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3대 구라 -2-
#
양대근이 빠진 오션스 라인업은 이랬다.
[부산 오션스 라인업.]
1번 3루수 황석규.
2번 우익수 배영한.
3번 유격수 강건우.
4번 1루수 울프팩.
5번 지명타자 이시욱.
6번 2루수 노경우.
7번 중견수 김성훈.
8번 좌익수 김지호.
9번 포수 조용수.
1번부터 5번까지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몇몇 선수들은 당장 타율은 낮지만, 장타 포텐셜이 있는 편이라 시즌이 진행되면서 올라올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거기에 6번 노경우도 지난 경기에서 데뷔 후 2경기 만에 첫 홈런을 때려내며 팬들에게 기대를 받고 있었다.
다만, 7번부터 9번까지가 문제였다.
[오늘 김김조ㅋㅋㅋㅋㅋㅋㅋㅋ 제대로 쉬어가는 하위타선ㅋㅋㅋㅋㅋ]
ㄴ7~9번 졸음 쉼터 아님??
ㄴ김김조는 걍 휘두르질 마라 투구수나 만땅으로 채우게
ㄴ쟤들은 왜 타격 실력이 늘지를 않음? 훈련 안 함?
ㄴ왜긴 니네 육성 개못하잖음
ㄴ강건우 노경우 잘 하는데 몬 소리임
ㄴ걔네는 걍 원래 잘 하는 애들인거지
ㄴ그래도 타자는 좀 키웠다 투수가 문제라 그렇지
ㄴ근데 김김조는 왜 못 키우는거임?
ㄴ허준 고조할아버지가 와도 시체는 못 살림
ㄴ아
ㄴㅅㅂㅋㅋㅋㅋㅋㅋ
ㄴ시발 그럼 시체들 말고 사람을 넣어야지 2군에 사람 없음?
ㄴ있겠냐
ㄴㅋㅋㅋㅋㅋㅋㅋ없음 시발ㅋㅋㅋㅋㅋㅋ
ㄴ팀 이름 좀비스로 바꾸는건 어떰?
ㄴ좀비는 무섭기라도 하지
ㄴ마 지금 리그 1위 오션스 무시하나?
ㄴ2경기하고 1위 드립치면 안 쪽팔림?
ㄴ오.션.스.승.리.하.리.라.
ㄴ승리의 오션스한테 밟히고 싶음?
ㄴ입벌구 새끼덜 ㅋㅋㅋㅋ패배의 오션스면 몰라도
ㄴㄹㅇ루 ㅋㅋㅋㅋ
팬들이 꼽는 프로야구 3대 구라는 아래와 같았다.
무적 엔젤스.
최강 메테오스.
승리의 오션스.
물론, 엔젤스 입장에서는 억울한 타이틀이었다. 메테오스나 오션스와는 달리 최근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야구에서 그런 건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ㄴ아이언스 ㅋㅋㅋㅋㅋㅋ 기왕 할거면 꼴찌가 낫지 ㅋㅋㅋㅋㅋㅋㅋ
ㄴ오션스는 전략적으로 꼴지한거임 강건우 데려오려고
그저 다른 팀을 놀리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할 뿐이었다.
ㄴ너네 누가봐도 걍 개못해서 10위임
ㄴ꼴션스특)승부수 던진다고 선언해도 승률 4할
ㄴ8ㅏ이언스가 말하니까 웃기네
ㄴ돌멩이들보다 못하는 새끼들한테 몰바람? 저새끼들은 웰시코기들이랑 야구해도 질 놈들임
ㄴ너넨 오늘 건우한테 뒤졋다
ㄴ니네 간판 우리한테 뺏기고 내세울게 신인이냐?
ㄴ대근이형 없는걸 다행으로 알아라
ㄴ응 너넨 양대근 없고 우린 박정신 있음
ㄴ박븅신 그쉑 영양가없고 스탯관리만 함 ㅅㄱ 너네 70억 날린거임
ㄴ꼴션스특)그래놓고 배영한 78억에 데려옴
ㄴ정보)지난시즌 박정신은 타율 0.324/23홈런 내야수고 배영한은 타율 0.305에 16홈런 외야수다.
ㄴ개새끼들아
ㄴ고만 놀려라 울겠다
#
1번 타자로 나서고 있는 황석규 선배는, 개인적으로는 1번이 아니라 5번이나 6번 정도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장타력도 꽤 있고 발도 빠른 편이긴 하지만, 눈야구 자체가 안된다.
타순이 시즌 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타순에 맞는 성향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감독들이 저런 스타일의 선수를 1번에 넣는 이유는 단연 장타다. 1회가 시작되자마자 장타 한 방이 터지면 게임의 흐름이 달라지는 법이다.
따아악-!
1회 초에 우리 선발 투수인 투수조 조장 김정용 선배가 볼넷 하나와 안타 하나를 내줬지만 정말 꾸역꾸역 막아냈고, 1회 말이 시작되자마자 황석규 선배가 좌익수 측 펜스를 직격하는 큼지막한 2루타를 때려냈다.
“황석규! 황석규!”
“힘을 내요 미스터 황!”
황석규 선배는 개인적으로 저 응원 구호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팬들은 신나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덕아웃에 앉아 있으면 생각보다 팬들의 외침이 잘 들린다. 김정용 하는 거 보니 오늘 경기 조졌다고 욕해대던 팬들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2번! 타자! 배! 영! 한!”
시작은 영 안 좋았지만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바로 분위기를 뒤바꾸는 2루타.
배영한은 좀 이상한 사람이긴 해도, 컨택 능력 하나만큼은 꽤 괜찮은 편이다.
리그에서 대표적인 배드볼히터 중 하나.
하나 확실한 것은, 아무 공에나 배트가 나간다고 해서 배드볼히터라는 타이틀이 붙는 건 아니라는거다.
딱!
나쁜 공도 안타로 연결하곤 해야 배드볼히터다.
아이언스 좌완 선발 이태영의 슬라이더가 존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좌타자 배영한이 엉덩이를 빼면서도 툭 밀어치는 데 성공했다.
타구에 힘은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짧게 뜬 타구는 잡을 수 없는 코스로 날아갔다.
사실, 저런 타구는 보기보다는 기술적인 배팅이 필요하다.
물론 메이저리그 레벨의 빠른 공을 저런 식으로 치는 건 어렵겠지만.
나름 KBO에서는 78억 원 규모의 계약을 따낼 선수니까.
주자 1, 3루 상황이다. 2루 주자가 홈까지 대쉬하기에는 짧은 타구였다.
“강-건-우우우우! 강! 건! 우! 오션스 강건우-!”
“갱! 건! 우!”
벤치에서 나온 작전은 없다. 수석 코치가 현란하게 몸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뭔가 있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오늘의 싸인은 벨트 버클을 만진 뒤의 싸인이 진짜 싸인이다.
나는 타석 바로 앞에서 수석 코치의 싸인을 유심히 쳐다보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인 후 배트를 짧게 잡고 타석에 들어섰다.
아이언스 포수 최유현이 슬쩍 말을 걸었다.
“야야, 살살 허자.”
그냥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번트 자세를 취했다.
“번트?”
당연히 아니지.
스퀴즈 번트를 누가 이렇게 해?
스퀴즈 번트는 수비팀이 눈치 못 채게 해야 한다. 나는 그냥 투수와 야수들의 머릿속에 번트라는 선택지를 아주 조금 심어놓은 것 뿐이다.
그리고 초구.
나는 진짜 번트 댈 것처럼 끝까지 자세를 취했다가 공이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보고 배트를 집어넣었다.
“볼!”
포수가 투수에게 공을 돌려주자마자 번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다시 볼.
2볼 노 스트라이크까지 쉽게 왔다.
이게 번트 흉내를 내서 나온 결과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내 첫 두 경기에서의 홈런 기록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 투수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2경기 3홈런의 기록에 겁을 먹거나, 아니면 그래 봤자 신인이고 그건 초심자의 행운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나.
“볼!”
혹은.
“볼넷!”
그냥 시작부터 연속 안타 맞고 제구가 안 되는 거거나.
이런 상황에서 볼넷을 얻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직접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잘했다.”
배트를 던져두고 1루를 밟자, 성정우 코치님이 와서 내 엉덩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작게 귓속말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워서. 자, 침착하게 가자.”
1회 말, 무사 만루.
“승리의! 오션스! 오늘도! 승리하리라!”
관중들이 시작부터 완전히 흥분한 상태다. 뒤를 돌아보자, 힘차게 펄럭이는 커다란 깃발 두 개가 보인다.
존 비슷하게만 왔어도 때렸을 거다. 타점 올리면 유리가 좋아할 테니까.
타석에는 울프팩이 들어왔다. 큰 덩치가 타석에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이다.
“아오오오오오오오오!”
울프팩이 개막 후에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는데.
팬들이 늑대 울음소리를 낸다. 그리고 울프팩은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따아아아아악-!
투수의 초구에, 스윙하다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은 파워풀한 풀스윙으로 공을 때려버렸다.
“아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울프팩! 울프팩!”
울프팩이 타구를 바라보며 씩 웃더니, 왼팔을 들어 올려 이두박근에 키스하고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3루를 돌 때, 아이언스 3루수 박정신과 눈이 마주쳤다. 조금 이상하게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음. 시비를 걸고 싶어 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뭐, 내 알바는 아니다.
“I am the king of wolves!(나는 늑대의 왕이다!)”
홈을 밟으며 소리치는 울프팩의 등짝을 때려주며 축하했다. 난 볼넷이었지만 울프팩이 그랜드 슬램을 때렸으니 유리도 만족하겠지.
#
시작부터 터진 만루홈런에 미친 듯이 깃발을 흔들어대던 오소희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울프팩 힘 장난 아니다, 그치?”
“엄마. 건우가 번트하는 척해서 투수 흔들어서 그런거야.”
정유리의 말에 강건우의 모친, 이미래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 우리 아들 때문에 홈런 친 거야?”
“그렇죠! 야구는 멘탈 싸움이거든요! 건우가 신인 같지 않은 능숙함으로 투수 멘탈 흔들고! 영리하게 출루해서 만루 채우고! 만루니까 어쩔 수 없이 투수는 스트라이크 던지고!”
“그러다 한국인이 노벨상 타도 건우 덕분이라고 하겠다?”
“그럴 수도 있지 엄마! 우리 건우 야구하는 거 보고 영감을 얻어 가지고!”
두 엄마는 크게 웃었다. 강건우가 홈런을 치면 더 기분 좋았겠지만, 어쨌든 강건우는 잘하고 있다.
뒤에서 벌써 술에 취했는지, 아저씨들이 큰 목소리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거 이러다가 진짜 우승하겠는데! 장난 아니네 오션스!”
“올해가 우승 적기다!”
“할 때 됐지!”
“아무리 봐도 존나 쎄다!”
“맞다! 존나 쎄지!”
“마, 니 말이 맞다! 보통 쎈게 아니다!”
“암! 야구 좀 볼 줄 아네!”
#
아이언스 타선은 균형이 그럭저럭 맞는 편이었다. 좌타자와 우타자가 적절히 섞여 있고, 팀 배팅에도 꽤 능하다.
경기 초반부터 4점 차가 됐음에도 무사 1루에 주자가 나가면 번트를 대 2루로 보냈다.
차근차근 1점씩이라도 따라잡으려는 시도 같았다. 어쩌면, 조금씩 점수를 내서 오션스 불펜을 상대로 승부를 걸려는 작전일지도 모른다.
아이언스는 2회 초에 그렇게 1점을 짜냈다. 선두타자 안타, 번트, 적시타.
3회 초에는 1사 주자 3루 상황에서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내줬다.
그리고 4회 초, 박정신이 친정 팀 오션스를 상대로 1점 홈런을 터뜨려 스코어 4대 3.
나는 3회 말에 안타를 때려 출루했다.
하지만 후속 타자 불발로 점수를 내지는 못했고, 4회 말.
팀의 7, 8, 9번 타자들이 3연속 삼진을 당하며 아이언스 선발 투수 이태영이 포효했다.
완전히 살아난 모양새였다. 하긴, 상당히 실력 있는 투수다. 몇 개 구종을 수준급으로 던질 줄 알고 대체로 빠지는 곳이 없다.
무너뜨리려면 지금 무너뜨려야 한다. 1점 차까지 따라잡힌 상태에서 더 기세를 타버리면 오션스 불펜이 막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야구에서 매일 이길 수는 없다.
그런데 개막 시리즈에서 연승을 거두니 유리가 여러모로 행복해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그 행복한 감정을 더 느끼게 해주고 싶다.
유리가 아이언스로 이적한 박정신의 팬이었으니까 더더욱.
1번 타자부터 공격이 시작됐다. 황석규 선배의 타구는 중견수에게 잡혔고, 배영한이 오늘 경기 두 번째 안타를 때려냈다. 우익수 앞에 뚝 떨어지는 타구.
평일 경기임에도 꽤 많은 사람이 야구장을 찾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내 이름을 외치고 있다.
불펜이 불안하면 불펜이 터지더라도 이길 만큼 많은 점수를 내면 된다.
상대 투수의 투구 수는 89개.
슬슬 구위가 떨어질 시점이다. 그리고 내가 투수라면, 오늘 만루 홈런을 때리고 대기 타석에서 풀스윙하고 있는 울프팩과 다시 승부하고 싶진 않을 거다.
좋은 볼은 안 오더라도, 최소한 스트라이크는 던질 거라는 뜻이다.
배트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메이저리그에서 어설픈 타구는 촘촘한 수비 시프트를 피해가기 힘들었다. 중장거리 타자였던 나는 이 타격 폼으로 수비 시프트를 피하는 길을 찾았다.
수비 시프트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프트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타구를 날려 보내는 것이다.
수비수가 없는 빈 땅도 좋지만, 절대 잡을 수 없는 곳은 바로 펜스 뒤다.
이 스윙은 오직 홈런을 위한 스윙이다.
힘 자체보다는 스윙 스피드와 발사각도. 끝까지 보고 끌어치는 것이 아닌, 공이 조금이라도 더 꿈틀거리기 전에 앞에서 쳐 높게 멀리 보내는.
투수는 스플리터와 슬라이더도 잘 던지지만 주 무기는 투심이다. 좌투수가 우타자를 상대할 때 투심은 꽤 괜찮은 선택지이기도 하다.
바깥쪽 낮은 투심을 머릿속에 집어넣자.
존 앞에서 때려야 한다. 타이밍이 엇나가면 병살타가 되기 쉽다.
심호흡하고, 투수가 1루에 주자를 뒀을 때의 템포는 이미 봐뒀다.
기다린다. 투수가 땅을 슬쩍 보고 고개를 들었다. 숨을 살짝 멈춘다. 투수가 스트라이드를 뻗으며 왼팔을 뒤로 잡아당겼다. 아직 숨을 내쉴 때가 아니다. 왼손이 나온다. 조금만 더.
왼손이 공을 놓을 때.
참았던 숨을 누르듯 내뱉으며, 왼발은 인스텝. 140km/h 초반대의 타이밍에 맞춰, 풀스윙.
따아아아아악-!
바깥쪽으로 살짝 도망가려는 공을, 배트에 묶어두듯 때려 올렸다.
이 느낌이면 안 봐도 홈런이다.
타구의 방향은 중견수 쪽. 높게 뜬 타구가 전광판을 때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갱! 건! 우!”
“승리의 오션스! 오늘도 승리하리라!”
관중석이 들썩인다. 유리의 모습은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커다란 깃발 두 개는 볼 수 있었다. 저기 옆에서 기뻐하고 있겠지?
#
[오션스! 파죽의 3연승! 아이언스 상대로 8대 6승리!]
[울프팩! 한국 무대 첫 홈런을 만루 홈런으로 장식하다!]
[강건우, 데뷔 후 3경기 연속 홈런.]
[오션스 감독, ‘모두 좋은 경기였다. 울프팩의 힘은 메이저리그 레벨. 갱건우는 메이저리그 레벨의 영리함을 가진 선수.’]
[주장이자 핵심 선수인 양대근 없이도 연승을 이어가는 오션스! 올해는 다를까.]
[오션스 수석 코치, ‘(강)건우 봤어? 강공하랬더니 번트 하는 척을 해서 볼넷을 얻더라니까. 여우야 여우.’]
[오션스 박준기 단장, ‘즉시 전력감이 아닌 선수에게 15억을 줄 이유는 없다.’]
[퀄리티 스타트의 달인 김정용! 오늘도 퀄리티 스타트!]
[초대형 유격수 탄생 예감. 강건우 리포트.]
[박정신, 친정 팀 오션스 상대로 시즌 첫 홈런 기록했으나 석패.]
[아이언스 감독 오대서,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오늘 졌으면 내일 이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