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73화 (73/472)

<천검지애 73화>

73화. 충돌(2)

‘빈틈이 없다?’

악불군은 그들의 진형을 살피며 선공을 펼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포기하고 자세를 바꿨다.

그런데 그도 아직 자각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었다.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바꾼 그 자세가 방어 자세였다는 사실이었다.

‘흥! 잠룡세가의 검식 중 하나를 얻어 배운 모양이군!’

사도비류는 처음 보는 악불군의 기수검식에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들어 보지도 못한 검식이라면 대단할 리가 없었다. 거기다 잠룡세가는 검가가 아니었다.

“뭐하는 거냐! 빨리 공격해!”

사도비류는 수하들이 공격을 하지 않자 커다랗게 소리쳤다.

[일진 왼쪽부터 공격!]

사도비류의 외침을 들은 진의 축을 담당하는 대주가 일진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사실 그는 당장 공격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진을 발동한 이상 처음 타격점은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악불군이 자세를 취하자 어디부터 공격을 하라고 할지를 찾아내지 못해서 시도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사도비류의 재촉에 다급히 내린 명령은 진의 위력을 반감시키고 말았다.

악불군은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도를 교묘하게 빠지며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곧 공격을 포기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납작 엎드려 공격의 기회를 보던 이진이 악불군의 하체를 공격해 왔기 때문이었다.

챙! 챙! 챙!

물러났던 악불군은 그 찰나의 순간에도 허점을 보이는 자를 향해 검을 찔러 갔다.

하지만 다시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도를 보자 또다시 공격을 포기하고 도를 막았다.

‘보법도 아니고 아주 단순한 움직임인데 공수(攻守)가 완벽하고 전환이 빨라…….’

악불군은 처음 보는 합격진의 특이함을 발견하자 그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주시했다.

우선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아는 것은 결투에서 아주 중요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그들의 공격에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들 개개인의 무공은 전에 싸웠던 어찰단의 무인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상대하기는 그들보다 훨씬 어려웠다.

공격을 막아 내고 반격을 하려고 하면 좌우 밑까지 연쇄 공격이 연환적으로 들어와 공격한 자를 보호했다.

그들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마치 모든 움직임이 한 초식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육두팔비(六頭八臂)와 싸우는 것 같군.’

쉴 새 없이 공격하는 마룡흑영단과 간신히 막아 내고 있는 듯한 악불군.

누가 보아도 악불군이 금방 당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공격 덕에 악불군의 천륭검보의 이해가 한층 발전하고 있었다. 수많은 자세를 취하며 놈들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어떤 공격에 어떤 자세가 가장 방어가 맞는지를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놈이 정녕 일 년 전에 보았던 그놈이란 말인가……?’

싸우는 장면을 주시하고 있던 사도비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룡흑영단의 합격진은 그조차도 상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마룡세가가 자랑하는 최고의 무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노려보던 사도비류는 자신을 호위하고 있는 수하들을 보며 소리쳤다.

“너희도 같이 공격해!”

“예!”

호위 무사들의 무공은 더 높았다. 하지만 이미 악불군은 그들의 공격 방식에 적응하고 있었다. 천륭검보가 괜히 최고의 검보로 회자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으윽!”

누군가의 침음성이 터졌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한곳에 허점이 나타나면서 합격진은 너무 어이없게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악!”

챙! 챙!

펑!

비명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심지어 일장 가까이 날아가 땅에 털퍼덕 떨어지는 자까지…….

호위 무사들이 급히 합세를 했지만 한번 무너진 합격진은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았다.

이각이나 고전하던 악불군은 진의 약점을 찾자마자 우위를 점했고, 그들을 물러나게 하는 데는 반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미 죽은 사람은 열 명이 넘었고, 더 이상 싸움을 할 수 없을 만큼 중상을 입은 자도 일곱 명이었다.

피를 흘릴 정도의 자상을 입은 자까지 합치면 모두가 부상을 입었다고 할 수 있었다.

사도비류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극도로 분노한 것이었다.

“이놈!”

사도비류는 몸을 날리며 품에서 뭔가를 빼서 던졌다.

마룡세가가 자랑스러워하는 암기술이었다.

암기는 놀랍게도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리며 악불군의 전신을 향해 날아갔다.

누구라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은 상황……

그러나 악불군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날아오는 암기를 검으로 쳐 냈다. 실로 놀라운 빠르기였다. 하지만 악불군의 강호 경험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검에 맞은 암기들은 그 자리에서 터지며 뿌연 가루를 악불군의 전신에 덮어 버렸다.

악불군은 급히 눈을 감고 호흡을 멈췄으나 약간의 가루를 흡입하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순간 악불군의 전신을 향해 남은 수하들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코로 가루를 흡입한 악불군은 가슴속이 불이라도 붙은 듯 뜨거워지자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뜨거운 기가 퍼지는 것을 막았다. 흡입한 것이 무슨 독인지는 모르지만 대단히 지독하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 명이 넘는 마룡흑영단의 공격, 이미 흡입한 이름 모를 독, 거기다 눈까지 감고 있었으니 실로 악불군에게는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위기였다.

“으악!”

“악!”

악불군에게 달려든 마룡흑영단의 단원 네 명이 악불군의 검에 치명상을 입고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도저히 저항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네 명이나 제거한 것은 실로 대단한 반격이었지만, 거기까지였다.

탕! 탁! 타탁……!

마룡흑영단 단원의 두 개의 도가 악불군의 어깨와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으…….”

악불군은 침음성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그의 어깨와 다리의 옷은 길게 잘려 펄럭거렸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악불군이 물러나며 보인 허점을 사도비류는 놓치지 않았다.

그의 허리에서 날카로운 쇠침이 촘촘히 박힌 두정곤(頭釘棍)을 빼더니 악불군의 가슴을 내려쳤다.

사도비류의 내공이 가득 담긴 두정곤의 위력은 커다란 바위라도 그대로 박살 낼 정도로 컸다.

쾅!

악불군은 엄청난 충격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

“소군!”

담수련이 펼친 진은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소리는 양쪽 다 단절이 되어 소통이 불가능했다.

악불군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담수련이었지만, 악불군이 위험에 처하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듯 소리친 것이다.

당장 진을 해제한 뒤 뛰어 나가고 싶었지만, 그녀의 냉철한 머리는 그게 오히려 악불군에게 안 좋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저히 들을 수 없는 담수련의 처절한 외침을 악불군은 들었다. 물론 실지로 들렸는지 환청인지는 누구도 몰랐다.

‘정신 차려라, 악불군! 내가 무너지면 아가씨께서 슬퍼하신다.’

아찔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은 악불군이 눈을 뜨자, 놀란 것은 사도비류였다.

분명 자신의 수하들의 도에 맞은 악불군의 팔과 다리는 옷은 찢어졌지만 피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그의 두정곤에 맞은 가슴은 그대로 파괴되며 갈가리 찢겨야 했다. 하지만 악불군은 입으로는 피를 살짝 내비쳤지만 몸의 어디에서도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이놈! 죽어라!”

사도비류는 두정곤을 높이 쳐들고는 이번에는 악불군의 머리를 겨냥하여 내려쳤다.

순간 악불군이 자세를 기묘하게 틀며 소리쳤다.

“회(廻)!”

휘잉!

악불군의 손을 벗어난 검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회전을 하며 사도비류를 향해 날아갔다.

‘이, 이게 뭐야? 어떻게 검이 저렇게 돌지……?’

악불군을 향해 두정곤을 내려치던 사도비류는, 악불군의 검이 마치 륜처럼 회전을 하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곤을 휘둘렀다.

검이 회전을 하며 내는 소리가 너무 살벌해 감히 그대로 뚫고 지나갈 엄두를 못 낸 것이다.

채채챙챙챙……!

두정곤에 막힌 천륭검은 튕겨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회전을 하며 귀가 찢어질 듯한 타격음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러더니 결국 두정곤을 잘라 버리고는 사도비류의 가슴을 후벼 팠고, 그제야 악불군의 손으로 돌아갔다.

“내, 내가 버러지 같은 네놈에게…….”

사도비류는 피가 콸콸 쏟아지는 가슴을 보자 급히 지혈을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몸이 잘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위력이었지만, 사도비류의 호신강기가 그를 죽음에서 구해 준 것이었다.

살아남은 수하들은 후다닥 사도비류의 앞으로 달려가더니 급히 그를 업었다.

“소가주님께서 중상을 입으셨다. 우선 오늘은 후퇴한다!”

소리친 그가 몸을 날리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을 부축하고는 그 뒤를 따라 사라졌다.

하지만 십여 구가 넘는 시신들은 그대로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소군!”

모두가 사라지자 진이 열리며 담수련이 뛰어 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아가씨.”

“말하지 마. 많이 아팠지?”

그녀는 급히 어깨를 살폈다.

“괜찮습니다. 가주님께서 철포삼을 제게 시술해 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악불군이 미소를 지며 일어나자 담수련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악불군의 목을 껴안았다.

“난 소군이 죽는 줄 알고 안에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알아?”

악불군의 담수련이 얼굴을 파묻은 자신의 가슴에서 따듯한 물기를 느끼자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급히 말했다.

“전 아가씨 두고 혼자 절대로 안 죽습니다. 아가씨만 옆에 계시면 전 불사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둘은 그 자세로 말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과 달라진 것은, 이번에는 악불군이 손으로 그녀를 살포시 감싸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소가주님!”

사도비류가 죽림으로 사라지고 곧이어 도착한 태진성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악양루 삼 층에 올라 전경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은명신군이 뭔가 놀란 표정으로 뛰어올라왔다.

“찾아냈느냐?”

“사도 소가주가 우측에 보이는 죽림 안에서 방금 큰 상처를 입고 수하들에게 업혀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사도비류가 큰 상처를 입어? 확실한 거냐?”

태진성의 눈이 커졌다.

“악양루 주변을 뒤지던 수하들이 직접 보았다고 하니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양 포구에서 사도 소가주는 삼십 명 가까운 수하를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소가주를 보호하면서 나온 자는 십여 명에 불과했고, 그들 역시 온몸에 피가 묻어 있는 모습이 멀쩡한 것 같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죽림이면 저곳을 말하는 것이냐?”

태진성은 한쪽을 보며 물었다.

“예, 저 죽림입니다.”

“담수련이 저곳으로 들어간 것은 맞느냐?”

“그것까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태진성의 얼굴에 살짝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삼십여 명의 수하라면 지금 그가 데리고 있는 수하들과 비슷했다.

거기다 자신과 비슷한 무공을 지닌 사도비류까지 중상을 입었다면, 죽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 될 수도 있었다.

태진성이 잠시 말이 없자 은명진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가주님, 죽림 안에 담수련이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렇다면 소가주님께서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둘러서 말하는 은명진군을 본 태진성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겠지. 은명진군.”

“예.”

“죽림 안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 사도비류가 어떻게 다친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라.”

그때 태진성의 호위를 책임진 태룡무단의 대주인 허설필이 올라왔다.

“소가주님, 담수련이 맡긴 것으로 추정되는 마차가 일각 전에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럼 지금 저 죽림 안에 담수련이 없다는 것이 아니냐?”

태진성의 반문에 은명진군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지금 잠룡세가에 사도 소가주와 마룡흑영단 삼십여 명을 물리칠 고수는 담 가주밖에 없습니다.”

“담 가주는 여기에 없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허 대주.”

“예.”

“그런 의문은 그놈을 잡은 후에 한다. 네가 직접 태룡무단 이십 명을 데리고 마차를 추적해라. 만약 담수련이 타고 있다면 신호탄을 올리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허설필은 허리를 숙이고는 악양루를 그대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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