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80화 (80/472)

<천검지애 80화>

80화. 담무룡(1)

악불군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불청객이 또 온 것 같습니다.”

“아까 그렇게 당하고 또?”

불청객이 나타났다는 말에 담수련은 아미를 찌푸렸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색한 상황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허설필이 이끄는 태룡무단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제가 분명 백 장 안으로 나를 쫓으면 죽인다고 했는데, 겁들이 없으시군요.”

“닥쳐라! 우린 태룡세가의 태룡무단이다. 어렵게 일을 만들면 너만 고통을 받는다. 순순히 우리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사성이 겁나서 태룡세가의 가복도 못 입고 변복을 하고 온 분이 쓸데없는 허세를 부르시는군요. 이러다 장사성의 무인들이 보면 어쩌시려고요?”

“이, 이놈이 감히!”

챙!

챙! 챙! 챙……!

허설필이 악불군의 말에 분노한 듯 무기를 빼내자 수하들도 무기를 빼더니 악불군과 담수련의 주위를 포위했다.

“제가 강호에 나와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한번 한 말은 지킨다는 것이지요.”

말을 마친 악불군의 손에 어느새 검이 잡혀 있었다.

“쳐라!”

허설필은 급히 소리쳤다. 악불군이 공격하려고 하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오룡세가의 정예 무력 집단의 대주답게 그의 판단은 정확했고 대응도 빨랐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더 빠른 것에게는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으아악!”

“아악!”

순식간에 다섯 명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이게……?”

단 두 수 만에 수하 십여 명이 죽고 나머지도 전의를 잃은 듯 급급히 뒤로 물러서자, 허설필은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제가 그래도 무정한 사람은 아니라 이따금은 기회를 줍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살려는 드리지요.”

만약 악불군이 계속 공격을 했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허설필은 수하들을 슬쩍 살폈다.

그의 수하들은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는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아마 다른 전투에서 자신의 동료가 이렇게 죽었다면 죽기 살기로 덤볐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투지도 상대가 되어야 생기는 법이었다. 악불군을 향해 무기를 향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발끝이 향한 곳은 악불군을 묘하게 비껴가 있었다. 여차하면 언제든 도망갈 생각으로 보였다.

‘오는 도중 보았던 철룡세가 놈들의 시신도 이놈에게 당한 것이었구나…….’

허설필은 더 이상 버티는 것은 개죽음밖에 안 된다고 판단을 했는지 수하들을 보며 소리쳤다.

“가자!”

허설필이 악불군과 그의 등 뒤에 있는 담수련을 잠시 노려보고는 몸을 날려 사라지자, 담수련이 좋아서 악불군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전에는 맨날 걱정했는데 이젠 좀 안심이 되네, 호호~ 그런데 아까처럼 또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절대 그런 상황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악불군은 담수련의 웃음에 기분이 좋은지 큰 소리를 쳤지만, 사실 아까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날지 안 날지는 그도 알 수는 없었다.

“소군, 본가의 육관을 나오면 이렇게 강해지는 거야?”

“강한 것 같습니까?”

악불군은 소군이 잡은 팔에 힘을 한 번 주면서 물었다.

“응, 정말 강한 것 같아.”

“가주님 덕분입니다. 육관을 나온 후 가주님께 특별 개인 수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문제는 있더군요.”

“문제? 무슨 문제?”

“제가 익힌 무공이 저보다 약한 자들에게는 진짜 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강한 자들에게는 아직 취약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까도 제가 너무 무리하게 내공을 올리면서 그랬던 것 같더군요.”

“그럼 이제부터 수위 조절 수련을 해.”

“저도 그러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내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게.”

담수련은 악불군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것에 더욱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

히이잉-!

그때 그들의 앞에 백설이 다른 말과 함께 나타났다. 그러고는 곧 악불군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마치 ‘저도 걱정했어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자, 가시죠.”

악불군은 슬며시 담수련의 손을 빼며 말했다. 사실 그녀가 팔짱을 낄 때부터 막아야 했지만, 그녀가 요즘 자꾸 서운해하는 것을 느끼고는 받아준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그대로 있는 것은 그녀에 대한 불경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담수련은 자신이 악불군의 팔을 껴안듯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자각한 듯 얼굴이 발개지며 급히 백설의 등에 올라탔다.

* * *

“후후후! 이 담무룡이 이렇게 사람을 못 볼 줄은 몰랐구나. 나갈 준비를 하라고 했더니 나를 공격해?”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시신으로 변해 늘어져 있는 마당.

온몸을 피로 목욕한 듯 벌게진 담무룡이 쌍월검을 들고 우뚝 서 있었다.

“가주님께서 무공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답을 하고 있는 자는 뜻밖에도 담무룡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국대광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에게 무기를 겨누고 포위하고 있는 자들은 거의 다 잠룡세가의 호법들과 정예 무사들이었다.

“국대광, 내가 그렇게 네게 못난 가주였더냐?”

“가주님께서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시세를 잘 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도 살 길을 찾은 것뿐입니다.”

국대광은 말에 얼굴을 굳힌 그는 다시 물었다.

“역귀혼은 어디 갔느냐?”

국대광의 표정이 이번에는 곤혹스럽게 변했다.

“역귀혼은 저희에게 합류를 하지 않아 제가 죽였습니다.”

“역귀혼은 이십 년 넘게 너와 친형제처럼 지내지 않았더냐?”

“부모 자식 간에도 생각이 다르면 죽이는 세상입니다.”

이어지는 대답에 담무룡의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나타났다.

“이제 보니 내가 정녕 아들놈보다도 못했구나.”

국대광의 답에, 평생을 최고의 자리만을 바라며 살아온 담무룡의 인생철학이 무너지고 있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생각이 다르면 죽이는 세상.

그것 역시, 그가 국대광에게 해 준 말이었다.

“반대하는 아이들은 다 죽였느냐?”

지금 그를 포위하고 있는 수하들은 잠룡세가 전체로 보면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었다.

“생각 외로 가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세가 외부를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독을 좀 썼지요.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제게 가르치신 분도 가주님 아니십니까?”

“그래, 내가 가르쳤지. 그래도 다른 놈들은 대공의 수하들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넌 좀 의외구나.”

“삼십여 년 전, 대공 전하께서는 대초원의 용사의 자식을 수십 명을 뽑아 교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룡세가의 가주들 눈에 띄도록 했습니다. 가주들의 취향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대공 전하이신지라 단번에 가주님께 발탁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국대광의 말에 담무룡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대공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친위대를 키워 왔는데, 이미 대공은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던가…….

“하하하! 대공에게 깨끗하게 당했군. 그럼 넌 중원인이 아니었구나?”

“원나라를 세운 대초원의 용사들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주님을 배신하는 데는 정말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

“네 말이 그다지 위안이 되지는 않는구나. 그런데 너야말로 나를 위해하려면 기회가 많았을 텐데 왜 지금까지 참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구나.”

“가주님을 어떻게든 구제해 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를 구제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니, 대단히 감동적이구나.”

말을 마친 담무룡은 주위를 둘러보며 포위하고 있는 수하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그러자 대부분은 눈길을 피하거나 고개를 돌렸고, 몇몇은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는 자들도 있었다.

“너희들만으로 나를 당할 수 있겠느냐?”

담무룡의 말에 모두는 서로를 보더니 국대광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방금까지 상전으로 모시던 분을 공격하는 것도 쉽지 않은 판에, 그는 천하가 인정한 십대고수에 드는 절대의 고수였다.

그들로서는 이러나저러나 죽을 상황에서, 성공만 하면 한몫 쥐어 준다는 직속상관의 명을 따른 것밖에 없었다.

“걱정 마라!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다.”

그때 방조위가 다섯 명의 호법을 데리고 나타났다.

잠룡세가의 호법이 총 열다섯 명이었다. 그런데 이미 와 있던 세 명과 지금 여섯을 합치면 호법들도 무려 아홉 명이나 배신을 한 것이다.

“방조위 너까지 배신했을 줄은 몰랐구나!”

“저도 가주님과 이런 식으로 마지막을 장식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전 오늘 아침까지는 끝까지 가주님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 왜 아침을 먹다가 체했느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담무룡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만큼 방조위의 성정을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희망을 잃을 정도로 큰 일이 아침에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그때 담무룡의 귀로 전음이 들려왔다.

[주군, 저를 믿으셔도 되고,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전음은 문창현의 것이었다.

[전부터 너에 대한 의심이 있었지만, 너이기에 살려 주었다. 너만은 의심만으로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를 이렇게 완벽하게 뒤통수칠 수 있는 계획을 꾸밀 수 있는 놈은 너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충성을 합니다. 제가 비록 대공의 수하로 시작했지만, 무공도 높지 않은 저의 진가를 알아내 군사로 중용하시고 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 주신 분은 주군이십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주군, 오늘 전격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대공이 직접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국대광을 비롯한 다른 호법들도 거역할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피하십시오. 서쪽으로 피할 수 있도록 제가 준비해 두었습니다. 부명산으로 가시면 재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재기?]

문창현의 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무룡은 비웃듯 한마디 하고는 국대광과 방조위를 보며 말했다.

“너희는 왜 덤비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냐? 기다리면 외부 원군이라도 온다고 하더냐?”

“가주님의 무공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우리가 이 정도로 어찌 가주님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저희의 임무는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입니다.”

“시간을 끌어? 너희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원군이 오기 전에 모두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느냐?”

“…….”

국대광과 방조위를 비롯한 몇 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담무룡의 무공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그들로서는 그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담무룡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도 너희들과 같은 처지였다면 너희들과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구나.”

말을 마친 담무룡의 신형이 갑자기 스르르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알겠느냐?”

놀란 방조위가 모두를 보고 물었지만, 누구도 담무룡이 사라진 방향을 알아낼 수 없었다.

방주위는 국대광을 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바로 앞에서 사라졌음에도 사라진 방향조차 그들이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담무룡의 무공이 그들의 예상보다 더 높다는 의미였다.

“애당초 우리로서는 가주님을 막는 것이 불가능이었군.”

“이렇게 그냥 가 주신 것만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베푼 배려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도망치지는 못하실 겁니다.”

말하는 국대광의 표정은 영 편치 않았다.

“가주님이다!”

그때 동쪽에서 큰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모두는 가주라는 말에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제야 몸을 나타낸 문창현은 담무룡이 사라진 서쪽 담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아마 그가 담무룡을 위해 머리를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터였다.

때 맞춰 동쪽에서 들려온 외침도 그가 준비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저를 믿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제 능력이 부족하여 주군을 이렇게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했으니, 제 죄는 죽음으로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건 그의 마지막 안간힘이었지만,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그가 아는 대공은 이미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할 것까지 짐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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