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50화>
50화. 변화(1)
[전방을 척후하라고 했는데 여기로 오면 어떻게 해?]
추국이 백설과 마차를 경계하는 곳으로 연화와 매향이 다가오자 추국은 질책하듯 말했다.
[내가 먼저 여기 있었거든! 그리고 연화도 왔잖아?]
[연화는 근접 경호잖아?]
[그래, 난 근접이고 넌 선두 경호잖아. 악 무사님께서 반 마장 안에 있으라고 하신 거 같은데?]
[어디로 가실 건지 말을 안 해 주셨는데 어떻게 선두를 서?]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가시는 건지 우린 전혀 모르네?]
[어차피 악 무사님께서 알아서 할 거니까 우린 따르기만 하면 돼. 그것보다, 이상한 게 있어.]
매향의 말에 연화와 추국이 동시에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종리화는 호위를 하는 데 가장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그녀들에게 교육을 시키면서, 강호에 나가 주의할 점도 같이 교육을 했었다.
[뭔데?]
[안휘가 지금 전시 상황이잖아?]
[그렇지!]
[무림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자들이 군인들이거든. 특히 지금 같이 전쟁 중인 군사는 무조건 피한다고 들었는데, 너무 무림인들이 많아.]
[설마 우리 때문은 아니겠지?]
[우리가 여기로 올 줄은 우리도 몰랐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무림인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겠냐? 이 근처에서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너희들 백설이하고 마차 좀 보고 있어.]
[왜?]
[아가씨께 보고드리려고.]
[보고드릴 필요 없어. 여기 주루에도 무림인들이 많더라고. 악 무사님이라면 벌써 이상한 낌새를 느꼈을 거야.]
매향의 말에 추국의 시선이 주루의 이 층으로 향했다.
* * *
이 층의 주루에 있던 무림인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담수련이 식사를 하기 위해 면사를 벗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순식간에 주루 이 층을 환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음식을 먹는 모습조차 어찌나 조신하고 고아한지, 마치 하늘의 선녀가 하강이라도 한 듯한 느낌이었다.
애초에 잠룡세가의 가솔들조차 담수련을 보면 저절로 눈길이 향할 정도였으니, 그런 눈길은 그녀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잠룡세가의 가솔들처럼 눈길만 보냈으면 좋으련만, 언제나 그것을 벗어나는 자들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지금 악불군과 담수련이 있는 강호였다.
얼굴 좌측에 흉측한 흉터를 가지고 있던 한 장한이 일어서더니 포권을 하며 담수련에게 소리쳤다.
“전 황산삼웅 중 오종택이라고 합니다. 소저, 보기 드문 미모이신데 지금 여행을 하시기에는 강호가 너무 험합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몰라도 원하신다면 저희들이 아가씨를 보호해 드릴 수 있는데, 어떠십니까?”
하지만 담수련은 그에게 눈도 돌리지 않았고, 악불군 역시 조용히 음식을 먹기만 했다.
오종택은 자신의 코를 손가락으로 한 번 만지더니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못하는 악불군과 담수련의 모습에 겁을 먹었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이제 한 번만 더 겁을 주면 꼼짝 못하고 나를 따라오겠군.’
회심의 미소를 지은 오종택은 앉아 있는 동료들에게 눈짓을 하더니, 다시 한번 담수련에게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십니까? 저희들이 보호해 드리면 천하의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큰소리를 치며 다가오던 오종택의 걸음이 딱 멈췄다.
“세상엔 여러 가지 화(禍)가 있지요. 사고를 당하든, 죽음을 당하든지 하지만 가장 쉽게 당하는 화는 설화(舌禍)입니다. 함부로 혀를 놀리다 죽으면 낳아 주신 부모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악불군의 검이 오종택의 목에 닿아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순간도, 검을 뽑는 장면도 전혀 보지 못했는데 이미 검이 자신의 목에 닿았다.
그것만으로도 악불군이 상당한 고수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종택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했지만, 강호의 경험이 많은지 급히 얼굴에 미소를 지며 말했다.
“하하하! 다른 뜻은 없소이다. 저 소저의 미모가 저리 뛰어나신데 이 험한 강호를 떠도시니 걱정이 돼서 그런 것뿐이오. 형씨의 무공을 보니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 같소이다.”
“그럼 제자리로 돌아가시지요.”
“하하! 그래야지요.”
오종택은 자신의 목에 닿은 검을 보며 천천히 뒷걸음을 쳤다. 그리고 드디어 검이 목에서 떨어지자 급히 자신의 무기를 뽑으려 했다.
“크윽!”
그 순간 오종택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목에서 떨어지며 멀어지던 검이 어느새 자신의 손등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기어이 피를 보는군요. 정말 끝까지 가시고 싶으십니까?”
그때 오종택과 같이 앉아 있던 두 명의 장한이 무기를 빼 들고 악불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두 명의 장한 자신들의 목에 섬뜩함을 느끼고 우뚝 멈췄다. 딱 죽지 않을 정도의 피륙을 그은 악불군의 검.
그것은 목을 자르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스스로 황산삼웅이라고 했던 세 명의 장한은 피를 뚝뚝 흘러나오는 목을 잡고는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더니 후다닥 주루 아래로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악불군이 다시 의자에 앉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하자, 주위에 있던 무림인들은 서로 전음을 하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의 놀라운 무위를 보인 악불군이 누구인지 탐색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한 명씩 주루를 떠나기 시작했다.
“괜찮을까?”
담수련은 약간 걱정이 되는 듯 물었다.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식사하실 때도 면사는 벗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아가씨께서 너무 예쁘신 모양입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나타났다. 악불군에게 예쁘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군도 내가 예뻐?”
“예?”
“다른 사람은 상관없고, 소군도 내가 예쁘냐고.”
“…….”
악불군이 갑자기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담수련이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다시 물었다.
“소군은 내가 안 예쁜가 보네?”
“아, 아닙니다. 너무 예쁘십니다.”
“피! 답이 늦게 나온 것을 보니까, 안 예쁜데 억지로 예쁘다고 하는 거 아니야?”
담수련은 슬쩍 튕기듯 반문했다.
악불군이 그녀의 예쁘냐는 질문에 순간 몸이 경직될 정도로 놀란 이유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였다.
담수련은 그에게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사람 그 이상이었다. 그런 탓일까? 애초에 예쁘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그녀의 질문에, 그제야 그녀가 너무 예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닙니다. 아가씨만큼 예쁜 여인은 천하에 없을 겁니다.”
담수련은 다시 강조하듯 말하는 악불군의 대답에 면사를 살짝 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는 기쁨의 미소가 활짝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악불군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면사를 내렸지만…….
어쩌랴, 악불군은 그녀가 웃는 모습을 다 보고 있으니…….
“나 이제 먹었어.”
“저도 다 먹었습니다. 제가 추국에게 올라오라고 하겠습니다.”
“아니야, 나도 내려갈래.”
지금 그녀는 무조건 악불군의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 * *
금잔화는 팔 하나가 잘린 혈랑사자를 보며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쯧! 쯧! 상대가 안 될 것 같으면 도망을 쳐야지, 왜 버텨?”
혈랑사자는 피할 사이도 없이 담무룡과 맞닥뜨리면서 팔 하나를 미끼로 간신히 도망을 칠 수 있었다.
물론 담무룡이 죽이려고 했다면 아마 팔 하나만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생각지 못한 기습이었습니다.”
“아직 상처가 낫지 않은 것 같은데 좀 더 쉬지, 왜 온 거야?”
“잠룡세가에서 나선 자들을 쫓던 혈랑무의 시체를 어제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혈랑사자 좀 쉬라고 일부러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누가 또 보고한 거야?”
“이미 열흘이나 쉬었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그런데 군주님. 추격에 나섰던 혈랑대주 야목귀와 부대주 인지강은 어찰단에서도 최고의 정예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끌고 간 혈랑무가 전멸했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악불군이 숨겨 놓았던 시신들이 일주일이나 지나서 드디어 발견이 된 듯했다.
“지금 발견한 시신들을 부검하고 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거다. 그리고 금령사자가 전 정보망을 가동시켜 찾고 있으니, 그들의 행방도 곧 알아내겠지?”
“그들이 누구입니까?”
“아직 몰라. 난 담수련 일행으로 짐작하고 있어. 그런데 담수련을 호위하는 자들 중에는 분명 그 정도의 고수가 없단 말이야…….”
금잔화도 혈랑무들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전갈을 듣고 상당히 당황했었다. 어쩌면 담수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표식을 남긴 간세는 분명 담수련의 호위를 맡고 있는 잠봉단원이었다.
그때였다.
“군주님, 금령사자입니다.”
“들어와라.”
금령사자는 들어서자 혈랑사자를 보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같은 사자이지만 혈랑사자의 지위가 더 높은 듯했다.
“최근 수상한 행적을 보인 자들이 있다는 보고가 있어 가져 왔습니다.”
“그래? 부검 보고서는 아직 안 나왔나?”
“부검에 대한 보고서는 완성되었으나, 아직 최종 결과에 대한 보고서는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거 같습니다.”
금잔화는 금령사자가 건넨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담수련이 맞군.”
“담수련을 발견했습니까?”
“안휘성 경계에 있는 무수현 경화루에 주루에 보기만 해도 정신을 홀릴 정도의 엄청난 미녀가 나타났다는 보고야. 분명 담수련이라면 이런 말을 들을 만하지.”
“우리가 추격을 하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대놓고 얼굴을 보였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추격을 겁내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말하는 금잔화도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담수련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담수련을 호위하는 자들은 몇 명이나 된다고 합니까?”
“적혀 있는 바로는 여자 호위 한 명과 마부 한 명뿐이었다고 되어 있네.”
“여자 호위 한 명에 마부 한 명이라고요? 그럼 야목귀가 이끄는 혈랑대를 죽인 것이 담수련의 호위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아직은 모르지, 호위들이 숨어서 은밀하게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
금잔화는 보고서에 적혀 있는 마부 한 명 여호위 한 명 중 마부가 악불군이라고 확신했다.
‘왜 자꾸 이자가 내 마음을 흔드는지 모르겠네…….’
금잔화는 자신이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상황이 짜증스러운지, 고개를 작게 흔들며 다음 장을 넘겼다.
“이것 봐라?”
다음 장을 읽은 금잔화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나타났다.
“지금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점점 재미있네? 계속 내 예상을 벗어나. 오랜만에 내 승부욕을 돋구는데? 금령사자.”
“예!”
“너도 읽어 봤지?”
“예, 저도 확인했습니다!”
“지금 담수련으로 추측되는 여인이 탄 마차가 안휘 북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데, 재미있지 않아?”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반란군의 본거지 쪽으로 방향을 튼 거겠지? 우리가 추격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예, 실제로 지금 안휘 북부는 어찰단의 활동이 거의 멈춘 상태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금잔화는 비소를 지며 말했다.
“내 예상을 깼으니, 나도 저들의 예상을 깨 줘야 공평하겠지?”
“어떻게 하시려고요?”
“철룡세가와 태룡세가 그리고 마룡세가에 연락해. 담수련이 절강을 벗어났다는 말을 들으면 눈이 뒤집혀서 담수련을 잡으려고 달려들 거다. 그리고 백인막에도 연락해. 담수련을 생포해 오는 데 금자 오만 냥을 준다고 하면 당장 추적을 시작할 거다.”
“군주님, 그럼 일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닐까요?”
“상황을 보니, 담수련은 반란군 지역만을 이용해 움직일 확률이 높아. 오룡세가는 지금 자신들이 무림인이라며 이번 진압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않고 있어. 하지만 담수련을 잡기 위해선 반란군 중심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저절로 그들을 반란군을 진압하는 데 이용하는 방법이 될 거다.”
“대공 전하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될까요?”
“황제 폐하께서 토쿠다 대장군을 제거하는 실수를 하셨어. 이대로 가다가 반란군의 기세가 더 커지면 수습이 불가능하게 된다. 전하께서도 내 계획을 이해하실 게다.”
“알겠습니다.”
명을 내리고 다음 장을 넘긴 금잔화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이렇게 놀라는 경우는 실로 드물었다.
“이거 정확히 확인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