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72화>
72화. 충돌(1)
“소군, 살수라는 자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했을까?”
담수련은 조금 전 표창을 던진 살수들이 좀 이해가 안 갔다.
그녀가 본 전단에는 생포해야 돈을 준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머리가 확인을 원하고 있었다.
“그들이 날린 표창은 맞는다 해도 죽을 정도의 치명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 역시 우리를 생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다행이네. 난 혹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또 다른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거든.”
“어차피 우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포상금을 노리는 자들은 우리를 생포하려고 하니까 처음부터 살수를 쓸 생각은 안 하거든. 그리고 그런 심리적 허점으로 인해 우리가 더욱 안전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소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제가 그쪽으로 향한 것은 순간적인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빨리 달렸기 때문에, 그들이 그곳에서 기다릴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자들이 어떻게 우리가 오는 길을 먼저 알고 기다리고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건 간단해. 우선 그들은 이곳의 지리를 아주 잘 아는 자들이야 그리고 우리가 죽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거야. 소군의 무공은 이미 악양에서 몇 번 보았을 테니까, 직접적인 공격은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거고.”
“그렇다 해도 그들이 먼저 와 기다린 것은 의아하지 않습니까?”
“그들만 왔다면 의아한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런 자들이 상당히 많이 와서 우리가 움직일 곳으로 예상되는 여러 곳에 매복을 하고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다만 소군을 만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운이 없는지까지는 몰랐겠지만.”
잠깐 사이에 놀라운 추리력을 보이는 담수련의 모습에, 악불군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근심이 어렸다.
뇌의 움직임이 활발해질수록 그녀의 음기는 점점 소모되어 삶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단주님을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야. 우선 빙설초나 만년설삼을 먼저 찾아야겠다.’
다시 한번 악불군의 동선에 수정이 가해졌다.
이 결정으로 무림 천하의 판도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줄은, 그나 그녀나 지금은 알지 못했다.
* * *
철무정이 배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그를 마중 나왔다.
“여행은 편하셨습니까?”
인사한 지휘자는 배에서 내리는 철룡세가의 무인 중 몇 명이 가마를 메고 내려오자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마라.”
철무정의 말에 지휘자는 급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본가에서 소가주님 말고 다른 어른이 오셨나 해서 본 것뿐입니다.”
“네가 신경 쓸 건 아니다. 그것보다 내가 알아보란 것은 다 알아보았느냐?”
“예!”
“보고해 봐라.”
“우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이곳은 사람 눈이 너무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포구의 입구에서 내리자마자 묻는다는 것은, 철무정의 마음이 지금 많이 급하다는 증거였다.
“그냥 말해.”
“예.”
지휘자는 악불군으로 보이는 자가 끄는 마차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는 그에게 당한 자들을 설명했다.
특히 소면음마까지 죽였다는 대목에서 철무정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다는 거냐?”
“악양루 근처에 있습니다. 그런데 마룡세가의 사도 소가주와 태룡세가의 태 소가주께서 이미 악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놈들이 벌써 왔다고?”
“예!”
“어떻게 나보다 더 빨리 알고 이곳에 도착했단 말이냐?”
“그들은 장강의 내려오는 물길을 타고 오기 때문에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게다가 금령군주님께서 수배 전단을 뿌리면서 금방 그 위치가 알려진 것 같습니다.”
금령군주의 성격을 잘 아는 철무정은 오는 내내 고심을 했지만, 그녀가 왜 수배 전단을 뿌려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막 단주.”
철무정은 그의 뒤에 우뚝 서 있는 막중혁을 보며 명을 내렸다.
“예!”
“철마단을 이끌고 악양루로 간다. 혹시 태진성이나 사도비류에게 담수련이 이미 잡혔다면, 그들을 막아라.”
“소가주님, 제룡회의 규율상…….”
“그따위 규율을 내가 신경 쓰리라 보느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상관없다. 누구든 담수련을 욕심낸다면 사도비류건 태진성이건 나한테 죽는다. 가라.”
“존명!”
막중혁이 철마단을 이끌고 사라지자 철무정은 지휘자를 보며 물었다.
“넌 이름이 뭐냐?”
“지서웅이라고 합니다.”
“지서웅!”
“예!”
“악양에 아직 어찰단의 조직이 남아 있는데, 왜 아직도 장사성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냐?”
“장사성에 대한 경계가 만만치 않습니다. 저희 어찰단 오십 명으로는 그의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럼 장사성의 주위에 중원 무림의 잔당들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거냐?”
“외곽을 지키는 호위 무사조차 어찰단의 단원의 무공을 상회할 정도입니다.”
“대공 전하께서 반란군의 배후에 중원 무림인 놈들이 있을 거라고 하시더니, 사실이었군. 그런데 이곳에서는 장사성의 반란군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장사성은 지금 자금에 목말라 있습니다. 악양포구까지 군사를 투입해 전장터로 만들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곳을 점령하기가 아주 쉬울 것 아니냐?”
“우리 군이 이곳에 나타나면 반란군이 이곳을 공격할 것입니다. 만약 악양포구가 닫히면 황실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이곳은 묵시적으로 아무도 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흠! 잘하면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군. 너희는 지금 모두 몇 명이냐?”
“삼십 명은 악양성에 들어가 첩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저를 포함 이십이 명만이 있습니다.”
“그럼 너희들은 나를 따라 악양성으로 간다.”
철무정이 말을 몰자,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과 가마도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소군, 제일 높은 대나무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어?”
악불군을 꼭 껴안은 채 뭔가 궁리하던 담수련이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만, 무슨 일로?”
“그냥 올라가 봐.”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이 토를 달 리가 없었다. 악불군은 달리던 방향을 위로 잡았다.
대나무를 손으로 잡은 그는 회전을 하더니 다음 대나무로 날아가 발로 찼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계속 올라가더니 곧 근처에서 가장 높은 대나무 끝에 섰다.
“와, 멋있다!”
악불군에 안겨 순식간에 대나무의 정상에 올라선 담수련은 순간 감탄사를 터뜨렸다.
끝없이 이어진 대나무 숲 위에서 본, 해가 넘어가는 동정호의 모습은 정말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잠시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었던 담수련은 곧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
“소군, 지금 저들이 어디쯤 오는 것 같아?”
주위를 자세히 살피던 악불군은 몇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서 쫓아오는 자들이 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른 쪽은 한 명이나 두 명 정도입니다.”
“그들 지금 우리 쫓아와?”
다시 대나무의 움직임을 살피던 악불군이 고개를 갸웃했다. 추적술을 배우지 못한 그로서는 땅은 전혀 밟지 않고 대나무만 이용해 달려온 자신을 정확하게 쫓아오는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뜻밖이긴 한데, 저들이 제가 움직인 그대로 쫓아오고 있습니다.”
담수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이길 자신 있어?”
“그건 왜?”
“지금 나 때문에 도망가는 거잖아?”
“도망이 아니라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불필요한 싸움을 피한다는 것이 오히려 불필요한 싸움을 더 하게 만들 것 같아.”
“그게 무슨 뜻이신지?”
“소군은 불필요한 싸움이기에 피한다고 하지만, 저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난 저들은 우리가 무서워서 도망간다고 생각할 거라고 봐.”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전에도 말했지만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이길 자신이 있냐고 물은 거야.”
“자신 같은 것은 전 모릅니다. 무조건 이겨야지요.”
“그럼 저자들을 죽여.”
“예?”
“내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지?”
“그건 아닙니다만…….”
“그렇게 말할 필요 없어. 나도 죽이라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데, 소군이 보기에는 이상한 게 당연한 거야. 그런데 싸움을 피하고 쓸데없는 희생을 줄이려면 나타나는 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내 머리가 자꾸 그러네.”
악불군은 등에 업혀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얼마나 갈등하고 곤혹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아가씨 말씀을 들어 보니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우리를 노리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결국 모두 피할 것입니다.”
“그래. 호랑이는 실제로 본 사람이 거의 없어. 왜냐하면 본 사람은 대부분 죽으니까. 그래서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을 무조건 피하게 만들어. 우리 역시 본 사람이 거의 없어. 그렇다면 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면 우리를 피하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마음을 굳힌 악불군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담수련을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담수련은 뭔가 아쉬운 듯 잠시 머뭇대더니 목을 감은 팔을 풀었다.
“아가씨, 예전에 저와 숨바꼭질하면서 보여 주셨던 진법을 펼치는 건 지금도 가능하시지요?”
“그때는 어렸을 때지. 지금은 그때보다 더 잘 펼쳐.”
담수련은 당차게 대답했다.
악불군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제법 커다란 바위를 발견하자 그쪽으로 갔다.
“이 바위에 바짝 붙어서 진을 펼치십시오.”
“요 정도 두께에 한 자짜리 대나무 네 개, 두 자짜리 다섯 개 세 자짜리 두 개만 준비해 줘.”
주위가 대나무 밭이니 그녀가 말한 것을 준비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소군도 이번 기회에 알아 둬. 모두 반 자 깊이로 찔러야 해.”
“예.”
“그럼 여기에 두 자짜리. 그리고…….”
담수련이 가르치는 것을 따라 대나무를 땅에 박던 악불군은 마지막 대나무를 박자 담수련의 모습이 사라지자 눈이 커졌다.
어렸을 때는 무슨 마술이라도 펼치는 줄 알았다.
이후 담수련에게 진법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큰 흥미를 못 느꼈기에 금세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정말 신묘한 수법이 아닐 수 없었다.
‘진법에 대해 아가씨께 좀 배워둬야겠구나. 써먹을 데가 아주 많을 것 같아.’
악불군은 진의 주변을 살피더니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륭검보에서 본 자세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몸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천륭검보를 행하는 그의 모습은 예전과 너무 달랐다.
전에는 그가 천륭검보를 수련할 때의 모습이 괴상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세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전혀 이상함은 느낄 수 없었다.
이각이 넘도록 몸을 풀던 악불군은 적들이 거의 다 와 가는 것을 느끼자 수련을 멈추고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도비류가 삼십 명이 넘는 마룡흑영단을 이끌고 그 앞에 도착했다.
“정말 네놈이었어?”
사도비류는 검을 들고 서 있는 악불군을 보자 놀라면서도 아주 잘 걸렸다는 듯 물었다.
그동안 들은 마부의 무공 실력과 살수들을 제거한 현장을 보며 악불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사도비류의 얼굴을 가로지른 자상을 보자 누군지 즉각 눈치챘다.
“이제 보니 아가씨를 납치하려고 한 치한이 소가주님이셨군요?”
“치한? 이, 이놈이! 그래 곧 제발 죽여 달라고 내 앞에서 빌게 해 주지.”
말을 마친 사도비류는 악불군의 주위를 살피더니 안색이 확 변했다.
“담수련은 어디다 숨겨 놓았느냐?”
“여인을 납치하려고 쥐새끼처럼 남의 담이나 몰래 넘는 소인이, 무슨 자격으로 아가씨에 대해 묻는 것이오!”
“뭐하는 거냐! 저놈을 빨리 제압해서 내 앞에 무릎 꿇려라!”
사도비류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은 악불군의 앞을 학이 날개를 펼치듯 타원형으로 섰다.
맨 앞줄에 선 열 명은 검을 높이 들었고, 그 뒤줄 선 열 명은 바닥에 엎드릴 듯 바짝 몸을 낮춘 후 도를 앞으로 내밀고는 앞줄에 선 무사 다리 사이로 악불군을 노려보았다.
악불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들이 풍기는 압력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가주님께서 말씀하신 합격진인가?’
악불군은 처음 보는 합격진(合擊陣) 공격에 잠시 긴장했다.
담무룡은 무림인들에게 가장 피해야 할 싸움이 합격진을 펼치는 자들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악불군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