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5화 (45/472)

<천검지애 45화>

45화. 공격

“가주님! 지금 공격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새벽.

갑자기 간부들을 소집한 담무룡은 세 명을 한 조로 편대를 나누더니 세 장소를 지정하여 공격하라고 명했다.

나름 자신만의 대비책을 만들었고 이미 담무룡에게 허락까지 받았던 문창현으로서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다. 각 조는 곧장 달려간다. 만약 누구든 허튼 짓을 하는 자가 있다면 즉결 처분해도 된다.”

담무룡이 세 명의 간부를 한 조로 삼은 것은 간세가 대공에게 기습공격에 대한 정보를 누설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가주님, 지금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우리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금 원 황실은 반란으로 인하여 사분오열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공과 굳이 싸우지 않고 화해할 수도 있습니다.”

담무룡은 문창현의 말에 답 없이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뭐 하는 거냐? 그놈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줄 생각이냐? 당장 출발해라.”

“예!”

그의 명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나가자, 문창현이 담무룡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다시 말했다.

“주군! 저를 안 믿으십니까?”

“어제도 그렇게 물었지. 그래서 난 믿는다고 대답한 것으로 아는데?”

“제게 대비책을 준비하라고 하셨으면서 갑자기 모든 계획을 바꾸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를 의심하셔서 제게 의논도 없이 공격 계획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까?”

“그래, 네 말대로 갑자기가 맞긴 하지……”

잠시 생각하던 담무룡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난 너까지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세가 내에 급박한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보고를 네가 아닌 다른 수하에게 받아야 했는지 알 수가 없구나.”

말을 마친 담무룡의 몸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허허허! 나 스스로 간세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라는 말씀이군.”

문창현은 담무룡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그만을 남겨 두었다는 것은, 대공 쪽에 연락해서 대비하도록 하든 말든 그에게 결정을 넘긴다는 의미였다.

* * *

외부로 통하는 비밀 통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잠룡세가 내에 있는 우물 안에 있었다.

심지어 우물 중간에 자연적으로 뚫린 동굴이기에, 직접 보기 전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내려간 매향이 판자를 앞으로 내밀자 다음부터는 쉬웠다. 먼저 엄선되어 선정된 열다섯 명의 잠봉단원이 먼저 내려갔다. 그리고 악불군이 내려갔고, 곧이어 담수련이 따라 내렸다.

사화 중 셋은 가장 마지막에 내려왔다.

“이곳에 이렇게 큰 동굴이 있을 줄은 몰랐네?”

악불군의 옆에 딱 붙은 담수련은 똑바로 서도 될 정도로 큰 동굴의 규모에 놀란 듯 말했다.

“매향과 추국이 단원 열 명과 함께 앞길을 선도해라. 연화와 흑란은 나머지 단원과 우리 뒤를 맡는다.”

담무룡의 명에 사화와 잠봉단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미 그들 간에 훈련이 있었던 듯했다.

화롯불을 든 잠봉단원 셋이 매향과 함께 출발하자, 담수련은 동굴의 입구를 다시 보며 말했다.

“소군, 아버님은 정말 무사하시겠지?”

“우리가 탈출을 잘하면 가주님께서는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악불군의 대답은 담무룡의 안전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담수련도 더 이상 답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 * *

잠룡세가의 반격 소식은 생각보다 빨리 금잔화에게 전해졌다.

“잠룡세가에서 이 새벽에 공격을 했다고?”

금잔화는 이미 짐작을 한 터인지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담무룡이 공격하도록 도발을 했다는 것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의구심이 있었다.

“혈랑사자님께서 위험하실 것 같은데, 어찌할까요?”

“그가 혈랑사자의 자리까지 놀면서 올라간 줄 아느냐? 담무룡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면 그를 죽일 자는 없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왜 하필 지금인지가 중요하지.”

“새벽녘에 경계가 가장 느슨해지니까 지금 시간을 택한 것이 아닐까요?”

“아니야. 외진 곳의 기습이라면 일리가 있지만, 항주 같은 대도시에서 상인들이 일어나 장사를 준비하는 새벽은 가장 안 좋아.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런데 그게 뭘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금잔화가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적이다!”

갑작스런 외침에 보고하던 자가 밖을 살피더니 급히 말했다.

“군주님, 잠룡세가에서 여기까지 기습한 것 같습니다! 우선 피하시지요.”

“담무룡이 우리와 화해는 애시당초 틀렸다고 판단을 한 모양이네. 여기까지 공격을 하다니 말이야.”

금잔화는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보고하던 자에게 물었다.

“금령사자.”

“예.”

“지금 항주에 뻗어 있는 천연 동굴들 감시하고 있지?”

“예, 현재 발견된 출구 세 곳을 혈랑무와 금령무에서 감시하고 있습니다.”

“세 곳? 더 있지는 않더냐?”

“항주에서 오래 산 노인들을 모두 조사해서 찾아낸 것입니다. 다른 출구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담무룡의 공격이야 어느 정도 예견을 했지만, 그냥 위협 정도로 끝낼 줄 알았는데 이 정도 대규모 공격이라면 뭔가 이득이 되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 세가에 있는 우리 인원들에게서 연락은 없었지?”

“예, 연성문이 죽었다는 연락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담무룡이 자기 수하들까지 믿지 않고 있다는 얘기인데……?”

“군주님, 우선 피하신 후에 생각하십시오.”

“그래, 내가 저런 놈들하고 싸운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가자.”

금잔화는 금령사자의 호위를 받으며 몸을 날렸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수하들의 안위는 전혀 관심거리가 아닌 듯했다.

* * *

[잠깐, 멈춰!]

미로와 같은 동굴을 한 시진 넘게 걷던 악불군은 갑자기 모두를 멈추게 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던 악불군은 모두에게 전음을 보냈다.

[입구가 가깝다. 내가 선두에 설 것이니, 매향과 추국은 이쪽으로 와서 아가씨를 호위해라.]

[예!]

자리를 바꾼 악불군은 천륭검을 꺼내 손에 들었다.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느냐?”

“아직 직접 죽인 적은 없습니다.”

“강호에 나가면 자비는 자신의 명을 줄인다. 적을 만나면 추호의 용서도 없이 목을 따라. 적의 목숨을 걱정하면서 싸우면 제 실력의 반도 발휘할 수가 없다.”

악불군은 떠나기 전 담무룡이 자신에게 해 준 말을 떠올렸다.

살인.

무공을 배우면서 그는 아주 즐겁게 수련했다. 강해져야 하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도 그에게는 장애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그를 가장 갈등하게 만든 부분이었다.

입구에 도착한 악불군은 자신의 뒤를 긴장한 표정으로 따르는 모두를 슬쩍 보더니 마음을 굳게 했다.

자신의 손에 이십 명의 목숨이 달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거기에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담수련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갈등은 사치야.’

악불군은 검을 꾹 잡고는 밖을 살폈다. 그들이 나온 곳은 오래된 관묘 뒤에 있는 절벽의 동굴이었다.

‘다행히 이곳까지는 아직 발견을 못한 모양이군.’

이제 해가 뜨기 시작한 새벽의 산은 안개가 자욱했다.

악불군은 수상한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자 안심한 듯 손을 입에 댔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새 울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신호를 보낸 후 사방을 살피던 악불군의 눈에, 안개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두 번 켜졌다 꺼지는 장면이 포착됐다.

[접선이 성공했다. 모두는 내 뒤를 따라라.]

말을 마친 악불군이 불빛이 보였던 곳으로 몸을 날리자, 담수련을 부축한 매향과 추국이 가장 먼저 뒤따르고, 나머지도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악 무사님, 여기서 기습을 당하면 피하기 너무 어렵겠는데요?]

매향은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늪지대가 영 마음에 안 드는 듯 말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들은 담수련에게 늪지의 지저분한 물이 닿지 않도록 그녀를 높이 들고서 움직이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견뎌라.]

악불군은 접선자들이 가까이 있는 것을 감지하고는 모두를 다독거렸다. 잠시 후 그의 말대로, 기녀들이 밤놀이할 때 타는 유람선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잠룡.]

[잠밀.]

악불군이 약속된 비어(祕語)를 전하자 그쪽에서도 곧 답을 보냈다.

[모두 배 위로 올라간다.]

배 위에 도착한 악불군의 눈이 살짝 커졌다. 기녀로 보이는 여인 다섯이 담수련을 보자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천화궁 소속 오녀, 아가씨를 뵙습니다.]

[천화궁이 어떻게?]

[천화궁은 가주님이 만드신 비밀 세력입니다. 저희가 이제 아가씨를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따로 노를 젓는 사람이 있는 듯, 배는 스르르 움직이며 소호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소군, 우린 다시 항주에 올 수 있을까?”

선미에 선 담수련은 멀리 보이는 항주의 곳곳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불안한 듯 물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지금 대단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잠시 피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반드시 아가씨께서 항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꼭 다시 와서 아버님을 뵙도록 해 줘야 해.”

담수련은 자신의 머리를 악불군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

그리고…… 악불군은 처음으로 느끼는 급격한 두근거림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 * *

“이 바보 같은 놈들! 도대체 잠룡세가에서 여기까지 알아내는 동안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자신의 거처를 떠나 마지막 거처에 도착한 금잔화는 지금까지 보인 느긋함과 달리 대단히 노해 있었다.

그녀는 항주를 봉쇄하면서 항주 시내에 한곳, 그리고 자신의 거처 한곳, 마지막으로 은밀한 안가까지 총 세 곳을 자신의 거점으로 삼아 왔다.

그런데 담무룡이 이미 안가의 존재까지 알고 벌써 공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담무룡은 만만히 볼 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만 그자를 감시한 것이 아니라, 그자 역시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멀리서 싸움의 양상을 보던 금잔화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안가에서 불길이 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령사자!”

“예!”

“안가에 불길이 오르면 후방에서 지키던 수하들이 이곳으로 달려오도록 되어 있지?”

“예, 평상시에는 후방 감시를 하지만, 만약 군주님께 위험이 생길 경우를 생각해 안가에 이상 조짐이 보이면 모두 이곳으로 달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감시하는 곳이 어디지?”

“종리화와 담수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후, 항주 외곽으로 빠지는 길목을 광범위하게 감시하도록 했습니다.”

“담무룡! 이 여우 같은 놈!”

“군주님 무슨?”

“아까부터 왜 담무룡이 기습을 이런 식으로 감행했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담수련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담수련을 피신시킬 생각이었다면 종리화나 담수운이 사라질 때 같이 보내지, 왜 굳이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썼을까요?”

“담수련이 천륭검보와 천륭검을 가지고 피한 거다.”

“예? 담수련은 무공이 약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담수련에게?”

금령사자는 금잔화의 놀라운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추측은 너무 억지 같았다.

“담수운과 종리화를 내보내면서 우리가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시험해 보았겠지. 그리고 그 둘이 안전하게 피한 것을 보자 이제 담수련을 내보낸 것이다. 지금 담수련은 종리화나 담수운 둘 중의 한 명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당장 추적을 시작할까요?”

“동굴의 출구를 지키는 수하들에게서 어떤 신호도 없었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가 모르는 출구로 나왔다는 의미일 것이야. 도망간 방향을 모르는데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추적을 한단 말이냐?”

“그럼 어쩌지요?”

“날이 밝을 때쯤이면 잠룡세가는 철수할 것이다. 그때 혈랑무에게 추적을 시킨다.”

조금 전, 방향도 모르는데 어떻게 추적하냐고 했던 그녀의 말과는 실로 모순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망친 방향을 모…….”

“내일이면 알게 된다.”

금잔화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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