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155화>
155화. 영운산장(1)
“무슨 소리냐? 혈응의 종적을 파악할 수 없다니?”
악불군의 뒤를 쫓던 선풍마강 등 사자들은 혈응접사의 말에 인상을 구겼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저희들의 망원통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합니다. 그 바람에 혈응이 어디를 특정하고 있는지 확인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혈응접사가 가진 망원통은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거리까지 선명하게 보여 주는 기구였다. 그들은 망원통을 통해 혈응을 관찰하고, 떠 있는 곳에서 직선으로 밑에 있는 지역을 추적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혈응이 그런 적이 있느냐?”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들도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혈응은 혈교의 교주가 자신이 가장 믿는 수하라고 공언할 정도로 충성심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
“혈응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망원통으로 하늘을 계속 살피던 다른 접사가 그들을 불렀다.
“어디냐?”
선풍마강이 급히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접사가 급히 품에서 지도 하나를 꺼냈다. 황실에서 보유하고 있다는 지도보다도 더 정밀해 보이는 지도가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영운산 근처입니다. 더 정확한 위치는 저쪽으로 가야 알 것 같습니다.”
“당장 간다.”
선풍마강은 다른 사자들을 보고는 몸을 날렸다.
“우리와 같이 가야지, 무조건 먼저 가시면 어떻게 찾으시려고?”
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는, 급히 그들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 * *
[공자님, 뭔가 이상합니다.]
은밀하게 마차를 호위하던 마진우의 전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산 주위를 수상한 놈들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악불군도 누군가 마차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우리를 노리는 것 같습니까?]
[산 전체에 천라지망을 펼친 것으로 보아, 저희를 노리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럼 먼저 건드리기 전까지는 모른 척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왜 그래?”
악불군이 전음을 나눈 것을 기가 막히게 느낀 담수련이 물었다.
“수상한 자들이 산 주위를 포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그들의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알아봤어?”
그들이 산 쪽으로 보고 포진하고 있다면 그들이 노리는 것이 산 위에 있다는 의미이니 공격을 하려는 것이고, 산 아래를 보고 있다면 방어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제가 미처 그것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예리하십니다.”
아부성 칭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배시시 웃은 담수련은 다시 물었다.
“지금 우리가 포위망을 지났어? 아니면 아직 안 지났어?”
“지났습니다.”
“그럼 위를 보고 있는 거네. 위에 뭐가 있나?”
“고노 말에 따르면 영운산장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가는 곳이지?”
“예.”
“고노하고는 친한가?”
“알아볼까요?”
“괜찮아, 친하니까 가자고 했겠지.”
담수련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위에 영운산장밖에 없다면 이들이 노리는 곳이 영운산장이라는 말인데, 소군 생각은 어때?”
“뭐가 말입니까?”
“이곳에 올라가면 소군이 싫어하는 시비를 자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아. 그래도 올라갈 거야?”
“고노가 아는 곳이라는데, 그냥 모른 척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참 신기해!”
“뭐가 말입니까?”
“소군의 생각이 어떻게 내 생각과 언제나 같은지 모르겠어. 이것도 운명인가……?”
“그러고 보니 아가씨와 제 생각이 언제나 같군요. 정말 신기합니다.”
얼마 전 의견이 달라서 삐치기까지 했던 담수련이나 그녀의 마음을 몰라 어찌할 바를 모르던 둘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그런 것 아니겠는가……
둘은 전혀 신기하지도 않은 것을 신기한 일로 만들고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 * *
[저놈들도 모두 정문에 매달까요?]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영주 오성규는 이번 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구천마혈의 대주 왕흉에게 전음을 보냈다.
[운도 없는 놈들이군, 하필 이때 이곳에 오다니. 어차피 죽을 놈들, 조금 더 살게 놔둬라.]
왕흉의 전음에 오성규는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인은 그에게는 하나의 오락거리였다. 심지어 그는 사람을 죽일 때 단번에 죽이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며 환희를 느끼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 * *
“이상하네? 아직 문을 닫을 때가 아닌데…….”
영운산장의 정문에 도착한 귀도신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고노 무슨 일인가?”
“여기가 좀 외진 곳에 있긴 하지만 제자들도 많고 식솔들도 꽤 돼서 상당히 활기를 띠고 있는 곳인데, 이 시간에 벌써 문도 닫혀 있고 너무 조용합니다.”
“소군, 이들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나 보네?”
“그런 것 같네요. 아까 주변 상황에 대해 말해 줬지? 고노.”
“예!”
“한 번 불러보고 답이 없으면 돌아가지.”
“알겠습니다.”
귀도신영은 마차에서 내리더니 정문으로 갔다. 수차례 들른 곳이었지만 싸늘한 분위기에 저절로 긴장이 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쾅! 쾅!
귀도신영은 문을 주먹으로 몇 번 쳤다.
‘이상하네, 안에 분명 인기척은 있는데?’
귀도신영은 문에 귀를 댔다. 양상군자로서 행동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청각이었다. 원래 가장 어두운 밤에 일을 하는 그들에게 냄새와 소리가 눈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었다.
귀를 문에 대고 안의 동정을 살피던 귀도신영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이상한 힘에 의해 당겨지자 깜짝 놀라 허우적댔다.
“힉!”
타의에 의해 뒤로 물러선 귀도신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귀를 댔던 문의 나무 사이로 검이 나타났다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계속 귀를 대고 있었다면…….
귀도신영은 자신의 얼굴이 검에 의해 꼬치가 될 뻔했다는 것을 직감하자 마차 쪽을 쳐다보았다.
악불군이 위험을 감지하고 자신을 허공섭물로 잡아당겨 살 수 있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차를 향해 포권을 한 귀도신영은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내가 너희 장주와는 호형호제하는 사람이다. 이놈들이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고 공격부터 해!”
그제야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주님과 친분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도둑놈이 밥 좀 얻어먹으러 왔다고 전하면 알 게다.”
귀도신영의 외침을 들었지만 답은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일각쯤 지났을까…….
문이 살짝 열렸다.
“고 선배님!”
누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반갑게 외치면 뛰어 나왔다. 그는 총관인 허대공이었다.
“허 총관, 오랜만이네?”
허대공은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물었다.
“이곳엔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떻게 오긴? 마차 타고 왔지.”
“아무도 막은 자들이 없었습니까?”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우선 빨리 들어오십시오.”
“문 좀 활짝 열어 주게. 마차에 귀한 분들이 타고 있어서, 마차까지 안으로 들어가야 하네.”
* * *
“도 당주.”
“예!”
“그놈들이 말한 보름이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네. 모두에게 각오 단단히 하라고 말해 두었나?”
“죽기를 각오해야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기가 너무 떨어져 있습니다.”
내당 당주 도치열의 말에 모든 간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야 억지로라도 힘을 내 보는 것인데, 지금 상황은 너무 절망적이라 간부들조차 사기가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한 가지 떠오른 게 있어.”
“무슨 생각이신지요?”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예전 태양천과 어찰단이 작은 문파들을 상대할 때 사용하던 방법이야. 이런 식으로 공포를 주어 상대의 진을 완전히 빼 버린 후 공격하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조금의 피해도 없이 상대를 제거할 수 있으니까.”
“그럼 지금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자들이 태양천이나 어찰단일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들이라면 돈을 요구하는 것이 좀 이해가 안 가.”
“구천마성에서 그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긴, 마도들에게는 아주 좋은 수법이라고 보였을 테니까.”
유성빈의 말을 듣던 간부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지금 그들을 공포로 몰고 있는 이들의 수법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알아봐야, 이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주님, 허 총관입니다.”
그때 밖에서 허대공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궁지조(傷弓之鳥)라고 했다.
한 번 활에 맞은 새는 나뭇가지만 봐도 놀란다는 말이다. 지금 이들이 그랬다.
오늘 경계를 책임진 허대공의 목소리만 듣고도 심장이 덜컹하는 것이다. 지휘해야 할 간부들이 이런다면, 다른 수하들은 싸움이 나면 도망가기 바쁠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 또 일어났느냐?”
“고철황 선배님께서 오셨습니다.”
“형님이? 산 밑에서 여기로 올라왔다는 것이냐?”
“예.”
“어서 모셔라.”
그러자 문이 열리며 귀도신영이 안으로 들어섰다.
“유 제, 장원에 무슨 일이 있는가? 분위기가 이상하네?”
“여길 왜 오셨습니까?”
유성빈의 말에 귀도신영은 섭섭한 표정을 지며 말했다.
“몇 년 못 봤다고 자네도 나를 무시하는 건가?”
“휴우~ 제가 생명의 은인이신 형님을 어찌 무시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지금 본 장이 심각한 위기 상황입니다. 전 형님까지 다칠까 걱정이 되어 한 말입니다.”
유성빈이 젊었을 적, 강호행을 하는 중 큰 위기에 봉착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귀도신영이 그를 숨겨 준 덕에 그는 위기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귀도신영을 형님으로 대우를 하고 있었다.
이름 난 무림인 중에 귀도신영에게 형님이라고 호칭을 해 준 사람은 그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시는가? 말해 보게.”
귀도신영도 이미 산장에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악불군에게 들어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저도 왜 이런 일이 본 장에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성빈은 이미 귀도신영이 장원 안에 들어선 이상 자세한 상황을 알아야 그나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귀도신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자들인지는 전혀 짐작도 안 가시는가?”
“구천마성이나 어찰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는 방식은 어찰단과 비슷하지만, 어찰단은 아닐 거야. 지금 그들은 복건성까지 신경 쓸 틈이 없거든.”
혈교에게 도망을 다니는 와중에도 그는 천하 정세를 나름 분석하고 있었다. 물론 도둑질을 위해서였지만 그 분석은 상당한 정확했다.
“그럼 구천마성일까요?”
“어디일지를 떠나, 갑자기 왜 이곳을 노렸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나?”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짜고짜 모든 재산을 내놓으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영운산장이 그렇게 대단한 부자는 아니지 않는가?”
“그게…….”
잠시 머뭇거리던 유성빈은 결국 비밀을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저희가 가진 중원상단의 지분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유 제가 중원상단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천하 사대상단 중 하나인 중원상단은 절강과 복건 그리고 광동까지 아우르는 거대 상단이었다.
상단의 주인은 누구인지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들은 각 지역의 여러 호족에게 중원상단의 지분을 주어 매년 그 이익금을 나눠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익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원상단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원상단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호족들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유성빈의 말이 끝나자 귀도신영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보이. 객잔을 그냥 지나치고 하룻밤 신세질 곳을 찾다가 생각난 곳이 여기였는데 말일세.”
“그게 무슨?”
“지금 내가 모시는 분이 있네.”
“형님이 모시다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내게 주군이 생겼다는 말일세. 그분이라면 영운산장의 위기를 너끈히 막아주실 걸세.”
순간 청 내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귀도신영에게 향했다.
주군이 누구인지 아직 듣지 못했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