나무와 관련된 마수들은

한둘이 아니니까.'

당장 떠오르는 마수만 해도 대 여섯 종류가 넘었다. 나는 허리띠 에 달아 두었던 검집을 단단히 고 정했다.

"이미 사상자가 생긴 위험한 일 에 가고 싶은 병사는 없을 테고, 평범한 병사가 성공할지도 미지수 이니......

깨진 통신구의 투명한 조각에 비친 내 두 눈이 섬광처럼 번뜩이 고 있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적들의 진지에."

힐다를 살려 보냈던 것에 대한 책임을 온 몸 다해 지고자 했다.

"이렇게 끊겼다고? 빌어먹을, 카슈미르 크리시스!"

콰직!

격노한 힐다 베스토가 들고 있

던 통신구를 바닥에 내던지곤 부 츠의 뭉툭한 굽으로 짓밟았다. 통 신구가 힘없이 박살 났다.

강 건너편의 눈 덮인 숲속. 시체 한 구를 옆에 둔 힐다가 제 머리 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통신구만 고생이군. 진정해라.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또 다른 통신구에선 흐릿 한 인영이 비쳤다.

지그문트 하이드. 그가 그곳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그문트 님께선 화도 안 나십 니까? 저런 애송이가 당신을 모 욕하는데

수하가 들고 있던 지그문트와 연결된 통신구를 건네받은 힐다가 성을 냈다. 낮은 웃음이 터져 나 왔다.

-아니. 오히려...... 꽤 즐겁군. 저렇게 성질이 더러워졌을 줄이 야. 원래도 상당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힐다는 얼 굴을 구겼다.

그녀는 자신의 수장을 늘 존경 하며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으나, 이런 모습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 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갑고 무미건 조한 그의 수장은 '카슈미르 크리 시스'만 연관이 되면 미묘하게 다 른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까.

-승리하면 카슈미르 크리시스는

반드시 생포해 와라. 부상은 얼마 나 입든 상관없다.

지그문트는 몇 번이고 당부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 수긍은 했 으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이었다.

얼굴을 찌푸린 힐다는 조심스럽 게 물었다.

"그녀를...... 곁에 두시려는 겁 니까?"

-아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정한 지그문트가 답했다.

-내 손으로 죽일 거다.

명백한 진심이 담긴 목소리. 진 위 여부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대체 당신께 그녀는 뭡니 까?"

힐다는 입술 새를 비집고 튀어 나오는 의문을 막을 수 없었다.

여태껏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

았으나 카슈미르 크리시스를 향한 지그문트의 감정이 긍정적인 건지 부정적인 건지 파악할 수 없었다.

파악되는 건 깊이와 농도뿐.

증오인지, 흥미인지, 악의인지, 호의인지, 아니면 그 모두일지 모 를 그의 감정은 아주 깊고 짙었 다.

파블로프에서부터 한참은 떨어 진 북부의 기지에서, 지그문트는 웃었다.

시내 인생 최고의 개자식이지.

이번엔 진위 여부를 결코 파악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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