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핑 테스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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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스의 정태구 감독은 이번 시즌이 계약 마지막 해다. 부임 첫해에 또 9위에 그쳤지만, 두 번째 시즌인 2028년에 가을 야구 경쟁에 참여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물론 7위로 마감하긴 했으나 메테오스 팬들에게 미래를 기대할 만한 경기를 보여주었기에 인기가 상당했다.
오션스 감독 휴 브레드먼은 3년 연속 10위에 그쳤던 팀을 부임 첫해에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어떤 오션스 팬들은 벌써부터 종신 계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어떤 팬들은 부산팀 외국인 감독의 포스트시즌 잔혹사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무튼, 인기 있지만 성적은 나빴으며 반전을 이뤄내려는 두 팀의 대결이다.
한 팀의 선발은 FA로 데려온 국가대표 우완투수.
또 상대 팀은 팀 프랜차이즈인 국가대표 우완투수.
2회 초, 민승기가 마운드에 섰다.
다이아몬즈 소속일 때의 민승기와는 어딘가 다른 분위기였다.
예전의 민승기는 항상 진지한 무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포효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했지만, 지금의 민승기는 결의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종종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강건우는 그걸 보고 소름 끼치는 히죽거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션스 팬들이 보기에는 조금 달랐다.
2회 초. 첫 타자.
이적 후, 그립을 조금 길게 잡아 장타력을 극대화하려는 변신을 꾀하는 이성혁을 상대로 바깥쪽 낮은 코스를 향하는 커브를 던졌다.
커브를 장착해 패턴을 조금 바꿨다고는 하지만 민승기 하면 하이 패스트볼이다.
배트를 길게 잡고 그립 위치를 높게 형성하면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에 타이밍이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한 시도다.
이성혁이 떨어지는 커브를 억지로 잡아당겼고, 강건우가 미끄러지듯 몸을 기울이며 잡아낸 후 1루로 송구했다.
[민승기 존나 행복피칭하는거 보니 감개무량함]
└ㄹㅇ던지는거 존나 행복해보인다 나까지 기분 좋아짐
└더 노련해지지 않음? 커브로 찢는거 지릴거같음 ㄷㄷㄷㄷ
└오늘 또 지리면 되냐? 분위기 개좋은데?
└시발 퍼펙트할때 이미 한번 지려서 와이프한테 갓중경고 받았는데 또 지리면 어케하지
└학습력 떨어지는거 보소 ㅉㅉㅉ 나처럼 변기에 앉아서 봐야지
└난 아끼는 팬티 벗어놓고 일부러 후줄근한거 입고봄ㅎ
└ㅂㅅ들ㅋㅋㅋㅋㅋ 팬티 안 입고 보면 되는데
장타력이 돋보이는 빅터 발타사르와의 승부도 압권이었다. 높은 코스로 던진 154km/h 포심에 배트가 헛돌았고, 두 번째 공도 같은 코스였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구위
└ㄷㄷㄷㄷㄷㄷㄷㄷ아까 팬티 안 입고 본다던 새끼 어디감?
└씻으러감 ㅅㄱ
└갈때 가더라도 삼구삼진 보고 가야지 ㄷㄷㄷㄷㄷㄷ
그리고 3구.
높은 코스로 날아오는 듯하다가 뚝 떨어지는 커브. 헛스윙 삼구삼진.
└ㅅㅅㅅㅅㅅㅅㅅ
└와 시발 진짜 커브 와
└돌겠네 진심 ㄷㄷㄷㄷㄷㄷ
└진짜 도저히 질 것 같지가 않음
민승기는 커브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는 타자를 보고는, 당연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뒤돌아서서 다시 마운드로 돌아갔다.
‘나는.’
“민승기! 민승기! 민승기!”
‘민승기다.’
“민승기! 민승기! 민승기!”
‘그것도.’
“민승기! 민승기! 민승기!”
‘사직의 민승기.’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직 야구장에서 오션스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서서, 오션스 팬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는.
민승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나는 이걸 위해 살아왔다.
타자가 타석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집을 바라보았다.
설치해둔 카메라가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을 것이다. 오션스 팬들의 박수를 한 몸에 받는 자신을.
온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느낌.
민승기는 공 네 개를 더 던져 2회 초를 마무리했다.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울려 퍼지고 있다.
‘도무지...’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 다 가져버린 남자는 바로 나.
‘질 수가 없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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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재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 투수다. 오션스 홈 관중들이 아무리 소리치고 투구를 방해하려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좀처럼 긴장감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이 투수는 큰 경기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큰 경기에 뛰어 본 적이 거의 없는 선수였다.
“용재야! 고마 니도 2년 뒤에 부산 온나! 오늘은 대충 좀 던지고!”
오션스 팬들의 행복회로는 무한히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머릿속에 몇 시즌 뒤 선발 로테이션은 민승기-김권종-박용재-용병-용병으로 이미 구상되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박용재는 오션스 선두 타자 이시욱에게 평범한 포심을 던졌다. 평범해 보였다. 최고 구속까지 가지도 않았고, 코스도 무난했으며, 경기를 보고 있는 팬들의 입에서 ‘저걸 안 치면 뭘 치려고 저러나’하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은 코스.
그다음은 투심. 그리고 그다음은 스플리터. 삼구삼진으로 물러나는 이시욱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기가 뭘 당한 것인지도 모르는 그런 얼굴.
└노루새끼 뭐함 요새 잘한다 했더니 뭐 손도 못 대네
└안치고 뭐함???진심;;;
└오늘 타자들 죽쑤는거 다 노루때문임 파인애플 피자 먹어서 그럼
└뇌절 멈춰
└건우는 안타침
└건우는 피자 안 먹고 유리 누나 챙겨주러 가던데
└가서 같이 먹었겠지
└유리누나가 피자 토핑보고 화내서 못 먹은건 아닐까?
└시발 여기가 오션스 갤러리여 파인애플 피자 갤러리여?
투수전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다. 투수가 너무 잘 던져서 타자들이 전혀 힘을 못 쓰는 경기, 그리고 타자가 너무 못해서 투수전처럼 보이는 경기.
이 경기는 명백히 전자였고, 박용재는 2회 말을 삼자범퇴로 마무리하며 내려갔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요. 만약 강건우가 메테오스로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하하. 실제로 메테오스 팬 분들이 많이 하는 이야깁니다. 뭐하러 아등바등 9위 해서 그랬냐고요.
-메테오스 투수진이 워낙 좋지 않습니까? 물론 오션스도 괜찮긴 한데 용병을 잘 뽑은 것도 있고. 예. 야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요.
-사실 어느 팀에 가더라도 팀을 몇 단계 레벨업 시켜줄 선수란 건 분명하거든요. 좀 과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강건우가 없었다면 작년 오션스 성적이 어땠을까. 그리고 민승기 서창열 같은 KBO 탑 레벨 선수들이 오션스와 계약했을까.
-하긴, 선수들은 커리어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강팀 반열에 올라서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민승기 선수는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데도 오션스를 선택했으니까요. 뭐, 복덩입니다 복덩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오션스 모기업 회장님께서 강건우라면 껌뻑 죽는다고...
-그런가요?
-아무래도 야구단 운영이라는 게 홍보 목적이 강한데, 그간 성적이 워낙 나빠서 마이너스였다 보니, 강건우 등장 이후 기업 이미지 제고가 정말 많이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죠.
-서로 좋은 거죠. 야구 잘 하고, 이미지 좋아지고, 선수는 CF 같은 것도 많이 찍고. 아무튼 이런 것들을 저는 강건우 효과라고 봅니다.
└마 돌았나 강건우 돌테오스 가는 소리 하지마라
└돌멩이가 10위 했으면 건우 메이저 갔음
└ㄹㅇㅋㅋ 유리누나가 메테오스 허락했을리가 없지
어쨌거나.
양 팀 선발 투수는 6회까지도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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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큭큭...”
투수는 승리, 타자는 타점.
소위 말하는 투승타타는 허상에 가까운 지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선발 투수라면 당연히 승리를 따내고 싶어 하고 타자는 타점을 올리고 싶어 한다.
그게 연봉 고과에 얼마나 산정되는가와는 별개가 될 수도 있다. 승리 투수가 되었다는 것은 최소한의 승리 요건(선발 기준 5이닝 동안 상대 팀보다 적은 실점)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드물게 아닌 투수도 있지만, 그래서 대부분의 투수들은 득점 지원을 신경 쓰는 편이다. 물론 그걸 신경 쓰면서 점수를 더 내라고 짜증 내는 것보다는, 쿨한 척 신경 안 쓰는 척하는 것이 보기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기 형은 6이닝 1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매치업에 걸맞은 승부다...강건우.”
“...”
“10대 0으로 이기는 것보다 1대 0으로 이기는 것이 더욱 나를 돋보이게 하겠지.”
“...”
“내가 아니면 승리를 따낼 수 없었을 테니까.”
“...”
“걱정하지 마라.”
“...무슨 걱정요?”
“네가 이번 타석에서 아무것도 못 하더라도.”
“예?”
“한 번 정도는 더 기회가 남아 있을 테니까.”
“아, 예...”
“그게 아니더라도.”
“...”
“연장전에서 점수를 내서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으니 상관없지.”
“연장전까지 던지게요?”
승기 형이 우수에 찬, 한 대 때리고 싶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옛날에 한 투수가 있었지.”
“누구요.”
“그리고 그 투수에게는 라이벌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요.”
“둘은 15이닝까지 던져서 승부를 내지 못 했지.”
“연장전은 12이닝까지밖에 안 하는데요.”
“두 투수가 모두 200구를 넘기면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경기는 2대 2로 끝났다.”
“2점 내주시려고요?”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박의현이 끼어들었다.
“승기 형님.”
“박의현.”
“저는...정말...형님의 열정에 감동받았습니다! 가훈은 민승기처럼 살자! 제 좌우명은 민승기의 열정을 본받자! 예! 형님! 제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끝까지 공을 받겠습니다!”
“좋은 각오다.”
바보들은 바보들끼리 놀게 내버려 두자. 쓰러져도 투수가 먼저 쓰러지겠지, 저게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둘이서 헛소리를 하는 동안 자리를 피해 주상욱을 발견했다. 주상욱이 씩 웃었다.
“포기하면 편해.”
“머리론 포기했는데 자꾸 거슬리네요.”
“차라리 즐겨보는 건 어때?”
“어떻게 즐겨요?”
“나도 우연히 발견한 건데.”
“예.”
“옆에서 살살 부추기면 재밌어져.”
“더 부추기라고요?”
“이게, 그냥 일방적으로 당하면 휘둘리는 것 같고 부끄럽고 그렇잖아.”
“그렇죠.”
“원래는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는데, 저 형 정신 놓은 거 보고 즐기니까 은근 재밌더라.”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자는 이기려고 하지 않지만 이긴다고 했던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주상욱은 마치 현자처럼 날 보며 같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승기 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전 형이 부러워요.”
“큭큭큭...당연히 그렇겠지. 강건우.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까. 자. 날 더 부러워해라. 그게 네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더, 더, 더.”
나는 어떤 것도 쉽게 포기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내게 너무나도 치명적인 것을 포기했다가 다시 기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못 해 먹겠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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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초, 의욕이 조금 떨어졌지만, 분석실 창문 너머로 초롱초롱한 유리의 눈빛을 보고 다시 정신을 부여잡았다.
3루 쪽으로 빠지는 강한 타구를 끝까지 쫓아가 잡아냈고, 텍사스성 안타가 될 뻔한 공에 몸을 날려 다이빙캐치로 아웃 카운트를 따냈다.
승기 형이 씩 웃으며 난리 난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뭔데. 왜 자기가 잘 한 것처럼 저러는데. 나 아니었음 연속 안타 될 뻔했는데?
어쨌거나, 7회 말.
능글맞은 얼굴의 박용재를 다시 타석에서 마주했다. 첫 타석은 2루타, 두 번째 타석은 좌익수 플라이.
승기 형 때문에 조금 사라질 뻔했던 긴장감을 다잡았다. 확실히, 메이저리그 레벨의 투수다. 요새 좀 해이해진 느낌도 있다.
호흡의 간격을 늘리고, 호흡량을 줄인다. 최대한 많이 담고 적게 자주 뱉는다. 이 작업을 몇 번 하다 보면, 주변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된다. 인위적으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투수 박용재의 포심을 굳이 평가하자면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도 쓸만하다. 볼 끝이 좋은 편이다. 커브와 스플리터도 그 정도라고 볼 수 있다.
투심은 확실히 메이저리그 레벨이고.
어떤 공이 날아올지 모른다. 저 투수에게 가장 큰 장점은 지난 타석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작년에 내게 홈런을 두들겨 맞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면, 그때 던진 구종을 배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타입이 아니다.
투수가 세 번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를 한 번 모으고 피칭 동작을 시작한다. 왼발이 부드럽게 뻗는다. 오른손은 머리통 뒤로 숨겨 시야를 방해한다. 팔 각도가 높은데 동작이 부드럽다. 힘들이지 않고 던지는 것 같지만 공에는 힘이 있다.
191cm의 큰 키에서 공이 쏘아져 나온다. 독특하게 팔 스윙이 두 번 분리되어 이루어지는 투구 자세. 올라가면서 한 번, 던질 때 한 번.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다.
살짝 바깥쪽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느낌이다. 사실, 타석에 서서 투수가 던지는 공이 뭔지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감, 혹은 운이다. 어쩌면 둘 다거나.
부웅-
공간을 가르듯 스윙한다. 십수 개의 동작을 하나의 동작처럼 보이도록 단련한 메커니즘이다. 배트가 바깥에서 안으로, 그리고 공이 올 거라고 예상되는 지점에서 위로 꺾어 쳐올린다.
따아아아아아아악-!
생각해보면, 나는 타자보다는 투수 쪽에 더 재능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걸 멈출 수 없는 건, 내 판단력과 감, 그리고 운이 모두 갖춰졌을 때 손끝에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손바닥에 아릿한 느낌이 전해져오면, 내가 만들어낸 침묵이 깨진다.
“강-건-우우우! 강! 건! 우! 강건우! 오션스 강건우!”
“건우야아아아아악!”
“갱! 건! 우!”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유리 누나! 고마워요!”
엄청난 데시벨의 함성들이, 각자 다른 말을 내뱉으며 귀를 때린다. 나는 팔로 스로우 끝에서 자연스럽게 배트를 튕겨 던져낸 후, 굳이 타구 방향을 확인도 하지 않고 1루 베이스로 향하며 유리를 향해 하트를 날리고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린 채 베이스를 돌았다.
팬들 만큼이나 기뻐하는 동료 선수들이 보인다. 메테오스 벤치는 침울한 분위기다.
한 바퀴 돌아 홈을 밟자, 대근이 형이 웃으며 날 반겼다.
“건우. 나이스 샷.”
담백한 감상 이후에는...
“우와아아아아! 건우야! 직이네! 건우야! 니만 믿고 있었다! 건우야! 강 선생님!”
어딘가 절박하지만, 오늘 잘 풀리지 않았던 노루 형이 펄쩍펄쩍 뛰고 있었고.
“강! 건! 우! 최고다! 강건우! 너로 말할 것 같으면! 야구의, 야구에 의한, 야구를 위해 태어난 한 남자! 바로 그거다! 부산의 슈퍼 스타아아아앗-!”
“유리를 위해 태어났...윽!”
반박하려 했지만, 끝내기 홈런이라도 친 것처럼 헬멧을 두드려 대는 선수들 때문에 말을 끝내지 못했다. 이럴 땐 입을 다물어야 한다. 억지로 말하려다가 혀를 씹을 수도 있다.
그리고.
“큭큭큭...”
미치겠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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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승부는 계속됐다. 박용재는 홈런을 맞았음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7회와 8회를 무사히 막아냈다.
민승기도 그랬다. 8회 초를 막아내고 감독에게 더 던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감과는 달리, 9회 초에 메테오스 용병 타자 빅터 발타사르에게 홈런을 맞아 동점을 허용했다.
민승기는 멈추지 않았다. 9회까지 마무리 지은 후 덕아웃으로 돌아왔고, 도망치려는 강건우를 붙잡아 말했다.
“나는 지지 않는다.”
“아직 동점이니까...”
“내가 패전 투수가 된다면 그건 다 네 탓이다, 강건우.”
“왜요.”
“왜냐하면...”
“그냥 안 들을게요.”
“안 들어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 굳이 말 안 해도 되겠지.”
강건우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기에, 말없이 분석실로 얼른 달려가 정유리를 불렀다.
“누나.”
“어? 건우? 경기는?”
강건우의 촉촉해진 눈가를 본 정유리가 당황했다.
“충전하러 왔어...”
“충전?”
“응. 충전됐으니까 가볼게.”
“응?”
“무선 충전이야.”
정유리는 당황했지만, 강건우는 다음 공격을 위해 재빨리 돌아왔다.
박용재는 여전히 마운드를 지켰다. 9회 말 선두 타자 배영한의 타구가 아쉽게 중견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고, 강건우의 타석.
“볼넷!”
치열한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
메테오스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찾았다. 이미 투구 수가 108개에 달했기에 교체 타이밍임은 확실했으나, 박용재는 끝까지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
어차피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막아낸다면 팀 에이스의 책임감이 될 것이고, 끝내기 점수를 내준다면 내려갈 타이밍을 못 잡은 고집쟁이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강건우는, 도루를 시도했다.
“세이프!”
날카로운 타이밍. 박용재는 도루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 투수지만, 강건우의 타이밍이 워낙 좋았다.
어쨌거나, 모든 투수는 실수할 수 있다. 포수도 마찬가지고.
박용재의 스플리터를 포수가 놓쳤다.
흔히 있는 실수지만, 이런 것이 때로는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강건우가 3루에 서서 들어갔고, 양대근은 낮게 들어오는 공을 퍼 올렸다.
예전 같았으면 볼을 얻겠다고 내버려 뒀을 코스였다.
따아악-!
퍼 올린 타구는 펜스를 넘어갈 정도로 멀리 날지는 못했다. 우익수 글러브에 쏙 들어간 후, 강건우는 태그업해 홈을 향해 쇄도했다.
메테오스 우익수 채정준이 젖먹던 힘까지 짜내 홈으로 던졌지만, 강건우는 포수 태그를 절묘하게 피하며 홈을 터치하는 데 성공.
양대근의 끝내기 희생 플라이에 사직 야구장이 뒤흔들렸다. 흙바닥을 잔뜩 구르고 흙투성이가 된 강건우는 숨을 고르며 그 자리에 누워 있다가 그 누구보다 기뻐하는 민승기를 발견했다.
“우와아아아아! 민승기! 사직구장 전승 민승기! 오션스 민승기이이이이!”
쿨한 척은 있는 대로 다 하더니.
결국, 저 양반이 누구보다 승리 투수가 되고 싶어 했구나.
강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양대근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민승기가 퍼부은 물세례를 받았다.
“너라면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강건우!”
강건우는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