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41화>
41화. 폭풍전야(2)
가만히 악불군을 주시하던 담무룡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애병인 쌍월검이 그의 손에 잡혔다.
“그럼 그동안 얼마나 늘었는지 오랜만에 비무 한 번 해 볼까?”
“그래 주시겠습니까?”
악불군도 사실 자신이 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나 늘었는지는 감을 잡을 수 없어 답답하던 차였다. 그런데 그 상대가 담무룡이라면 최적의 상대라 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너의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하지만 너의 임무는 호위다. 명성을 떨치려고 세상을 활보하는 무림인들은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넌 적을 만나도 도망을 언제나 일순위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강호에 나가보면 알겠지만, 대놓고 너희를 노리는 무림인들은 오히려 대비하기가 쉽다. 강하다 싶으면 도망을 치면 되고, 이길 수 있으면 부수고 나가면 된다. 하지만 숨어서 공격하는 자들은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숨어서 공격하는 자들이라면 살수를 말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속칭 자객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보통 자객은 혼자 행동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집단 살행을 하는 자들은 살수라고 불린다.”
“살수가 더 위협적이겠군요?”
“당연히 그렇다. 그들은 오로지 살인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무인으로서의 자존심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즉, 독과 화약 거기다 암기까지, 상대를 죽이기 위한 모든 방법과 거짓을 총 동원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살수들 중에 절정 고수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 해도 면식도 없는 자들이 갑자기 죽이려 든다면 대처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살수에 대처하는 실전 비무를 할 생각이다. 살수는 내가 된다.”
“제가 이미 가주님을 아는데, 그게 될까요?”
“나를 알고 모르고는 상관없다. 지금 네 주위에 수십 명의 행인이 지나다니고 있다고 생각해라. 저자거리일 수도, 주루 안일 수도 있겠지. 그 수십 명 중에서 누가 살수이고 누가 양민인지를 네가 찾아내야 한다. 중앙에 가서 서라.”
“예!”
악불군은 연무장의 중앙에 섰다.
“네 왼쪽에 수련이가 있는 것으로 한다. 집중하면 안 된다. 편안히 수련이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악불군은 담무룡의 그의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하자 우선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실지로 그 주위에 사람들이 오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준비됐느냐?”
“예.”
악불군의 대답을 들은 담무룡은 악불군의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각쯤 지났을까……
악불군이 담무룡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주 미미한 살기를 느낀 것이다.
“살기를 느꼈느냐?”
“예.”
“네가 눈치챘다는 것을 그렇게 빨리 적에게 알려 주면 적이 공격을 하겠느냐? 그리고 강호에 나가면 약간의 시비에도 살기를 보이는 자들이 있다. 그 살기가 너를 향한 것인지, 혹은 수련이를 노리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못하고 살기를 느낄 때마다 과민하게 반응한다면 피곤해서 강호를 돌아다니기 어렵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악불군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담무룡이 악불군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미약한 살기 네 번, 나에 대한 시선 두 번. 하지만 공격할 태세는 아니다.’
돌고 있는 담무룡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하나하나 느끼면서도 그는 겉으로는 태연했다.
그때 담무룡이 악불군의 몸 가까이 오는 듯하더니 다시 멀어졌다.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하던 담무룡의 손이 악불군의 가슴을 쳐 왔다.
전혀 살기나 어떤 공격의 조짐도 없었다.
어찌 보면 담무룡이 규칙을 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담무룡 정도의 고수가 아닌 이상, 살기를 완전히 숨긴 채 살행을 할 수 있는 살수들은 손에 꼽을 만큼 극소수이기 때문이었다.
퍽!
담무룡의 검미가 살짝 올라갔다. 너무 가까운 거리, 거기다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은 공격이었다. 거기다 악불군은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그런데 악불군이 그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쉭! 쉭!
담무룡의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 공격은 악불군이 아닌 그의 왼쪽 허공을 향했다.
순간 악불군이 필사적으로 그의 앞을 막으며 공격을 다시 막아 냈다.
바로 왼쪽은 담수련이 있는 곳이 아닌가…….
담무룡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난해하기로 이름난 환영전궁보를 거의 완벽하게 펼쳤기 때문이었다.
담무룡은 내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쌍월검이 잡혀 있었다. 담무룡의 애병이었다.
그와 동시에 악불군도 천륭검을 뽑았다.
챙! 챙! 챙…….
순식간에 십여 초가 지나갔다. 담무룡의 쌍월검은 계속 가상의 담수련을 노렸다.
말했던 것과 달리 공격을 하는 담무룡이나 그것을 막아 내고 있는 악불군이나 사투를 벌이듯 치열한 공수를 교환하고 있었다.
‘요놈 봐라? 한 달 사이에 이렇게 늘었어?’
담무룡은 자신의 공격을 다 받아 내고 있는 악불군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경탄성을 터뜨렸다. 불과 한 달 전과 지금의 악불군은 너무 달랐다.
이런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동안 잊었던 호승심이 발동을 했다.
그리고 담무룡의 공격이 확 달라졌다.
탕!
마치 자신을 두 쪽이라도 낼 듯 내리꽂히는 쌍월검을 막아 낸 악불군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위력에 무릎이 꺾일 뻔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도 왼쪽으로 향하는 쌍월검을 천륭검으로 막아 냈다.
담무룡의 검미가 꿈틀했다. 악불군이 자신의 쌍월검을 막은 자세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취할 수 없는 자세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천륭검보의 진정한 위력인가?’
그는 지금 놀랍게도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악불군이 막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내상조차 안 입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탕! 탕! 탕…….
담무룡은 십 초를 더 공격하고는 검을 거뒀다.
그의 얼굴에는 허탈함마저 떠오르고 있었다.
강해지기 위해 일평생을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수련했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강한 자와의 대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겨우 이십 대 초반인, 그것도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일류 고수를 간신히 지나 정절 고수의 초입에 들어가는 단계였던 악불군이 자신의 모든 공격을 받아 낸 것이다.
악불군이 담수련을 보호하는 임무에 빠져 거의 방어만 했지만, 만약 공격에 나섰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지 담무룡으로서도 자신할 수가 없었다.
“팔을 내밀거라.”
“예.”
악불군은 여전히 아무 경계도 없이 담무룡에게 자신의 맥을 맡겼다.
악불군이 담무룡의 실체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는 그래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맥문을 담무룡에게 맡겼을 것이었다.
그에게 담무룡은 은인이자 가주이고, 자신에게 무공까지 사사하는 사부님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느껴지는 내공의 수위는 일 갑자가 안 된다. 그런데 네가 내 공격을 받아 낸 것은 이 갑자 이상의 내공의 소유자와 맞먹었다. 아무래도 그 비급은 내가 아는 무공의 상식을 완전히 넘는 것 같구나.”
“그 비급이 누구의 무공입니까?”
담무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천륭검보에 대해 말해 주지 않은 것은 악불군이 실수라도 입 밖에 내는 순간 전 무림의 추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알고 싶으냐?”
“제가 이렇게 빠르게 증진을 이룬 것은 가주님께서 제게 대법을 시술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명비급 역시 큰 도움이 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분이 이런 무공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더군요.”
“내가 비밀로 하라고 해도 수련이에게는 말할 것 아니냐?”
“아가씨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저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이유건 아가씨께 숨기는 것이 있다면 신뢰가 깨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알려 주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니, 우선은 강해지는 데 전념하거라.”
대공은 천륭검보를 못 찾으면 분명 담수운과 담수련을 추격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악불군도 천륭검보에 대해서 듣게 되는 것은 명약관화했다.
“알겠습니다.”
“오늘 내 공격을 막아 낸 것을 보니 살수들의 공격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내가 해 줄 것이 없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강해져야 할 것이다.”
“과찬이십니다. 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이제 수련이를 데리고 나가야 할 때가 됐다.”
“예? 대공이란 자가 본가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세가를 떠난다는 말입니까?”
“네 임무가 무엇인지 잊었느냐?”
“아가씨는 제가 확실하게 보호할 것입니다.”
“최고의 호위는 위험에서 막아 내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곳을 아예 피하는 것이다. 지금 네 말은 수련이를 위험 속에 놓고 나를 돕겠다는 것이냐?”
“심기(心氣) 경호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가주님을 두고 아가씨만 빠져나간다면 아가씨는 평생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지금 내가 죽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걱정 마라. 잠룡세가가 잠시 봉문할 수는 있지만, 내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어허! 대법을 시술할 때 내가 뭐라고 했느냐? 넌 수련이만 확실하게 보호하고 천하의 영웅과 혼인을 시키라고 하지 않았느냐?”
“제가 이 정도로 강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분명 저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련이만 잘 보호하면 그게 나를 돕는 것이다.”
완강한 담무룡의 말에, 악불군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떠나야 합니까?”
“나간다 하여 안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네 뒤를 쫓는 추격자가 있을 것이다. 너는 약속된 장소까지 수련이를 안전하게 데리고 가야 한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말씀하십시오.”
“종리화와 연락이 안 된다. 우선은 약속된 장소로 간다. 만약 그곳에서 종리화를 못 만나면 다음 장소로 가야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내 말은, 종리화를 만날 때까지 너를 도와줄 사람은 사화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이미 한 달 전에 담수련을 내보냈어야 했다. 그런데 종리화와의 연락이 끊기면서 한 달을 허비한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적들이 담수운과 종리화가 빠져나간 비밀통로를 발견한 정황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더 시간을 끌다가는 담수련이 빠져나갈 통로까지 걸릴 우려가 있었다.
“절대 아가씨는 제가 안전하게 보호할 것입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무룡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음을 굳힌 듯 천륭검보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가거라.”
“가주님, 이 귀한 것을 어찌?”
“돼지우리를 황금으로 도배한다 해도 돼지는 모른다. 마찬가지로 네게는 중요한 비급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 불쏘시개로 사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내게 받았다는 얘기는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수련이가 천하제일 영웅과 혼인을 해서 남자 아기를 낳는다면, 네가 책임지고 그 무공을 그 아이에게 전수해라. 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만 가 봐라. 다음 계획은 내가 추후에 다시 말해 주겠다.”
“예!”
공손히 인사를 한 악불군이 연무장을 떠나자 담무룡은 의자에 앉더니 뭔가 생각에 잠겼다.
악불군 앞에서는 태연하게 얘기를 했지만 그는 악불군에게 대단히 놀라고 있었다.
“무림에 구문황이 다시 나타나게 생겼군. 그것도 젊디젊은 구문황이……. 대공이 경악하겠어. 하하하하!”
구문황은 대공이 두려워했던 단 한 명, 무황으로 불리는 천륭검가의 태상가주였다.
대소를 터뜨리던 담무룡은 갑자기 웃음을 멈추었다. 방금까지 웃던 모습과는 다르게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대공에게 고민을 안겨 준다는 통쾌함도 있었지만, 악불군이 너무 강해지는 것이 또한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더 강해진다면 그때도 수련이의 호위 무사로 만족을 할까? 아무리 신의현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남자라면 그게 가능할까?”
악불군이 지금 같은 속도로 무공이 늘어난다면 몇 달 안에 자신의 무공까지 능가할 것 같았다.
조직의 수장보다 무공이 강한 수하는 조직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수장까지 제쳐버릴 수 있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당장 견제하거나 제거할 방법을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악불군이 자신의 계획에 가장 핵심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악불군을 믿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