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8화 (8/472)

<천검지애 8화>

8화. 노력(2)

무고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무공 비록이 있었지만 내공 심법에 관한 비급은 소림내경일지선이 유일했다.

사실 소림내경일지선은 비급이라기보다는 설명서였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천하 무림의 조종으로 불리는 달마대사가 심법의 운용 및 만들게 된 원리에 대해 적은 책이었다.

거의 모든 문파의 심법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된 책이었지만 그 자체로는 무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실질적으로 무공 수련에 큰 도움을 주지 않는 무공. 그래서 소림사에서도 원나라 군의 공격 때, 장경각의 비급들을 옮기면서 두고 간 것이었다.

지금 악불군의 무공은 초일류급 수준이었다. 그러나 내공이 약해 절정 고수급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잠룡세가에서는 공배공(空盃功)이라는 내공 심법을 수하들에게 가르쳤다. 단전호흡을 이용해 공간에서 기를 흡수해 내공을 쌓는 심법으로 진전이 빠른 장점을 가진 대신, 갈수록 느려지는 단점이 있었다.

악불군은 필사적으로 공배공을 수련했지만 내공은 겨우 삼십 년 정도밖에 모으지 못했다.

육 관의 교두들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놀랐지만, 악불군은 계속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익힌 무공을 펼치다 보면 내공이 부족한 경우를 자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심법에 대한 원리가 적혀 있는 소림내경일지선은 아주 유용한 책자였다.

그런데 두 번째 무명의 비급은 좀 이상했다.

각 장마다 오른쪽 끝에 한 글자만 적혀 있었고 대부분이 그림이었다.

제목도 없고 그림의 자세를 보면 무공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그 비급을 고른 이유는 악불군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가 고른 것이 아니라 무명의 비급이 그를 고른 것처럼 그를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하루를 반으로 나누어 두 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정좌를 하고는 운기조식을 하던 악불군은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공배공은 완벽한 심법이 아니야……. 이것을 내 마음대로 고쳐도 될까?’

악불군은 겨우 사흘 만에 자신이 익힌 심법의 단점을 파악하는 데 성공을 했다.

그는 별거 아닌 듯 중얼거렸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아마 경악을 했을 것이다.

무공의 단점을 찾아내고 고친다는 것은 종사급의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악불군은 이상한 자세를 취했다.

무명의 비급에 있던 그림의 자세였다.

‘이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자세이긴 한가?’

악불군은 교두들에게 신체가 특이하다고 할 정도로 유연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그조차도 무명의 비급에 그려진 그림의 자세를 똑같이 취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연속적인 자세는 불가능했지만, 다행히도 한 가지씩 따로따로는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무명의 비급에 그려진 자세는 모두 서른여섯 가지였다.

악불군이 자신의 무공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림의 자세들을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이유는 이상하게 그 비급에 끌린다는 것 외에도, 언제부터인가 그 자세를 펼치면 몸의 피곤이 싹 풀리는 느낌 때문이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그렇게 운기조식과 그림의 자세를 계속 연습하던 그는 무고의 문이 열리자 아쉽다는 듯이 몸을 일으키고는 무명의 비급과 소림내경일지선을 원래의 자리에 꽂았다.

* * *

“잠룡세가의 천금이 십육 세가 되었다고?”

“예, 거창하게 잔치를 할 모양입니다.”

“그래 봐야 딸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담 가주님의 딸 사랑은 아주 유명합니다. 거기다 그 딸이 아름답고 재지가 또한 남달라서 자랑도 하고 싶겠지요.”

철룡세가의 가주인 철장표는 태력신장 막중혁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살살 끄덕이다가는 다시 물었다.

“내가 듣기로는 화룡세가의 화우성이라는 아이와 혼약이 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화룡세가의 화 가주님께서 화 소가주를 직접 잠룡세가에까지 보내서 선을 보인 모양입니다.”

“흠! 화룡세가와 잠룡세가가 혼인을 통한 협력 체제를 갖춘다……? 다른 세가의 움직임은 없나?”

“다른 세가들도 잠룡세가와 화룡세가의 혼인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요 몇 년간 사방에서 반란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숨죽이고 있던 무림 세력들도 슬슬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다른 세가들도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놈들이야 군부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고, 숨어 있는 무림 놈들이 발호를 한다면 그동안 정립되어 있던 오룡세가의 판도도 변화할 때가 됐다는 말인데……?”

철장표는 음흉한 미소를 지며 말을 이어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담무룡이 너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담무룡의 힘이 그렇게 커진 이유도 절강성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세력권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화룡세가와 혼인으로 연합을 하게 되면 절강성을 먹어 치우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막중혁의 말에 철장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중년인을 보며 물었다.

“야율보. 넌 군사란 놈이 왜 이럴 때 입을 닫고 있는 거냐?”

“지금 오룡세가의 구도는 대공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함부로 무슨 계책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넌 내가 대공의 허락 없이 절강성을 탐낸다고 생각하느냐? 솔직히 나도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대공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승낙을 받았다.”

철장표의 말에 막중혁과 야율보 둘의 눈이 커졌다.

“담 가주가 대공에게 깊은 신임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글쎄? 솔직히 나도 그게 좀 의아하긴 하더구나. 하지만 대공이 하는 일을 우리가 어찌 알겠느냐? 넌 계책이나 말해 봐라.”

“우선 화룡세가와의 혼인을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야율보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다.

“이미 이 년 전에 맺은 혼약인데 쉽게 막아지겠느냐?”

“지금 화룡세가의 사정이 아주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담 가주에게 이번 혼인으로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담무룡이 그 정도로 혼약을 파기할까? 더구나 잘못하면 화룡세가와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지 않느냐?”

“쉽게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십팔 세에 혼인을 시킬 것이라 했다 하니, 아직 이 년이나 시간이 있습니다. 계속 이간을 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이간을 할 방법이 있긴 하느냐?”

“소가주님을 이용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무정이를?”

“지금 다른 사룡세가에서는 어떻게든 본 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정략혼인이지요.”

야율보의 말에 철장표는 고개를 살래 저었다.

“그건 안 된다. 무정이는 공주마마와 혼인을 시킬 예정이라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담 가주의 딸과 혼인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운만 떼서 기대감만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첩? 담무룡이 자신의 딸을 첩으로 줄 것 같으냐? 아마 죽어도 그것은 있기 힘들다.”

“잠룡세가가 멸문당할 정도의 위기에 빠진다면 달라지겠지요.”

“지금 잠룡세가의 전력이 얼마나 대단한데 멸문을 당해?”

“전 대공께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는 말에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잠룡세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대공께서 버릴 생각을 했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하긴, 나도 좀 의외이긴 했다.”

“소가주님과 아가씨까지 이번에 같이 보내시지요.”

“상아도?”

“나이대도 비슷하고 같은 여인이니, 담 소저와 대화하기는 소가주님보다 더 쉽지 않겠습니까?”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던 철장표가 결심을 한 듯이 말했다.

“좋다! 이번 담수련의 생일에 무정이와 상아가 간다고 연락해라. 위대하신 칭기즈 칸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 집안 자식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보면 담무룡도 좀 생각이 달라지겠지.”

* * *

“네가 직접 가 보고 싶다고?”

“예, 철룡세가에서 철무정이 온다 합니다. 화우성이야 혼약을 한 사이이니 당연히 올 것이고, 이번 기회에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룡세가의 심처, 가주인 사도중명과 아들 사도비류가 은밀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다.

“왜? 담무룡의 딸이 천하제일의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한번 보고 싶으냐?”

“꼭 그 이유는 아닙니다만…… 만약 진짜 그렇게 미인이라면 화룡세가보다는 마룡세가의 아내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사도명중은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듯 씨익 웃으며 물었다.

“이미 혼약을 맺은 아이라는 것은 알고 있느냐?”

“혼약이 무에 대수겠습니까? 마음에만 들면 혼약이 아니라 혼인을 했다 해도 못 뺏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고래로 천하제일 미인은 천하제일 영웅의 품에 안겨 왔습니다.”

말하는 사도비류의 얼굴에는 스스로 천하제일의 영웅이라는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하긴 그렇지……. 하지만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너무 쉬우면 그것도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하하하!”

뜻하지 않게 담수련의 생일이 무림을 지배하는 오대세가에 바람을 불어 넣고 있었다.

태풍이 될지, 미풍이 될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 * *

여자 나이 십육 세면 이팔청춘이라 하여 여인 대접을 해 주기 시작하는 나이였다.

좀 있는 집안에서도 딸이 십육 세가 되면 어느 정도 잔치를 벌이는데, 천하를 호령하는 잠룡세가의 천금이 맞는 십육 세 생일이니 얼마나 뻑적지근할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곧 다가올 자신의 십육 세 생일로 세가 전체가 왁자지껄한데도, 정작 담수련은 그다지 즐거운 표정이 아니었다. 그녀가 기다리는 악불군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모 말로는 분명 오늘 무관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왜 안 오는 거지?’

그녀는 악불군을 생각하느라 자신의 약혼자인 화우성의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 *

“악불군이 무고에서 나왔다고?”

“예, 방금 보고를 받았습니다.”

“운이 좋았어.”

“예?”

담무룡의 말에 문창현이 이해가 안 가는지 반문했다.

“악불군 같은 기재가 저절로 들어왔으니 운이 좋은 것이 아니냐?”

“아, 예! 교두들에게 들어보니 진짜 대단했다고 합니다. 무공을 전혀 모르고 있던 아이가 십이 년 만에 초일류급이 되어 나왔으니 정말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 같습니다.”

“무고에서 무슨 무공을 보고 나올지 기대가 되는군.”

담무룡은 의미 모를 미소를 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호위대장인 가등우가 들어왔다.

“악불군이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예!”

대답을 하고 나간 가등우는 곧 한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본 담무룡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계속 보고는 들어왔지만, 실제로 보니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취를 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악불군은 즉시 부복을 하며 크게 외쳤다.

“늠름하게 컸구나.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육 관을 통과했으니 이제 내 앞에서 일어나도 된다.”

“제가 어찌 감히…….”

“일어나도 된다고 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예!”

악불군이 일어서자 담무룡이 물었다.

“그래, 무관에서 도움을 받은 것은 있느냐?”

“너무 많아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것저것 훑어만 보았습니다.”

“하긴 쓸데없이 많긴 하지. 그래도 가장 많이 본 비급이 있을 것 아니냐?”

“소림내경일지선이라는 책자가 있었습니다. 그 책을 가장 많이 읽은 것 같습니다.”

“소림내경일지선?”

악불군의 말에 담무룡은 검미를 살짝 찌푸리며 의아한 듯 다시 물었다.

“그 책자는 무고에서 가장 쓸모없는 비급 중 하나인데, 그것을 읽느라 한 달이라는 귀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말이냐?”

이십 년 동안 육 관을 통과한 사람은 이십여 명 정도였고, 그중 몇 명은 잠룡세가의 고위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소림내경일지선을 읽었다고 한 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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