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71화 (71/472)

<천검지애 71화>

71화. 결정(2)

“악양루에 왔다는 것이 확실한 정보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악양루까지 달려온 사도비류는 악불군을 찾을 수 없자 짜증스럽게 물었다.

“그들을 추격한 놈들의 말에 의하면 분명 악양루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없어?”

“갑자기 없어져서 자기들도 찾고 있는 중이라고…….”

짝!

순간 사도비류의 손이 보고하던 수하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병신 같은 놈들!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고, 놈이 없어? 당장 찾아라. 만약 못 찾으면 네놈들이 내 손에 죽는다.”

뺨을 맞은 수하는 뒤로 비칠거리며 몇 걸음 물러났지만 곧 다시 부동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당장 찾겠습니다!”

그는 십여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는 몸을 날렸다.

사도비류는 담수련과 악불군을 놓쳤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는지 씩씩거리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성정이 포악하고 잔인했지만,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무공을 지녔다는 것은 머리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차는 객잔에 남겨 두었다고 했으니 멀리 가지는 않았을 텐데……. 어디를 갔을까?’

사도비류는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멀리 동정호의 모습이 보였고, 거기까지 가는 길목에는 짙푸른 숲이 형성되어 있었다.

추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의 통행이 많은 악양루에 왔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음에 분명했다.

‘저 안 어딘가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누군가와 접선을 한다면 어디가 가장 좋을까?’

그때 악불군의 행방을 수색하던 수하가 돌아왔다.

“소가주님,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동북쪽으로 가는 걸 보았다는 자를 찾았습니다.”

“보았다는 놈들이 누구냐?”

“그물을 정리하던 노인네들이었습니다.”

“그럼 거짓은 아니겠군.”

사도비류는 무림인들의 말은 기본적으로 믿지 않았다. 그는 동북쪽을 살피더니 눈이 살짝 커졌다.

“아름다운 여인은 아름다운 장소를 좋아하는 법이지.”

멀리 숲속 사이에 펼쳐진 죽림.

그곳은 동정호의 풍경과 어우러져 대단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모두 동북쪽 죽림으로 모이라고 해라.”

“예!”

명을 내린 사도비류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 * *

“잡았어?”

죽림 사이를 흐르는 내.

거대한 바다와 같은 동정호로 들어가는 내치고는 정말 작고 맑았다.

눈을 반짝거리며 냇가의 돌들을 뒤집고 있는 악불군을 주시하는 담수련의 얼굴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잡았습니다.”

일어선 악불군의 손에는 제법 큰 가재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와아! 이리 가져와 봐.”

담수련은 악불군이 가져온 가재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요리할까요?”

“요리? 이것도 먹어?”

“제가 어렸을 때는 이것도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나뭇가지에 살짝 끼워서 구워 먹으면 상당히 맛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신기한 듯 가재를 보던 담수련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요리된 음식은 먹어도, 내 눈앞에서 살아 있던 것을 잡아먹는 것은 좀 불쌍한 것 같아. 그건 그냥 놔 줘.”

“예.”

악불군도 쓸데없는 살생을 하고 싶지 않았던 터인지 금방 동의하며 가재를 물에 놔주었다.

“물고기도 잡아 봐.”

담수련은 어린애처럼 졸랐다. 하지만 둘의 즐거운 소풍은 거기까지였다.

“아가씨,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무공을 아는 자들입니다. 죄송합니다.”

가재를 놓아 주고 허리를 편 악불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소군이 왜 죄송해? 미안하면 내가 미안해야지. 나 때문에 소군이 이렇게 힘든 건데…….”

“전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악불군은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아가씨.”

“왜 머뭇대? 소군은 어떤 말도 내게 할 수 있어.”

“다가오는 자들의 수가 좀 많습니다. 아무래도 아가씨를 업고 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나 보고 업히라고?”

담수련의 반문에 악불군은 급히 부언했다.

“상황이 급박해질 때 얘기입니다. 그리고 아가씨께서 거북하시다면 제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책에서 봤는데, 경호의 최선은 적을 모두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거래.”

“싸움이 시작되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우선은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경호 방법이긴 합니다.”

“그럼 뭐해?”

“예?”

“빨리 등을 대야 내가 업힐 거 아니야?”

너무 싹싹하게 말하는 담수련의 행동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악불군이었다. 잠시 그녀와 안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녀가 나서서 껴안은 것일 뿐, 악불군은 그녀의 몸에 손 하나 대지 않았다.

그러나 업히는 것은 달랐다. 그의 손이 그녀의 몸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그럼…….”

말은 그가 먼저 꺼냈음에도 악불군은 매우 어색한 자세로 그녀에게 등을 보였다.

그러자 담수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의 등에 폴짝 뛰어 업히더니 그의 목을 두 손으로 꼭 껴안았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목을 꼭 잡을게.”

“예, 절대 제 목에서 팔을 떼시면 안 됩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은 품에서 천으로 만든 밧줄을 꺼내더니 그녀의 몸과 자신의 몸을 얼기설기 두르더니 묶었다.

어느 정도 밀착됐을까, 악불군은 괜히 몸이 뜨거워짐을 느끼고는 손으로 이마를 한 번 훔치며 말했다.

“이제 뜁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의 신형이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각도 안 되어 사도비류와 수하들이 도착했다.

사도비류가 데려온 마룡흑영단은 무공도 무공이지만 추적에 특화된 마룡세가의 정예 무인들이었다.

“방금까지 누군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사방을 뒤지던 단원들의 의견을 종합한 대주가 사도비류에게 급히 보고했다.

“누군가 있었다는 것은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갔느냐?”

“발자국이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대나무를 타고 피한 것 같습니다. 방향은 저쪽입니다.”

“당장 추적해!”

“예!”

‘자식들이 답답하단 말이야.’

정확하게 악불군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마룡흑영단원들을 보며 짜증스럽게 말한 사도비류는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 * *

“소가주님, 마룡세가의 사도 소가주가 먼저 도착했던 모양입니다.”

악양포구에 도착한 태진성은 자신의 심복인 은명신군의 보고에 검미를 좁혔다.

“그 승냥이 같은 놈이 담수련에게 꽂힌 모양이군.”

태룡세가의 가주인 태웅천과 마룡세가의 가주인 사도중명은 상당히 가까운 사이로, 그와 사도비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아는 사도비류는 누군가를 잡는 일에 흥미를 가질 위인이 아니었다. 그런 사도비류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그를 움직이게 할 정도로 감수련이 아름답다는 방증이었다.

“그리고 철 소가주도 곧 도착할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

“철무정까지? 갈수록 궁금해지는군? 사도비류야 원래 여자를 좋아하니 그런다 치지만, 철무정은 여자를 돌 보듯 하는 친구인데…….”

태진성은 점점 담수련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물론 그 역시 용모파기를 보긴 했다. 그러나 그림으로 보는 것과 실물은 큰 차이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해서 별 감흥이 없었다.

문득 재밌어졌다는 듯 태진성이 음흉한 미소를 짓자, 은명신군이 다시 말했다.

“악양 성내는 지금 장사성의 군사들이 사방에서 검문을 강화해, 소가주님께서 들어가시기에는 조금 불편합니다.”

“내가 잡으려는 것은 담수련이다. 그녀가 악양 성내에 있지 않다면 굳이 들어가서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릴 필요는 없다. 지금 사도비류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느냐?”

“지금 알아보는 중입니다.”

“빨리 알아내라. 그놈은 단순해서 행동이 직설적이다. 움직였다면 그곳에 담수련이 있을 확률이 높다.”

“당장 알아오겠습니다.”

“철무정이 도착하기 전에 알아 와라. 그놈은 상대하기가 껄끄러워. 도착하기 전에 상황 종료를 시키는 것이 편하다.”

“예!”

‘아무래도 내가 직접 오기를 참 잘한 것 같군.’

은명신군이 나가는 것을 본 태진성은 승부욕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 * *

“은근히 재미있네? 나도 무공이 늘어난다면 이렇게 날고 싶다.”

악불군의 등에 업힌 담수련은 지금의 상황이 전혀 걱정이 안 되는 듯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나무의 탄성까지 이용하며 신법을 펼치는 지금 상황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빨랐다.

“반드시 그렇게 되실 겁니다.”

악불군의 대답은 빈말이 절대 아니었다.

그는 반드시 빙설초와 만년설삼을 구해 담수련을 고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군, 백설이는 어떻게 찾을 거야?”

악불군은 마차를 주루에 맡기면서 백설은 악양루 근처의 숲에 풀어 주고 왔었다. 그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백설이 역시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에서였다.

“제가 이미 불렀습니다. 이곳을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악불군은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을 십분 발휘해, 백설과 직접 대화는 못해도 자신의 명령을 신호로 전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핑! 핑! 핑…….

커다란 대나무를 발로 차며 죽죽 앞으로 나가던 악불군은 급히 대나무를 잡고는 회전을 했다. 그러자 십여 개의 표창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 누굴까?”

악불군은 대나무를 두 다리로 받치고는 표창이 날아온 곳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살수?’

담무룡은 살수가 무서운 점이 상대를 잡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가씨, 살수인 것 같습니다. 제가 빠르게 몸을 움직이더라도 잘 버텨 주십시오.]

그러자 담수련은 악불군의 목을 더 세게 잡으며 조그맣게 말했다.

“걱정 마. 소군 목 꼭 잡고 있을 거니까.”

담수련의 말에 이상하게 힘이 돋는 듯한 느낌을 받은 악불군은 검을 빼 들었다.

순간 다시 십여 개의 표창이 악불군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핑! 핑……!

표창이 날아오는 방향을 특정한 악불군은 환영전궁보를 펼쳐 표창 사이를 교묘하게 빠지며 대나무들을 검으로 잘랐다.

뾰족하게 자른 대나무 조각 십여 개를 손에 든 악불군이 커다란 대나무의 중간에 매달리자, 다시 표창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잡았다!’

대나무를 움직여 표창을 피하며 날아온 방향을 살피던 악불군은 두 곳을 겨냥하여, 기다렸다는 듯 손에 든 대나무 조각들을 던졌다.

파파파팍!

십여 개의 대나무는 두 곳으로 나뉘더니 특정 지점의 땅 속에 한 자 이상 박혔다.

“왜 아무 소리도 안 나지? 안 맞은 거 아니야?”

악불군의 목을 꼭 껴안은 와중에도 표창이 날아오는 모습과 악불군이 대나무 조각을 던지는 것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보고 있던 담수련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맞았습니다. 땅에 박힌 대나무 주위를 보십시오.”

악불군의 말에 박힌 대나무 주위를 살피던 그녀는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햐아~ 소군 정말 대단하다!”

대나무 주위의 땅이 벌겋게 변해 가는 것이 보인 것이다.

“아가씨, 또 다른 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이만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악불군은 그들의 생사까지는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쓸데없는 머뭇거림은 담수련에게 위험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가 떠난 후 반 각도 안 되어 사도비류가 수하들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소가주님, 여기서 싸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하들은 대나무가 꽂힌 장소를 살피더니 두 명의 무인을 찾아냈다. 한 명은 즉사했지만, 한 명은 대나무가 오른쪽 어깨에 박혀 목숨은 붙어 있었다.

“정체가 뭔지 알아봐라.”

“예!”

사도비류는 잘린 대나무와 표창, 그리고 표창이 그린 궤적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그놈의 무공이 아닌데?’

사도비류는 지금도 자신이 실수로 악불군의 검에 다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지로 그의 검에 얼굴이 베이기 전까지 그는 완벽하게 악불군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광경은 뭔가 달랐다.

“호남 제일의 살수 집단으로 불리는 악귀단의 일급 살수들이라고 합니다.”

“살수들에게까지 수배 전단이 뿌려졌다는 거냐?”

“악귀단은 어찰단의 하부 조직이었습니다. 당연히 연락이 갔을 것입니다.”

“그럼 어찰단도 담수련의 행적을 지금쯤은 알았을 것인데?”

“어찰단은 대부분 채두변발을 하고 있어, 이쪽 지역으로 들어오면 즉시 장사성이 알게 됩니다. 함부로 못 들어올 것입니다.”

“소가주님, 그들이 움직인 흔적을 찾았습니다.”

“가자.”

“저자는 어떻게 할까요?”

수하는 아직 숨이 약간 붙어있는 살수를 보며 물었다.

“죽여!”

사도비류는 귀찮다는 듯 말하고는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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