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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106화 (106/472)

<천검지애 106화>

106화. 협행(1)

광동성의 마적들은 감숙의 마적과 더불어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그들은 한 고을을 공격하면 여인들은 모두 납치하고 남자들은 모두 죽이며 가축과 식량은 모조리 가져가서 완전 초토화를 시켰다.

원나라 관부가 무력화된 지금은 각 지역을 통치하는 호족 군벌들이 마적들을 막거나 소탕해야 했다.

하나 한 치 앞만 보는 그들은, 마적과의 싸움에 자신들의 전력을 잃는 것이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가난한 민초들은 기댈 곳이 전혀 없었다.

“으하하하! 이번 계집들은 시골구석에 있는 계집들치고는 꽤 괜찮구나.”

“두목님, 소도 두 마리나 있었고, 닭과 양들도 꽤 됩니다. 그런 곳을 딴 놈들이 먼저 치지 않은 것을 보면 저희가 운이 좋은 모양입니다.”

혈마단(血馬團)이라고 스스로 이름까지 짓고 마적질을 하는 그들은 한창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모두는 삶은 닭들을 손에 쥐고 뜯고 있었다.

방금 수십 명을 죽이고 온 자들이었지만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커다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었다.

“여자다!”

그때 경계를 서던 놈이 커다랗게 소리쳤다.

하얀 백마를 타고 달려오는 한 여인.

얼굴은 면사로 가려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냥 느끼기에도 아름다울 것 같은 여인, 담수련이었다.

여자란 말에 급히 달려온 두목은 담수련을 보자마자 즉시 소리쳤다.

“저 계집을 잡아라.”

두목의 말이 떨어지자 수하들이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듯 신나서 말을 타고는 달릴 준비를 했다.

그들의 눈에는 옆에서 같이 달려오고 있는 악불군은 보이지도 않는 듯했다.

“두목! 잡을 것도 없겠는데요?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담수련을 잡으러 달려갈 준비를 하던 부두목이 두목을 보며 말했다.

마적을 보면 누구나 오던 길도 돌려 도망을 친다. 하지만 담수련은 그들을 향해 직진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우리를 못 본 모양이지.”

두목은 혀로 입술을 훔치며 말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약간의 나무들만 있는 평지였다.

당연히 말을 타고 경계를 서는 수하들을 못 볼 리 없었다. 하지만 두목은 지금 담수련의 자태에 정신이 없어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최악의 결과로 돌아가고 말았다.

담수련이 가까이 오자 마적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포위를 하고는 그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오늘 정말 운이 좋은 날인가 보군. 가만히 있는데도 이런 보물이 굴러 들어오니 말이다. 그 면사 좀 치워 보지 않겠느냐? 얼굴이 보고 싶구나!”

말을 세운 담수련의 모습을 본 두목은 너무 기쁘다는 듯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담수련은 악불군의 뒤에 앉아 있는 청년을 보며 물었다.

“이자들 맞나요?”

어머니의 죽음에 분노하고 복수를 해 준다고 해서 따라왔지만 막상 악마 같은 마적들을 보자 겁에 질린 청년은 목소리도 못 낸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소군.”

담수련은 청년의 말에 아미를 콱 좁히며 악불군을 불렀다. 그녀의 한마디에, 악불군은 알았다는 듯이 말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전대 백대고수에 속한 구천마성의 고수들까지 상대한 악불군에게 고작 마적들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일각도 안 되어 마적들은 모조리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목이 잘린 자들도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은 더 이상 마적질을 할 수 없도록 팔과 다리를 자르는 선에서 마무리를 했다.

“분풀이하세요.”

담수련이 청년을 보며 말했다.

“제, 제가요?”

“복수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들에게 당한 일은 너무 끔찍해서, 복수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 많은 어려움이 생길 겁니다.”

의술에 일가견이 있는 담수련은 이런 경우 피해자가 안고 살아갈 정신적인 괴로움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청년은 말에서 내리더니 도를 집어 들고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마적들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분노가 서린 눈으로 노려보더니 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앞에 있던 마적들은 청년이 도를 들자 절규하듯 소리쳤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살려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거늘, 너희들이 그 말을 입에 담아?”

청년은 살려 달라는 그 말이 더 가증스러운지 치를 떨며 소리쳤다.

“저희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제발 살려 주시면 이제부터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이미 누구보다 선하시던 어머니를 죽인 게 네놈들이다! 왜 그랬느냐, 왜!”

절규하는 청년은 분노와 억울함에 몸을 떨면서도 위로 든 도를 내려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복수를 하라고 자리까지 깔아 줬음에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과, 아침까지 자신의 밥을 챙겨 주던 어머니에 대한 원한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담수련은 청년의 마음을 아는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고통으로 끙끙대는 마적들을 보며 크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렇게 그저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죽였어요.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댔어요. 이제 당신들의 죄에 대해 판결을 할게요.”

담수련의 말에 끙끙대던 마적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미 반은 죽고 나머지도 불구가 된 상황에서 갑자기 또 무슨 판결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었다. 담수련은 냉정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모든 정의는 자신의 죄에 걸맞은 벌을 받는 데서 시작한다고 봐요. 그리고 당신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소군!”

“예!”

“알아 두세요. 당신들을 지금 징치하는 분은 악불군이에요. 그는 천하에서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아요. 모두 죽여!”

다시 나온 자신에 대한 칭송에 악불군은 담수련을 쳐다보았다.

그동안 많은 시비가 벌어졌고 그때마다 그녀는 악불군에게 징치를 명하면서 지금 한 말을 언제나 그대로 모두에게 알렸기에, 크게 어색하진 않았다.

그것은 담수련이 죽기 전에 악불군에게 남기는 선물과도 같은 계획의 일환이었다.

“예!”

악불군은 크게 답을 하고는, 고통에 쩔쩔매는 마적들의 숨통을 모조리 끊어 놓았다.

담수련의 명은 무조건 따른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근 그녀가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너무 쉽게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새편작이 말한 성격의 변화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그를 다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 * *

“오는 데 어려운 일을 없었습니까?”

한 노인이 포권을 하자 철무정이 반가운 표정으로 맞았다.

소가주인 그조차도 말을 함부로 놓지 못하는 그는 철룡세가 최고의 정예인 철룡단의 단주인 여민웅이었다.

“가주님께서 소가주님의 노고를 치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철무정은 세가에 보고를 하면서 악불군에 대해 그가 갖는 의문을 자세히 적어 보냈다.

그런데 여민웅이 직접 왔다는 것은 철장표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 시국에 대해 내게 전하라는 말은 없었습니까?”

“대공 전하께서 절강에 들른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아직 조용하지만 잠룡세가가 무너진 것은 확실한 듯합니다.”

“그럼 담 가주는?”

“원체 비밀로 하고 있어서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공 전하께서 직접 나섰으니 죽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토록 위세가 대단하던 잠룡세가도 대공 전하의 신임을 잃자 그대로 몰락을 하는군.”

“그래서 소가주님의 계획에 대해 가주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여민웅의 말에 철무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그가 세운 계획은 대공이 모르게 진행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숨기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 철룡세가는 위대하신 칭기즈 칸의 피를 이어받았습니다. 아무리 대공 전하라 해도 우리를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내 짐작이 맞다면, 이 일은 철룡세가를 단숨에 천하제일의 세력으로 우뚝 서게 할 것입니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하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를 배제한 것은 대공 전하였습니다. 이번에도 담수련과 호위 무사를 생포하라는 명령도 우리에게 자세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그 바람에 마룡세가는 사도비류가 중상을 입었고, 태룡세가와 본가 역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민웅은 철무정의 뜻이 강고함을 느끼자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제가 오면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담수련의 호위 무사인 악불군의 무공이 생각보다 대단한 것 같더군요. 이미 평민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영웅 취급을 받고 있는 듯하던데,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안 그래도 광동으로 향할 생각입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광동에 있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그놈들이 우리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퍼뜨린 소문이 아닐까 의아했는데, 들려오는 소문이 너무 많습니다. 그놈과 담수련이 광동에 있다는 것은 확실한 정보로 보입니다.”

“광동은 담무룡과 연관이 전혀 없는데, 왜 거기로 갔을까요?”

“그건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광동은 저희만 갈 것이니, 소가주님께서는 우선 본가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광동은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전서구가 본가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멉니다. 거기다 정보망도 다 망가진 상황인데 본 가의 후계자이신 소가주님께서 직접 거기까지 가는 것은 너무 위험이 큽니다.”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라 했습니다. 저를 그저 화초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위험이니 뭐니 하는 말은 제게 하지 마십시오. 전 본가의 위세가 아닌 제 실력으로 천하를 접수할 것입니다.”

철무정은 철룡세가의 가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가 지금 노리는 목표는 대공 이후, 다음 대 태양천주 자리였다.

* * *

악불군과 담수련이 광동에 들어선 지 겨우 보름.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룩한 악불군의 명성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그의 명성은 무림인들이 아닌 양민들을 통해 퍼지고 있어서 그 위력은 더 강했다.

그리고 그것은 담수련의 생각이 정확하게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분은 도대체 언제 잠을 자는 걸까?]

노숙을 하게 된 악불군은 담수련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작은 천막을 쳤다. 뿐만 아니라 담수련이 잠이 들 때까지 그 앞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그것은 객잔에서 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담수련의 방 앞에서 그녀가 잘 때까지 그 앞을 지키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사 호가 감탄을 하는 것은 단지 호위하는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담수련이 잠이 든 후부터 담수련이 깰 때까지 악불군은 쉬지 않고 무공 수련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악불군을 따른 지 어느덧 열흘이 넘었다. 그런데 열흘 동안 수련을 멈춘 적이 없었다.

[나도 그게 이상해. 아무리 고수라도 잠을 자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데 말이야. 운기조식으로 잠을 대신하는 고수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저분은 운기조식도 거의 안 하잖아?]

물론 그들도 무공 수련은 매일 빠지지 않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동을 할 땐 운기조식 정도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악불군은 매일매일 실전 수련을 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 그는 주위에서 누가 보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실지로 그들은 며칠째 악불군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도대체 무슨 수법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저분이 사용하시는 수법이 뭔지 알겠어?]

사호는 무공에 대해 상당히 해박했지만, 아무리 봐도 악불군의 무공은 어느 문파의 수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처음 보는 수법이야. 하지만 수법을 떠나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강할까 의아했는데, 이제 보니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노력을 하는 분이었어.]

사 호와 구 호는 거래 관계를 떠나 점점 악불군의 성실함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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