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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2화 (32/472)

<천검지애 32화>

32화. 금종조(金鐘罩)

정좌를 하고 액체 속에 앉아 있는 악불군을 잠시 주시한 담무룡은 밀폐된 뚜껑을 열며 말했다.

“입을 벌려라. 그리고 내가 이 약을 네 입에 흘려주면 즉시 달마역근경의 구결을 돌려라.”

그가 악불군에게 달마역근경을 익히게 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자신의 입안으로 액체가 들어오자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천고의 기연이 그에게 온 것이었다.

호리병 안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악불군의 입에 털어 넣은 담무룡은 즉시 소리쳤다.

“입을 다물고 운기를 시작해라!”

담무룡의 명이 떨어지자 악불군은 즉각 운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일그러졌다.

상당한 고통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통 안에 들어갔지만 전혀 고통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약을 마시고 운기를 하자 지금까지 육관을 통해 겪었던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겪는 듯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몰려 온 것이다.

지금 악불군에게 마시게 한 약과 몸을 담근 액체는 담무룡의 종가에서 내려온 특수 조제법에 의해 만들어진 비약이었다.

약에 들어간 성분은 하나하나가 누구나 탐내는 영초(靈草)와 영액(靈液)이었지만 배분을 잘못할 경우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담무룡은 더욱 큰 효과를 얻기 위해 앙천마독이라는 절대 독약을 비롯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여러 재료를 같이 섞었다.

장기 내부는 마치 불과 얼음을 같이 먹은 듯 불에 타는 듯한 고통과 얼어붙는 듯한 괴로움이 동시에 나타났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마 끔찍한 고통에 심장 마비라도 걸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외부의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어루만져 주는 수준이었다.

지금 악불군이 몸을 담근 액체는 철포삼을 연성하는 데 필요한 여러 재료들이 섞여 있었다.

특히 피부에 얇게 흡수될 액체 금속은 악불군의 피부를 사정없이 파고들고 있었다.

성공만 하면 그 효과는 대단할 것이지만, 고통이 너무 커서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종가의 기록에 따르면 모든 대법은 경과를 보아 가며 최소한 삼 년에 걸쳐 천천히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아마 악불군이 아니라 담수운이었다면 절대로 행하지 않았을 무리한 대법이었지만, 담무룡은 악불군에게 무조건 참아야 한다면 시전한 것이다.

그에게는 삼 년이나 지켜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군……. 신체도 그렇지만, 저 인내심은 또 뭐란 말인가?’

담무룡도 젊은 시절 빨리 강해지고 싶어 지금 대법을 시도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 알고 있었다.

사실 그조차도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악불군은 속성법으로 펼치고 있기에, 그가 느끼는 고통은 과거 담무룡이 느꼈던 고통의 최소한 서너 배는 더 강하게 느낄 것이었다. 그럼에도 악불군은 얼굴만 일그러졌을 뿐 침음성조차 내뱉지 않았다.

‘이 와중에 운기에 더 집중을 해? 허허…… 수운이가 이놈의 반만 닮았어도…….’

악불군의 모습을 보던 담무룡의 입에서 아깝다는 듯 탄식이 터져 나왔다.

중얼대던 담무룡의 고개가 돌아갔다.

누군가 집무실에 들어온 것을 느낀 것이다.

‘웬 놈이지? 분명 아무도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명을 내렸었는데?’

중얼거린 담무룡은 악불군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지금 그가 펼치는 대법은 세 번의 고비가 있었다. 몸속에 들어간 영약들이 퍼지는 순간과 그가 담고 있는 액체가 피부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시기는 이후였다.

몸 안에서 퍼져 나가는 약효와 피부에서 스며든 기운 간의 충돌이었다. 그때 그가 끼어들어 강력한 내공으로 두 기운이 부딪치지 않게 막아주지 않는다면 악불군은 몸이 터져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공 자체가 약해서, 달마역근경의 구결로도 빠르게 효과는 나타나지 않겠군.’

악불군의 상태를 주시하던 담무룡은 최소한 반 시진은 지나야 기가 움직일 것으로 판단하고는 집무실로 가는 통로로 빠져나갔다.

지금 시각에 그의 집무실에 들어왔다면 간세일 확률이 높았다. 담무룡은 들어온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 * *

비밀 연무장의 입구에 도착한 담무룡은 문에 붙어 있는 통의 뚜껑을 열고는 눈을 갖다 댔다.

그러자 집무실의 전경이 나타났다. 안을 살필 수 있도록 만든 망원통이었다.

순간, 담무룡의 눈이 살짝 커졌다.

검은 인영이 불도 켜지 않은 채, 집무실의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놈이 누구지? 가등우가 설마……?’

담무룡의 집무실은 그의 처소와 같이 붙어 있어서 잠룡세가 내에서도 가장 경계가 심한 곳이었다. 한마디로 외부 침입자가 걸리지 않고 이 안으로 들어오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잠룡세가의 모든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등우가 묵인한다면…….

‘아니야. 가등우가 간세라 해도, 내가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 침입자를 들여보낼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아……. 그럼 저놈은 뭐지?’

망원통에 바싹 눈을 대고 있던 담무룡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움직임의 특징으로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무룡의 얼굴에 절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나타나고 있었다.

* * *

반 시진 안에는 어떤 현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담무룡의 판단과는 달리, 일각도 안 되어 악불군의 몸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격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몸을 담고 있는 액체는 담무룡이 경험한 바로는 피부로 조금씩 스며들어야 했다. 그것은 마치 온몸을 송곳으로 무차별적으로 찌르는 고통과 비슷했다.

그런데 지금 액체는 부글부글 끓으며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악불군의 피부는 갈기갈기 찢어지며 통 안의 액체가 어느새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아마 담무룡이 보고 있었다면 당장 대법을 멈추고 악불군을 꺼낼 것이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그렇다고 악불군이 소리를 질러서 담무룡을 부를 수도 없었다. 운기를 할 경우 소리를 내는 것은 금기 사항이었다. 소리를 따라 몸속의 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점점 심해지는 고통에도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아 내며 달마역근경의 심법을 운기했다. 하지만 몸속에서 갑자기 불덩이 같은 기운과 얼음장 같이 차가운 기운이 형성되더니 서로 충돌하자, 그의 인내심도 결국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부글부글 끓으며 팽창하던 액체가 그의 머리까지 덮으며 그의 입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악불군에게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피부에 닿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야기하던 액체가 더 연한 몸 안으로 들어갔으니, 그 고통은 배가 된 것이다.

통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통을 뛰쳐나갈 힘도 그에게는 없었다.

‘으윽, 정신 차려야 한다.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죽는다……. 아가씨를 위해서도 난 죽으면 안 돼.’

담무룡의 판단 실수로 뜻하지 않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악불군.

담무룡의 천려일실(千慮一失)이 될까……

아니면 악불군의 천고기연(千古奇緣)이 될까……

극심한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해 오는 와중에도 담수련을 생각하며 간신히 견디던 악불군이었지만, 지금 그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그는 주화입마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좌를 풀고는 천륭검보에 그려진 그림의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자세가 고통을 줄여 준다는 것이 생각난 것이다.

운기조식 중에 다른 짓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정신을 잃고 죽는 것보다는 나은 판단이었다.

액체의 끈적함과 무게로 인해, 그림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

첫 장의 그림부터 천천히 자세를 취하던 악불군은, 두 번째 자세로 몸을 바꾸는 와중에 몸 안에서 충돌하던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갑자기 충돌을 멈추고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고통이 한결 줄어들었다.

그는 힘을 내어 계속 자세를 바꾸어 나갔다.

다행히 통의 크기는 그가 자세를 취하는 데 적당할 정도의 크기였다.

그러던 악불군의 자세 바꾸기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빨리 할수록 고통이 급속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삼각쯤 지났을까…….

그의 몸에서 하얀 기체가 빠져 나오더니 그의 머리 위로 세 개의 고리를 만들었다.

만약 담무룡이 보았다면 경악을 했을 것이다.

내공이 삼화취정(三花聚顶)의 경지에 올라야 만들 수 있다는 정기신(精气神)의 삼화환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무아지경에 빠진 악불군은 자신의 상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

검은 인영의 행동을 계속 살피던 담무룡은 주먹의 꽉 쥐고 있었다.

절대 의심하지 않던 자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경우 그 배신감은 더욱 커진다.

지금 그가 바로 그랬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어나가 치도곤을 내리고 이유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그의 성격상 이렇게 참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집무실 안을 한참 동안 뒤지던 인영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는지 고심하는 자세로 잠시 서 있다가 벽 쪽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담무룡은 망원통에서 눈을 떼며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것이었다.

담무룡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만큼 지금 침입자의 정체가 그에게 대단히 충격을 준 것이 분명했다.

마음의 안정을 차리려는지 꽤 긴 시간을 그렇게 서 있던 담무룡은 통로 안쪽을 보더니 몸을 날렸다. 이제 슬슬 효과가 나타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 * *

비밀 연무장, 통 안에서 조금 전까지 천륭검보의 자세를 끝없이 반복하던 악불군은 지금은 다시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연무장을 덮고 있던 연기는 사라졌고, 부글부글 끓던 통 안의 액체도 더 이상 끓지 않았다. 아니 액체 자체가 아예 사라져 있었다.

그때 연무장 안으로 뛰어든 담무룡은 의아한 듯 우뚝 섰다. 연기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급히 통 안을 들여다본 담무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통 안의 액체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것은 그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담무룡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통 안에 든 액체는 그가 아들을 세 명 이상 낳을 생각으로 수십 년에 걸쳐 모은 것으로, 최소한 세 명에게 대법을 펼칠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담무룡의 종가에서는 수많은 대법을 시술한 뒤 그 경과와 결과를 다 기록을 해 두었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현상은 그도 읽은 적이 없었다. 악불군이 다 흡수를 했다고 봐야 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반 시진 남짓한 시간에 흡수도 불가능하거니와, 흡수한다 해도 인간의 신체로 그것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좌를 하고 있는 악불군의 얼굴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더 이상의 고통이 없다는 증거였다. 거기다 종전까지 갈기갈기 갈라져 피를 흘리던 피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매끈했기에, 담무룡은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담무룡은 조심스럽게 악불군을 살피더니 그의 맥문을 살짝 잡았다.

‘이게 뭐야? 그동안 모은 많은 천고의 영초와 기물들을 몽땅 쏟아부었는데 왜 내공이 이것밖에 증가하지 못한 거지?’

사라진 통의 액체들이 사라진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악불군에게 먹인 영초들과 영액의 효능까지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최소한 삼십 년 이상 올라야 하는 내공이 시작 전이랑 십 년 정도의 차이밖에 없자, 담무룡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악불군에게는 삼화취정의 현상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그것은 악불군의 내공이 최소한 이 갑자 이상이 되어야만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담무룡은 악불군의 내공이 상승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먹인 영약들의 효능은 단순 계산만 한다면 거의 삼 갑자 가까운 내공을 늘릴 수 있었다.

물론 약효를 모두 흡수하는 경우는 없었고 대충 이, 삼 할만 발현이 되어도 성공적이었다. 나머지는 쉼 없는 수련을 통해 약의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법이었다.

그런데 악불군에게는 일 할도 채 되지 않는 효과만 나타난 것 같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악불군의 기를 살피던 그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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