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61화>
61화. 수배(1)
“예!”
추국은 목소리를 낮추며 다시 말했다.
“좀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무슨 일이냐?”
“무한에서 무림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대거 탔어요. 개인적으로 승선한 것 같은 자들도 있지만, 무리 지어 탄 집단이 넷이나 돼요.”
“요즘 무한이나 악양이나 완전 혼란 자체라는데, 무림인들이 몰린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거기다 무한은 대단히 큰 도시잖아.”
“그렇게 보면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뭔가 수상했어요.”
“어떤 면에서?”
“서로 모르는 척하는데, 기색이 아는 사이 같더라고요.”
“추국이 그렇게 느꼈다면 같은 패 맞겠군.”
“그럼 그들이 우리를 노리고 온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의심만으로 공격을 해서 괜한 시비를 벌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들이 정말 아가씨를 노린다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다.”
악불군은 의심만으로 모두를 적대시한다면 너무 많은 적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어떡하지요?”
“이곳은 계속 내가 있을 테니, 넌 선상에 나가 지금처럼 그들의 동태를 계속 살펴라. 수시로 내게 보고하고.”
“알았습니다.”
추국이 몸을 돌리자 악불군은 등에 멘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검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나를 선택한 것인지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나와 아가씨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것은 확실히 믿겠다.”
* * *
“소방주님, 무한에서 귀찮은 놈들이 탔는데요?”
“귀찮은 놈?”
“오송방의 곽두권이 수하 삼십여 명을 데리고 배에 탔습니다.”
“오송방 놈들이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무한에 있던 오송방 역시 철룡세가의 하부 조직 역할하던 세력이었다.
“철룡세가가 물러났다고 그놈들도 악양에 군침을 흘리는 것 아니냐?”
“지금 악양에 저희 말고도 귀도방에 흑교장과 중양회까지 네 파가 각축을 벌이는데, 오송방 놈들이 감히 어떻게 끼어들어?”
“무한은 아직 원나라 군부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혹시 철룡세가로부터 뭔가 말을 듣고 오는 것이 아닐까요?”
잠시 생각하던 위사묵은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 말했다.
“아버님께 당장 연락을 해라. 연락이 올 때까지는 자중하는 것이 좋겠다. 애들한테도 오송방과 시비 붙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고.”
“예!”
‘이거 악양을 먹어치우는 것이 점점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괜히 간다고 했나?’
사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위사묵은 동생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소방주의 자리가 위태로워지자 악양을 자신이 평정하겠다며 스스로 자원한 상태였다.
거기에는 교룡방의 전력이 다른 파에 비해 더 강하다는 자신이 있어서였다. 거기다 잔머리의 대가인 그는 귀도방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법까지 생기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하지만 오송방까지 끼어든다면 상황은 일변하게 된다. 오송방은 귀도방과 친하기 때문이었다.
* * *
악불군이 악양으로 향하던 그때, 전 무림에는 한 장의 종이가 모든 세력에게 뿌려지고 있었다.
담수련과 악불군의 용모파기와 그녀가 타고 다니는 마차 그리고 백설까지 그려진 현상금이 걸린 수배 전단이었다.
더구나 거기에 걸린 상금이 무려 금자 만 냥이었다.
물론 생포라는 조건이 걸려 있었지만, 이런 혼란한 시기에 금자 만 냥이라는 큰돈은 모든 세력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오룡세가와 어찰단 그리고 백인막에게 맡겼지만, 대공의 명령에 따라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컸다. 더욱이 악불군이 이끄는 마차는 너무 눈에 띄었다.
수배 전단이 퍼지고 이틀도 안 되어 악불군의 동선은 곧 그들의 눈에 걸리고 말았다.
“찾았느냐?”
오송방의 곽두권은 배를 한 바퀴 돌고 온 수하에게 물었다.
“마차가 실려 있는 것은 보았습니다. 하지만 마차 안에 타고 있다는 여인이나 호위 무사 놈은 어디에 숨었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금자 만 냥이다. 다른 놈들에게 뺏기지 않으려면 먼저 찾아야 한다.”
“그런데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예, 돌다가 보니 이 배에 교룡방 놈들도 타고 있었습니다.”
“교룡방? 그놈들도 현상 수배 전단을 보고 온 것이더냐?”
“제가 보기에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탔음을 알고서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이 또 꼬이는군.”
곽두권은 고심하듯 턱을 쓰다듬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방주님께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연놈을 잡아 오라고 했다. 두광!”
금자 만 냥이라면 오송방의 전력을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예!”
“교룡방에 가서, 본 방에 죄를 지은 자가 있어 잡으러 왔으니 조금 소란스럽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와라.”
“들을까요?”
“본 방과는 여러 차례 거래를 한 적이 있으니 들어줄 게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들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너희는 다시 나가서 수배 전단에 있는 연놈을 찾아라.”
“지금 선실을 뒤지고 있으니, 이 배에 타고 있다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배 안은 완전히 봉쇄가 된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곽두권은 교룡방만 거슬릴 뿐, 악불군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수배 전단엔 그저 호위 무사라고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소군.”
문 밖에 서 있던 악불군은 담수련의 목소리에 문을 살짝 열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안으로 들어와.”
악불군은 잠시 머뭇했지만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앉아.”
방이 원체 좁아서 덩치가 큰 악불군이 앉자 무릎이 침상에 닿았고 담수련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슨 일로?”
“아버지께서 주신 서찰 줘 봐.”
“마음 정리가 되셨습니까?”
악불군은 잠룡세가를 떠난 다음 날, 담수련에게 담무룡의 서찰을 전했다. 하지만 담수련은 서찰을 읽지 않고 악불군에게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직접 말해도 되는 것을 굳이 서찰로 전하고, 그것도 세가를 떠난 후 하루가 지난 후에 전하라고 한 것이 그녀가 서찰을 읽지 못한 이유였다.
혹시…… 담무룡의 유언장일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어차피 더 이상은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아봐야겠어.”
“그런 전 나가 있겠습니다.”
“앉아 있어.”
“읽으시는 데 불편…….”
“소군은 나랑 있으면 불편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다만 아가씨께서 불편하실까 봐 드리는 말입니다.”
“그럼 더 이상 이러지 마. 난 소군이 가까이 있을 때 가장 편하니까.”
“알겠습니다.”
악불군의 대답을 들은 담수련은 서찰을 뜯었다.
서찰을 천천히 읽어가던 담수련의 눈이 벌게졌다. 그리고 그 큰 눈에 눈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소군, 이 서찰 없애 줘.”
“예.”
서찰을 건네받은 악불군은 서찰을 손으로 비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용을 알지는 못하지만 안 좋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그녀의 표정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 보며 눈물을 간신히 삼킨 담수련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소군은 절대 내 옆에서 떠나면 안 돼.”
“그런 일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담수련은 악불군의 말을 듣자 뭔가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악불군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조금 더 쉬십시오. 전 언제나 옆에 있으니 부르시면 됩니다.”
악불군이 나가자 담수련은 자기 머리를 톡 치며 중얼거렸다.
“바보!”
* * *
“군주님, 담수련을 찾았습니다.”
급하게 뛰어든 금령사자는 다짜고짜 일성을 터뜨렸다.
“어디에 있다고 하더냐?”
그러나 금잔화는 차분하게 물었다. 현상 수배는 언제나 효과가 좋았다.
거기다 자신이 직접 보고 그렸으니 용모파기 역시 완벽했다.
천하에서 가장 똑똑한 여인 중 한 명인 그녀였지만, 악불군을 최대한 빨리 잡기 위해 내린 이번 결정이 아주 큰 실수였다는 것을 아직은 몰랐다.
“황강포구에서 배를 타고 무한 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목적지가 무한인지 악양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악양이다.”
“예?”
“무한은 아직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지 않느냐? 거기에 담수련을 기다릴 세력은 없어.”
“그럼, 어떻게 할까요?”
“혈랑무가 당한 것으로 보아, 거기서 활개 치는 놈들 중 담수련을 잡을 수 있는 세력은 없다. 오룡세가의 소가주들에게 악양이라고 연락해라. 그럼 알아서 잡아 올게다.”
“알겠습니다.”
* * *
섬서에서 배를 탄 사도비류는 마음이 급한 듯 뱃머리에 서서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감히 내 얼굴에 상처를 입힌 그놈! 내 반드시 잡아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발라 주마.’
그는 자신의 발가락 때만큼도 여기지 않던 악불군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얼굴에 입었다는 사실에, 아직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치욕을 느끼고 있었다.
세가에 도착한 후 아버지인 사도중명의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에도 오는 도중 암습을 받았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소가주님, 방금 급한 전서가 날아왔습니다.”
그때 독갈적수가 급히 달려와 말했다.
“중요한 정보냐?”
“지금 담수련이 악양 쪽으로 가고 있다 합니다.”
“어느 쪽에서 온 연락이냐?”
“금령군주입니다.”
“그 계집이 보낸 거라면 맞겠지. 잘됐지 않느냐. 어차피 이 배가 악양을 지나가니, 거기서 내리면 되겠구나.”
“문제가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철룡세가의 철 소가주와 태룡세가의 태 소가주도 악양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순간 사도비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자들은 모두 자신이 있었지만 철무정과 태진성은 만만치 않은 상대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제룡회의 규약상, 그들이 먼저 잡는다면 공격을 할 수도 없었다.
“무조건 그놈들보다 빨리 찾아내야 한다. 배를 좀 더 빨리 가게 할 수 없느냐?”
“이미 전속력으로 노를 저으라고 전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상한 일? 뭔데 그러는 거냐?”
“금령군주가 담수련과 그 호위 무사 놈에게 현상 수배를 한 모양입니다.”
“현상 수배? 이 계집이 미쳤나? 우리에게 맡겼으면 끝이지, 왜 현상 수배를 해!”
사도비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좀 이상합니다.”
사도비류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현상 수배는 방으로 했다더냐, 전단으로 했다더냐?”
“전단으로 한 모양입니다.”
“뭔가 일이 벌어진 것은 맞군! 현상금은 얼마냐?”
“금자 만 냥입니다.”
“뭐야? 돌았군. 지금 이 시기에 은자도 아니고 금자 만 냥이라니…….”
“아마 천하가 들썩일 것 같습니다.”
“만 냥이면 본가의 일 년 예산이랑 맞먹는 돈이다. 무림 문파라면 당장 세를 두 배로 불릴 수 있고, 개인이라면 자자손손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돈인데 말해 무엇 하겠느냐?”
“어찌할까요?”
“뭘 어떻게 해? 복수도 하고 계집도 잡고 거기다 돈까지 벌어 가면 일거삼득이 아니냐? 최대한 빨리 악양에 도착하게 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화우성에 대한 소식은 없느냐?”
“그러고 보니 화 소가주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들어온 것이 없습니다.”
“그 자식, 담수련의 약혼자라고 우리 앞에서 꽤 으스댔는데 움직임이 없다면, 금령군주가 화룡세가에는 연락도 안 했다는 말인데……? 그럼 화룡세가도 대공의 눈 밖에 난 것인가? 하하하!”
사도비류는 화우성 역시 자신의 경쟁자에서 밀려났다고 판단을 했는지 크게 웃었다.
* * *
‘사해신개란 분이 사라졌어. 어디로 갔을까?’
잠시 담수련과 함께 바람을 쐬기 위해 선상에 나갔다 돌아온 악불군은, 사해신개의 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자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악 무사님.]
[무슨 일이냐?]
그때 추국의 전음이 들려오자, 악불군도 전음으로 반문했다.
그녀가 나타나지 않고 전음을 보냈다는 것은 뭔가 수상한 동향이 있다는 말이었다.
[무한에서 탄 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 같습니다.]
전음을 들은 악불군의 눈이 살짝 꿈틀했다. 여간해서는 분노하지 않는 그가 분노한 것이다.
지금 담수련이 쉬고 있는 선방으로 저들이 오기 위해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자고 있는 선실을 지나야 했다.
만약 그들이 담수련을 노리고 몰려와 싸움이 벌어진다면 무공도 모르는 양민들은 좁은 선실에서 그대로 죽어 나갈 수도 있었다.
“정말 무도한 자들이군!”
악불군의 눈이 차가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