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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47화 (47/472)

<천검지애 47화>

47화. 추격(2)

비밀 통로에서 나와 유람선에 타고 천목산 기슭에서 내릴 때까지, 자신들을 감시하거나 추적하는 자가 없었던 것은 확실했다.

애초에 그때 추격자가 있었다면 이미 공격을 받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차가 있는 곳을 찾아가면서도 악불군은 전력을 다해 집중하며 주위를 살폈다. 역시 그때도 어떤 추적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만약 천화오녀가 배신을 했다면……

가능했다.

그러나 배신한 그녀들이, 굳이 새로 제작한 마차와 백설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정황이 맞지 않았다.

물론 적들에게 능력이 아주 탁월한 추적자가 있다면 가능은 했다.

하지만 호수와 산길로만 움직인 그들을 이렇게 빨리 찾아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잠봉단 중에 간세가 있어 그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뭔가 표식을 했다는 가능성이었다.

악불군은 아군인 잠봉단을 의심하는 것이 좀 껄끄러웠는지, 뒤를 자연스럽게 쳐다보며 자신을 따르는 잠봉단원들을 슬쩍 살폈다.

담무룡 방식으로 한다면 이들을 전부 고문을 해서라도 범인을 찾아야 했지만, 악불군은 간세 한 명을 잡기 위해 죄 없는 사람까지 다그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래 우선 매복하고 있는 자들부터 처리하고 다음 일을 생각하자.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어.’

악불군은 잠봉단원에 대한 의심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 * *

[오고 있습니다.]

인지강의 전음에 야목귀는 모두에게 말했다.

[마차가 포위망에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라.]

혈랑무는 살인에 최적화된 대공의 사대 친위 세력 중 한 곳으로, 개개인의 무공이 모두 초일류급인 막강한 조직이었다.

특히 그들의 매복은 특출했다.

당연히 강호 경험이 일천한 악불군이 그들의 기를 감지하는 것이 쉬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악불군의 감지 능력은 놀랍게 진화하고 있었다.

혈랑무의 기를 이번에 완벽하게 기억함으로써, 다음부터는 언제 어디서든지 그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격 준비를 하던 야목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포위망 안으로 거의 들어서던 악불군이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저놈이 뭔가를 느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가 느끼는 악불군의 무공 수위로는 절대로 자신들의 매복을 눈치챌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의 최순위는 마차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금잔화는 마차에 담수련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화는 나와서 마차 주위를 경계해라.]

혈랑무가 매복한 지역과 십 장 가까이 되자, 악불군은 행진을 멈추고 사화를 불러냈다.

긴가민가하던 혈랑무의 기를 확실하게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검을 빼낸 악불군은 앞쪽을 향해 소리쳤다.

“녹림의 산적도 아니고, 무림의 고수분들께서 숨어서 기습을 노리는 것은 좀 창피한 행동이 아닐까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대주님, 저것들이 방어진을 쳤는데요? 매복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화와 잠봉단이 마차를 둘러싸며 방어진을 구축하자, 야목귀도 결정을 한 듯 모습을 드러냈다.

“건방진 놈, 겨우 그 실력으로 세상이 다 네 것 같은 모양이구나! 그 용기가 기특해서 그냥 죽이지는 않겠다. 인지강!”

“예!”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인지강의 목소리는 신기하게 사방에서 들려왔다.

“저놈은 사지를 잘라 불에 구워 죽일 것이니, 목을 자르지는 마라.”

“알겠습니다.”

이런 대화는 상대에게 공포감을 주어 자신의 실력발휘를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큰 실수였다.

살인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지니고 있던 악불군에게 명분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악불군의 말에 야목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불에 태워 죽여주겠다는데 감사? 너 같이 미련한 놈을 담수련의 호위 무사로 보냈다니, 담무룡도 이제 노망이 들었구나.”

“제가 감사하다고 한 것은 당신을 죽이는 데 마음의 부담감을 갖지 않게 해 주어서 그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뭐 하냐! 저놈 당장 사지를 잘라 버려라.”

악불군의 말에 야목귀가 대노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아무도 보이지 않던 사방에서 네 명의 혈랑무가 튀어나와 악불군을 공격해 들어갔다.

악불군이 피한다면 백설이 그냥 죽을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초일류급 무인 네 명의 공격을 서 있던 말을 탄 채로 피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둘 다 죽거나 백설이만 죽거나 할 상황.

보고 있던 사화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네 명의 혈랑무의 공격은 악불군의 양팔과 다리를 향하고 있었다.

순간 악불군의 몸이 백설의 안장에서 팔 길이만큼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몸이 뱅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언제 싸웠냐는 듯 원래대로 안장에 앉은 악불군을 보며 야목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명이나 되는 혈랑무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다 죽은 것이다. 그것은 그도 따라할 수 없는 고절한 수법이었다.

“이, 이, 이게 어떻게……?”

야목귀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순간, 악불군도 자신이 만든 상황에 대해 깜짝 놀라고 있었다.

담무룡과 비무를 할 땐 항상 전력을 다해야만 겨우 상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똑같이 강하게 반격을 한 것인데, 상대가 너무 달랐다.

무림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 있는 담무룡과 혈랑무의 무공 차이는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악불군은 자신이 생겼는지 품에서 단검 십여 자루를 꺼내더니 사방으로 흩뿌렸다.

확신은 못하지만 느낌이 가는 대로 공격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의 감지 능력은 정말 정확했고, 그의 공격은 혈랑무들이 피하기에는 너무 강력했다.

정확히 단검 하나에 한 명씩 비명을 지르며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다.

‘담무룡의 수하 중에 저런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대경실색한 야목귀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수하들에게 도망치라고 전음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백설의 속도는 실로 빨랐다.

악불군이 발로 배를 차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백설이 야목귀를 향해 급속도로 달린 것이다.

툭!

땅바닥에 떨어진 야목귀는 잠시 어리둥절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어찌나 빠르게 목이 잘렸는지 자각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목이 잘렸다는 것을 알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야목귀를 단숨에 제거한 악불군은 다시 백설을 몰고는 사방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시신이 떨어져 내렸다.

“도망쳐라!”

야목귀가 죽고 다시 수하들이 반격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 나가자, 부대주인 인지강은 그제야 급히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너무 놀라운 상황 전개에 자신이 지휘자가 된 것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악불군은 그들을 살려 보낼 수 없었다.

백설의 등을 손바닥으로 탁 친 악불군은 그 반동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한 나무로 날아가더니 검을 휘두르고는 다시 그 나무를 발로 차며 또 다른 나무로 날아갔다.

인지강까지 모두를 제거한 악불군이 돌아오자 사화와 잠봉단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명은 길었지만 악불군이 서른이 넘는 혈랑무들을 모조리 죽이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삼각 남짓이었다.

이것은 사화가 아는 악불군의 무공이 아니었다.

‘연 호법님을 죽인 것이 우연이 아니었어…….’

사화의 머릿속에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가씨 경호에 집중하랬더니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 거야! 또 다른 적이 뒤에서 기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라?”

악불군은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자 엄한 표정으로 질책을 했다.

그러자 모두는 그제야 정신 차린 듯 사방으로 무기를 겨누며 경계에 들어갔다.

“지금은 됐어. 잠봉단은 시신들을 다 수거해 와. 모두 서른두 구다.”

“예!”

잠봉단이 악불군이 날아갔던 곳을 향해 뛰어가자, 악불군은 그들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주시했다.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모든 상황이 그녀들 중에 첩자가 있다고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군!”

그때 창이 열리며 담수련이 악불군을 불렀다.

“예, 아가씨!”

“다친 데 없지?”

“예, 없습니다.”

“다치면 안 돼.”

간단하게 말한 담수련은 다시 창문을 닫았다.

그녀 역시 창문을 살짝 열고는 악불군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나가서 한 번 안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창문을 열고 악불군의 얼굴을 보자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져서 빨리 문을 닫고 만 것이다.

그런 담수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악불군은 사화를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서로 돌아가면서 마차 안에는 한 명만 들어가고 마부석에 둘이 앉아. 그리고 한 명은 마차 뒤에 앉아.”

“예? 왜요?”

마차 뒤에 짐을 싣는 공간이 있어 두 명 정도는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호를 위해서라면 말을 타고 따르는 것이 더 나았다.

그러자 악불군은 자신의 생각을 사화에게 전음으로 알렸다.

그녀들을 그렇게 배치하는 이유는, 마차의 주위를 따르는 잠봉단 중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차 뒤에 앉으면 뒤를 따라오는 단원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가기 때문에 표식을 남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악불군의 전음을 들은 사화는 설마 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애초에 악불군이 확신도 없이 동료를 의심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화가 수긍하자 악불군은 산길 한쪽에 큰 구덩이를 팠다.

“어차피 그들이 곧 발견할 텐데, 굳이 묻을 필요가 있을까요?”

추국이 물었다.

“시신을 발견하면 그들은 제대로 추적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최대한 빠르게 달릴 거야. 하지만 시신을 발견 못 하면 긴가민가해서 주위를 살피며 추적을 하겠지. 우리가 절강성을 빠져나갈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려면 시신을 못 찾아야 해.”

큰 구멍을 판 악불군은 잠봉단이 끌고 온 시신들은 모두 구덩이에 묻고는 그 위를 아주 자연스럽게 낙엽으로 덮었다.

“자, 시간을 허비했으니 좀 더 빨리 움직인다.”

원래부터 악불군을 어려워하던 그들이었지만, 이젠 완전히 기합이 들었는지 악불군의 말 한마디에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악불군의 거대한 행보를 알리는 첫 강호행에서 생긴 사건은 너무도 조용하게 묻혔다.

* * *

“항아루?”

“예, 야목귀가 추격 중 항아루 소유의 유람선이 담수련과 호위들을 태워 간 것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금령사자의 보고에 금잔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 유람선은 어떻게 됐느냐?”

“야목귀가 안에 탄 계집들을 고문하려 했으나, 호수로 뛰어드는 바람에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

“미련한 놈!”

금잔화는 고개를 저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야목귀가 무슨 실수라도?”

“안에 탄 계집들이 모두 죽었다면 그 유람선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 아니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럼 항아루에서는 들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나 죽여주세요 하고 목 빼고 우리를 기다릴까, 아니면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질까? 거기다 지금 우리는 잠룡세가의 공격으로 항주성 내의 교두보를 모조리 잃은 상태가 아니냐?”

“군주님의 말씀을 들으니 야목귀가 정말 미련한 짓을 했군요.”

“담수련을 호위하는 자들이 누구누구인지는 알았느냐?”

“비밀 통로를 빠져 나온 것이 담수련이 확실한지도 아직 의문인 상황에서, 그 호위 따위를 어찌 알아내겠습니까?”

“안에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느냐?”

“담무룡이 무위를 간부들에게 보이면서 잠룡세가를 다시 완벽하게 장악한 모양입니다. 지금은 몸을 사리고 있는 듯싶습니다.”

“하긴, 생각 외로 너무 많이 당했어. 담무룡의 무공이 그렇게 강한 것을 어찌 대공 전하께서 모르고 계셨지?”

금잔화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 대공조차 모를 정도로 담무룡이 자신의 실력을 그렇게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다면 그녀의 계획은 대폭 수정해야 했다.

담무룡이 그녀의 예상보다 두 배는 더 뛰어난 자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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