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14화 (14/472)

<천검지애 14화>

14화. 준비(1)

“골치 아픈 상황에서 왜 이놈들까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거지?”

담무룡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태사의에 몸을 푹 파묻고는 중얼거렸다.

담수련의 기습 사건은 최대한 없던 일처럼 비밀리에 조사를 하도록 했지만, 시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니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철룡세가에서 담수련의 생일날 아들과 딸을 둘 다 보내겠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문창현도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진 듯 약간은 곤혹스런 얼굴이었다. 군사에게는 주군이 원하는 대답을 즉시 찾아내지 못하는 것만큼 곤란한 상황은 없는 법이었다.

“철가주님의 성정이나 가주님과의 사이를 볼 때, 순수하게 아가씨의 성인식을 축하하러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 음흉한 놈이 순수? 그건 절대 아니다.”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문창현의 조심스러운 말에, 눈을 뜬 담무룡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정으로 오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담무룡의 눈에 살기가 살짝 스쳐 갔다.

“네 말이 맞다. 철장표, 그놈은 우리와 화룡세가 간에 혼맥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겠지. 그놈들이 못 먹는 감을 어떻게 찌르나 한번 두고 보자. 하지만 수련이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아무리 철룡세가의 자식이라고 해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때였다.

가등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마룡세가에서 서찰이 왔습니다.”

“그놈들은 또 왜?”

담무룡의 검미가 좁혀지자 문창현이 가등우가 전하는 서찰을 받아 펼쳤다.

“주군, 이상한데요?”

“뭐라고 적혀 있느냐?”

“마룡세가에서 이번 아가씨 성인식에 소가주인 사도비류 공자를 보낸다고 합니다.”

“마룡세가까지……? 이놈들 혹시 짠 거야, 뭐야?”

“이런 일까지 짜서 행할 분들은 아니지요.”

가장 세력이 강한 철룡세가와는 달리 마룡세가는 잠룡세가보다 세력이 좀 떨어진다고 회자되고 있었다.

하지만 잔인함과 요사한 사술과 귀계를 많이 구사해 함부로 대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원한을 맺으면 그 열 배로 갚고 그 와중에 온갖 비겁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 곳, 바로 마룡세가였다.

더구나 여간해서는 세가가 있는 감숙을 벗어나지 않는 자들이었다.

“사도비류 그놈은 나이도 어린놈이 아주 악랄하다고 소문이 났던데?”

“대단히 호색을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가씨의 미모가 너무 출중하다는 소문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담수련은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에 대한 소문은 중원을 흔들고 있었다.

아름답기가 하늘의 선녀와 같고 재지가 놀라워 여자의 몸으로 학사와 대화를 나누어도 막힘이 없다 소문 난 그녀였다.

특히 무림세가의 여인답지 않게 너무 정숙하고 천생 여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젊은 남자들에게는 환상의 여인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화우성과 혼약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세가는 없다.”

“어차피 강한 자가 독식하는 시기입니다. 그들이 아가씨를 욕심낸다면 일이 상당히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감히……! 내 가문을 우습게 보는 놈들은 내 검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담무룡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갑자기 빈청이 흔들거렸다. 담무룡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전각 자체를 흔들고 있었다.

‘큰일이로구나……. 모든 일에 냉철하신 분께서 아가씨만 개입되면 흥분부터 하시니…….’

문창현은 급히 고개를 조아렸지만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혼인을 한 사람도 빼앗아 가는 시대에, 혼약 따위는 강한 자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법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화룡세가와 잠룡세가의 혼약에 함부로 재를 뿌리지는 못하겠지만, 훼방을 놓을 방법은 부지기수가 아니던가…….

문창현은 다른 세가의 공자들이 담수련에게 눈독을 들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까지 이미 세워 둔 상황이었다.

아니, 어쩌면 잠룡세가를 위해서 그런 상황이 오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담무룡의 반응을 보니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종리 단주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그때 가등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해라.”

종리화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들어오자 담무룡이 물었다.

“그래 뭐 좀 건졌느냐?”

“죄송합니다. 시녀들이나 경비 무사들에게는 혐의점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들의 공격이 아가씨를 다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오로지 수련이를 납치만 할 생각이었다 그거냐?”

“보통 납치라면 죽지만 않으면 다치는 것도 감수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칠까 봐 굉장히 조심을 했습니다. 아가씨가 타고 있던 마차 쪽으로는 전혀 공격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종리 단주, 어쨌든 아가씨께서 위험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 아닙니까? 전 의심 가는 놈들은 그냥 다 죽여 버리는 것이 깨끗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 대장! 그걸 말이라고 하나요? 아가씨 생일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런데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피를 보자고요? 거기다 지금 중원 상황이 어떤지 알아요?”

사실 지금 잠룡세가의 사정도 편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절강은 방국진의 난으로 아주 시끄러웠다. 결국 대원의 군대가 동원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두려워하던 대원의 군대가 일개 성에서 벌어진 반란군을 상대로 고전하면서, 중원 수복을 원하던 여러 세력에게 군사를 일으킬 빌미를 주게 된 것이다.

대원의 장군은 결국 절강의 패자인 잠룡세가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들이 합세하면서 방덕진 세력을 제거하는 데 성공은 했다. 하나 이미 중원 전체에서는 수많은 반란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담무룡도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자, 종리화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주군, 지금은 가솔들을 죄 없이 죽이면 안 됩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한 명의 수하가 아쉬울 때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천화궁주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더냐?”

천화궁주는 모든 기녀들의 대모로 불렸다. 개방이 몰락한 지금 천화궁은 무림 최고의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단순한 반란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원 자체가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더욱더 간세를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등우가 다시 나섰다.

“됐다. 종리화가 직접 심문을 했는데 찾지 못했다면 그들 중에는 없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간세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니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고 모두에게 명해라.”

“알겠습니다.”

가등우가 나가자 종리화가 물었다.

“주군, 그럼 구금한 아이들을 풀어 줘도 되겠습니까?”

담무룡이 고개를 끄덕이자 종리화는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문 군사는 왜 아무 말도 안 해?”

담무룡은 아무 말 없이 있던 문창현을 보며 물었다.

“종리 단주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종리 단주의 능력으로 미루어, 간세가 있었다면 찾아냈을 겁니다.”

“그랬겠지?

“그런데 주군, 이상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이상한 보고?”

“예.”

“말해 봐.”

“어찰단이 차언규가 있는 오송 분타에 와서 이상한 질문을 하고 갔다고 합니다.”

“어찰단이라고?”

“예!”

순간 담무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찰단은 원나라가 무림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그들에게 걸리면 어떤 세력도 멸문을 당할 수 있었다.

“어떤 질문을 했다고 하더냐?”

“이십 년 전 행방불명된 양호철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양호철?”

담무룡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양호철은 예전 그의 심복으로 이십오 년 전 대공을 도와 천륭검가를 공격할 때 맨 앞장에 섰던 수하였다.

하지만 이십 년 전 갑자기 사라져, 잠룡세가에서는 그를 찾기 위해 비상까지 건 적이 있었다.

“차언규는 양호철이 있을 때 그의 심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찰단이 왜 이십 년 전 사라진 양호철을 지금 찾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대공이 나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인가……?’

담무룡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중얼거렸다.

* * *

“아가씨!”

담수련이 자신도 모르게 악불군을 생각하고 있을 때, 추국이 뛰어 들어왔다.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는데 웬 호들갑이냐?”

“호호호! 화룡세가의 화 공자님께서 지금 도착하셨답니다. 그런데…… 너무 멋있어지셨대요. 지금 하녀들이 모습을 한번 보려고 난리가 났어요.”

간세 조사로 고문실에 불려 갔을 때까지만 해도 핼쑥했던 추국은 며칠 만에 다시 활발한 성격을 찾았다. 종리화 덕에 고문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알았으니까 나가 봐라.”

당연히 기뻐 달려 나갈 줄 알았던 담수련이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오히려 머쓱해진 것은 추국이었다.

“아가씨! 화 공자님께서 오셨다니까요! 그렇게 기다리시더니……?”

“내가 언제 그렇게 기다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나가 봐.”

“……예.”

자신과 혼약을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담수련은 담담했다.

담수련은 수를 놓던 천을 내려놓더니 뭔가 모를 한숨을 쉬었다.

“휴우~ 내가 왜 이러지?”

추국의 말대로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우성을 만난다는 것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화우성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한 달 반 전부터였다.

그리고 한 달 반 전이면 악불군이 그녀에게 온 날이었다.

추국이 들어가는 것을 본 악불군은 안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보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사화나 종리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의 안전을 위해 그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도대체 아가씨께서 무엇을 고민하고 계시는 거지? 기습 사건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를 못하셨나?’

악불군은 담수련이 한숨을 쉬는 것을 들으며 이유를 생각하려 노력했다.

담수련의 밀착 경호를 맡은 사람으로서 그 근황을 알아 놓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교관들에게 수시로 담수련의 근황에 대해 묻곤 했었다.

그리고 담수련의 혼약 소식을 듣고는 거의 열흘 가까이 잠을 이루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이유를 그는 몰랐다. 대신 더욱 강한 수련으로 이해 못할 아픔을 이겨 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그녀가 화우성과 행복하게 살기를 빌어 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가씨의 안전과 행복이었으니깐.

* * *

담수련의 납치 미수로 며칠간 긴장으로 팽팽하던 잠룡세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치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드디어 담수련의 십육 세 생일이 이레 후로 다가온 것이다.

화우성을 필두로 나머지 오룡세가의 공자들이 연달아 도착했고, 잠룡세가의 보호를 받거나 협력하는 세력들의 장들도 큰 선물들을 하나씩 안고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담수련은 사화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거처를 나갔다. 혼약을 한 화우성이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전언이 온 지 한 시진이나 지났는데 계속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양 옆으로 화려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소로를 걸어가던 담수련의 걸음이 멈췄다.

한 청년이 두 명의 호위 무사와 함께 걸어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앞장서 가던 매향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아가씨 가시니까 비켜 주세요.”

그러자 꽃을 보고 있던 청년이 매향 쪽을 보더니 순식간에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감히 무례하게 앞을 막다니. 더 이상 온다면 살수를 펼치겠습니다!”

매향과 추국이 급히 앞을 막았지만 청년의 손짓 한 번에 옆으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순간 사화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그녀들이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