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117화 (117/472)

<천검지애 117화>

117화. 전투(1)

차운명은 악불군의 말에 반색했다. 이미 그의 무공은 증명이 된 터이니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단번에 좋다고 하기에는 문파의 체면이 걸렸다.

“문주님, 저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저희들 때문일 수도 있으니 죄송하기도 하고요.”

“지금 벌어지는 일이 두 분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상황이 급박한 것 같으니 먼저 포구부터 처리하고, 얘기는 다음에 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차운명은 담수련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장철을 보며 말했다.

“그럼 악 대협을 모시고 빨리 가 보시오.”

“예!”

밖으로 나가자, 악불군이 장철에게 말했다.

“장로님, 아가씨께서 거기까지 가려면 말을 타셔야 합니다. 저희는 말을 타고 갈 것이니 먼저 출발하십시오. 곧 뒤를 따르겠습니다.”

물론, 전처럼 담수련의 손을 잡거나 안고 달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보는 이곳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냥 이곳에 머물게 할 수도 있었지만, 악불군은 그녀가 바로 옆에 없으면 안심할 수가 없었다.

“마구간은 정문 왼쪽으로 돌아가시면 있습니다. 그럼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가자.”

장철과 금사력이 몸을 날리자 백 명에 달하는 제자들이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아가씨, 제가 싸움판에 끼어들면 아가씨 보호에 허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제가 백설이에게 말해 둘 것이니 절대 내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혹여 위험하다 싶으시면 예전에 드린 적 있는 호각을 세게 부십시오.”

백설의 등에 태우며 악불군이 주의를 주자 담수련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약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백설이에게 뭐라고 말할 거야?”

“주위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고, 혹 누군가 아가씨께 다가오면 물러서고, 공격하려고 하면 빨리 피하라고 말할 겁니다.”

“진짜 소군이 말하면 백설이가 알아들어?”

“그동안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간단히 부르고 가라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상당히 복잡한 내용이잖아?”

“정확히 알아들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충만 이해해도 잘할 겁니다. 그리고 백설이의 기감 능력은 범인의 몇 배 이상 뛰어 납니다.”

“백설아, 지금 소군이 한 말 다 알아들었어?”

담수련의 백설의 목을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백설은 진짜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흔들었다.

“호호~ 진짜 알아들었다는데?”

담수련이 기특하다는 듯 웃자, 악불군도 미소를 지며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장 장로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먼저 달려갔습니다. 우리도 빨리 뒤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대답한 담수련이 백설의 목을 쓰다듬자, 백설은 알았다는 듯이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악불군이 따르기 시작했다.

* * *

“네놈들은 절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무릎을 꿇고 있는 하유청은 여민웅을 향해 원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팔꿈치에서 한 치쯤 위로 잘린 팔에서 콸콸 뿜어내는 피를 왼손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통보다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사제와 사질들의 시신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뭘 좀 물어보려고 살려 뒀더니 시끄럽군!”

하유청의 팔만 자르고 살려 둔 것은 그의 지위가 가장 높아 보여서였다.

짜증스럽게 중얼거린 여민웅은 대주 한 명을 보며 말했다.

“시끄럽다. 빨리 두 연놈이 어디로 갔는지를 알아내고 죽여라.”

“예!”

대주 홍유철은 손에 긴 바늘이 촘촘히 박힌 장갑을 끼더니 하유청을 향해 다가갔다. 고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잠깐!”

여민웅이 갑자기 홍유철을 멈추게 했다.

“하명하십시오.”

대주는 몸을 돌리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선 잠깐 놔둬라. 불나방같이 스스로 죽기 위해 찾아오는 놈들이 꽤 많구나. 싸울 준비 먼저 해라.”

여민운의 명을 들은 홍유철은 팔을 들더니 수신호를 했다. 그러자 주위를 경계하던 오십 명의 철룡단원들이 여민웅의 주위로 모여 그 옆에 도열했다.

그렇게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장철을 필두로 한 남해 보루문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여민웅이 이끄는 철룡단의 앞에 도열한 남해 보루문의 제자들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아침까지 그들과 같이 웃고 식사까지 했던 사제와 사형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 사부님!”

피를 너무 흘려 이미 기진맥진한 하유청이었으나, 장철을 보자 간신히 소리를 쳤다.

“하 사형!”

금사력은 하유청이 피 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갔다.

핑!

달려가던 금사력은, 빠른 속도로 그를 향해 무엇인가 날아오자 급히 보법을 밟으며 몸을 피했다.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박힌 것은 짧은 단검이었다.

“그놈은 감히 본좌에게 무례를 저질렀다. 이제 그놈의 목숨은 바로 내 것이니, 데려가고 싶으면 내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챙!

여민웅의 말을 들은 금사력은 검을 빼 들며 소리쳤다.

“웬 놈들이기에 감히 해남도에서 이런 살상을 저지른 것이냐!”

“여기 놈들은 하나같이 천한 놈들 출신이라 그런지 입들이 거칠구나. 아무래도 네놈들은 좋은 말로는 안 될 것 같구나.”

“네놈들이 지금 누구를 건드렸는지 아느냐? 이제 네놈은 해남검문의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곧 토막을 쳐서 해남 바다의 물고기 밥으로 던져 주마. 저놈들을 죽여라!”

듣고 있던 장철이 대노한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와아!”

장철의 명이 떨어지자 본노에 몸을 떨던 제자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쯔쯧, 쯧! 무인의 기본도 못 갖춘 놈들이군.”

여민웅은 그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비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주위에 도열해 있던 철룡단원들도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돌진엔, 해남검문의 제자들과 달리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가씨, 우리가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악불군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를 듣자 말의 배를 세게 찼다. 속도를 배가한 것이다.

“워어!”

포구가 보이는 곳에 도착한 악불군의 인상이 구겨졌다.

두 배는 더 많은 인원을 데리고 떠났지만 상황은 좋지 못해, 남해 보루문의 패색이 짙었다. 악불군과 해남검문의 제자들이 도착한 시간의 차이가 겨우 반각 남짓임을 생각한다면, 실력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악불군은 장철과 금사력까지 밀리는 것을 보자 급히 검을 날리고는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너무 다급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악불군은 담수련에게 전음을 날렸다.

[아가씨, 혹시 신변에 위협을 느끼시면 호각 부는 것 잊지 마십시오.]

[알았어.]

담수련은 호각을 급히 입에 물었다.

호각은 담수련이 대성마장에 백설을 보러 간 날, 뜻하지 않은 습격을 받은 후 악불군이 며칠 동안 정성들여 만든 것이었다.

상당한 타격에도 고장이 나거나 부서지지 않게 대나무만을 이용해 만든 호각이었다.

심지어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는 천잠사를 꼬아 줄을 만들고 예쁜 무늬까지 새겨 넣어, 언뜻 보면 장신구 같은 느낌이 날 정도였다.

악불군에게 호각을 선물 받은 담수련은 잘 때나 씻을 때조차 목에서 빼지 않았다. 아무도 없을 때면 일부러 호각을 불어 악불군을 부르기도 했지만, 진짜 위험 상황에서 호각을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소군…… 조심해. 다치면 안 돼.’

담수련은 싸움터로 달려가는 악불군을 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휘이이이잉!

악불군보다 빨리 전장에 도착한 검은 철룡단원들을 무차별적으로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도착한 악불군이 검을 회수했을 때는 이미 열 명이 넘게 죽어 있었다.

악불군은 검을 회수하고도 몸을 멈추지 않았다.

먼저 고전을 하고 있는 금사력에게 달려간 그는 싸우고 있던 철룡단 부대주의 허리를 단숨에 잘라 버렸다.

“금 대협, 다른 제자분들을 도와주십시오.”

소리친 악불군은 가장 위험해 보이는 문도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남해 보루문의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강했던 철룡단원들이었지만, 악불군과의 차이는 너무 컸다.

생사투에서는 실력 차이가 있다 해도 단숨에 베어 버릴 정도가 아니라면 싸움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악불군이 나타난 후 무차별적으로 죽어 나가는 철룡단원들을 보며, 그들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언제 악불군이 자신에게 달려와 죽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룡단원들이 악불군에게 이십 명이 넘게 죽어 나가고 다른 철룡단원들조차 자세가 흐트러지자, 싸움의 양상은 완전히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쾅!

악불군은 그 커다란 파열음에 고개를 돌렸다.

홍유철과 싸우며 우세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장철이, 갑자기 끼어 든 여민웅의 장을 맞고는 일 장이나 밀려난 것이었다.

장철은 간신히 서 있기는 했지만 이미 검은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고, 한 손으로는 가슴을 잡고 있었다.

해남검문에서도 상당한 고수로 인정받는 그였지만 여민웅에게는 역부족이었는지, 결국 입으로 다량의 피를 토해 내고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금 대협! 장로님을 부탁합니다.”

급히 소리친 악불군은 장철을 끝내기 위해 달려가는 여민웅을 향해 검을 던졌다.

휘이이이잉!

또다시 날카로운 파공음을 뿜어내며 날아가는 검은 여민웅의 목을 노리며 날아갔다.

장철을 죽이면 그 순간 자신의 목이 뚫릴 상황.

여민웅은 결국 몸을 돌려 검을 장으로 쳐 냈다.

펑!

‘대단한 고수다.’

비(飛)의 수법으로 날린 그의 검을 장으로 쳐 낸 자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검을 쳐 낸 여민웅이 여세를 몰아 악불군을 향해 그대로 짓쳐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의 자세가 바뀌었다. 그러자 튕겨나갔던 검이 회전을 하더니 다시 여민웅의 등을 노리고 날아갔다.

하지만 여민웅은 이번에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초절정 고수인 그는 악불군을 제거하면 검 역시 힘을 잃고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놈!”

시커멓게 변해 있는 그의 장은 보기만 해도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장에 그대로 맞았다가는 철포삼도 도움이 안 되겠군.’

악불군은 급히 환영전궁보를 밟으며 그의 장을 피했다. 하나, 단순히 환영전궁보로 여민웅의 공격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여민웅이 지금 펼치는 수법은 태양천에서도 절기로 꼽히는 마혼구폭이었다. 환영전궁보 역시 보법으로 절기라 칭하고는 있지만 그 수준이 달랐다.

계속 몰리다 보니 검에 대한 통제력도 쉽지 않아 공격의 초점이 자꾸 흔들리는 것도 문제였다.

‘팔이 원을 그리며 장이 전면을 완벽하게 장악하여 퇴로를 차단한다. 거기다 수시로 장에서 강력한 장풍이 뿜어져 나와 운신을 어렵게 하고 있어.’

그런데 그 와중에 악불군은 여민웅의 무공을 분석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심지어 악불군조차 모르는 그의 무공이 일취월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악불군이 그동안 배운 무공은 다루는 범위가 굉장히 협소했다.

다른 문파에서는 처음 무공을 배울 때, 봉과 곤, 창까지 십팔반 무기로 통하는 열여덟 가지의 무기를 다 가르쳤다. 그것은 모든 무기를 다룰 줄 알아야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은 오로지 검만 배웠다. 기본적인 신법이나 보법, 그리고 권법은 사실 절기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가 무공에 눈을 뜬 계기는 소림내경일지선을 읽은 덕이었고, 담무룡의 무고에 있는 비급들을 익히면서부터였다. 그 이후, 그는 어떤 무공을 보든 즉시 자신의 무공에 접목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뿐만 아니라, 지금 그 능력은 또다시 그를 위기에서 구해 주고 있었다.

‘이, 이놈이……. 이게 뭐야?’

곧 악불군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여민웅은, 갑자기 악불군의 공격이 달라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악불군이 새롭게 펼치는 수법이, 바로 그가 시전하고 있는 마혼구폭이었기 때문이었다.

“네놈이 어떻게 마혼구폭을……?”

하나 놀람도 잠시.

이어지는 악불군의 다음 수법에, 여민웅은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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