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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3화 (43/472)

<천검지애 43화>

43화. 암막(2)

“호위 무사……. 난 너를 어렸을 때부터 보았다. 넌 절대로 이렇게 강해서는 안 된다.”

악불군의 말에 연성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왜 전 강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호법님께서는 제게 아주 친절하셨지요. 전 그것이 모두 연극이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이제 투항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연성문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는 잠봉단을 보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전서구는 아니라고 우기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일어난 일은 그가 간세였다는 빼도 박도 못할 완벽한 증거가 되고 말았다.

“그래, 어쩌면 대공께서 담 가주님을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말을 마친 연성문은 갑자기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천령개를 세게 쳤다.

무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급소 중 하나가 바로 천령개로, 그곳이 파괴되면 신이 와도 살릴 수 없다는 곳이었다.

‘자결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연성문의 자결에 악불군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연성문 같이 오랫동안 무림 생활을 한 노회한 고수가 자결을 택했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두려운 뭔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악 무사님께서 연 호법님을 이겼어요!”

안에서 추국이 뛰어나오며 환호성을 외쳤다. 아마 직접 보지 않았다면 누구도 믿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 일은 본가의 치부이다. 가주님께서 처리하시고 결론을 낼 때까지, 사화나 잠봉단은 오늘 일은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마라. 알았지!”

악불군의 말에 갑자기 모두 기합이 들어 크게 소리쳤다.

“네!”

* * *

연성문의 죽음은 곧 담무룡에게 전해졌다. 사안의 중대성을 생각해 악불군이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직접 알린 것이다.

악불군이 다시 돌아간 후 담무룡은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이십 년 전부터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여 수하라기보다는 의형제에 가까웠던 연성문의 배신.

그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가등우!”

“예!”

담무룡의 부름에 가등우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연성문에게 요즘 무슨 일이 있었느냐?”

가등우는 담무룡의 질문에 당황하며 급히 답했다.

“그게, 며칠 전에…….”

가등우의 보고를 듣던 담무룡의 얼굴에 노기가 나타났다.

“전서구를 보내는 것을 잡았는데 왜 내게 알리지 않았느냐?”

“고 호법님께서 호법을 증거도 없이 간세로 몰 수는 없다며, 우선 연금을 시킨 후 좀 더 조사해서 확실한 증거를 찾으면 그때 가주님께 보고하자고 했습니다.”

“고숭무가?”

“예!”

“고숭무가 막아서 내게 보고를 안 했다는 것이냐?”

“그건 군사님의 의견이셨습니다.”

“문창현이 내게 보고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냐?”

“지금 가주님의 심기가 극히 불편한데 아직 결론도 못 낸 문제로 더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며칠간 폐관을 하겠다고도 말씀하셨고요.”

가등우는 불안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아뢨다.

‘이것들 봐라.’

담무룡은 지금 자신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떤 이유이건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들에게 벌을 주는 것은 세가의 분열을 더 재촉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 연성문은 어디에 연금을 시켰었느냐?”

“삼호 뇌옥에 가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삼호 뇌옥에 있어야 할 놈이 왜 수련이의 처소에서 자살을 한 거냐?”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가등우는 정말 금시초문이라는 듯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자금 연성문의 시체가 수련이 처소의 정원에 있다. 네가 직접 수거해서 시체 안치소에 안치해라. 단 누구도 그 시신을 보게 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시신을 안치한 후, 모든 간부를 회의청으로 모이게 해라.”

“예!”

‘이제 수련이에게 마수를 직접 뻗치겠다는 말인데…… 내 약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군.’

가등우가 나가자 담무룡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섰다.

“악불군이 연성문을 죽일 정도라면 이제 안심할 만하다고 할 수 있겠어. 아직 연락이 없어 불안하기는 하지만, 이만 내보내야겠어.”

* * *

회의청에 모인 간부들은 모두 서로를 쳐다보았다.

“문 군사, 가주님께서 무슨 일로 갑자기 간부 회의를 소집했는지 아시나?”

호법인 방조위가 물었다.

“저도 가 대장의 부름에 곧장 왔습니다. 아직 가주님을 뵙지 못해서, 무슨 일로 소집을 하신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문창현까지 모른다고 하자 모두의 표정은 불안해졌다.

그들이 모르는 심각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주님 오십니다!”

문이 열리며 가등우의 외침이 들리자 모두는 서열에 따라 양 줄로 시립했다.

위풍당당하게 그 사이를 걷는 담무룡을 보는 모두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담무룡의 표정이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 군사.”

담무룡은 자리에 앉자마자 문창현을 불렀다.

“예!”

“연성문이 전서구를 날리다 잡혔다는 보고를 받았느냐?”

직설적으로 묻는 담무룡이었지만, 문창현은 이런 상황도 예상했던 듯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답을 했다.

“가 대장이 잠룡대와 세가 경계를 하던 중, 연 호법께서 전서구를 날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연행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게 보고를 안 했지?”

“연 호법께서 절대 전서구가 아니었다고 항변하셨습니다. 더구나 연 호법께서는 본가에서의 서열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있는 분이십니다. 확실한 증거를 잡은 후에 가주님께 보고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삼 일씩이나 보고를 안 했나?”

“그게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

“뭐냐?”

“제가 수상한 정황을 발견하고 연 호법께서 갇혀 있는 뇌옥을 찾아갔는데, 어떻게 된 건지 사라지셨습니다. 그래서 은밀히 조사 중이었습니다.”

“뇌옥에 갇혀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그래서 은밀히 조사 중이었다? 그게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것이냐?”

“지금 본가의 식솔들의 동요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연 호법 같은 고위 간부가 간세로 의심받아 뇌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돌면 동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왜 연성문이 담수련의 처소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냐?”

순간 청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연성문은 서열만 다섯 손가락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공 수위도 잠룡세가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있는 초절정 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처음으로 문창현이 더듬거렸다. 그에게도 충격적이었던 것 같았다.

“말 그대로다 연성문이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천령개를 쳐서 자살을 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한 시진 전이다.”

“연 호법이 왜 아가씨의 처소에?”

“그것을 내게 묻는 것이 정상이냐?”

“죄송합니다.”

“반각 시간을 줄 테니, 왜 연성문이 수련이 처소에 들어가려고 했는지 생각해라.”

반각.

그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짐작해 내기에는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문창현은 얼굴을 굳혔지만 곧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 호법.”

“예!”

“연성문을 극구 비호했다고 하던데, 이유가 뭐지?”

담무룡의 화살이 이번에는 고숭무에게 향했다.

“비, 비호한 것이 아닙니다.”

고숭무는 당황한 듯 급히 부정했다.

“가 대장이 전서구를 날린 것을 보았다면 의심부터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니더냐?”

“연 호법과 저는 이십 년을 넘게 가주님을 보필하면서 수많은 사선(死線)을 같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의심부터 할 수 있겠습니까?”

고숭무의 말에 담무룡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가 처음 태산을 내려와 대공을 만난 것은 행운일 수도 있었고 악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덕에 그는 쉽게 무림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대공이 자신이 키우던 세력 중 하나를 그에게 맡기었고, 그가 독립을 하면서 그들을 모두 데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비록 대공이 키운 자들이었지만 이십 년이 넘게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담무룡 역시 그들을 형제처럼 대했다.

하지만 그는 외부에 비밀 세력을 만들면서 그들에게 완벽하게 비밀로 했다. 그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대공이란 존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고숭무의 말대로 수십 년을 동고동락한 그들을 의심만으로 죽일 수는 없었다.

갈등하던 담무룡은 문창현을 보며 물었다.

“문창현.”

“예!”

“반각 지났다. 연성문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연 호법이 간세가 아니라면 세가 밖으로 도망을 치거나 가주님 처소로 가서 결백을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간세라면 아가씨를 납치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뇌옥이 있던 놈이 갑자기 빠져나와 수련이를 납치하려고 했다면, 왜 그랬을까?”

문창현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담무룡의 기세를 보아,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라 할지라도 죽일 태세였다.

“누군가 뇌옥으로 그를 찾아가,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누군가 뇌옥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자가 연성문을 찾아가 담수련을 납치하라고 했다. 아마 수련이를 납치해 나를 협박하려고 했겠지.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이 자리에 있다.”

순간, 회의청 안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긴장감이 청 안을 싸늘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담무룡은 쌍월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 끝을 문 옆에 놓인 쇠로 만든 조각상으로 향했다.

그러자 간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 끝에서 붉은 기가 뻗어 나가더니 조각상을 그대로 반으로 잘라 버린 것이다.

그것은 내공이 삼 갑자는 되어야 뿜을 수 있다는 검강(劍剛)이 분명했다.

“무공을 대성하신 것을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그것을 본 간부들은 그 앞에 모두 부복을 하며 외쳤다.

담무룡의 무공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믿고 따른다면 우리 잠룡세가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간세. 난 그들이 배신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공과 나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중이겠지. 다시 말하지만 대공이 나를 건드린 것은 큰 실착임을 알게 될 것이다.”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담무룡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소리쳤다.

“문창현!”

“예!”

“금령군주가 항주에 들어왔다고 했지?”

“예.”

“대공이 일 년의 시간을 채우기에는 사정이 안 좋은 모양이다. 수련이의 납치가 실패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도발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내일부터 전시체제를 한 단계 상향한다.”

“상향입니까?”

문창현이 놀란 듯 반문했다.

지금까지의 전시체제가 방어 위주였다면, 이제 공격으로 바꾼다는 의미였다.

“그렇다 상향이다.”

“알겠습니다.”

“국대광!”

“예!”

“뇌옥은 내당에서 운용한다. 연성문이 뇌옥에 사라진 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 파악하고, 연성문이 뇌옥이 있는 동안 만났던 자들의 명단을 당장 가지고 와라.”

“알겠습니다.”

“노면사!”

“예!”

“축시부터 묘시까지 자신의 처소를 떠난 적이 있는 자는 모두 이름을 알아내 제출해라.”

“예!”

담무룡은 간부들에게 하나하나 세세히 직접 지시를 내리더니 소리쳤다.

“뭐 하느냐! 당장 나가서 준비해라.”

“존명!”

모두가 나가고 문창현만이 남자 담무룡이 물었다.

“문 군사는 안 나가나?”

“주군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라.”

“연 호법에 관한 건은 제가 이유가 있어 가주님께 말씀을 못 드린 것입니다.”

“이미 얘기했지 않느냐?”

“그런데 연 호법이 아가씨를 납치하러 갔다면 왜 납치를 하지 않고 자결을 했을까요? 연 호법은 절대 자결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진짜 자결이라면, 누군가 그가 자결을 할 정도로 압박을 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한 거냐?”

“세가 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제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신 분은 주군이셨습니다. 전 그자가 주군과 우리 가신들 사이를 이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문창현, 내가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내가 세가 일을 대충 보는 것 같더냐? 내게는 세가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내 친위 세력이 있다.”

담무룡의 말에 문창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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