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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5화 (35/472)

<천검지애 35화>

35화. 변화(3)

잠룡세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체 간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하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등 동요를 막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었지만, 대공의 압박은 점점 심해지는 중이었다.

심지어 항주성을 나간 잠룡세가의 무인들이 포두들과 충동하는 일까지 수시로 벌어지고 있었다.

긴장 상태가 팽배한 가운데에도 담수련이 머무는 안채는 평화로웠다.

“소군!”

꽃밭에 나온 담수련의 목소리에 악불군이 급히 몸을 날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오늘 사화가 안 보이네? 무슨 일 있어?”

“잠봉단에서 소집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

“죄송합니다.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알아볼까요?”

“아니야.”

담수련은 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곳에는 소군과 그녀 단둘이만 있다는 말이 아닌가…….

담수련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자 숨을 살짝 들이마셨다.

‘둘만 있다는데 왜 떨리는 거야…….’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악불군은 담수련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자 물었다.

“아, 아니야. 그런데 요즘 소군은 밤마다 어디 가?”

“아셨습니까?”

그녀가 잠들 시간에 갔다 오는 것이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악불군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소군이 매일 밤 안 보인다고, 사화가 말해 주던데?”

“특별한 일은 아니고 무공 수련을 했습니다.”

“무공 수련?”

“아가씨를 안전하게 보호하기에는 제 무공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소군이 자꾸 다치는 것 때문에 속상했는데, 강해지면 더 이상 안 다치겠네?”

“그러려고 합니다.”

“난 소군 다치는 게 제일 싫어. 그러니까 열심히 해서 절대 다치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

“그러겠습니다.”

“요즘 세가 내 공기가 안 좋다고 하던데?”

“밖에서 자꾸 안 좋은 일이 일어나 분위기가 좀 안 좋기는 합니다.”

“무슨 일인데?”

“그것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 세가 내의 정보도 좀 알아 올까요?”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난 소군만 옆에 있으면 하나도 불안하지 않으니까.”

그녀의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사실 그녀는 악불군이 자신의 주위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편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성인식 이후 그녀는 담무룡은 한 번밖에 못 보았고, 담수운 역시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 특히 담수운은 그녀를 볼 때마다 너무 안쓰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예, 제 옆에만 계시면 절대 불안하지 않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하자, 담수련은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댔다.

“어디 안 좋으십니까?”

오음절맥의 특징 중 하나가 심장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악불군이 놀라 묻자 담수련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 아니다……. 안 괜찮은 것 같아.”

담수련은 자신의 두근거림의 원인이 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 * *

“대공, 아무래도 담무룡이 계속 버틸 것 같습니다.”

금잔화와 바둑을 두고 있던 대공은 혈랑사자의 보고를 듣고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금잔화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까지 들어가면 넌 어쩌겠느냐?”

“글쎄요? 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라면 거긴 안 둘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안채까지 내달라는 얘기인데, 그건 무조건 지는 거 아닌가요? 저 같으면 죽기 살기로 잡으려고 할 거예요. 유리한 바둑에서 굳이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거긴 좀 무리지? 그럼 이쯤은 어떨까?”

“거긴 좀 느슨한 것 같습니다. 이긴다 하더라도 긴 승부가 되겠지요. 저라면 여기에 놓겠어요.”

금잔화는 대공이 가리킨 곳과는 아예 다른 곳을 가리켰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겸구고장(箝口枯腸)이라고 하고 싶네요.”

“먹을 것을 막아 창자를 말린다라……. 바둑은 상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담무룡의 성격까지 염두에 둔 것이냐?”

“호호~ 당연하지요!”

금잔화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대공은, 그제야 혈랑사자를 보며 말했다.

“두 달을 기다려 줬으면 많이 기다렸다. 이 단계 계획으로 들어가라. 한 달 안에 창자가 마르는 고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려 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혈랑사자가 나가자 바둑돌을 한곳에 착점한 금잔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잠룡세가를 없애실 생각이십니까?”

“왜? 네가 보기에 아닌 것 같으냐?”

“지금 한산동의 뒤를 이은 유복통이 이끄는 홍건적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잠룡세가가 사라진다면 황실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입니다.”

“담무룡의 무공은 천하에서 열 손가락에 들 정도로 강하고 용병술도 뛰어나 수하들이 아주 정예화되어 있다. 거기다 자금도 양호하니 지금 오룡세가 중 가장 강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당연히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대공은 마지막 단어에 힘을 주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

팍!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바둑돌이 터져 나갔다. 그의 분노가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부서진 바둑돌을 흘깃 본 대공은 손을 털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담무룡이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빼냈다는 것은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의 성정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틈만 보이면 우리의 뒤통수를 칠 자다.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중원인의 신분으로 중원까지 배신한 놈이 아니더냐. 아까워도 쳐낼 때는 쳐 내는 것이 맞다.”

“철룡세가를 제외한 나머지 세가들에서 불안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겠지. 자신들도 언제든지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신임하던 잠룡세가도 실수하면 제거한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를 도울 것이다. 지금 상황은 더 이상 홍당무만 줄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채찍질을 해야 한다.”

대공의 말에 금잔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근래 오룡세가들은 홍건적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청하는 관의 요구를, 여러 이유를 대며 거절하곤 했다.

“역시 대공이세요! 소녀의 생각이 근시안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담무룡은 그냥 당할 놈이 아니다. 분명 자신의 퇴로를 생각해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할 것이니,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

“걱정 마세요. 혈랑무 오백 명을 주축으로 총 이천 명이 동원됐습니다. 그동안은 절강 밖으로 나가는 것만 막았지만, 오늘 이 단계 계획이 시행되면 항주까지 그 범위가 좁혀집니다. 담무룡도 강한 압박을 확실히 절감할 것입니다.”

“담무룡은 음흉한 자다. 분명 잠룡세가에서 빠져나가는 비밀 통로가 여럿 있을 것이다. 그것도 염두에 두거라.”

“아무리 비밀 통로가 길더라도 항주성 밖까지는 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온다 해도 우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대공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담무룡의 딸이 아주 아름답다고?”

“예, 제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관심이 있으십니까?”

“여인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나이는 이미 지났다. 철상아가 서찰을 보냈더구나.”

“철 소저가요?”

“응, 담수련만은 살려서 자신에게 줄 수 없겠냐고 하더구나.”

“남자라면 이해가 되는데, 왜 철 소저께서 담수련을 원할까요?”

“원체 특이한 아이이니 난들 알겠느냐?”

“그럼 담수련을 철 소저에게 주실 생각이십니까?”

“철룡세가는 위대한 칸의 자손이다. 그 정도의 부탁까지 거절할 수는 없지.”

“화우성과 혼약을 한 것으로 아는데, 화룡세가에서 반발하지 않을까요?”

“성인식 날 화우성이 잠룡세가를 떠난 그때 이미 혼약은 파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화룡세가에서 불만을 표하지는 못할 게다.”

“그럼 저도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네가? 의외구나? 해 보아라.”

“담수련에게 호위 무사가 있습니다. 그자를 제게 주십시오.”

“호위 무사? 남자냐?”

“남자라서가 아니라, 특이한 점이 있어서입니다.”

“남자라면 손톱 밑에 낀 때보다는 하찮게 여기는 네가 남자를 원한다? 재미있구나?”

“남자라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금잔화는 급히 다시 부언했다.

“이름이 뭐냐?”

“악불군이라고 합니다.”

“악불군? 흠 ……재미있군.”

“악불군을 아십니까?”

“나야 모르지. 그런데 철상아와 동시에 철무정이, 잠룡세가에서 탐나는 자가 있으니 달라고 하더구나.”

“철 소가주께서요? 설마 그자가 악불군입니까?”

“그래. 악불군이라고 했다.”

“제가 늦은 모양이군요.”

“아니, 악불군은 네게 준다.”

드디어 대공의 머릿속에 악불군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각인이 되고 있었다.

이후 그 이름을 얼마나 많이 듣게 될지는, 이때의 그로서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 * *

“가주님,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역귀혼은 흥분한 듯 말했다.

잠룡세가의 가장 큰 수입원은 절강 곳곳에 있는 항구를 통해 들어온 상선들에게 받는 보호비였다. 그런데 절강성 군부에서는 잠룡세가의 지부들을 모든 항구에서 철수하도록 했다.

우선 가장 큰 수입원을 막은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는 두 번째 수입원인 항주로 들어오는 물품의 반입을 막았다.

그런 그들이 어제부터 잠룡세가의 무인들의 항주성 출입까지 막기 시작한 것이다.

외당 당주 역귀혼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듣는 잠룡세가의 간부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얼마나 에워싸고 있더냐?”

“절강 만호부의 기병대 삼천 명입니다.

“삼천 명? 정말 우리와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던 담무룡은 상당히 분노한 듯 중얼거렸다.

“가주님, 저들이 우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닌, 굶어 죽이는 고사 작전을 쓰는 것 같습니다.”

문창현의 말에 몇몇 간부들이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세가의 동요를 걱정한 담무룡은 아직까지 대공의 경고에 대해 비밀로 하고 있었다.

“문 군사, 저들이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사이가 좋던 원 군부에서 갑작스럽게 적대적으로 돌변해, 수하들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저희에게도 말해 주셔야 대처를 하지 않겠습니까?”

내당의 부당주인 석중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실의 권력자 중 한 명이 본가에 과한 뇌물을 요구했소. 가주님께서는 그런 요구를 응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 거절하셨을 뿐이오.”

문창현은 우선 두리뭉실하게 넘겼다. 대공과 문제가 있다고 할 경우 이탈하려는 자가 생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한 성의 군부를 전부 움직일 수 있는 권력자는 황실에도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도에 연락하여 뭔가 대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부와 대적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마냥 이대로 기다리다가는, 앉은 자리에서 고사당할 수도 있습니다.”

“수하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단속하고 위로금으로 은자 한 냥씩 모두에게 지급해라.”

담무룡의 명에 문창현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가주님, 지금 수입이 급감했는데 모두에게 은자 한 냥은 지출이 너무 큽니다. 재정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너희들과 달리, 말단 수하들에게 충성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이다. 토 달지 말고 명대로 시행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역 당주.”

“예!”

“당장 이 서찰을 다루가치에게 전해라. 답은 빠를수록 좋다고 하고.”

“존명!”

역귀혼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봉서를 받아 품에 넣고는 허리를 숙이고는 즉시 나갔다.

역귀혼이 나가자 담무룡은 다시 개개인에게 명을 내리고는, 모두가 나가자 태사의의 등받이에 등을 대고 눈을 감았다.

‘요 몇 달이 살아온 인생 중 가장 긴 시간인 것 같군.’

그렇게 반각쯤 있던 담무룡은 여전히 홀로 시립해 있는 문창현을 보며 말했다.

“할 얘기가 아직 남았느냐?”

“예, 한 가지 여쭤 볼 것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이번 갈등이 대공에서 끝날지, 아니면 원 황실까지 연관이 될지 그것이 판단이 안 됩니다. 주군께서는 어떻게 판단을 하시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문창현의 말은 간단했지만 내포된 의미는 상당히 달랐다.

대공과의 싸움이라면 무림 세력 간의 갈등이 되니, 버틸 수만 있다면 재기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나라와 싸움이 된다면 역적이 된다.

즉 잠룡세가가 멸문해야만 끝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되는 것이었다.

더욱이 대공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대단사관직까지 겸하고 있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잠룡세가를 역모로 모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무슨 답을 원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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