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142화>
142화. 귀도신영(1)
‘뭐야? 심각하잖아…….’
귀도신영이 있는 방으로 들어선 담수련은, 피륙 썩는 냄새가 강하게 퍼져 있자 얼굴이 굳어졌다.
병세를 살피는 방법은 진맥 하나뿐이 아니었다. 냄새도 병세 판단의 아주 중요한 요소였는데, 지금 그녀가 맡은 냄새대로라면 환자의 상태는 대단히 위중했다.
“난 고철황이라고 하오. 의원께서 이렇게 와 주시니 뭐라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그려.”
귀도신영이 포권까지 하며 말하자, 담수련의 눈이 살짝 커졌다.
지금 그녀가 맡은 냄새의 지독함으로 미루어 보면, 환자가 정신을 잃어도 부족할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혹 깨어 있다 해도 엄청난 고통으로 앉아 있기도 힘들어해야 하는데, 자세를 바로한 채 포권까지 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많이 고통스러우실 텐데, 참을성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너무 아파서 기절할 상황이외다.”
“우선 이리 누워서 상처를 좀 보여 주세요.”
“너무 급해서 내가 꿰맸소.”
귀도신영은 자신의 배를 올리며 말했다. 감아 놓은 천은 여전히 피가 나는지 벌겋게 축축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의원을 안 찾아가다니,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귀도신영의 상처를 본 담수련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질책하듯 말했다.
“의원을 찾아 갈 상황이 안 됐소이다.”
“이런 상처를 입고도 의원을 찾아가지 못할 정도라면, 누군가 죽이려는 자가 있나 보군요?”
담수련의 말에 귀도신영은 뜨끔한 표정으로 말했다.
“의원이라 잘 모르겠지만, 무림인들에게는 나름대로 말하지 못할 사정들이 다 있는 법이외다.”
담수련은 환약 하나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겠지요. 우선 이 약을 먼저 드십시오.”
“이건 뭐요?”
“정신을 좀 몽롱하게 해 주는 몽환환이에요.”
“몽환환? 그걸 먹었는데 누가 쳐들어오면 난 반항도 못하고 죽을 거 아니오?”
“상처를 잘못 꿰맸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아물지를 않고 있는 것이지요. 거기다 이미 여러 곳이 썩고 있고, 피도 아직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누가 쳐들어오기 전에 돌아가실 겁니다.”
“그럼 치료만 해 주면 되지, 몽환환은 왜 먹으라고 하는 거요?”
“꿰맨 자리를 다 풀고 새로 꿰매야 합니다. 거기다 배 속에 고인 피도 빼내야 하고요.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고통을 느낄 겁니다. 몽환환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해 주는 약입니다.”
“그냥 합시다. 아픔 따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소. 잘못 꿰매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했다고 이미 말했지 않았소.”
“이미 상처가 많이 덧나서 그때와는 다릅니다. 몽환환을 먹지 않으신다면 전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귀도신영은 담수련이 강하게 나오자, 잠시 생각하더니 몽환환을 그대로 입에 넣어 삼켰다.
“치료 못 받고 고통받으며 죽는 것보다는, 몽롱한 상태에서 죽는 것이 더 낫겠지!”
담수련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누우세요. 혹시 졸리시면 그냥 주무시고요.”
“알겠소이다.”
“그리고 대인은 잠시 나가서 기다려 주세요.”
담수련은 우송탁을 보며 말했다.
“나가야 합니까?”
“아까도 선원분을 치료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집도할 때 누군가 곁에 계시면 집중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이분은 상처가 덧나서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제가 나가도 될까요?]
우송탁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귀도신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이젠 그냥 믿을 수밖에 없으니, 나가 봐라.]
“그럼 잘 부탁합니다.”
귀도신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우송탁은 허리를 숙여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 *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홍항 포구에서 가장 큰 태화주루는 한산했다. 태화주루 전체를 며칠간 빌린 무림인들 때문이었다.
태화주루의 이 층 창가에 한 명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목을 감은 두루마리로 얼굴의 반을 가린 그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못 찾았습니까?”
그러자 그의 앞에 앉아 차를 입으로 가져가던 노인이 다시 찻잔을 탁자에 놓으며 말했다.
“지금 아이들이 사방을 뒤지고 있으니 뭔가 나올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혈응(血鷹)이 지역을 특정하면 대부분은 한두 시진이면 찾아냈는데, 이번은 좀 오래 걸리는군요.”
“제 생각으로는 그놈이 밀폐된 공간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백색마혼 사자님의 백섬결에 당한 놈입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아무래도 예상대로 도문 놈들이 도와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인은 백색마혼 사자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 도둑놈이 도대체 무엇을 가져갔기에 백색마혼 사자님과 교통(敎通)께서 이 먼 홍항까지 직접 오신 것입니까?”
노인은 어떤 도둑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손대서는 안 될 물건에 손을 댔다는 것을 직감했다.
“죽을 물건을 건드린 거지요.”
“도문 놈인 것은 확실합니까?”
“그놈은 무공에 비해서 경신술이 아주 뛰어나고, 변장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거기다 물건을 훔쳐 간 장원은 모든 문이 잠겨 있었는데 그 문을 전부 열었습니다. 무공을 사용하지도 않고 자물쇠를 그렇게 열 수 있는 자들은 도문 놈들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사실 도문은 저희가 감시하는 무림 세력은 아닙니다. 교통께서는 아실지 모르지만, 무림인들은 도문을 무림 세력으로 치지도 않습니다. 그냥 도둑들의 집단이지요. 그래도 지금 상황으로는 도문의 분타를 찾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습니다.”
“홍항에도 도문의 분타가 있습니까?”
“홍항 같이 돈이 많이 돌아다니는 지역을 가장 선호하는 자들이 도둑놈들입니다. 당연히 분타가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놈들이 원체 은밀하다는 것이지요. 거기다 분타도 빠르면 몇 개월, 길어도 이삼 년 안에는 옮긴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며칠 안에는 찾을 수 있습니다.”
“며칠은 너무 늦습니다.”
“훔쳐 간 물건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급하신 것입니까?”
“미안하지만 접주께서 궁금해하실 일은 아닙니다.”
“혹시 무엇인지를 알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 말인데, 제가 주제가 넘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홍항의 접주는 삼대에 걸쳐 충성을 다한 집안으로 압니다. 교주님께서도 칭찬을 하신 분인데 이 정도의 일로 용서라니요. 솔직히 저도 중요하다는 것만 알 뿐, 무엇인지 모릅니다.”
“본 접의 수하들을 모두 풀면 최대한 시간은 단축시킬 수 있겠지만, 홍항은 구천마성의 돈줄로 알려진 곳입니다. 비록 지하로 숨은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홍항 곳곳에 여전히 구천마성을 따르는 놈들이 있습니다. 도둑놈 하나 잡으려다 구천마성 놈들에게 꼬리라도 잡히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우선 혈응을 믿어 봐야겠군요.”
교통은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나 자신이 운이 좋다고 믿는 귀도신영이었지만, 멀리서 그 장원을 감시하는 혈응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도 못한 것은 그의 불행이었다.
그들이 영물로 취급하는 혈응은 수십 장 공중에서도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사물을 찾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탁월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너무 높은 곳에서 관찰하기에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보고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혈응 특유의 감지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누구라고 집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혈응에게 한번 잡힌 자들은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런 혈응에게 귀도신영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남았으니, 어쩌면 운이 좋다는 그의 말은 사실일지도 몰랐다.
그때, 흑의인이 주루 위로 올라왔다.
“영주님, 혈응이 한 지역을 특정했습니다.”
“드디어 찾은 것이냐?”
“예, 특정한 지역에 대략 열 개 정도의 상점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하나에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가자!”
영주라 불린 중년인이 일어서자 노인이 급히 말렸다.
“교통, 아직 날이 밝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구천마성으로 보이는 놈들이 이곳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지금 움직이시면 그놈들이 눈여겨 볼 수도 있습니다. 특정이 됐다면 날이 어두워진 후에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접주는 그놈이 얼마나 쥐새끼처럼 잘 빠져나가는지 몰라서 그럽니다. 거기다 자신이 추적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장소에 오래 머물지를 않습니다. 공격은 밤에 하더라도 우선 그 지역을 완벽하게 포위는 해야 합니다.”
교통과 흑의인 내려가자 노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교에서 무엇을 도둑맞았기에 그 한 놈을 잡으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잘못하면 삼대에 걸쳐 이룩한 조직이 단숨에 날아갈 수도 있겠군.’
* * *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귀도신영을 치료하는 담수련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자 악불군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새편작 어르신의 의서가 정말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크게 힘들진 않아.”
치료를 직접 해 보는 것과 글로 읽기만 한 것은 그 차이가 컸다. 그런데 우연찮게 가장 어려운 치료를 경험하게 된 담수련은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보람차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 상태를 아는 악불군으로서는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히이잉!
그때 밖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군, 백설이 울음소리 아니야?”
“그런 것 같습니다.”
“이상하네, 백설이가 저렇게 다급한 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 들어.”
“제가 잠시 바깥 상황을 보고 오겠습니다. 멀리 가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내가 부르면 금방 오잖아?”
“당연하지요. 방에서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나도 금방 올 겁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럼 걱정할 것이 없잖아? 빨리 백설에게 가 봐.”
“예.”
대답을 하고 나온 악불군은, 때마침 우송탁이 급히 들어오는 것을 보자 검미를 찌푸렸다.
“타고 오신 말이 갑자기 고삐에서 빠져나오려고 난리를 치는데, 저희들로서는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손을 댔습니까?”
“원체 좋은 말이라서 절대 손대지 말라고 아랫것들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까이 있었는데, 정말 아무도 손 안 댔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그런 겁니다.”
악불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백설은 이미 그와 교감이 깊어져, 이유 없이 고삐를 벗어나려고 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우송탁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백설은 악불군을 보자 반가운 것인지, 아니면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앞발을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백설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악불군은 백설의 목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리고 백설이 뭔가에 겁을 먹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치 전 속력으로 달릴 듯이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설을 무섭게 할 수 있는 것은 호랑이 정도일 텐데……?’
악불군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송탁의 상점은 포구와 가까웠고, 주위로도 열 개 이상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백설을 위협할 정도의 동물이 있을 리 만무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악불군은 하늘까지 주욱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을 못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한 번 더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불군은 고개를 들었다.
신시를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밝고 맑았다.
‘백설이 이유 없이 그럴 리는 없어……. 분명 뭔가 있을 텐데?’
백설이 아니었다면 악불군조차도 아무것도 발견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 상황. 그러나 악불군은 백설을 믿었다.
그는 이번에는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뭔가가 보였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점 하나가 옥의 티처럼 박혀 있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저게 뭐지?’
너무 멀어서 그냥 고정되어 있는 듯 보이는 점.
담수련이 무슨 눈이 그렇게 좋냐고 감탄할 정도로 강력한 시력을 자랑하는 악불군의 검미가 살짝 좁아졌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진짜 혈응이 존재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