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151화 (151/472)

<천검지애 151화>

151화. 따르는 사람들(1)

[공자님, 저희가 말했던 그자 같습니다.]

그때, 마차 주위를 은밀히 따르던 마진우의 전음이 들려왔다.

[제가 나가면 아가씨 주위를 지키세요.]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는 저희가 목숨을 걸고 보호하겠습니다.]

‘이런 수하들이 있으면 든든하기는 할 것 같은데…….’

악불군도 근래에는 혼자서 담수련을 보호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강해진다 해도 혼자서만은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었다.

히이잉!

말이 우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급하게 섰다.

“주, 주군. 내 배를 가른 놈입니다.”

말을 몰던 귀도신영이 두려움을 느낀 듯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마차가 멈춘 곳에서 이십여 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 두 명의 인영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너무 하얀 백색마혼이었고, 또 한 명은 악귀도마였다. 백색마혼은 유난히 검은 악귀도마의 옆에 서 있자 인간 같지가 않아 보일 정도로 더 하얗게 보였다.

마차에서 내린 악불군은 마차 옆을 따라오던 백설의 등에 담수련을 앉혔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 오면 백설은 무조건 달리도록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진우와 구여풍이 보호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악불군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백설뿐이었다.

“남자 놈인데?”

“저놈이 천호무적검이 맞다면 남장을 했겠지.”

악귀도마는 마차 안에서 남자만 나오자 실망한 듯 중얼거리다가, 백색마혼의 말을 듣자 입이 벌어졌다.

“맞아! 역시 넌 나보다 똑똑해.”

말을 마친 악귀도마는 유난히 두껍고 큰 대감도를 꺼내 들었다.

마차 앞에 우뚝 선 악불군은 둘을 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비켜선다면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치고 그냥 가겠습니다. 하지만 비키지 않는다면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놈 뭐라는 거야? 너 지금 우리에게 한 말이냐?”

악귀도마는 악불군의 몸에서 풍기는 기가 생각보다 약하자 붙을 만하다 판단한 듯,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악불군의 검미가 살짝 좁혀졌다.

악귀도마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마기가 실로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 대협이 전음만 듣고 물러섰다고 하더니, 이유가 있었군……. 이들의 정체가 뭐지?’

악불군이 잠시 생각에 잠기자 백색마혼의 입이 열렸다.

“천호무적검! 네놈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 감히 본 교의 전사들을 죽였으니, 그 죄는 지옥의 형벌로 다스려질 것이다.”

가슴이 서늘한 정도로 가늘고 차가운 백색마혼의 음성을 들은 귀도신영은 전에 당할 때의 생각이 들었는지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본 교라고 하셨는데, 무슨 교인지 제가 알아야 겁을 먹든 말든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지옥에 들어가면 알게 될 것이다.”

[소군, 저 귀신같은 자가 말하는 지옥은 우리가 아는 지옥이 아닌 것 같아.]

보고 있던 담수련이 전음을 보냈다. 의도치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자들을 건드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옥에 가기 싫어서라도, 두 분을 살려 둬서는 안 되겠군요.”

말을 마친 악불군이 검을 빼자 기다렸다는 듯이 악귀도마의 도가 악불군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쾅!

마치 벼락이 떨어진 듯 커다란 폭음과 함께 악불군의 주위로 희뿌연 흙먼지가 모습을 감출 정도로 진하게 피어올랐다.

펑! 쾅!

그러나 악귀도마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연이어 도와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흙먼지는 주위 삼 장 가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백색마혼이 흙먼지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곧 번쩍이는 검기가 어둠을 가르는 번개처럼 그 흙먼지를 십여 차례 갈랐다.

“소군!

보고 있던 담수련의 입에서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누가 봐도 악불군이 당했다고 생각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야야압!”

잠시 조용하던 흙먼지 안에서 악귀도마의 처절한 외침과 함께 맹렬한 도풍이 사방으로 퍼졌다. 악귀도마가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렬한 도풍이 흙먼지를 날려 보내자 그제야 전장의 모습이 훤하게 드러났다.

악귀도마의 도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불군의 발은 발목까지 땅 속으로 박혀 있었다.

백색마혼은 악불군과 딱 붙어 있었고, 악귀도마는 도를 공중으로 치켜 올린 채 서 있었다.

거기서 떨어뜨리기만 해도 악불군을 반으로 갈라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악귀도마는 결국 도를 내려치지 못하고 휘청하며 넘어질 듯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려 열 걸음을 넘게 뒤로 물러난 악귀도마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악불군을 보며 소리쳤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악귀도마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진 채 구멍이 나 있었다. 이미 즉사하고도 남을 상처를 입고도 마지막에 그런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칭찬해 줄 만한 일이었지만, 죽어 가는 마당에 칭찬을 받아서 무엇 하겠는가……

쿵!

악귀도마의 육중한 육체가 결국 큰 소리를 내며 엎어지자, 모두의 눈은 악불군 앞에 서 있는 백색마혼에게 쏠렸다.

그의 하얗던 옷과 피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벌겋게 변해 있었다.

백색마혼의 검은 악불군의 몸을 관통한 듯 뒤로 삐죽 나와 있었고, 악불군의 검은 그의 목을 관통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양패구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소, 소군 괜찮아? 괜찮지! 빨리 대답해!”

그 모습을 보던 담수련이 거의 울먹거리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아가씨, 저 괜찮습니다. 울지 마십시오.”

악불군은 담수련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든 듯, 백색마혼의 목에 꽂힌 그의 검을 빼고는 뒤로 돌아서며 급히 말했다.

검이 뽑힌 백색마혼은 이미 죽은 듯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의 검도 땅에 떨어졌다. 악불군의 몸을 관통한 것 같던 검은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 있었다.

“괜찮으면 빨리 날 봐야지!”

잠깐이었지만 너무 마음을 졸였던 탓일까……. 악불군이 울지 말라고 했건만, 이미 담수련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담수련의 진심이 느껴지는 이런 모습은 악불군에게는 세상 무엇보다도 가장 힘이 되는 원동력이었다.

* * *

“공자님, 호남에서 모을 수 있는 영웅단을 모두 모았습니다.”

영웅회는 정파의 연합체로서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만들 수 없었다. 각 문파의 제자들이 영웅회의 명령보다 자파 어른의 명을 먼저 따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웅회의 명령만 듣는 친위 세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태양천을 상대한다는 명분으로 고아들 위주로 기재들을 발탁해 만든 것이 바로 영웅단이었다.

초창기 영웅단은 여러 가지로 미비한 것이 많았지만, 일 갑자가 지나는 동안 영웅단 출신들이 영웅회의 간부가 되고 영웅단의 교두를 맡으면서 지금의 영웅단은 명실공히 영웅회의 최고 무력 집단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가 천여 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한 번에 소집할 수 있는 인원에는 제한이 있었다.

“몇 명이나 모았습니까?”

“백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면 많이 모였네요. 그럼 우리도 시작해 보지요.”

“어디부터 시작하실 생각이십니까?”

“원나라의 장수들부터 제거하려고 합니다.”

“목표물은 정하셨습니까?”

“차칸테무르를 제거할 생각입니다.”

“예?”

태극검자는 놀란 눈으로 반문했다.

차칸테무르는 반란군 중 가장 강력했던 유복통을 몰락시킨 원나라 최고의 장수로서, 그의 신변 보호는 철저히 보호되기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원나라와 반군 사이에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천학의 말에 태극검자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적인 원나라와의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반란군 사이에서 권력을 먼저 선점하기 위한 갈등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반군들이 원나라에 대한 공격을 멈춘 것은 차칸테무르와 먼저 싸우는 것을 회피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차칸테무르도 그것을 알기에, 진 장군이나 장 장군이 칭왕을 하고 있는데도 두고 보는 것이지요. 자중지란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차칸테무르만 제거하면 서로 원나라를 공격하려고 할 것입니다.”

“차칸테무르를 제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들은 정보에 따르면 지금 태양천에서 직접 차칸테무르를 보호한다고 하더군요.”

“태양천에서 보호한다면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영웅단은 태양천을 상대하기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어렵다고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이후 무림의 주도권을 정파에서 갖기는 힘듭니다.”

원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황조가 세워진다면 즉각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시작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 정파의 공로를 인정받는다면 당연히 무림에서의 발언권도 강해질 것이었다.

“그럼 언제 시작하실 계획이십니까?”

“당장 시작할 것입니다.”

백천학의 말에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 * *

광동의 낮은 정말 더웠다.

그냥 마차 옆을 따라오는 백설조차 힘겨워하자, 담수련은 산속에 들어서자마자 그늘에 마차를 세우고 백설과 마차를 끄는 말을 놀다 오라고 풀어 주었다.

“주군,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시는 중이십니까?”

악불군과 담수련도 마차에서 나와 나무 밑에 있는 작은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귀도신영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남의 악양 쪽으로 갑니다.”

악양이라는 말에 귀도신영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악양으로 가면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그리고 그 순간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담수련이 슬쩍 물었다.

“악양에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는 길에 제가 만들어 놓은 보물 창고가 하나 있습니다.”

“보물 창고요?”

“그동안 훔친 물건들을 숨겨 놓은 장소지요.”

“그런 곳이 많으신가 봐요?”

“제가 도둑질만 오십 년을 했습니다. 귀하다는 물건도 상당히 많이 훔쳤지만,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현금으로 바꾸는 일이 너무 힘들고 직접 가지고 다니기도 어려워 비밀 장소에 숨겨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 성마다 한 곳 정도씩 있다고 보셔도 될 것입니다.”

“정말 노선배님께서 중원 제일의 부자일지도 모르겠네요!”

“중원 제일은 그렇고,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것입니다. 그 보물 창고가 저 혼자만 모은 것이 아니니까요.”

“다른 분들도 같이 모았다는 말인가요?”

“도둑놈들을 어떻게 믿고 다른 놈들하고 같이 사용하겠습니까? 사부님과 사조님께서도 모아 놓으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도둑이면서 도둑을 못 믿는다는 귀도신영의 말에 담수련이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이제 제게도 주군이 생겼으니 좀 풀어야지요. 원래 수하의 재산은 주군의 재산인 법이니까요.”

“고…… 노께 제가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악불군은 고노라고 부르는 것이 영 어색한 듯 약간 머뭇거리며 끼어들었다.

“부탁이라니요? 그냥 명을 내리시면 됩니다.”

“그 주군이라는 호칭을 다른 말로 하시면 안 될까요?”

“주군께서 저를 진정한 수하로 생각하신다면 우선 말부터 낮춰 주십시오. 그럼 저도 호칭을 바꾸겠습니다.”

“그래도 강호의 선배이시고 어른인데 어떻게 말을 놓겠습니까?”

“저도 주인으로 모셨는데 주군이라고 칭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소군, 그냥 받아 줘. 소군이 말을 놓고 고노한테는 공자님이라고 부르게 하면 되잖아?]

담수련의 전음에 악불군은 결심을 굳힌 듯 다시 말했다.

“고노.”

“예.”

“이제부터 주군이라는 호칭은 하지 말고 그냥 공자님이라고 부르게.”

“노복, 공자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귀도신영이 허리를 숙이며 말하자 담수련이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 노선배님의 그 보물들을 악 대협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거네요?”

“어차피 사용도 못하고 숨겨져 있습니다. 솔직히 거기에 뭐가 있는지 저도 모를 정도이지요. 물려줄 제자는 몇 년 전에 어찰단에게 죽어서 이제 물려줄 사람도 없습니다. 마음대로 쓰셔도 됩니다.”

“아가씨, 정당한 돈이 아닌데 어디에 쓰시려고요?”

“돈은 돈이지, 정당하고 안 정당하고가 어디 있어? 그렇게 따지면 아버님 돈도 정당하지 않거든! 난 아버님 돈보다는 고노의 돈이 더 깨끗하다고 봐. 최소한 피는 안 묻은 돈이잖아?”

악불군이라고 담무룡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 은인이었고, 그래서 그의 명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

“……”

“왜 말을 안 해? 소군도 아버님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맞지?”

“아가씨…… 그게…….”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아버님께서 어떤 명을 내렸건 그걸 무작정 따르지는 마. 모든 것은 소군의 신념에 맞는지 안 맞는지만 생각해. 이건 내가 소군에게 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명이야.”

담수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명.

그것은 악불군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선명하게 알려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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