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49화 (49/472)

<천검지애 49화>

49화. 반격(2)

잠룡세가를 빠져나온 후 종리화가 말한 장소에 도착한 담수운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렸을 때 자신을 공자님, 공자님 하면서 예뻐해 주었던, 하지만 잠룡세가를 떠났거나 담무룡에게 죽었다고 알려졌던 많은 무인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소가주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잠룡세가의 비밀 조직인 잠룡밀을 책임지고 있던 양호철은, 담수운이 뭔가 생각에 잠겨 있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미 이곳에 온 지 열 달 가까이 됐건만 아무런 행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양 밀주. 잠룡밀의 모든 체계와 조직 상황은 어느 정도 숙지가 됐는데, 아버님께서는 잠룡밀로 무엇을 하려고 한 겁니까?”

“가주님께서는 소가주님께서 잠룡밀을 지휘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휘? 여전히 조직도나 재정 상황조차 모르는 내게 지휘권이라도 있긴 있는 거요?”

“소가주님만을 위해 만드신 조직입니다. 당연히 소가주님께서 이곳의 주인이시니 지휘권이 있으십니다.”

“알려 주지는 않으면서 지휘권이 있다? 그렇다 치고, 그럼 오룡세가로 불리며 천하를 오 분하고 있는 잠룡세가가 있는데 왜 굳이 전력을 분산하면서까지 잠룡밀을 만든 것이오?”

“그 질문을 언제 하시나 기다렸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소가주님께서 그 질문을 하시면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담수운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양호철을 쳐다보았다. 만약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알려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아닌가…….

“이유가 뭐요?”

“저도 모릅니다. 그냥 전해 드리라고만 하셨습니다.”

“말해 보시오.”

“이 방 안에 비밀 금고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 가주님께서 소가주님께 보내는 서찰이 있을 것입니다.”

“비밀 금고가 어디에 있다는 것이오?”

담수운은 이곳이 자신의 집무실이라는 말을 듣고 안을 샅샅이 살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비밀 금고 같은 것은 발견하지 못했었다.

“저도 모릅니다. 가주님께서는 소가주님께서 스스로 찾으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어디 있는지도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내가 스스로 찾으리라 했단 것이오?”

“가주님을 생각하시면 찾으실 수 있을 거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것을 못 찾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

양호철이 답을 하지 않자 담수운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중얼거렸다.

‘끝까지 저를 시험하시는군요. 좋습니다. 반드시 찾아드리지요.’

담무룡은 끝까지 자신을 믿지 않은 것이다.

* * *

꿀맛 같은 휴식이 끝나고 사화를 불러 모은 악불군은 자신의 계획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마차를 몬다. 근접전에 제일 강한 추국은 아가씨와 함께 마차에 탄다. 그리고 매향은 잠봉대원 다섯을 지휘하며 마차보다 반 마장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앞장서서 간다. 혹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장 연락해.”

“알겠습니다.”

“연화는 다섯 명을 이끌고 평민처럼 변복을 한 후 마차 주위를 따르되, 아가씨께서 위험해질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생기기 전에는 절대 나서면 안 된다.”

“예!”

“그리고 흑란은 뒤편으로 오십 장 정도 떨어져서 따라와라. 신호는 성호(聲號)를 주로 하고 직접 연락은 최대한 자제한다.”

“단원 아이들 중에 우리의 동선을 적에게 알려 주는 간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떻게 하시게요?”

매향이 조심히 물었다.

“아가씨께서 상관하지 말고 그냥 움직이자고 하신다.”

“적을 불러들이는 자를 곁에 두면 계속 귀찮은 자들이 꼬일 텐데, 괜찮을까요?”

“당장 누가 간세인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그것을 공론화하면 이번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최대한 그들의 추적을 뿌리쳐 보자.”

“여행이요?”

사화는 의아한 듯 반문했다.

종리화로부터 이번 강호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들어온 그녀들이었다. 그런데 여행이라니…….

“그래, 여행! 지금부터 가는 도중에 이름 있는 명승지(名勝地)가 있으면 전부 들를 생각이다.”

“악 무사님. 아가씨를 무사하게 단주님께 모셔가는 것이 저희들의 임무로 알고 있는데, 명승지를 들르는 건 너무 위험한 생각 같습니다.”

“이번 임무의 책임자는 나다. 따르기 싫다면 그냥 세가로 돌아가라.”

“따르겠습니다!”

악불군의 강한 어조에 사화는 급히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모두 동의했으니 매향이 먼저 출발해라. 그리고 주루에 들려 요기도 하고 건식(乾食)도 좀 준비해야 하니, 우리 도착 전에 자리를 잡아 놓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매향이 떠나자 악불군은 백설에게 다가가더니 말했다.

“이제부터 네가 아가씨 마차를 끌어야겠다. 괜찮지?”

다른 말들과 함께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던 백설은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언니, 잠룡세가가 반격을 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화려한 기방, 궁장을 한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반격? 어떻게?”

방 안에 있던 여인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종리화였다.

“원체 경계가 철통같아서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항주성 내는 잠룡세가에서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것 같아요.”

“대공이 약속한 아가씨의 생일날은 아직 한 달이 넘게 남았는데?”

종리화는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문제는 잠룡세가와 연락망이 완전히 막혀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예요.”

“세가에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지?”

“우리 애들 연락까지 다 안 돼요.”

그녀와 잠룡세가는 전서구를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딱 끊겼다.

원 황실이 무림을 무력화시킬 때 가장 중요히 생각한 부분이, 그들이 힘을 합치는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시작한 것이 전서구를 잡아내는 매의 육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대단한 효과를 발휘했다.

“가주님께서 진짜로 반격을 했다면 아가씨를 어떻게 했을까?”

“그 악불군이라는 아이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야 아가씨를 내보낼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렇다면 벌써 나오시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은데요?”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 아이니까…….”

말하던 종리화의 얼굴이 확 굳었다.

“영 매. 연락이 안 될 때 아가씨가 갈 곳이 어딜까?”

“첫 약속 장소가 악양이잖아……. 어머, 큰일이네. 정말 그쪽으로 가셨으면 안 되는데.”

* * *

안휘에서 절강으로 들어오는 길목은 군사들이 길을 막고 통행을 철저하게 통제했지만, 절강에서 안휘로 빠지는 것은 아주 쉬웠다.

[십여 장만 서쪽으로 가시면 오른쪽에 경화루라는 주루가 있습니다. 자리를 예약해 놓았으니, 이름을 대시면 자리를 안내해 줄 것입니다.]

악불군이 마차를 몰고 현 안으로 들어서자 매향의 전음이 들려왔다.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화루로 향했다.

‘휴우~ 죄 없는 백성들만 고생을 하는구나…….’

안휘성은 중원에서도 상당히 부유한 성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상황은 아주 비참했다.

안휘 북쪽에 있는 박주에 근거지를 둔 반란군 중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유복통이 원 군벌과 대규모 전투를 벌인 탓이었다. 덕분에 피난민들이 절강성 쪽으로 몰려왔다.

이미 혼란한 정국 속에 피폐해졌던 백성들의 삶은 몰려드는 피난민으로 인해 더욱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사람들은 하얀색의 보기 드문 명마가 이끄는 커다란 마차를 보자, 그 뒤를 따르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악 무사님. 이렇게 시선을 끌면서 가면, 우리를 추적하는 자들이 금방 우리의 동선을 알아내고 추격해 올 것 같은데요?]

주위를 은밀하게 따르던 연화가 너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 같자 불안한 듯 전음을 보냈다.

마차 주위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가왔고, 심지어 마차의 창에 대고 커다란 소리로 한 푼만 달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마부인 악불군이 가지고 있는 검을 보고 무림인이라고 판단했는지 앞을 막거나 통행을 방해하는 자들은 없다는 정도였다.

[여행한다 생각하고 즐겨라.]

악불군은 한마디 하고는 경화루 앞에 마차를 세웠다.

“어서 오십시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점소이가 반갑게 뛰어 나왔다.

악불군은 마부석에 내리더니 마차 문을 열었다.

그러자 면사로 얼굴을 가린 담수련과 날렵한 경장에 검을 맨 추국이 같이 나왔다.

담수련은 바로 백설을 향해 다가가더니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 많았어.”

백설은 아니라는 듯 머리를 담수련의 어깨에 비볐다.

“소군.”

“예.”

“백설이에게 물과 음식을 충분히 주라고 해.”

“알겠습니다.”

대답한 악불군은 점소이를 쳐다보았다.

“시키실 일 있으십니까?”

점소이는 돈 냄새를 맡았는지 급히 악불군의 앞으로 다가왔다.

“내 말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니, 여기서 물과 충분한 건초를 주고 마차 바퀴에 낀 이물질들을 닦아 놓게.”

“걱정 마십시오. 제가 확실하게 해 놓겠습니다!”

악불군이 동전을 열 냥이나 내밀자, 점소이는 횡재했다는 듯 머리가 땅에 닿을 듯 허리를 숙이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백설아, 무슨 일 있으면 크게 울어라.”

악불군은 백설이 위급할 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목에 걸린 마구를 떼어 주며 말했다.

“전 여기서 마차와 백설이를 보고 있겠습니다. 악 무사님과 아가씨 먼저 식사를 하십시오.”

추국의 말에 담수련이 살짝 악불군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빨리 먹고 내려올게.”

다른 때 같으면 허락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의외로 담수련이 금방 허락했다.

담수련은 악불군과 함께 강호를 주유하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멋있는 장소도 구경하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막상 나왔지만 악불군과 제대로 대화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추국이 그 기회를 만들어 준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백설과 마차는 누가 보아도 대단히 값이 나가는 것으로, 그냥 점소이에게만 맡겨 놓기에는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들어가시지요.”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천천히 주루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루 안은 생각 외로 사람이 많았다.

담수련이 안으로 들어서자 주루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면사로 얼굴을 가렸지만 저절로 풍겨 나오는 고아함이 저절로 남자들의 시선을 끈 것이다.

“악불군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예약했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안을 책임지고 있는 다른 점소이는 악불군의 말을 듣자 이 층으로 안내했다.

이 층에 도착한 악불군의 검미가 살짝 좁아졌다. 일 층과 달리 이 층에는 무림인으로 보이는 험상궂은 장한들이 이곳저곳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담수련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흥미로운 표정으로 흘깃흘깃 살피기까지 했다.

“소군, 앞에 앉아.”

악불군이 그녀의 뒤에 서자 담수련은 마음에 안 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전 서 있는 것이 좋습니다.”

“소군, 나 체하는 거 보고 싶어?”

“아가씨께서 체하시면 안 되지요.”

“세가 내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냥 두고 봤지만, 이젠 그런 예의는 나한테 하지 마. 나 싫어.”

“예의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앉아.”

담수련의 목소리가 약간 커지자 악불군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앞에 앉고 말았다.

“아가씨, 주위에 있는 자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내가 무공은 약해도 상대를 알아볼 눈은 있어. 이들 중 일류 고수는 몇 명 안 돼. 그런 핑계 대지 마.”

악불군은 그녀의 말이 너무 귀여운지 저절로 미소가 나타났다.

“왜 웃어?”

“아가씨께서 무공 수위까지 정확히 맞추시니 대견해서 그럽니다.”

“대견, 그런 말하지 마. 나 성인식 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거 몰라? 소군도 이제 나를 어엿한 여인으로 대접을 해 줘. 맨날 어린애 취급하지 말고.”

“전 절대로 아가씨를 어린애 취급한 적 없습니다.”

“이따금 보면 어린애 취급해.”

“주의하겠습니다.”

“봐, 아직도 웃고 있잖아.”

말로는 주의하겠다고 하면서도 눈은 여전히 아이 보는 듯한 악불군의 표정에 담수련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순간 악불군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무의식적으로 그냥 넘어가고 있었지만, 생각 못한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아가씨께서 천잠 면사를 착용하고 있는데 왜 내 눈에 아가씨의 얼굴이 그대로 보이지? 설마 이것도 무공이랑 관계가 있나?’

악불군은 혈랑무를 죽인 후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수련을 잠시도 쉰 적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담수련이 너무 안타까워하며 좀 자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악불군은 수련을 멈출 수 없었다.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무공이 늘어난 것과 별개로 시력까지 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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