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8화 (48/472)

<천검지애 48화>

48화. 반격(1)

분명 잠룡세가의 반격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금잔화였다.

하지만 결과가 예상과 많이 다르게 나타나자, 언제나 느긋하던 그녀의 얼굴에는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때 한 무사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금령사자에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

“군주님, 대공 전하께서 전서를 보내오셨습니다.”

금령사자는 전서를 두 손으로 조심히 받들며 금잔화에게 바쳤다.

쪽지를 읽은 금잔화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공격 명령이 내려왔습니까?”

금령사자의 질문에 금잔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약속 시간이 한 달이 남았으니 기다리라고 하셨네.”

“약속을 어긴 것은 담무룡이 아니겠습니까? 저희의 피해가 만만치 않은데, 이대로 참는다면 담무룡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이만 나가 봐라.”

갑작스런 축객령에 금령사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허리를 숙이고는 나갔다.

금령사자가 나가자 금잔화는 아직 읽지 않은 나머지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분노한 듯 쪽지를 꽉 쥐었다.

“토쿠다 대장군을 죽이다니, 미친 것들 아니야?”

반군들을 토벌하던 원나라 최대 군벌인 토쿠다가 황제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은 대공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덕분에 지금 상황은 최악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 잠룡세가를 없앤다면 대공이 받을 피해도 피해지만, 절강까지 반군들에게 넘어갈 수 있었다.

현재 반군들이 절강까지 세력을 넓히지 못하는 이유가 잠룡세가를 두려워해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잠룡세가와 원나라가 척을 졌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반란군들에게는 말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 될 것이었다.

‘대공께서 직접 오시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 파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전쟁보다는 잠룡세가 내에서 반란이 일어나 담무룡이 제거되는 방식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그들이 금잔화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결국 대공이 직접 와야 하는데, 토쿠다 장군이 죽는 바람에 대공이 절강으로 몸을 빼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담수련을 사로잡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데…….”

당장 잠룡세가를 제압할 수 없다면, 담무룡을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인질인 담수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 * *

천목산은 그 규모는 상당히 컸지만 산세는 완만해 절강과 안휘를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산 중간에 녹림의 산적이 있고 길이 협소해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보니 계속 마차가 지나다닐 수 없는 길을 만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악불군이 길이 막힐 때마다 마차를 들고 장애물을 넘은 것이다.

[매향아, 육관을 통과하면 원래 저렇게 강해지냐?]

연화는 앞서 가는 악불군을 경탄의 눈으로 보며 전음을 보냈다.

[내당 곽 영주가 육관을 통과한 무사인데, 절대 저렇게 강하지 않았어. 뭔가 달라. 저 무거운 마차를 들고 신법을 펼치려면 도대체 내공이 얼마나 된다는 거야?]

[단주님께서 악 무사님만 믿으면 된다고 우리에게 당부한 이유가 있었어.]

[그것보다, 악 무사님은 잠봉단원 중에 첩자가 있다고 의심하시는 것 같던데…… 네 생각은 어때?]

[악 무사님이 이유 없이 그런 의심을 할 리는 없어. 하지만 지금 우리를 따르는 잠봉단은 어려서부터 우리와 함께 무공을 익혔는데, 언제 적들에게 넘어갔을까?]

매향은 잠봉단에 첩자가 있다는 말을 믿기 힘든 것 같았다.

그때, 악불군의 말이 멈췄다.

“무슨 일이 있나요?”

흑란이 급히 옆으로 달려와 물었다.

“안휘야.”

악불군은 정면을 응시한 채 말했다.

흑란은 멀리 보이는 안휘성벽을 보자 안도한 듯 말했다.

“드디어 절강을 벗어나네요! 이제 좀 안심해도 될까요?”

“내가 보기에 안휘도 안전한 곳은 아닌 것 같다.”

멀리 보이는 안휘의 관도는 수많은 피난민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지금 저들은 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세가를 나오기 전에 가주님께서 천하 정세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지금 안휘의 북부는 계속된 전쟁으로 완전 피폐해졌다고 하시더구나. 아마 저들은 북쪽에서 내려온 자들일 게다.”

“마차가 지나다니기도 어렵겠어요.”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반 시진 정도 쉬겠다. 내가 아가씨를 직접 호위할 것이니 모두 편히 쉬게 해라.”

“알겠습니다.”

모두가 말에서 내려 쉬는 동안 악불군은 마차 옆에 섰다. 자신의 기감에 어떤 위험도 감지되지 않았지만, 자그마한 방심조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혈랑무와의 전투 후 잠시도 쉬지 않고 강행군을 했던 터라 모두는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러다 악불군이 호위한다는 말에 안심했는지, 다들 편히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누굴까?’

악불군은 한 명, 한 명 자세히 주시했다. 하지만 얼굴만 보고 간세를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가씨.”

악불군은 결정한 듯 담수련을 불렀다.

“응.”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이 열리며 담수련의 얼굴이 나타났다. 악불군이 불러 주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저 믿으시죠?”

뜬금없는 말에 담수련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소군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어?”

“아무래도 우리의 행적을 적에게 알리는 간세가 우리 사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순간 담수련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눈을 크게 뜨니, 정말 깊고 맑은 호수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마 다른 사람이 사화나 잠봉단을 의심한다면 그녀는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힐책을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사람은 그녀가 가장 믿는 악불군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원래 계획은 안휘로 들어가면서 제가 마부가 되고, 추국은 아가씨와 함께 마차 안에 타고, 나머지 셋은 잠봉단원을 다섯씩 지휘하며 멀찍이서 마차를 경호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간세가 있다면, 그 방식으로는 우리의 동선이 적에게 그대로 알려질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많은 곳에 마차 하나를 이십 명 가까운 여인들이 호위해서 간다면, 추격자들에게 우리가 어디를 가고 있다고 광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간세가 누구인지는 알아냈어?”

“죄송합니다. 아직 그것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휴우~”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답이 없던 담수련이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마차 안이 답답했는데, 잠시 바깥 구경 좀 해야겠어.”

“예.”

담수련은 쉬는 잠봉단원들과 사화가 일어나려는 것은 손으로 제지하며 안휘의 전경이 보이는 낭떠러지 앞으로 갔다.

“소군, 여기 서니까 정말 시원하다.”

낭떠러지 특유의 강한 바람이 그녀를 스쳐 가자 담수련은 시원한 듯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소군은 오로지 내 안전밖에 관심이 없나 봐.”

“제 임무니까요.”

도식적인 악불군의 답에 담수련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피~ 맨날 임무래. 소군, 자연은 이렇게 인간에게 시원함을 주는데, 왜 인간은 인간에게 고뇌만 줄까?”

담수련은 멀리 보이는 수많은 피난민의 행렬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지요.”

담수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 갔다.

“그래, 욕심 때문이야. 소군.”

“예.”

“지금 나를 따라온 사화나 잠봉대원들은 나와 함께 무공도 같이 수련한 자매 같은 아이들이야. 물론 소군이 잘못 판단했다고는 생각 안 해. 난 누구보다도 소군을 믿으니까. 하지만 내가 좀 더 오래 살겠다고 저 아이들을 내칠 수는 없어.”

“아가씨, 전부 내치자는 말은 아닙니다.”

“저 애들 중에 간세가 있다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누구나 사정이 있겠지요. 하지만 그 사정이 아가씨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저번 추적자들과 싸우는 것을 보니까 소군, 정말 강해졌더라.”

“가주님 덕입니다.”

“어쨌든. 그 정도면 소군 나를 확실하게 보호해 줄 수 있지?”

“어떤 일이 있어도 아가씨는 제가 보호합니다.”

“그럼 추적자 상관 말고 우리 여행하듯 다니자.”

“예?”

“내 말이 너무 치기 어린 말인 거 알아. 그리고 내 결정으로 소군이나 사화 그리고 잠봉단까지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소군도 알겠지만 내가 가장 멀리 나가 본 곳은 처음 소군을 만났던 그 절이야. 어려서부터 납치 위협에 시달리다 보니, 세가 밖으로 나가 본 것이 정말 손으로 셀 정도야.”

“…….”

악불군은 뭐라 답을 할 수 없는지 고개만 숙였다.

“소군, 나 오음절맥인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처연한 담수련의 목소리에, 악불군은 괴로운 표정으로 간신히 답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만년설삼만 구하면 오음절맥을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반드시 만년설삼을 구해서 아가씨를 고쳐드릴 것입니다.”

“만년설삼은 책에나 나오는 전설의 영약이야. 실제로 존재한다면 아버지께서 못 구하셨을 리 없어.”

“아가씨, 왜 갑자기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약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말하는 거야.”

잠시 생각하던 악불군은 결정한 듯 말했다.

“제게 주군은 아가씨입니다. 가주님의 명으로 목적지가 정해지기는 했지만, 저에게는 아가씨가 원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아가씨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드리겠습니다.”

“대공이 우리를 추적하는 것이라고 들었어.”

“그렇다고 하더군요.”

“내가 알기로 대공은 원나라의 황실 사람이야. 그의 수하들은 모두 원나라를 따르는 자들이고.”

담수련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안휘 방향을 한 번 더 보더니 말을 이어 갔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란군 지역을 이용해서 움직인다면 그들도 추적하기 쉽지 않을 거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혹, 간세를 잡아내더라도 죽이지는 마.”

악불군은 담수련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인 것을 보자 고개를 숙였다.

같이 무공을 수련하고 자매처럼 생각했던 이들 중에 간세가 있을 수도 있단 말이 그녀에게 큰 슬픔을 준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군.”

“예.”

“전에 나를 지키는 것이 운명이라고 한 거 기억나?”

악불군은 당시 그 말을 하고 돌아와 무척 후회했었다. 그녀와 자신의 신분이 차이나는 점을 생각한다면 감히 해서는 안 될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

“왜? 거짓말이었어?”

담수련은 악불군이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왜 대답을 안 해?”

“어떤 대답을 원하십니까?”

“정직한 대답을 원해.”

“아가씨께서 정직한 답을 원하신다면 말씀드려야지요. 아가씨를 지키는 것이 제 운명이 아니라, 아가씨께서 바로 제 운명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듣는 말이었지만 담수련은 여전히 가슴이 벅차옴을 느꼈다.

자신을 운명으로 여기는 남자가 자신을 바로 옆에서 보호해 준다. 그것만으로도 분명, 행복했다.

“소군.”

“예.”

“소군은 나한테도 운명이야.”

담수련은 말을 하고는 급히 몸을 돌려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부끄러움이 몰려와, 악불군의 얼굴을 계속 보면서 대화를 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리고 이번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악불군이었다.

악불군은 그녀가 나오면 언제나 바짝 붙어 밀착 경호를 했는데 그것까지 잠시 잊은 듯 멍하니 그녀를 보다가는 ‘아차!’ 하며 급히 그녀의 뒤에 붙었다.

“흑란아. 아가씨하고 악 무사님, 좀 야리꾸리하지 않니?”

악불군과 담수련이 낭떠러지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연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야리꾸리라니! 악 무사님께서 아가씨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큰데 그런 소리를 해? 말조심해라.”

“야! 그럼 넌 저 모습이 호위 무사와 주군의 관계로 보이냐?”

연화의 반박에, 담수련의 뒤에 서서 그녀를 완벽하게 보호하며 마차로 향하는 악불군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매향이 말을 받았다.

“너무 친하시긴 한데, 그렇다고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 솔직히 난 악 무사님의 아가씨에 대한 마음이 오로지 충성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하겠어. 아가씨에 대해서 너무 애틋하시잖아?”

“가주님께서 얼마나 완벽하신 분이냐? 그런 분이 아가씨의 호위를 악 무사님께 완전 일임하셨어. 야리꾸리하건 너무 친하건, 우리는 그냥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돼. 두 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대화를 듣고 있던 가장 선임격인 추국이 모두의 입을 막아 버렸다.

“그건 맞긴 한데, 같은 여자로 너무 부럽지 않냐? 나를 저렇게 아끼고 보호해 주는 남자가 있으면 정말 세상이 다 내 것 같을 것 같아.”

“그래, 거기다 멋있긴 또 얼마나 멋있냐?”

담수련의 최측근 심복인 사화였지만, 모든 것을 떠나 부러운 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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