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12화>
12화. 습격(1)
담무룡의 침실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 연무장은 잠룡세가 내에서 오로지 담무룡만이 아는 장소였다.
그곳은 아무리 격렬하게 수련을 해도 부서지지 않도록 사방을 철강석으로 덮인 곳이었다.
또한 갇히더라도 몇 년은 버틸 수 있는 수십 가지의 약초를 섞어 만든 벽곡단과 내공 증진을 위한 공청석유와 백 년이 넘은 하수오의 진액을 섞은 약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다 책장에는 무고와 달리 그가 비밀리에 모아 온 절정 비급들이 여러 개 꽂혀 있었다.
그가 자신의 개인 연무장으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원래는 아들인 담수운의 연무장으로 그가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담수운이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면서, 모든 준비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손자를 위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그가 침통한 표정으로 한 책자를 보고 있었다.
“설마 이것이 가짜인 것인가…….”
그의 앞에는 예의 그 비급이 놓여 있었다.
이십오 년 전 그는 대공을 도와 천륭검가를 기습했다. 그리고 운이 좋았는지 다른 누구보다 먼저 천륭검가의 심처에 도착했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구문황의 무공인 천륭검보와 그의 검인 천륭검을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욕심이 생긴 그는 멸문을 당할 수도 있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두 개의 물건을 빼돌렸다.
그리고 재빨리 밖으로 나가 물건을 숨기고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그곳에 도착한 척했다.
그런 엄청난 도박을 하고 얻은 물건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으니, 그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 놓인 비급…….
그것은 분명 악불군이 무고에서 보았던 무명 비급이었다.
담무룡은 이십 년 가까이 천륭검보를 연구하고 수련했음에도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자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잠룡세가의 육 관은 대단한 무재를 지닌 자들만이 통과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들의 도움을 받아 보기로 한 것이다.
육 관을 통과한 자들이 무고에 들어설 때, 천륭검보를 무고에 살짝 갖다 두었다가 다시 회수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가 대놓고 다른 사람들과 연구를 하지 못한 이유는, 대공이 아직도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그동안 육 관을 통과하고 무관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수하는 약 이십여 명.
하지만 누구도 그 비급을 본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그림과 의미 모를 글자 하나가 적혀 있는 비급을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한 명이 나타났다. 악불군이었다.
더욱이 이십 년을 넘게 보았음에도 아직 그림의 자세들을 외우지 못하고 있는데, 악불군은 외웠다고 했다.
‘그래, 언뜻 보면 외운 것 같을 수도 있겠지…….’
그림의 모양만 대충 따른다면 담무룡도 다 외웠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자세를 취하면 그림과 미세하게 달랐다. 그만큼 따라 하기 힘든 자세라는 말이었다.
담무룡은 천륭검보를 덮으며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없애기에는 너무 아깝고, 계속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건.
담무룡에게는 정말 계륵(鷄肋) 같은 물건이 바로 천륭검보와 천륭검이었다.
* * *
담수련이 탄 마차가 성 안으로 들어서자, 길에 꽉 차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비켰다.
마차에 붙은 잠룡세가의 깃발 때문이었다.
잠룡세가는 항주성에서는 거의 황제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아가씨, 백설이 그렇게 좋았어요?”
“응, 너무 마음에 들어. 아버지께 정말 고맙다고 해야겠어.”
담수련은 정말 백설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때 담수련의 마차 앞으로 십여 명의 일꾼들이 끄는 커다란 우차 두 대가 나타났다.
우차는 마차를 보자 황급하게 양 옆으로 피했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으로 특별하게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더욱이 이곳은 잠룡세가의 본거지인 항주였다.
하지만 악불군의 눈은 조금도 방심이 없었다. 사실 악불군은 평소에 세가 내에서조차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고 철저하게 담수련을 경호하고 있었다.
마차가 옆으로 비킨 두 우차를 지나가려는 순간!
핑! 핑! 핑…….
갑자기 사방에서 악불군과 마부를 향해 암기가 날아왔다.
“자객이다!”
악불군은 사화가 경각심을 갖도록 크게 소리치며, 날아오는 암기를 검으로 받아쳤다.
탕탕탕!
그리고 악불군은 마차의 지붕으로 몸을 날렸다. 담수련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옆 건물 지붕에서 떨어지는 도를 상대하느라, 지붕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채챙!
도를 막으며 뒤로 밀린 악불군은 상대의 내공이 자신보다 위임을 직감했다. 악불군의 얼굴이 굳어졌다.
옆으로 비켜서 있던 우차를 몰던 일꾼들이 우차에서 무기를 꺼내더니 마차로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감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마차에서 튀어나온 사화가 앞을 막아서자, 일꾼들은 거침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탱!
챙.
“야잇!”
일꾼들과 격돌을 한 사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화는 분명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일류 이상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종리화가 담수련을 위해 수백 명의 여아들 중에서 가장 무재가 뛰어나고 총명한 아이를 골라 극고의 수련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자객들의 무공이 대단했던 것이다.
“악 무사님, 이자들 너무 강해요. 저희들은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추국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이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악불군밖에 없었다.
“빨리 움직여라! 시간 없다.”
악불군과 싸우던 중년인이 급히 소리쳤다. 잠룡세가의 본진이 항주성이었다. 잠룡세가에서 소식을 듣고 몰려오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사화가 밀리자 중년인을 향해 자신의 최강 수법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뭐 이런 놈이 있어?’
악불군을 상대하던 중년인은 당황했다. 악불군이 사생결단하듯이 자신의 목숨까지 도외하며 방어 없는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의 무기에 의해 악불군은 곳곳에 상처가 나서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공격일변도인 악불군의 공세에, 중년인 역시 어깨를 베이고 말았다.
중년인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불군이 마차 쪽으로 날아가며 사화를 공격하는 일꾼을 공격하자, 중년인은 급히 암기를 던졌다.
누구라도 공격을 멈추고 암기를 받아쳐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악불군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 매향과 싸우던 일꾼의 등을 검으로 찔렀다.
파파팍!
악불군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등에 단도 세 개가 정확하게 박힌 것이다.
치명상을 떠나 고통만으로도 움직임이 둔해져야 했다.
그러나 악불군은 그 상태에서도 추국과 싸우는 일꾼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챙!
“윽!”
추국을 압박하던 일꾼은 급히 악불군의 검을 막았지만, 이번에 추국의 무기에 허리를 맞고는 급급히 뒤로 물러섰다.
“추국, 저쪽 도와줘!”
소리친 악불군은 마차의 지붕으로 뛰어 올라가더니 다시 중년인을 향해 검을 내밀었다.
그의 임무는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담수련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다시 중년인과 싸울 수도 있었지만, 지금부턴 방어에 치중하여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기로 한 것이다.
“우선 피한다! 이 중원의 배신자! 원나라의 개!”
악불군을 공격하려던 중년인은 한쪽을 슬쩍 보더니 급히 소리치고는 몸을 날렸다. 그러자 나머지도 몸을 날려 사라졌다.
“너희는 저놈들을 추격하고 나머지는 아가씨의 마차를 경계해라!”
담무룡의 명을 받고 멀찌감치 마차를 비밀리에 호위하던 잠룡대주는, 하얗게 변한 얼굴로 소리치고는 마차 옆으로 달려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잠룡 이대주 서철후입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안에서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괜찮아.”
“용서하십시오, 저희가 늦게 와서 아가씨를 놀라게 한 죄, 세가로 돌아가서 받겠습니다.”
“나 안 놀랐어. 그러니까 걱정 마.”
담수련은 잘못하면 사화와 악불군이 책임 추궁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히 답했다.
담수련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서철후는 다시 한번 포권을 하더니 이번에는 지붕 위에 서 있는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이제 내려와도 된다.”
서철후의 말에 악불군이 마차에서 내려왔다. 그의 몸은 완전 피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뽑아 주십시오.”
“지금 뽑으면 피가 너무 많이 나올 것이다.”
“대주님께서 지혈을 해 주시면 됩니다. 등에 박힌 단도 때문에 움직임이 불편합니다. 그럼 아가씨를 보호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보통 사람이면 이미 기절하거나 맥이 빠져 털썩 주저앉을 상처였다. 하지만 악불군은 여전히 검을 쥔 채 꼿꼿하게 서서 몸을 돌렸다.
* * *
“총관, 지금 뭐라고 했어? 사화가 다 잡혀갔다고?”
“예, 잡혀갔다기보다는 조사를 해야 한다고…….”
천화궁에서 돌아오던 종리화는 항주 전체를 샅샅이 뒤지는 잠룡세가의 무사로부터 담수련의 납치 미수 소식을 듣고는 급히 세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들은 소식은 제자나 다름없는 사화의 구금 소식이었다.
“조사? 무슨 조사?”
“가주님께서 대로하셨습니다.”
“본 세가의 안방이나 마찬가지인 항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노하실 것은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런데 아가씨께서는 왜 밖에 나가신 것이냐?”
“가주님께서 설총마를 구했다는 말을 들으시고 구경을 간다고 나가신 모양입니다.”
“아가씨께서 다치셨느냐?”
“다행히 아가씨께서는 무사하십니다.”
“그럼 왜 사화를 구금해?”
“세가 내에서 아가씨께서 오늘 나간 것을 아는 사람이 극소수였습니다. 거기다 오늘 공격한 자들은 다섯 명이었는데, 소군과 사화의 무공 실력에 맞춰서 준비한 것 같다고 합니다.”
“아가씨께서 세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알고 준비했다는 말이구나?”
“예, 그러니 아가씨께서 나간 것을 아는 자들을 모두 구금해 놓은 상황입니다.”
“아가씨는 어디 계시냐?”
“아가씨는 지금 의숙에 가 계십니다.”
“지금 이런 시기에 거기에는 왜 가 계셔?”
“소군이 많이 다쳤습니다.”
“뭐? 소군이 많이 다칠 정도였단 말이야?”
“아까 말씀드렸듯이, 자객들이 소군과 사화의 무공에 맞춰 온 것 같다고 합니다.”
‘이거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종리화는 심각한 표정으로 가주전 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들의 공격 방식을 분석해 본 결과, 계획적이긴 한데 상당히 어설프다는 결론입니다.”
“어설퍼?”
“예! 급조된 계획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연은 분명 아니라는 말이군?”
“…….”
담무룡의 반문에 문창현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왜 답이 없느냐?”
“주군, 황망한 추측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우연히 공격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 아가씨께서 나가시는 것을 알려 준 것이 분명합니다.”
담무룡의 질문에 문창현이 결국 솔직히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 말인즉 세가 내에 간세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 더욱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수련이가 설총마를 보기 위해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 어제라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가씨께서 외출을 하신 것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충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알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지요.”
“가등우.”
“예!”
“수련이가 나가는 것을 아는 놈들은 모두 잡아 놨겠지?”
“예! 아가씨께서 나가는 것을 본 경비 무사 전부, 그리고 아가씨 처소의 시녀들 그리고 사화까지 모두 잡아놨습니다. 이미 고문이 시작된 것으로 압니다.”
“사화와 시녀들은 아직 고문하지 말라고 해라. 그 아이들은 잠봉단 소속이다. 종리화의 의견을 묻지 않고 고문을 한다면 시끄러워진다.”
잠룡세가의 절대자인 그도, 종리화만은 최대한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주님, 사실은…… 종리 단주께서 항주 안으로 들어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래? 혼자 왔더더냐?”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하더냐?”
“보고를 받은 것이 일각 전입니다.”
“일각이면……? 쯧! 그럼 곧 들이닥치겠군.”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주군!”
종리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