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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103화 (103/472)

<천검지애 103화>

103화. 구천마성의 마인들(2)

챙!

상대가 경계를 할 틈도 없이 전광석화 같이 튀어 나간 악불군의 검을 그는 한 번에 튕겨 냈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지금까지 악불군의 비의 수법을 이렇게 간단하게 막아 낸 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사망염귀의 얼굴이 굳어졌다. 악불군이 자세를 바꾸자 튕겨나간 검이 방향을 바꾸며 그를 다시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챙! 챙! 챙……!

순식간에 네다섯 번이 넘는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네놈이 어떻게 이기어검을?”

악불군을 공격하기는커녕 계속 날아다니며 자신을 공격하는 검을 막기에 급급하던 사망염귀의 입에서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기어검이라는 말에 모두들 싸움이 잠시 멈추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검이 혼자 날아다니며 사망염귀를 공격하는 것을 보자 모두의 눈이 커졌다.

무림인으로서 말로만 듣던 이기어검을 보았다는 자체가 하나의 경이로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은 찰나였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 중에 다른 곳에 오래 신경 쓸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악불군의 등장으로 싸움의 양상은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다. 유리하던 구천마성이 졸지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우성을 여유 있게 상대하던 혈염구혼조차, 철기단주의 가세와 악불군의 이기어검에 당황했는지 밀리고 있었다.

‘이거 진짜 이기어검인가?’

악불군의 계속되는 공격을 막아 가던 사망염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명 이기어검 같은데, 그가 알고 있는 이기어검과 다른 점이 있었다.

이기어검은 공중을 날아다니며 강력한 위력으로 상대를 꿰뚫어 버린다. 하지만 공력의 소모가 너무 빨라, 비슷한 무공을 지닌 사람에게는 절대 사용을 하지 않는 수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악불군이 검을 손으로 잡고 초식을 펼치는 것처럼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망염귀는 악불군을 슬쩍 쳐다보았다.

이기어검이라면 악불군은 손을 내밀고 내공을 이용하여 검을 조종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본 악불군은 그냥 자세를 바꿔 가며 초식을 허공에 대고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사망염귀는 구천마황에게 검황의 무공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악불군이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그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만약 악불군이 사용하는 무공이 정녕 천륭검가의 무공이라면……?

순간적으로 일어난 마음의 동요는 허점을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악불군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손을 쭉 뻗으며 사망염귀에게 달려간 그는 재빨리 검을 잡으며 섬(閃)의 수법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사망염귀는 자신의 가슴을 지나가는 섬뜩한 느낌에 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 사망염귀가 너 같은 애송이한…….”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그의 상반신이 비스듬하게 미끄러지며 둘로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사망염귀까지 죽자 혈염구혼은 전력으로 장을 후려쳐 화우성과 철기단주를 뒤로 물러나게 한 후, 훌쩍 몸을 날려 뒤로 물러섰다.

“네놈의 정체가 뭐냐?”

“악불군이라는 무명소졸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라는 담수련의 말을 확실하게 수행하는 악불군이었다.

“네놈은 감히 구천마성을 건드렸다. 이제 네게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수하들에게 후퇴 명령도 내리지 않고 혼자 몸을 날려 도망을 쳤다.

악불군은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저었고, 화우성과 철기단주는 그를 살려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뒤를 급히 쫓아갔다.

백 장 정도 달려갔지만 이미 어둠이 덮은 숲으로 사라진 그를 잡을 수는 없었다.

“구천마성, 내 필히 오늘의 원한은 잊지 않을 것이다!”

앞쪽을 향해 커다랗게 소리친 화우성은, 그제야 악불군이 생각이 났는지 급히 몸을 돌려 전장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악불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형 대주!”

“예!”

“우리를 도운 대협은 어디 갔느냐?”

“저는 싸우는 데 바빠 보지 못했습니다.”

구천마성의 수하들은 네 명의 호법이 없이는 애당초 화룡철기단의 상대가 안 됐다.

거기다 세 명의 호법이 죽고 혈염구혼까지 도망을 가자 그들도 사기를 잃고 도망을 치기 시작한 터라, 전장의 싸움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화우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의 도움이면 은인으로 칭송을 받을 만한 큰일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사도 안 받고 그냥 사라진단 말인가……

잠시 생각하던 화우성은 다시 전장을 살피더니 크게 소리쳤다.

“철기단주.”

“예!”

“귀령문 놈들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 당장 가서 도와라. 쥐새끼 한 마리 살려 두지 마라. 감히 화령세가를 건드린 벌이 얼마나 큰지 천하에 알릴 것이다.”

철기단주가 수하들을 이끌고 안으로 사라지자 화우성은 숲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악불군…….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 * *

“아가씨, 이제 마음이 편하십니까?”

어느새 담수련을 업고 송화산을 빠져나온 악불군은 한적한 곳에 도착하자 속도를 줄이고는 슬쩍 물어보았다.

“별로 안 편해.”

“아직 걸리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소군이 오늘 구천마성의 악도들을 죽일 때 대부분 삼십 초 이상 겨눴어. 그건 그들이 그만큼 고수라는 얘기인데, 만약 네 명이 합공을 했다면 소군이 이길 수 있었겠어?”

담수련의 말은 소군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

“왜 아무 말이 없어?”

“네 명이 합공을 했다면 제가 이기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나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무래도 적들의 수는 많고 소군은 혼자인데, 거기다 나 같은 짐까지 있으니까…….”

“무슨 그런 말을 하십니까? 아가씨께서 어찌 제게 짐이 되겠습니까?”

“합공을 당할 경우를 말하는 거야. 강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 소군이 나를 진 안에 집어넣고 싸우는 것도 그런 이유잖아. 그런데 적들 중 진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있다면 어쩔 거야? 나를 보호하느라 제대로 싸울 수 있겠어?”

“아가씨께서 제 옆에 있는 이상, 저는 어떤 적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담수련은 악불군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고전한다고 느꼈다. 자신이 악불군을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해졌다.

악불군이 다치는 것조차 너무 마음이 아픈 그녀였다. 그런데 만약 자신 때문에 악불군이 다친다면 더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악불군에게 더욱 강해져야 할 동기 부여가 되고 있었다.

‘그래,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무공만으로는 좀 부족해.’

천륭검보의 무공은 분명 최고의 절기였다. 하지만 일대일 싸움이 아닌 수십 명의 합공을 받아 내야 할 상황을 상정했을 때, 단점이 있었다.

특히 그 혼자라면 몰라도 담수련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외우고 싶지 않았지만 타고난 암기력으로 저절로 외워진 배교비전의 무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천하에서 가장 괴이악랄하고 사술에 가까운 무공들이 태반이었지만, 지금의 그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해법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무공들이 존재했다.

악불군은 담수련의 얼굴이 자신의 등에 닿는 것을 느끼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왜 멈춰?”

악불군이 갑자기 서자 담수련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이제 백설이를 부르려고요. 이제 내리셔야겠습니다.”

“따뜻해서 좋았는데…….”

악불군은 담수련을 내려놓으며 급히 말했지만, 그의 얼굴이 약간 벌게진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사방이 어두워 담수련이 전혀 눈치를 못 챘다는 사실이었다.

* * *

반란군 중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던 유복통이 대공의 지원을 받은 차칸 테무르에게 대패를 하며 몰락했고, 주원장이 모시던 곽자흥이 병사하면서 드디어 주원장이 군벌의 우두머리로 서게 됐다.

이제 천하는 군소군벌들이 거의 정리되면서 원나라와 주원장, 진우량 그리고 장사성의 사파전으로 압축되는 형국이었다.

그러자 무림도 거기에 맞춰 발 빠르게 이합집산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파들조차 지지하는 세력이 어디냐에 따라 반목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 무림에 떠오르는 신성 한 명이 있었다.

악불군.

사문도 출신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한 무인.

이기어검을 사용하고 소면음마와 백사호리 그리고 분명랑군을 제거하면서 순식간에 무림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청년 협객.

그에게는 천호무적검(天護無敵劍)이라는 명호가 붙었다. 그가 천상신녀로 불리는 절세의 미녀를 보호한다는 것이 소문으로 파지면서 붙은 명호였다.

처음 강호에 나온 무인들이 무림인으로 인정을 받는 그 시작이, 바로 명호를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경험과 싸움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으며 거기에 걸맞은 명호가 새롭게 붙는다.

무림 역사상 이름이 알려진 지 한 달 남짓 만에 생긴 첫 명호에 무적이라는 칭호가 들어가는 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실로 대단한 평가를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더욱 많은 적이 생겼다. 그중 구천마성과 원한을 맺은 것은 치명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언니, 소군의 이름이 악불군 맞지요?”

“맞아.”

“지금 악불군이라는 이름이 엄청 퍼지고 있어요.”

“왜?”

천화궁주의 말에 종리화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악불군이 소면음마를 죽이고…….”

천화궁주는 퍼지고 있는 소문을 자세히 보고했다.

“이기어검을 사용했다고?”

다 듣고 난 종리화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랬다고 하네요.”

“그럼 소군 아니야. 아무리 발전이 빨라도, 내가 나올 때의 무공 수위가 있는데…….”

종리화는 부정을 하면서도 진짜 악불군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는 언니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 악불군이 천상신녀라 불리는 천하미녀를 호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명호가…… 맞아! 천호무적검이라 불린다고 했어요.”

“천상신녀라고 불릴 정도의 미녀라면 아가씨가 맞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무공이? 그리고 그들이 나타난 곳이 강서의 송화산이라고 했잖아?”

“강서에서 제법 큰소리치던 귀령문이 있는 곳이에요. 지금은 화룡세가에게 멸문당했지만.”

“소군이라면 아가씨를 모시고 뜬금없이 강서 남부로 갈 리가 없잖아?”

악불군이 담수련을 데리고 온다면 약속된 세 곳의 장소로 가야 했다. 악양에서 접선에 실패했으니 다음 장소로 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강서 남부는 너무 뜻밖의 장소였다.

“하긴, 아닌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왜?”

“천호무적검이 소군이라면 지금 굉장히 위험해요. 지금 어찰단과 오룡세가에서도 수배전단까지 뿌려 가며 잡으려고 하는데, 구천마성까지 원한을 졌으니 오래 버틸 수 있겠어요? 거기다 아이들 말이, 주루에 온 무림인들이 천상신녀가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런 고수가 호위를 서냐며 한번 봐야겠다고 하더래요. 미녀는 무림인들이 비급만큼이나 소유하기를 원하잖아요?”

천화궁주의 말을 구구절절 틀린 곳이 없었다.

“더 이상 조심만 할 수는 없겠다. 서령아.”

“예, 언니.”

“사화가 지금 악양에 있다고 했지?”

“예. 정말 간신히 알아냈는데 좀 이상한 것이, 남개방과 장사성의 군사들이 보호해 주고 있다네요.”

“그 아이들하고 접선이 가능하겠니?”

“눈이 너무 많다고 하더라고요. 잘못해서 한 명만 걸려도 항주처럼 모든 조직이 그대로 날아갈 수 있어요.”

천화궁주의 말에 종리화는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내가 직접 가겠다. 이대로는 애가 타서 안 되겠어.”

“언니, 담 가주님의 부탁을 생각하세요. 지금 장강 이남에서 원나라가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어찰단과 오룡세가의 첩자들은 여전히 사방에 있어요. 언니가 얼마나 담수련을 아끼는지는 알지만,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천화궁주의 말에 종리화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녀가 돌볼 사람은 담수련만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담무룡에게 담수운은 담수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그 사실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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