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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0화 (20/472)

<천검지애 20화>

20화. 지난 이야기(2)

사도비류의 무공이 분명 악불군보다 상당히 강했지만, 그는 담수련을 어깨에 메고 있다는 약점 때문에 한 손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거기다 주위에 있는 호위들이 몰려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네놈이구나!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은 죽이고 싶었는데.”

간신히 검을 피한 사도비류는 자신의 앞을 막은 자가 악불군이라는 것을 알자 눈에 살기가 어렸다. 동시에 그의 소매에서 긴 조가 튀어나오더니 그의 손에 걸렸다.

휘익!

사도비류의 조는 빨랐고 신랄했다.

악불군은 채 삼 초가 지나기 전에 밀리기 시작했다.

‘뭐 이런 놈이 있어?’

자신의 조가 악불군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악불군이 신음조차 내지 않고 죽어라 그의 앞을 막자, 사도비류는 다급해졌다.

어느새 십여 명의 여인들이 달려오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수법은 쓰면 안 되는데?’

자신의 절기를 사용한다면 악불군은 당장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담수련을 납치해 간 자가 마룡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 외부의 호위들까지 몰려온다면 정말 화를 당할 수도 있었다.

사도비류는 담수련을 공중으로 던졌다. 담수련이 떨어지는 동안 두 손을 사용해 악불군을 제거한 후 다시 그녀를 낚아채 도망갈 생각이었다.

시간은 냉수 한 잔을 단숨에 마실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사도비류가 두 손을 사용하자 악불군은 단숨에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그가 익힌 검법으로는 그의 쌍살마조를 막을 수 없었다.

그때 악불군의 몸이 이상하게 비틀어졌다. 위험에 처하자 자신도 모르게 취한 자세였다.

“크윽!”

사도비류는 자신의 조영(爪影)의 사이를 뚫고 들어온 검에 의해 얼굴을 찔리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악불군이 떨어지는 담수련을 받으러 몸을 날리는 것을 보았다.

“이, 이, 이놈이! 감히 내 얼굴에!”

그가 재빨리 피한 덕에 치명상까지는 입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고통과 새어 나오는 피를 보아 상처가 꽤 깊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도비류는 지금 공격을 한다면 악불군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담수련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여인들이 그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악!”

“으아아악!”

사도비류는 결국 악불군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두 명의 여인을 조로 훑었다. 단숨에 두 명을 제거한 그는 급히 담을 넘어 도망을 쳤다.

“추격해라!”

삐이이익!

여인들을 지휘하던 추국의 외침과 비상 호각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소군…….”

담수련을 받아 든 악불군은 급히 이불을 젖힌 후 담수련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아가씨 다치신 곳은 없지요?”

“없어……. 그런데 소군 가슴이…….”

악불군의 가슴의 사도비류의 조에 의해 크게 상처를 입었는지 온통 피투성이였다.

“괜찮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아가씨께서 이런 봉변을 당하게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내가 문제야? 소군이 다쳤잖아!”

그때 그들의 옆에 종리화가 삼화와 함께 나타났다.

“아가씨!”

종리화는 급히 담수련을 안아 들더니 악불군을 보며 말했다.

“수고했다. 침입자는 외부에서 추격할 것이고 이곳은 내가 맡을 것이니, 넌 의숙으로 가서 상처 치료부터 해라.”

“예!”

추상같은 종리화의 말에 악불군은 고개를 숙이더니 몸을 훌쩍 날렸다.

“유모, 나를 위해 죽을 뻔한 사람이야. 지금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몰라? 소군이 아니었다면 난 납치됐을 거야?”

“악불군은 자신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가씨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유모는 왜 이렇게 사람이 냉정해요!”

“냉정이 아니라 책임자로서 사태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소군은 다쳤지만 잠봉단원은 두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종리화는 뭔가 더 말을 할 것 같이 했지만 그냥 입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종리화가 악불군을 급히 보낸 것은, 악불군이 담수련의 풀어진 머리카락과 가슴골이 살짝 보이는 잠옷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유이건 담무룡의 귀에 들어가면 악불군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종리화와 담수련이 안으로 들어가자 삼화는 삼십 명의 잠봉단원과 함께 방 주위를 둘러쌌다.

* * *

“모두 출발하라. 만약 잠룡세가에서 마차 안을 보자고 하면, 소가주님께서 주무시기 때문에 깨울 수 없다고 해라.”

떠날 준비를 하고 기다리던 독갈적수는, 사도비류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나자 깜짝 놀라 급히 수하들에게 명을 내리고 사도비류를 마차 안으로 모셨다.

“이이이이…… 이놈을 내가!”

신경질적으로 복면을 벗은 사도비류는 분노를 참지 못해 몸까지 떨었다.

독갈적수는 사도비류의 상처를 보자 안색이 확 변했다. 상처가 상당히 커서 얼굴에 큰 흉터가 남는 것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놈의 짓입니까?”

“몰라도 돼! 천하디천한, 무공도 한참 떨어지는 놈에게 내가 이런 꼴을 당하다니!”

독갈적수는 사도비류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금창약을 발랐다.

“소가주님, 아까 비상 호각이 계속 울리던데 혹시?”

“그래, 나 때문이다.”

독갈적수의 얼굴이 확 굳었다. 그리고 급히 선두에게 전음을 날렸다.

[급하다. 빨리 잠룡세가를 벗어난다.]

* * *

침실로 가지도 않고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오룡세가들이 갑자기 동시에 철수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있던 담무룡은 갑작스러운 비상 호각소리에 밖을 향해 소리쳤다.

“가 대장!”

“예! 부르셨습니까?”

가등우가 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아가씨 침전에 침입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뭐야! 수련이는?”

담무룡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아가씨의 존체는 무사합니다. 침입자의 무공이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잠봉단원 두 명을 일 초에 제거하고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악불군은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악불군이 없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의 무공이 원체 강해 악불군이 또 중상을 입은 모양입니다.”

“또?”

외유 때 등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이 며칠 전이었다.

더욱이 사도비류에 의해 내상까지 입은 것으로 보고 받은 것이 이틀 전인데 또 중상이라고 하자, 담무룡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범인은 잡았느냐?”

“범인이 감쪽같이 사라져서 지금 곳곳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순간 담무룡의 얼굴에 대노가 서렸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항주성에서 수련이를 기습한 놈들도 아직 못 잡았는데 세가 내에 들어온 놈들까지 놓친다면 본 가는 천하의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거냐?”

“아무래도 범인은 마룡세가나 철룡세가의 인물로 의심된다고 합니다. 특히 철룡세가는 철 소가주와 철 소저가 모습을 보였지만, 사도 소가주는 자고 있다면서 조사까지 거부하며 세가 밖으로 나가고 있다 합니다.”

“마룡세가 따위가 감히 수련이를 건드려? 당장 끌어내서 조사하라고 해라!”

“가주님, 소가주를 심증만으로 강제로 끌어냈다가 범인이 아닐 경우 마룡세가와 척을 지게 됩니다.”

“척이고 뭐…….”

대로한 듯 소리치던 담무룡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굴을 구기며 가등우에게 말했다.

“나가 있어라.”

“예?”

당장 사도비류를 죽일 것 같이 노했던 담무룡이 갑자기 나가라고 하자 가등우는 의아한 듯 쳐다보았지만, 곧 지금 사건보다 더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인사를 하고는 나가 버렸다.

가등우가 나가자 담무룡은 한쪽을 보며 말했다.

“어찰단에서 갑자기 이곳은 어인 일이시오?”

“하하하! 확실히 담 가주님의 이목을 피하기는 어렵군요.”

죽립을 쓰고 혈랑의 가죽으로 한쪽 어깨를 덮고 있는 장한의 모습이 스르르 나타났다.

“이 누추한 곳에 혈랑사자께서 직접 오시다니 솔직히 놀랐소이다.”

“하하하! 천하의 누가 있어 잠룡세가를 누추하다고 하겠습니까? 오랜만입니다. 못 뵌 지 거의 이십 년은 된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이십 년을 왕래가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시고 오룡세가는 갑자기 짐을 싸서 세가를 떠나고 있으니, 상당히 공교롭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어찰단에서도 권한이 막강하다고 알려진 혈랑무의 혈랑사자의 등장에 담무룡의 표정은 씁쓸하게 변했다.

혈랑사자는 죽립을 벗어 탁자에 놓더니 물었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앉으시오.”

담무룡의 앞에서는 누구나 경직이 되었다. 그의 성정이 대단히 호전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철무정이나 사도비류도 담무룡 앞에서는 대단히 조심을 했다.

하지만 혈랑사자는 그런 담무룡 앞에서 상당히 거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담 가주님은 전혀 늙지를 않으셨군요? 하긴, 잠룡세가는 오룡세가 중에서도 가장 돈이 많으시지요.”

“매년 대공께 금자 오만 냥을 보내고 있는데, 혹시 부족하신 거요?”

“제가 깜빡했군요. 대공 전하께서 담 가주님께서 보내 주는 기부금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고 전해 주라 하셨습니다.”

담무룡의 얼굴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혈랑사자가 대공이 전한 말을 깜빡 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신다고 연락을 했으면 제가 마중을 나갔을 것인데 어찌 이렇게 은밀하게 온 것이오? 설마 우리 딸애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바쁩니다. 사실은 대공 전하께서 가주님께 비밀리에 전하라는 전언이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대공 전하께서는 천륭검가를 멸문시킨 후 이십 년이 넘는 지금까지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찾아오셨습니다.”

“나도 얘기는 듣고 있었소.”

“대공 전하께서는 담 가주님을 아주 신뢰하셨습니다.”

“나도 대공께 감사하고 있소.”

“그런데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담 가주님께서 가져가셨더군요.”

혈랑사자의 말에 담무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하하! 혈랑사자! 난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소문으로만 들어봤지, 본 적도 없소이다. 천하가 원체 흉흉하다 보니 별의별 음해가 다 대공께 들어가는 모양이외다. 하지만 대공께서는 저를 믿으시니 그런 모략에 신경도 안 쓰실게요.”

담무룡은 황당한 말을 듣는다는 듯 대소를 터뜨리며 부인을 했다.

이럴 경우 너무 흥분해서 부인하는 것보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받는 것이 믿음을 줄 수 있었다.

“가주님께서도 대공 전하의 성정에 대해서는 아실 텐데요? 확실치 않은 일을 넘겨짚는 식으로 상대는 떠보는 분은 아니시지요.”

담무룡의 눈밑이 파르르 떨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함을 잃지 않는 그였지만 대공의 의심에는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난 천륭검가를 없애는 데 도와달라는 대공의 부탁으로 그곳에 갔었소. 당시 내가 가장 많은 수하들을 끌고 갔고, 삼백이 넘는 많은 수하들이 희생되었소. 그런데 지금 와서 알지도 못하는 일로 이런 말을 듣다니 정말 섭섭하외다.”

“그래서 대공께서도 가주님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범인을 찾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기도 하지요.”

담무룡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혈랑사자의 말은 의심이 아니라 이미 그를 범인으로 확정하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대공께서 그런 터무니없는 모략을 진짜 믿는다는 말이오?”

“가주님, 지금 언동이 무척 무례하군요? 대공 전하께서 남의 말에 움직이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모든 정보는 억울한 일이 없도록 교차 검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난 이 문제로 한 번도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소이다. 혈랑사자께서 대공께 이 말을 꼭 전해주시기 바라오.”

하지만 혈랑사자는 담무룡의 말에 대답 없이 자신의 말만 이어 나갔다.

“이틀 후! 정확히 따님의 생일이군요. 우선 축하를 드리겠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가주님께 기회를 주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내년 따님의 생일까지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대공 전하께 보내지 않는다면, 잠룡세가는 천륭검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담무룡의 눈에 살기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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