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0화 (30/472)

<천검지애 30화>

30화. 수련(1)

“확실합니까?”

“무슨 이유인지는 저도 모르지만, 대공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담수운의 말에 노인은 약간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저희들에게는 호재(好材)라고 할 수 있겠군요.”

“호재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의 원래 계획에는 없던 일인지라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그게 걱정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안 좋은 변수라면 계획 변경이 쉽지 않지만, 좋은 변수라면 군사께서 저희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아내실 것입니다. 그런데 담 공자님.”

“말씀하십시오.”

“어찌 됐건 담 가주는 아버님이고 누이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소?”

“아버님이야 평생을 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니, 이번 역시 당신에게는 하나의 도전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수련이는 사실 걱정이 됩니다.”

담수운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담수련을 항주에서 납치하려 했던 것도 사실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그때 담 소저를 반드시 구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일개 호위 무사가 백룡신권 대협 같은 고수를 막아 낼 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오룡세가에 장악이 된 무림이었지만 그래도 천하가 인정하는 백 명의 고수가 있었다.

백룡신권은 그 백 명 중 한 명으로, 악불군 정도는 가볍게 제압하고 담수련을 데려갈 수 있으리라 예상했었다.

“백룡신권께서도 솔직히 대단히 놀랐다고 하시더군요.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자신의 공격을 받아 낼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휴우~ 어찌하겠습니까? 그 또한 그 아이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요.”

담수운에게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다른 신분이 있는 것은 분명한 듯했다. 하지만 그도 담무룡의 제안만은 아직 말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을 자식이라고 믿고 보호하기 위해 말해 준 계획까지 당장 보고한다면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 예의까지 저버린 패륜아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여러 사람들이 자신만의 관점에서 고민이 많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 *

자시가 되고 종리화가 담수련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악불군은 담무룡의 집무실로 향했다.

비밀 통로는 집무실의 벽으로 통해 있었고, 담무룡이 열어 주어야만 열리게 되어 있었다.

[따라오너라.]

악불군이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연 담무룡은 그를 비밀 연무장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서 있었던 일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종리 단주에게 얘기는 들었겠지?”

“가주님께서 제게 직접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절은 하지 마라. 난 약간의 도움을 줄 뿐, 네 사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악불군이 엎드리려 하자 담무룡은 단칼에 잘랐다.

“제가 감히 가주님 같이 높으신 분의 제자를 바라겠습니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인사도 생략한다. 요즘 본가의 상황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뭔지는 짐작하지 못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맞다. 내가 잠룡세가를 세우고 최대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세운 잠룡세가가 내 대에서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잠룡세가를 살릴 계획을 세웠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다. 아마도 나의 직계인 소가주와 수련이가 가장 위험해질 것이다. 잠룡세가라는 방어막이 사라지면 수련이를 보호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

“아가씨를 호위하는 사화와 잠봉단의 여무사들도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따르겠지만, 적들의 무공과 비교한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는 제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신 분입니다. 누구도 저를 죽이기 전에는 아가씨를 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악불군의 의지가 깃든 목소리에 담무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 나오는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분명 네 기개가 뛰어남을 안다. 하지만 세상에는 너보다 강한 자가 수두룩하다. 너를 죽이고 수련이를 해칠 수 있는 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리고 네가 죽기 전에 수련이를 해할 수 없다는 말은 책임이 결여된 말이다. 넌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말고 수련이를 보호해야 한다.”

“죽지 않고 아가씨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신다면, 어떤 고통이 따르더라도 해내겠습니다.”

“그래, 내가 네게 힘을 주겠다. 단, 그 힘은 오로지 수련이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약속하겠느냐?”

“약속하겠습니다.”

악불군의 말을 들은 담무룡은 서가로 가더니 책자 하나를 꺼내 악불군에게 던졌다.

“소림사의 달마역근경의 사본이다. 내가 소림사를 공격하면서 대공에게 받은 전리품이다. 소림의 조종인 달마대사가 만든 내공심법으로, 중원 무림 신공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소림내경일지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으니 완벽하게 숙지해라.”

말을 마친 담무룡이 나가자 악불군은 급히 책자를 들어 펼쳤다.

* * *

“악 무사님.”

은신한 채 무공 수련에 열중하던 악불군은 추국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께 무슨 일이 있나?”

“저희 사화가 아가씨 주위를 일 장 가까이서 호위하고 있으니 아가씨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단주님께서 이것을 좀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추국은 주위를 한 번 보더니 서찰 하나를 꺼내 건넸다.

“알았다.”

“다 읽으신 다음에는 곧바로 소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추국은 부언을 하고 몸을 날려 사라졌다.

‘사화도 요즘 열심히 수련을 하는 모양이군.’

악불군은 사화의 경공이 상당히 발전한 것을 느끼자 미소를 지며 서찰을 펼쳤다.

그리고 곧 표정이 심각해졌다.

* * *

“유모.”

“예, 아가씨.”

“세가에 무슨 일 있지요?”

“왜 그런 생각이 드셨습니까?”

“성 오라버니께서 제 성인식도 안 보고 그냥 가셨어요. 그리고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연락이 없어요. 유모가 예전에 그랬잖아요. 주위 상황이 갑자기 평상시와 달라지면 그것은 조심할 때라고요. 제가 보기엔 지금이 그때 같아요. 요즘 모든 것이 달라요.”

“화 공자님께 연락이 없는 것이 서운하십니까?”

“서운이요?”

“예, 서운이요.”

종리화의 반문에 담수련은 고개를 갸웃했다.

화우성은 그녀의 약혼자였다. 그렇다면 그녀의 성인식까지 보지 않고 떠난 데다 이후 연락도 없는 화우성에 대해 당연히 서운해해야 했고,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해야 맞았다.

그런데 그녀는 화우성의 행동에서 잠룡세가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만 생각했을 뿐,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서운해야 하나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요?”

담수련은 예전에 종리화와 사랑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을 생각하자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예.”

“유모, 솔직히 전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성인식을 하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성인이신 것은 아니지요. 저도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된 것은 스물다섯이 넘어서였습니다.”

“그럼 저도 그때까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될까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아가씨는 저보다 빨리 알 것 같습니다.”

“왜요?”

“스물다섯 때까지 전 여자가 아니었거든요.”

“유모는 아직도 이렇게 아름다우신데, 왜 그때 여자가 아니에요?”

“제 사부님께서 절 남자처럼 키웠거든요. 지금은 사부님께서 저를 제자로 여기시지도 않지만요.”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제가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렸지요.”

“사부님은 부모와 같다고 하셨어요. 유모께서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용서를 구하면 분명 용서해 주실 거예요.”

담수련의 말에 종리화는 약간은 슬픈 미소를 지며 말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너무 큰 죄를 지어서 용서를 빌 염치도 없답니다.”

담수련은 종리화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지자 급히 화제를 바꿨다.

“알았어요. 그럼 세가에는 아무 일도 없는 거죠?”

“아가씨, 세상에 아무 일도 없는 날은 없습니다. 지금도 천하에서는 전쟁과 학살, 그리고 서로를 죽이기 위한 음모가 횡행하고 있을 겁니다. 양민들도 누군가의 부모와 자식이 눈앞에서 죽어 가는 것을 넋 놓고 보고 있을 거고요. 그러니 아무 일도 없다고 속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건은 일어나야 그때부터 사건이니까요.”

“그건…… 저도 알지만…… 죄송해요.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단지 부모를 잘 만났다는 행운으로 전 정말 너무 편하게 자란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태어나는 거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이후의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아가씨는 그 마음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저나 잠룡세가의 모든 사람들은 무림인이에요. 아가씨도 세가의 천금으로 태어나셨으니 아실 겁니다. 무림인들은 죽음을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거.”

“그래서 전 무림이 싫어요. 서로 죽이지 않고 도와 가며 살면 참 좋을 텐데…….”

담수련에게 종리화는 엄마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녀의 세상 지식은 대부분 종리화에게서 얻었다. 그리고 세상은 책에서 얻은 지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가씨, 사실 오늘 중요한 말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무슨……?”

담수련은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직감적으로 안 좋은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제가 며칠 후 세가를 떠날 것 같습니다.”

“유모가 떠난다고요……? 왜요?”

담수련은 깜짝 놀라 물었다.

“가주님께서 제게 특명을 내린 것이 있습니다. 떠난다 해도 일 년 안에는 아가씨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무슨 이유냐고 물어도 안 가르쳐 주시겠지요?”

“극비로 떠나는 것입니다. 사화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매일 붙어 생활하는 사화에게까지 말하지 말라는 것은, 세가 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이나 같았다.

“확실히 세가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맞군요?”

“소군에게 아주 중요한 임무가 주어질 예정입니다. 그래서 그 임무를 돕기 위한 준비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소군도 떠난다는 거예요?”

종리화가 떠나는데 악불군까지 떠난다면 그녀는 정말 기댈 사람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악불군이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소군이 아가씨를 떠나라고 한다고 들을 아이입니까? 아마 가주님께서 명을 내려도 절대 불가라고 할 겁니다.”

종리화의 말에 담수련은 안심한 듯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소군은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맞습니다. 다만 지금의 소군의 무공은 여러 가지로 부족합니다. 그래서 가주님께서 소군의 무공을 높일 대법을 생각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아버님께서 소군에게 대법을요?”

“예.”

담수련도 태산의 담씨 종가에서 사람의 신체 능력을 높여 주는 많은 대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상하십니까?”

“조금이요. 아버지께서 수하들에게 그다지 친절한 분은 아니시니까요.”

담수련 역시 담무룡을 아버지로서 존경하고 따르기는 했지만, 자그마한 실수에도 가차 없이 죽이는 냉정함은 잘 알고 있었다.

“아가씨께서도 만약을 위해 오늘부터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해 주십시오. 아가씨께서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소군이 아가씨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알았어요.”

사실 담수련도 최선을 다해 무공 수련을 하고는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최소한 자신의 몸을 지킬 정도는 되어야 소군의 부담을 줄여 준다고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문제는 그녀의 체력이었다. 오음절맥은 뇌는 극도로 발전을 하지만 신체적인 능력은 무척 약하기 때문이었다.

‘휴우~ 만년설삼만 구하면 아가씨의 지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는데…….’

대답하는 담수련을 보며 종리화는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엄청난 재산과 세력을 지닌 담무룡도 그렇게 구하려고 했지만 못 구한 만년설삼을, 누가 있어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소군은 유모가 나가는 것을 알고 있나요?”

“지금쯤 알았을 것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