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65화 (65/472)

<천검지애 65화>

65화. 변화하는 사람들(3)

[봤냐?]

백인막의 구 호가 십삼 호에게 전음을 날렸다.

[봤다. 네 말대로 겉모습과는 달리 한 수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신중하게 접근해야겠다.]

[검을 빼는 속도도 우리가 간신히 볼 정도로 빨랐고, 검에 피도 한 방울 묻지 않았어. 거기다 검과 저 미련한 놈의 팔과는 거리가 일 장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데 잘렸어. 어떻게 생각하냐?]

[검기 같긴 한데, 검이 움직이는 동안 아무런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단 말이야.]

[그래, 검기임에 분명한데 어쩐지 좀 애매해. 더욱이 저놈 무공 수위가 검기를 뽑을 수준이 아니잖아?]

검기란 검이 휘두르는 범위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만약 악불군이 검기를 사용한 것이라면 말 주위에 있는 땅이나 다른 물건도 검기에 의해 잘리거나 흔적이 남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장한은 딱 팔만 잘린 것이다. 만약 진짜 검기라면 악불군의 검을 다루는 능력은 거의 신경에 들었다 할 수 있었다.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어. 저놈 자세를 보면 내공 수위와는 다르게 꽉 잡혀 있잖아?]

구호의 말에 십삼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죽이는 거라면 몰라도, 우리 둘만으로 생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 호와 오 호가 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자.]

십삼호도 만만치 않음을 느낀 듯 아까의 자신감은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그들과는 다른 의미로, 사라지는 마차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구. 아무리 강호 경험이 없어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저러면 금방 소문이 퍼진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거야. 그런데 갈수록 흥미롭네……. 도대체 저놈이 사용하는 검법이 뭐지?’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악불군의 마차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노인은 배에서 사라졌던 사해신개였다.

* * *

삼화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악양루였다.

그들이 강호에 나온 것이 처음이라, 누구나 아는 유명한 장소를 약속 장소로 정한 것이다. 거기다 악양루는 물론 그 주위가 명소로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는 점도 한 이유였다.

경장 차림으로 등에 검을 멘 청년으로 변장한 추국은 처음 본 악양루의 모습에 입을 벌렸다.

‘와아~ 진짜 멋있네!’

추국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하지만 곧 시선을 주위로 돌리고는, 그들끼리만 통하는 비문을 찾기 시작했다.

“아직 안 왔나?”

추국은 고개를 갸웃하며 동정호가 보이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슬쩍 나무에 비문을 남겼다.

그때 옆에 중년의 상인이 와서 섰다.

그리고 그는 손을 들어 이마에 대며 먼 곳을 보는 듯 행동을 취하며 전음을 보냈다.

[왜 지금 왔어?]

[흑란?]

[그래.]

[언제 왔어?]

[어제 저녁 때 도착했어.]

[비문을 남기지.]

[우리가 없는 곳에는 남겼어.]

[연화와 매향은?]

[아직 안 온 것 같아. 그래서 난 지금 동화루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아가씨는?]

[지금 오고 계셔.]

[그럼 가 있어. 난 매향과 연화가 왔는지 다른 곳 좀 찾아보고 올게.]

전혀 모르는 사이처럼 다른 곳을 보며 대화를 나눈 둘은 다른 경치 좋은 곳을 향해 헤어졌다.

악양루의 삼 층.

약간은 낡은 경장 차림에 손에 싸구려 섭선을 든 학사 차림의 청년이 서 있었다.

“좋은 시상(詩想)이라도 떠오르십니까?”

그때 그의 옆으로 역시 학사 차림의 노인이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떠오르는 것은 있지만, 시선(詩仙) 이백 님과 시성(詩聖) 두보 님께서 시를 쓰신 곳인데 감히 제가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둘의 대화는 악양루에 오르는 다른 시인이나 학사들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고개를 끄덕인 노인이 약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무엇을 그렇게 유심히 보고 계셨습니까?”

“저쪽에 젊은 무인 한 명과 나이 좀 든 상인 보이십니까? 지금은 헤어져서 양쪽으로 나누어 움직이고 있군요.”

그가 가리킨 곳은 추국과 흑란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이었다.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십니까?”

“서로 모르는 사이 같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접선하고 있더군요. 무공도 일류급은 넘는 것 같고, 악양에서 저렇게 은밀하게 접선을 하는 세력이면 어느 쪽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의 말에 노인의 얼굴에 역시! 하는 감탄의 표정이 나타났다.

흑란과 추국이 만난 곳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간신히 사람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멀었다. 그 거리에서 무공 수위를 느끼고 접선하는 것까지 감지한다는 것은 백대고수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노인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알아볼까요?”

청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일과는 연관이 없을 듯합니다. 괜한 일에 끼어들 필요는 없겠지요. 그래, 어떻게 됐습니까?”

“양지운이 중양회를 접수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는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제갈 대협께서 잘하신 덕분이지요. 장사성이 눈치채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십시오.”

“그런데 회에서는 누구를 선택하느냐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쩌실 생각이신지요?”

“글쎄요. 결정을 하기에는 아직 좀 이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윤곽이 드러나겠지요. 그런데 요즘 화룡세가의 움직임이 활발하다고요?”

“화룡세가의 소가주인 화운성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공과 끝낼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것인지 움직임이 좀 예외라는 말도 있습니다.”

“화운성이 나이가 몇이나 됐습니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약관이라고 들었습니다.”

“약관이면 저랑 얘기가 좀 통할지도 모르겠군요.”

“오룡세가의 자식입니다.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청년은 미소를 지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또 다른 소식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좀 이상한 사건이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이상하다고 할 정도면 대단한 일이겠군요? 궁금한데요.”

“누군가 무림에 현상 수배 전단을 뿌렸습니다.”

“수배 전단이요? 그게 뭡니까?”

“글자 그대로입니다. 누구를 잡아 오면 돈을 주겠다는 것이지요.”

“지금 장강 이남은 원나라의 관이 작동을 하지 않는데, 말을 듣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무림에 큰 변수가 될 수도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전단이 사실이라면 저희도 그 대열에 끼어들어야 할 정도니까요.”

“우리까지 끼어들어야 할 정도라고 하시니 궁금해지는데요?”

“현상금이 금자 일만 냥입니다. 지금 혼란의 시기에 모든 세력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자금입니다. 금자 일만 냥이면 본 회조차 일 년은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엄청난 액수입니다.”

“전단을 뿌린 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돈을 준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대륙전장이 보증을 섰습니다. 돈 떼일 일은 없다는 얘기지요.”

“잡으려고 하는 자가 누굽니까?”

“남녀 둘인데, 특히 여인의 용모파기 때문에 천하가 들끓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금액도 대단한데, 용모파기라니요?”

“용모파기만으로도 그 미모가 가히 천하일색이라 부르기 충분하다 합니다.”

“그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입니까?”

“네. 그러다 보니, 용모파기가 그럴진대 실지 얼굴은 얼마나 아름답겠느냐며 현상금을 떠나 그녀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 합니다.”

무림인들이 가장 원하는 세 가지를 들라고 하면 천하절기, 천고의 영약 그리고 절대의 무기였다.

그런데 그들이 그것을 바라는 이유는 강해지기 위해서이고, 강해지려는 이유는 권력과 명예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 때문이었다.

그만큼 무림 역사에서 아름다운 미녀를 차지하기 위해 일어난 피바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청년의 얼굴에는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 현상 수배 전단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구하려고 한다면 며칠 안에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악양에 도착한 악불군은 이번에도 백설과 특이한 형태의 마차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거기다 오는 도중 왈패의 팔을 검기로 잘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상당수 무림인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마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면을 향해 마차를 모는 것 같지만 악불군의 눈은 주위 전체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담무룡이 완벽하게 숙지하라고 한 비문과 기호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내가 장소를 잘못 찾았나, 아니면 종리 단주님께서 우리가 나온 것을 아직 모르는 것인가?’

악불군은 잠시 생각하더니 마차를 한 주루로 몰았다.

강호초출인 자신이 담무룡이 말한 장소를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잠시 주루에 들어가 식사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마차를 멈춘 악불군은 담수련에게 허가를 받자 마부석에 내렸다.

“어서 오십시오! 홍화루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마양루입니다.”

마차가 다가오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던 마동들은 마차가 서자 부리나케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악불군은 달려온 세 명의 마동을 보더니 가장 먼저 뛰어온 마동을 보며 말했다.

“말에게 먹을 것 좀 주고 마차의 먼지도 좀 털어 놓게.”

“걱정 마십시오. 제가 깨끗이 씻어 놓겠습니다!”

마동은 커다랗게 소리쳤다. 돈을 많이 달라는 절규 같았다.

악불군은 잠시 생각하더니 동전 두 냥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근래 모든 사람의 생활이 전체적으로 어려워지면서 말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줄어들어 마동은 수입이 급감했다. 혹시 왔다 해도 동전 한 냥 이상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손님입니다!”

마동은 두 냥을 받자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더니, 곧 홍화루 안쪽을 향해 소리치고는 말을 씻길 물을 가지러 뛰어갔다.

악불군은 마동들을 보자 마음이 좀 안 좋았다. 그가 어린 시절 했던 일 중 하나가 마동이었다. 하지만 보통 마동들이 열다섯 이상이었던 것에 비해, 열 살밖에 안 된 그는 손님을 잡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는 삼 일 만에 마동 생활을 포기하고 말았다.

담수련이 마차에서 내리자 악불군은 그녀의 뒤에 섰다.

호위들이 보호인의 뒤에 서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앞뒤로 급습을 당할 경우, 호위가 앞에 서 있다면 보호인의 등은 호위의 사각지대가 된다. 하지만 뒤에 서 있다면, 설령 뒤를 막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등으로 막을 수 있었다.

담수련과 악불군이 홍화루 안에 들어서자 점소이가 후다닥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홍화루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안으로 들어선 담수련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주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담수련이 곧 고개를 숙인 데다 면사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자 곧 흥미를 잃은 듯 시선을 돌렸다.

“이 층 창가에 앉고 싶은데, 자리 있나요?”

“딱 한 자리 남았는데 잘 오셨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점소이를 따라 올라가며 악불군은 천천히 주위의 기를 살폈다.

‘아직 모자라……. 가주님처럼 상대의 다음 행동을 예상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하기가 쉬울 텐데.’

일 층 주루에 앉은 사람들의 기를 살피더니 실망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들 중 누가 무공을 익히고 누가 안 익혔는지까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담무룡은 상대의 기를 분석하면 그가 다음 어떤 행동을 할지까지 알 수 있다고 했었다.

악불군은 담무룡이 그에게 쉬지 말고 정진하라는 의미로 약간 과장하여 말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이 층으로 올라선 악불군은 앉아 있는 십여 명의 손님들을 훑어보다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웬 고수들이 이렇게……?’

그가 싸운 자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연성문이었다. 그런데 이 객잔 안에는 연성문과 맞먹는 무공을 지닌 것으로 추측되는 자가 두 명이나 있었다. 거기다 다른 자들도 상당한 고수였다.

악불군은 담수련을 자리에 앉히고는 그 앞자리에 앉았다.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악불군이 이 층으로 올라오자마자 흥미로운 듯 살피던 낚시꾼 복장의 노인의 눈에는 이채가 나타났다.

“할아버지. 또 재미있는 일 생겼지요?”

열다섯이나 됐을까?

노인의 앞에 앉아 있던 담수련보다도 어려 보이는 앳된 모습의 여인은 노인의 눈빛만으로도 상황을 안다는 듯 말하고는, 목을 돌려 노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우와! 송옥과 반안이 울고 갈 잘생긴 남자네?’

여인은 악불군을 보자 얼굴이 환해졌다. 자신의 이상형을 드디어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고개까지 돌려 가며 남을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남을 본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본 거거든요!”

“그게 예의가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네가 함부로 대할 아이들이 아니니 함부로 굴지 말거라.”

노인은 입술을 삐죽거리는 손녀가 마냥 귀여운지 미소를 지으면서도 주의를 주었다.

“할아버지, 그런데 저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남자나 여자나 다 나보다 약해 보이는데?”

“내가 보기에도 약해 보이기는 하구나. 그런데 빈틈이 전혀 없어. 저 사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를 하고 있다. 내 경험상 혼자 저렇게 완벽한 경계를 할 수 있는 자가 약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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