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145화 (145/472)

<천검지애 145화>

145화. 알 수 없는 세력(1)

“그건 무림 세계의 일이라, 의원 같은 양민은 모르는 게 좋을 것이오.”

“그래도 이 구슬의 주인이 이제 저로 바뀌었으니 조금은 알아 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무섭지 않소?”

귀도신영은 담수련을 참 특이하다는 눈으로 보며 물었다.

“이분만 옆에 계시면 무서울 일이 없습니다.”

귀도신영은 악불군을 다시 보았다.

‘진짜 남자답게 잘생겼군. 하지만 무서울 일이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것 같지는 않은데…….’

“듣다가 무서우면 말하시오.”

“예, 전 무서운 얘기 좋아합니다.”

‘빙설초를 한 번만 먹어서 그러나? 새편작 어르신은 먹는 즉시 차도가 보일 거라고 하셨는데…….’

담수련의 대답을 듣는 악불군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담수련은 어렸을 때부터 담대하기는 했지만 무서운 얘기를 즐기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휴우! 사실은 노부가 무서운 자들을 건드렸소.”

“무서운 자들이오?”

“오래전부터 무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세력을 넓혀 가는 것을 발견했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무림인이라고 자칭하긴 하지만 알아주지도 않고, 그냥 모른 척하면 될 것을 그놈의 호기심이 뭔지…….”

귀도신영은 자신이 수상한 자들의 거처에서 뭔가를 훔쳤고 그 이후 계속 쫓겨 다닌 얘기를 했다.

“다른 물건을 돌려주셨는데 이건 깜빡 잊고 안 주셨군요?”

“그 구슬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보통은 물건을 돌려주면 더 이상 추적을 안 하는데 이자들은 계속 쫓아다녀서, 혹시 그것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한 말이었소.”

“그런데 노선배님 말씀을 들어 보니, 이걸 돌려준다 해도 살려 줄 자들 같진 않은데요?”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자, 귀도신영은 담수련이 스스로를 무림인으로 인정했다고 판단했다.

무림인만이 무림인들에게 선배라고 칭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말이오.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도망치고 숨는 데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금방 찾아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구.”

“……혈응?”

순간 악불군의 입에 단어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혈응이라고 했습니다.”

담수련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혈응을 봤어?”

담수련은 너무 놀랐는지 원래의 말투까지 보였다.

“아까 백설이가 놀란 것이 혈응이 나타나서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혈응, 한번 보고 싶었는데…….”

담수련은 어려서부터 영물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런 책을 많이 구해서 보았다.

악불군이 혈응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던 것도, 담수련이 책에서 새로운 것을 읽고 나면 악불군에게 언제나 설명을 해 준 덕이었다.

그녀는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악불군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하나 생기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구해 주고 싶은 그였기 때문이었다.

“혈응이 뭔데 그러시오?”

“그냥 빨간 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럼 노선배님께서는 도문의 일원이시라는 말이네요?”

담수련은 괜히 알려 줘 봐야 귀도신영에게 겁만 주게 된다는 생각에 슬쩍 화제를 돌렸다.

“자랑은 아니지만 도문의 장로요. 왜 웃소?”

담수련이 웃자 귀도신영은 약간 기분이 나쁜 듯 물었다.

“어렸을 때 유모께서 제게 도문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의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게 생각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긴, 도둑놈들이 문파를 만들었다고 무림인들은 다 비웃었다오. 그러나 원나라가 중원을 점령한 후 도둑들도 살기 위해서는 뭉칠 수밖에 없었소.”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갑니다.”

“자, 이제 그만 대화하고 이만 가 보시오.”

“왜 자꾸 우리를 보내시려고 그러세요?”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소!”

“전 지금 노선배님의 치료를 맡고 있는 의원이에요. 치료가 아직 다 안 끝났으니까 안 가고 있는 겁니다.”

“진짜 말을 못 알아듣는군. 이봐요, 소저! 잘못하면 죽는단 말이오!”

딤수련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소저라니,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연기도 그럭저럭 괜찮고 역용도 누구에게 배웠는지 상당히 잘했는데, 눈썰미가 있는 자들은 말투만 듣고도 의원께서 남장을 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게요.”

“그럼 안 되는데…….”

“내가 소싯적에는 백 개의 얼굴을 가졌다고 알려졌던 사람이외다. 그런 간단한 역용은 내 눈을 속일 수 없소. 사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눈치챘소. 거기다 저 악 대협이란 분께 존댓말도 했다가 순간순간 반말도 하고 하니, 어찌 알아채지 못하겠소?”

“백 개의 얼굴이요? 그럼 설마 노선배님께서 귀도신영이신가요?”

“내 명호를 들은 적이 있었소?”

귀도신영은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미소를 지며 반문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준다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다.

“유모께서 도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천면마인과 더불어 중원 최고의 변장의 대가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모란 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전설적인 천면마인과 나를 동등하게 말하시다니 좀 과하게 평가를 하셨군.”

“유모께서는 과장 같은 것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에요. 어쨌든 이렇게 대단하신 분을 제가 구해 주었다니 영광이네요.”

“대단해 봐야 도둑이오. 알지도 못하는 나를 치료해 준 것만도 고마운데, 나 때문에 위험해진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들을 보겠소?”

“악 대협.”

“예.”

“고 대협께서 자꾸 위험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지금 위험한가요?”

“…….”

담수련의 질문에 악불군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어머! 진짜 우리 위험한가 보네? 설마 벌써 그자들이 온 거야?”

담수련은 머뭇대는 악불군의 모습만으로도 단번에 상황을 파악한 듯 재차 물었다.

“예, 아까 나갔을 때 보니까 상당한 수의 무인들이 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왜 얘기 안 했어?”

“누구를 노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 보니 이곳을 노리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마 대협과 구 대협도 알아?”

“방금 저와 전음을 나눴는데,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엄청난 고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두 분은 지금 어디 있어?”

“이 상점 지붕에 은신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공격해 온다면 열 명 정도는 자신들이 처리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누군가의 전음을 받고 후퇴한 마진우와 구여풍이 어느새 악불군에게 상황 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고 대인, 이 상점에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요?”

“열 명은 족히 있을 거요.”

“모두 도문 사람인가요?”

“반은 도문이지만 반은 그냥 양민이외다. 그런데 지금 나를 노리는 자들이 이미 이곳을 포위하고 있다는 거요?”

“그런 것 같네요.”

“어허! 소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이곳을 떠나시게.”

“제가 간신히 살린 분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떠나라고요? 그렇게 되면 제가 치료한 보람이 없지 않겠어요?”

* * *

“곽흠, 어찌 됐느냐?”

혈응이 특정한 상점들을 살피고 있던 중년인은,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죽립을 쓰고 나타난 귀면탈 괴인의 목소리에 급히 인사를 하며 말했다.

“영존님 오셨습니까?”

“백색마혼 사자님도 같이 오셨다.”

사자도 같이 왔다는 말에 곽흠은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근처에서 상황을 주시하시고 계실 게다.”

“아 예! 혈응이 특정해 준 지역이 바로 저 앞에 상점이 늘어서 있는 곳입니다. 아직 사람들의 왕래가 너무 많아 포위만 하고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걸리적대는 놈들은 다 제거하면 되는데 웬 대기란 말이냐?”

“홍항접주의 말이, 구천마성의 졸개들이 홍항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서 지금 공격을 하면 그들과 부딪칠 수 있다고 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지는 밤까지 기다리려고 합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 백색마혼 사자님께서 그놈을 살려 보낸 것은 아직 물건을 찾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백섬결에 당했기 때문에, 한두 시진 안에 찾지 못한다면 그놈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죽은 뒤에 잡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귀도신영은 자신이 운이 좋아서 다행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살려 준 것이었다.

“지금 공격을 하면 이 근처에 있는 자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건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요?”

“상점에 있는 자들은 양민들이다. 각 상점에 수하들을 잠입시켜 찾는다 해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발각된다면 그거야말로 그놈이 있는 곳이 아니겠느냐?”

“당장 명을 내리겠습니다.”

영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곽흠은 즉시 수하들 몇몇에게 전음을 보냈다.

* * *

귀도신영의 부름에 집무실로 들어온 우송탁은, 적들이 이미 상점을 포위하고 있다는 말에 사색이 되어 반문했다.

“그, 그자들이 어떻게 여기를 찾아온 거지요?”

“이놈아! 내가 말했잖아? 어디를 가든 며칠 안에 찾아낸다고.”

“하지만 장로님께서 여기 오신 것은 하루도 채 안 됐습니다. 장로님을 미행한 걸까요?”

“미행했으면 이미 나를 죽였겠지. 지금까지 놔뒀겠냐?”

“장로님도 못 당하는 자들이면 우린 다 죽은 거네요?”

“넌 도문의 간부라는 놈이 지금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냐?”

“그러지 마십시오. 간부도 사람인데, 죽는다면 두려운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담수련의 말에 귀도신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의원께서는 어째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소이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소?”

“저도 사람인데 죽는 것이 어찌 안 두렵겠습니까?”

“지금 표정은 전혀 두려운 표정이 아닌데…….”

“안 죽을 것을 아니까, 두려울 일도 없는 것이지요.”

“안 죽는다고? 아까 내가 한 말을 제대로 못 들은 모양이오?”

귀도신영의 어이없다는 표정에 담수련은 미소를 지며 말했다.

“여기 악 대협이 계시지 않습니까?”

“호위 무사를 대협이라고 부른다고 실력까지 대협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제가 그렇게까지 미련하지는 않답니다.”

“미련하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떠나시오.”

“노선배님! 혹시 천호무적검이라는 명호를 가지신 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으신가요?”

“요즘, 광동에서는 십대고수보다도 더 유명하신 분이 그분인데, 아무리 내가 도망다니기에 바빴다 해도 어찌 모르겠소?”

“그분이라면 노선배님을 쫓던 자들을 막을 수 있을까요?”

담수련의 질문에 귀도신영은 갈등하듯 생각에 잠겼다. 천호무적검이 대단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그에게 검상을 입힌 그 하얀 괴인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확신을 못하겠소이다. 다만, 구천마성의 호법 셋을 혼자 죽였다는 소문이 진짜라면 저들을 막을 수 있을 거요. 하지만 그분이 어디 계신지 우리는 모르지 않소? 혹여 안다고 해도, 정파의 협사인 천호무적검이 일면식도 없는 도둑놈인 내가 도와달란다고 도와주겠소?”

“천호무적검께서 아무래도 너무 젊어서 그런가, 사람들이 바로 앞에 두고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선입견을 버리세요. 그분은 이미 노선배님을 도와주고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

담수련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며 반문하던 귀도신영은, 갑자기 머리를 스쳐가는 한 가지 생각에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듣고만 있던 우송탁도 그제야 뭔가 느낀 듯, 눈을 커다랗게 뜨며 악불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두 분이 생각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구천마성의 호법 셋을 제거한 것도 사실이고요.”

“진, 진짜 악 대협이 천호무적검이라는 말이오?”

“소문이 좀 부풀려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게 천호무적검이라는 과분한 명호로 불러주는 것은 맞습니다.”

순간 둘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그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포권을 했다.

“아이구! 대협을 몰라 뵙고 그냥 서 계시게 하다니, 이 우 모가 정말 결례가 많았습니다.”

“악 대협께서 천호무적검이란 것을 알았다면 더 예의를 갖췄을 텐데, 노부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갑작스런 둘의 변화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악불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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