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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4화 (24/472)

<천검지애 24화>

24화. 의문(2)

담무룡은 지금 이 자리에 올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았고 제거했다. 그중에는 그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진 자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자신이 알아내지 못한 것을 악불군이 알아냈다는 사실은 그의 심기를 절로 불편하게 했다.

“그럼 그동안 연습한 대로 자세를 취해 봐라.”

“예!”

악불군은 담무룡의 명을 받자 곧 그림의 첫 자세부터 하나씩 재현하기 시작했다.

자세를 취하는 악불군을 보고 있던 담무룡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연습해도 되지 않던 연결 동작을, 고작 한 달 연습을 했다는 악불군이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나랑 네가 무슨 차이가 있기에……?’

어이가 없다는 듯 보고 있던 담무룡은, 악불군이 책에 있는 모든 자세를 완벽하게 재현해 내자 급히 악불군의 맥을 잡았다.

그리고 눈이 동그래졌다.

악불군은 갑작스러운 담무룡의 행동에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놀라움이나 경계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넌 지금 네 몸에 흐르는 현상을 느끼느냐?”

한참 동안 이곳저곳 맥을 짚어 보던 담무룡이 물었다.

“특이한 현상이 있습니까?”

“넌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구나?”

“예! 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것보다 아가씨 호위를 너무 오래 비운 것 같습니다. 이제 가도 되겠습니까?”

악불군에게는 오로지 담수련의 호위가 일순위였다.

“넌 지금 내가 네 맥을 잡고 있는데 불안하지도 않느냐?”

“가주님께서 저를 해치실 이유가 없는데 불안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를 죽이신다 해도, 아가씨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상관없습니다.”

“왜?”

“어차피 지금의 저는 가주님 덕에 있는 것입니다. 가주님이 아니셨다면 아마 전 이미 죽었을 테니까요.”

지금 같은 혼란의 시기에 부모도 없이 열 살짜리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은 실지로 대단히 어려웠다.

“네가 무공을 익히기 가장 좋은 시간이 언제냐?”

“아가씨께서 잠 드시는 자시 이후에 본격적으로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얼마나 수련을 하느냐?”

“시간은 대중이 없습니다. 아가씨께서 침소에서 일어나시는 시간이 수련이 끝나는 시간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넌 잠도 안 잔다는 말이냐?”

“사화나 종리 단주님께서 아가씨랑 같이 있을 때 조금씩 토막 잠을 잡니다.”

담무룡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감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역시 연습 벌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련을 열심히 했지만,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수련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심인 것은 칭찬할 만하나, 잠이 너무 부족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비록 토막 잠이지만 깊이 잠들기에, 피곤을 풀기에는 충분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담무룡이 다시 물었다.

“내가 아까 비밀 통로를 여는 것을 보았지?”

“예.”

“이제부터 나를 찾아올 때는 그곳을 이용해서 오너라. 절대 다른 사람들은 알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 물으신다면 전 거짓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수련이가 네게 그 문제로 묻는 일은 없을 게다. 이만 가 보거라.”

악불군은 뭔가 말하려는 듯 멈칫했지만 곧 허리를 숙이고는 비밀 문으로 들어갔다.

‘수운이를 위해 십만 금을 들여 준비한 것인데, 저 아이에게 써야 한다는 말인가…….’

비밀문은 잠근 담무룡은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대공의 협박이 없었다면 담무룡은 천륭검보의 비밀을 알아낸 악불군을 아마 죽였을 확률이 컸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담수련을 확실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악불군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강해지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도박을 해야 하는가…….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 보자.’

한참 갈등하듯 고심하던 담무룡은 밖을 향해 소리쳤다.

“가 대장!”

“예!”

“가서 소가주에게 들어오라고 해라.”

* * *

“아가씨, 이제 잠자리 드셔야지요? 아까 너무 놀라셨을 텐데…….”

담수련이 자리에 눕지 않고 계속 생각에 잠겨 있자 매향이 불안한 듯 물었다.

“나 안 놀랐어.”

“침입자가 아가씨를 이불로 둘둘 말아 납치해 가려고 했는데 놀라지 않으셨다고요?”

추국은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 놀라 반문했다.

“응, 안 놀랐어.”

“와! 우리 아가씨, 예전에는 쥐만 보셔도 그렇게 놀라시더니 이제 많이 담대해지신 것 같네요?”

어린 시절부터 오음절맥 탓에 극도로 보호된 생활을 하던 담수련이기에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놀라곤 했다.

“소군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아가씨는 악 무사님을 무조건 믿으시나 봐요?”

“나를 영원히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어. 소군은 절대 거짓말 안 해.”

“…….”

사화는 근거 없는 담수련의 믿음에 즉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소군, 많이 다친 것 같던데 괜찮을까?”

“아까 보니까 괜찮은 것 같던데요?”

“상처는 어떻게 하고 벌써 와?”

“더 치료를 하라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나왔다고 하던데요? 부를까요?”

“됐어. 너무 늦었고 소군도 좀 쉬어야지.”

담수련은 소군이 왔다는 말에 안심과 걱정이 교차하는 눈으로 말하고는 침상으로 갔다.

“모두 나가, 나 잘 거야.”

“예, 우리는 방 밖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부르십시오.”

사화가 인사를 하고 불을 끄고 나가자 담수련은 한숨을 폭 내 쉬웠다.

‘소군, 정말 많이 아팠을 건데…… 흑!’

자신이 우는 소리가 나면 사화가 즉시 달려올 것을 아는 담수련이기에, 손으로 입을 막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었다.

그녀의 눈에는 안타까움을 담은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 * *

“부르셨습니까?”

담수운이 들어서며 인사를 하자 담무룡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냐?”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인사를 하는 거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담수운은 여전히 어색하고 딱딱했다.

고개를 저은 담무룡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말했다.

“앉아라.”

“서 있어도 괜찮습니다.”

“앉으라고 했다.”

“예.”

담수운이 앉자 담무룡은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넌 왜 아비를 만나면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냐?”

담무룡은 악불군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무공도 모르는 어린애가 절정의 무공을 지닌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얘기했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그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도 악불군은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담무룡은 담수운이 악불군 같은 배짱이 없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담수운은 그제야 눈을 들어 담무룡을 보며 물었다.

“눈을 마주치면 뭐가 달라집니까?”

“무슨 뜻이냐?”

“어차피 심약한 눈이라고 보고 싶어 하지도 않으시지 않습니까?”

“종가에서 제법 노력을 했는지 무공이 상당히 강해져 와서 좀 나아졌나 했는데, 여전히 속이 좁구나! 이 애비는 너를 위해 강하게 키우고자 했을 뿐이다.”

“아버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상당한 반항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린애도 아니고 지금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어리광 부리는 소리냐?”

“어리광 부릴 나이에 아버님과 떨어져 지내서 그런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찾으신 것입니까?”

“끙!”

담무룡은 못마땅한 듯 침음성을 내고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지위가 소가주다.”

“아버님의 아들이라서 받은 지위일 뿐입니다. 아들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이미 내치셨을 겁니다.”

“왜 자꾸 삐딱하게 구는 거냐? 이 아비는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다.”

“지금은 아버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셨건 안 하셨건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담무룡은 화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누르며 말을 이어 갔다.

“세가에 아주 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

“본 세가에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것이 한두 번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아버님께서 해결해 오셨고요.”

“네 도움이 필요하다.”

“혹시 원나라 놈들에게 뒤통수라도 맞으셨습니까?”

“뭐야?”

“아버님께서 벌벌 떠는 자들이 그들밖에 더 있습니까?”

“말조심해라.”

“아버님 말씀대로 저도 더 이상 어린애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지 정도는 알 나이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 아비가 옳지 않다는 의미냐?”

“자식이 되어 아버님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담무룡의 눈가가 살짝 흔들렸다. 그 정도 의미를 느끼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아마 다른 때 같았으면 대노하여 크게 꾸짖고 나가라고 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너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

“싫습니다.”

“무엇인지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요. 어차피 아버님께서 준비하셨다면 전 기대를 충족할 수 없을 것이니, 들을 필요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네가 태어난 날부터 너를 위해 십만금을 들여 준비한 것이다.”

“천년성형하수오라도 구하신 모양이군요?”

“그래. 공청석유도 있다. 네가 하겠다고 한다면 내일이라도 대법을 시작할 수 있다.”

담수운은 그냥 한 말이었다. 그런데 담무룡이 진짜 자신을 위해 천년성형하수오와 공청석유까지 준비했다는 말에, 절로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재질이 없는 아들에게 너무 큰돈을 사용하셨군요.”

“난 네가 재질이 없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네가 너무 심약하고 야망이 없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지요? 전 역시, 아버님께 효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무슨 뜻이냐?”

“종가에서 작은 할아버님들께 개정대법을 받은 것이 삼 년 전입니다. 아버님께서도 아시겠지만 개정대법을 받고 최소 오 년 안에는 다른 영약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숙부님들께서 왜 내게 말하지도 않고?”

“작은 할아버님들께서는 아버님 때문에 종가에 큰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라도 강해져서 가문을 이어 나가라고 하시더군요.”

“허허허!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더니, 일이 꼬여도 정말 거지같이 꼬이는구나…….”

개정대법으로 받아들인 내공을 완벽하게 흡수하기 위해서는 최소 오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전에 내공을 늘려 주는 영약을 먹는다면 두 기운의 충돌로 인해 주화입마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물론 완전 흡수한 후 다시 영약의 도움을 받는다면 실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문제는 담수운에게 개정대법을 펼쳐 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 이미 십 년 전이었다는 점이다. 그걸 차일피일 미루더니, 하필 지금 이 시기에 대법을 받았다니…….

담무룡의 말대로 정말 하늘이 그를 돕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 아버님의 욕심을 위해 무공이 강해지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기가 상해 있던 담무룡에게 담수운의 말은 불에 기름을 부운 것과 같았다.

“욕심이라니! 이 아버지가 원하는 건 내 욕심이 아닌, 내 아들의 성장이고 성공이다. 그를 위함인데 뭐가 불만인 게냐!”

“아버님께서 제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욕망 아니십니까?”

“욕망? 그런 것은 야망이라고 하는 거다. 남자로 태어나 한 번쯤 세상을 호령해 보겠다는 생각 같은 것도 안 드냐?”

“전 야망보다는 정의로운 삶이 좋습니다.”

담무룡은 고개를 저었다.

“심약한 놈! 어찌 나는 하나도 닮지 않고 지어미와 똑같단 말인가…….”

어머니의 말이 나오자 담수운이 발끈하며 받아쳤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께서 병중에 계심에도 일 년 가까이 연락도 안 하셨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의 임종조차 보러 오지 않으신 분이 하실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담수운의 말에 담무룡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바로 아내였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오히려 담수운에 대한 아내와 다른 교육 방식 때문에 그녀를 힘들게까지 했다. 그런 그녀가 죽는 모습까지 보지 못한 것은 그에게도 가장 마음 아픈 사건이었다.

담무룡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당장 때려 죽였을 그였다.

하나 자식이기에, 그리고 마음에 박힌 상처가 너무 크기에 가만히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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