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94화>
94화. 사신곡(1)
담수련과 악불군이 생사교에 올라서고 겨우 한 걸음을 옮긴 순간.
휙-!
탕! 탕! 탕……!
옆과 위아래에서 튀어나온 창은 철봉으로 만들어져,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꼬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천륭검은 간단하게 모든 창을 무 자르듯 잘라 버렸다.
“와아~ 깜짝 놀랐네!”
순간 바로 앞까지 창이 다가오자 놀라 눈을 감았던 담수련이었다.
하나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자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창대를 보곤 악불군에게 물었다.
“소군, 솔직히 내가 무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금 소군의 무공은 좀 비상식적인 것 같아. 거기다 그때 피를 토한 이후에 더 강해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지금까지 악불군의 무공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갈수록 돋보이는 악불군의 능력에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 가주님 덕분입니다.”
“이미 소군이 그렇다니까 나도 믿어. 그런데 지금 소군의 무공은 수운 오라버니의 무공보다도 더 뛰어난 무공으로 보여. 아버지께서 수운 오라버니한테도 가르쳐 주지 않은 무공을 소군한테 가르쳐 준 거야?”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아는 담수련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악불군의 무공이 느는 속도는 담무룡조차 전혀 예상 못했을 만큼 빨랐다.
“가주님께서 누구도 아가씨를 건드리지 못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강해져야 합니다.”
“휴우~ 알았어.”
담수련도 악불군이 자신을 호위하는 와중에도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오로지 수련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악착같이 수련을 하는 이유가 오로지 자신 때문이라는 것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소군을 내게서 벗어나게 해 줘야 하는데, 내 욕심 때문에…….’
악불군이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담수련은 갑자기 가슴이 콱 메어 오는 것을 느꼈다.
“아가씨, 이만 가시지요.”
“응.”
담수련이 다시 앞장을 서자 악불군은 그녀의 등 뒤에 바짝 붙었다.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보다 빠르게 두 번째 함정이 발동되었다.
악불군은 담수련을 급히 안고는 회전했다. 사방에서 암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회전과 동시에 뿜어져 나온 검기는 악불군과 담수련의 주위를 완벽하게 차단해, 단 한 개의 암기도 가까이 오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악불군은 담수련을 안은 김에 그대로 통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 * *
조충병의 보고를 받은 후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 채광욱은 비상을 걸고 모든 수하들에게 전투 준비를 명했다.
“원주님, 그놈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 실수가 아닐까요?”
조충병의 말에 채광욱은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사신곡을 찾아다닌 놈이다. 이유를 알아 대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야. 그리고 고작 두 놈이야. 제법 고수라고는 하지만, 이 안에 들어온 이상 살아서는 못 나간다.”
그때 대주인 보탁현이 사색이 되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원주님, 생사교가 무너졌습니다.”
“뭐! 왜 생사교가 무너져?”
채광욱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남쪽이 본거지인 구천마성에서는 중앙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 사신곡에 대단히 큰돈을 들였다. 그중 사신교는 최소한 오룡세가의 무력 집단 하나 정도는 몰살시킬 생각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본격적으로 써 보지도 못하고 어이없게 무너졌다니, 채광욱이 그동안 이룩한 모든 공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자들이 생사천을 넘지 않고 생사교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 기관이 발동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관들을 모조리 파괴하더니, 아예 생사교 자체를 그대로 끊어 버렸다고 합니다.”
“다리를 끊어?”
“허곡의 말에 의하면 대단한 보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이이잇!”
채광욱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 자신이니, 그 책임 역시 온전히 자신이 짊어질 것이 자명했다.
“원주님, 그놈이 아주 중요한 놈이라면 생사교가 무너진 과오를 상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강한 놈이 갑자기 사신곡을 찾은 것부터 이상했어. 부원주!”
“예!”
“내가 직접 그놈을 제압하겠다. 가자.”
* * *
“소군, 아까 다리를 부숴 버린 초식은 이름이 뭐야?”
담수련은 아직도 놀람이 가시지 않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물었다. 지금 담수련은 악불군이 무공을 펼칠 때마다 계속 놀라고 있었다.
암기 공격을 받은 후 그녀를 안고 내달리던 악불군은, 갑자기 지붕에서 철판이 떨어지자 급히 검을 앞으로 내밀며 천륭검보의 한 자세를 펼쳤다.
왜 그 초식을 펼쳤는지는 그도 몰랐다.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타난 결과는 그조차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철판과 구조를 이루는 생사교의 벽까지 그 한 수로 갈기갈기 찢어 버린 것이다.
“저도 이름은 모릅니다. 굳이 말한다면 파(破)라고 할까요?”
그 초식이 그려진 그림의 위에 적혀 있는 글자가 바로 파였다.
“파(破)? 하긴 철판까지 찢어 버릴 정도의 위력이면 파(破)라는 명칭이 잘 어울리기는 하네.”
하나, 겨우 생사교 하나를 부쉈을 뿐 여전히 주위는 괴기스러웠고,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아가씨, 생각보다 이곳에 사람이 많습니다.”
“괜찮겠어?”
“아직 위험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아가씨를 안고 그대로 도망칠 것이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알았어.”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악불군의 주위로 수십여 명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악불군을 향해 무기를 겨눈 채 포위망을 촘촘히 구축했다.
그리고 잠시 후 포위망의 한 곳이 열리며 채광욱과 조충병이 나타났다.
“저놈들이냐?”
악불군과 담수련을 본 채광욱은 어이가 없다는 듯 보탁현을 보며 물었다.
“예.”
채광욱은 물론 조충병까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대단한 고수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채광욱의 눈이 악불군이 든 검으로 향했다. 무공이 아니라면, 악불군이 든 검이 쇠를 무 자르듯 하는 절세 보검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좋은 검을 가졌구나?”
채광욱은 무척 탐난다는 눈으로 천륭검을 보며 말했다.
“여기 책임자이십니까?”
“책임자? 그래, 내가 바로 책임자다. 무림에서 남의 세력권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는 알고 있겠지?”
위압적으로 말하는 채광욱을 가만히 보던 담수련이 슬쩍 끼어들었다.
“남의 세력이요? 당신들은 천하가 금하는 독인을 제조했어요. 당신들이야말로 그 죄가 하늘에 닿고 있다는 것을 모르나요?”
담수련의 말에 채광욱과 조충병은 화들짝 놀랐다. 독인을 제조하고 있다는 것은 최고 극비 중의 극비로, 이곳에서도 최고 간부들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모든 아귀가 맞춰지는 듯했다. 강하지 않은 무공으로 여기까지 온 것하며, 또 사신곡을 찾던 둘의 모습.
이미 알고 온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채광욱의 반문에 담수련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냥 짐작이 맞나 싶어 던진 미끼였지만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설마 했더니 진짜였군요. 소군.”
“예!”
“전부 죽일 수 있어?”
두 번째 듣는, 전부 죽이라는 담수련의 명.
“전부입니까?”
“이자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자들이야. 내 짐작이 맞다면 이자들은 사신곡의 이름을 바꾼 후 수백 명 이상을 죽인 살귀들이야.”
아주 냉정한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가 아는 그녀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일 수 없어?”
“아닙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의 검이 그의 손을 벗어났다.
천륭검보에 있는 비의 수법이었다.
“저, 저, 저게 뭐야?”
악불군의 검이 살아 있는 듯 공중을 날아다니며 수하들의 무차별적으로 제거해 나가자, 채광욱은 경악을 한 듯 말까지 더듬었다.
“원주님, 이기어검 같습니다.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빨리 피하십시오!”
단숨에 삼십여 명을 제거한 검이 악불군의 손에 회수되자, 조충병은 급히 채광욱에게 소리쳤다.
비의 수법으로 기선을 제압한 악불군의 몸이 사라졌다. 환영전궁보가 펼쳐진 것이다.
“도망쳐라!”
채광욱은 수하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자 급히 소리치며 자신도 몸을 날렸다.
무림에 몸담은 지 어언 사십 년.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을 친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해!”
백여 명이 몰려왔건만 살아서 도망간 자들은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 이건 싸움이 아니라 거의 도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고 있던 담수련은 더 이상 보기 어려운지 소리쳤다.
“괜찮으십니까?”
담수련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 마치 쓰러질 것 같자, 악불군이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소군, 내가 이상해.”
“뭐가 말입니까?”
“이 많은 사람을 내가 죽이라고 했잖아. 아무래도 내가 점점 미쳐 가는 거 아닌가 싶어.”
“아닙니다. 아가씨께서는 지금 악을 징치하라고 하신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나 좀 잠시 안아 줘.”
담수련이 신형이 무너질 것 같자, 악불군은 급히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순간 악불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의 몸에 온기가 전혀 없었다. 만약 그녀를 보지 않고 피부만 만졌다면 시체를 만졌다고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악불군은 다급한 마음에 그녀를 꼭 껴안고는 진기를 불어넣었다.
상황이야 어떻든 지금 수십여 명의 시체가 널려 있는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두 남녀가 안고 있는 모습은 주위의 괴기한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 * *
간신히 도망친 채광욱이 달려간 곳은 밖이 아니라 독인을 만들고 있던 동굴 안이었다.
“독인을 다 깨워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채광욱의 당황한 모습에 놀란 수의원이었지만, 이어지는 그의 명에 더욱 놀라며 말했다.
“예? 원주님, 지금 독인들은 미완성입니다. 지금 깨우면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죽일 것입니다.”
“컥!”
하지만 말하던 수의원은 채광욱의 손에 목이 꺾여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감히 내 말을 토를 달아! 당장 깨워라!”
남은 의원들은 수의원이 죽는 것을 보고서, 독수에 잠긴 채 관 속에 누워 있는 시신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곧 삼십 구가 넘는 독인이 삐걱삐걱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주님, 이들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조건 공격할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 나가야 합니다.”
“이놈들을 이용해서 독인을 그놈에게 보내라.”
채광욱은 보탁현에게 명을 내리고는 급히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 * *
“내가 너무 빨리 죽이라고 해서, 새편작에 대해 알아보지 못해서 어떡하지?”
마음의 안정을 찾은 담수련은 약간은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알아내지 못한다 해도,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자들을 징치하고 장소까지 없애 버리면 그 자체로 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다만 뭐?”
“아까와 같은 현상이 자꾸 벌어지면 옥체를 상할 수도 있으니, 화가 나시더라도 최대한 참으십시오.”
“알았어. 아까는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아.”
담수련도 아까와 같은 현상이 또 벌어지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어려서부터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살아서인지, 자신이 죽는 것에 대해 그다지 연연하는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근래 악불군과 같이 다니면서, 조금만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 있었다.
“아아악!”
“살려 줘!”
그때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거기다 연기와 불길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비명 소리지? 도망을 치는 와중에 불을 지른다는 것은, 이곳의 증거를 인멸하려 했단 의미인데…….”
담수련은 의아한 듯 중얼거리더니 악불군을 보며 말했다.
“소군, 나 안고 안으로 빨리 가 봐. 이게 다가 아니었던 것 같아.”
“예.”
악불군은 즉시 담수련을 안고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안쪽에 도착한 둘의 표정은 또다시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