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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158화 (158/472)

<천검지애 158화>

158화. 세력(1)

악불군이 본격적으로 천륭검보의 자세를 취하자, 검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악불군을 향해, 염라마부가 도끼를 그대로 내려쳤다.

‘강하기는 하나 단순하다. 부(斧)를 무기로 사용하는 자들의 가장 큰 단점이다. 거기다 이런 자들은 상대가 자신의 부에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

이미 염라마부의 무공의 장단점을 다 파악한 악불군은 그의 부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쳤다.

“으헉?”

염라마부의 당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연히 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다음 초식을 펼칠 생각이었던 그는 자신의 부가 잘라지자 대경실색하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놀랐는지 보법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발이 꼬여 넘어질 뻔할 정도였다.

얇은 검으로 백 근이 넘는 거대한 부를 그대로 받아친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잡은 기회를 놓칠 악불군이 아니었다. 물러나는 염라마부를 그대로 쫓아간 그는 검으로 염라마부의 가슴을 그대로 베어 버렸다.

가슴이 반 이상 갈라진 염라마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앞으로 엎어졌다.

핑!

“사신혈겸! 피해라!”

염라마부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순간 잠시 정신을 놓았던 사신혈겸은, 선풍마강의 외침에 급히 혈겸을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 올리며 방어했다.

염라마부의 가슴을 가른 검이 그대로 악불군의 손을 벗어나며 그에게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사신혈겸이 방어에 들어가자 자세를 빠르게 바꿨다. 그러자 날아가던 검이 위쪽으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꿔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완벽한 대응을 못하고 어설프게 방어했던 사신혈겸은, 날아오던 검이 공중으로 떠오르자 악불군이 실수했다는 치명적인 오판까지 하고 말았다.

악불군이 이기어검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한 그로서는, 검이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서 방향을 바꿔 떨어질 것 또한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컥!”

머리를 관통당한 사신혈겸은 짧은 비명과 함께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이노옴!”

그것을 본 선풍마강과 두 명의 사자는 울부짖듯 고함을 치며 악불군을 향해 총 공격을 펼쳤다.

선풍마강의 혈선마강은 아까와는 달리 가느다란 선을 만들며 날아갔다. 하지만 한데 집중된 그 힘은 이전에 비해 더욱 강력했다.

다른 사자들의 공격 역시 전력을 다했는지, 악불군을 향해 몰려오는 그들의 힘은 만 근 바위도 그대로 가루를 만들 만큼 강력했다.

사신혈겸의 머리에 박힌 검을 빼든 악불군은 피할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몰려드는 공격을 보며 감탄과 함께 입술을 잘근 물었다.

협공을 받는 경우에 대비해 그가 만든 초식은 여러 개가 있었다. 물론 천륭검보의 적힌 글자들과 자세를 조합해서 만든 것들이었다.

‘강에는 강이다!’

악불군은 검을 죽 펼친 상태에서 회(回)를 펼쳤다. 그러자 그의 몸이 강렬하게 회전하며 검에서 금빛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공터에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아까와는 그 양이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 * *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까요?”

유성빈은 불안한 듯 침을 꿀꺽 삼기며 귀도신영에게 물었다.

“주군께서 분명 이길 걸세. 천하를 호령할 분이니 이 정도는 거뜬하시지!”

귀도신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유성빈보다 무공이 약한 그의 말은 사실 소망에 가까웠다.

하지만 흙먼지가 사라지며 그의 소망은 사실로 판명이 되었다. 선풍마강을 위시한 세 명의 사자들은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었고, 악불군만이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생각하듯 눈을 감고 있던 악불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모두에게 미소를 보이고는 담수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까와 같은 환호성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는 경의를 표하듯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이겼으면 빨리 모습을 보여야지, 흙먼지가 다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어떡해! 나 애태워 죽일 생각이야!”

진을 풀자 담수련은 화가 난 듯 말했다. 그러나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폭음이 터지고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그녀가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악불군은 미소를 지며 급히 사과했다.

그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결투가 끝난 후 자신이 사용한 초식과 그들의 대응 등을 반추하며 복기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는 강호에 나온 후 처음으로 부담을 느낄 정도의 내상까지 입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 그 무공은 초식 이름이 뭐야?”

담수련도 그 위력에 놀랐던 모양이었다.

“글쎄요? 파회폭강(破回爆剛)이라고 이름을 지을까 합니다.”

“설……마 소군이 만든 초식이야?”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초식을 만들겠습니까? 그냥 배운 무공들을 조합해서 펼쳐 본 것입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췄던 담수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군.”

“예?”

“그걸 초식을 만들었다고 하는 거야.”

싸움이 끝난 후, 영운산장 앞의 공터는 마치 여러 개의 벽력탄이 터진 듯 엉망으로 변해 버렸다.

거기다 시신들까지 사방에 널브러져 있어, 영운산장의 제자들 백여 명이 모두 달라붙었음에도 정리가 끝나는 데는 두 시진 넘게 걸렸다.

“형님, 악 대협께서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싸움이 끝난 후 악불군은 미소만 보이고는 담수련과 함께 빈청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성빈은 다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지만 귀도신영이 문 앞을 막고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 받았으니까 잠시만 기다리게. 그 엄청난 격투를 벌였는데 피곤하시지 않겠나?”

“저도 압니다. 그냥 다치신 데는 없으신지 걱정이 되어서요.”

“그건 걱정 말게. 그런데 유 제.”

“예, 형님.”

“내 경험상 하는 말이네만, 이번은 주군 덕에 어떻게 넘어갔지만 구천마성에서 또다시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나?”

“저도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 예전에는 아무리 마도라 해도 저희 같은 지역 토호 출신의 작은 문파는 건드리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정파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 참은 거지. 하지만 지금은 혼란을 제어할 세력이 정립이 안 되어 있지 않은가? 어찰단까지 사라졌으니, 이젠 무조건 힘 센 자가 정의가 된 판이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시 산장을 봉문하고 숨는 것은 어떻겠나?”

“선대부터 지켜온 산장입니다. 저의 대에서 문을 닫을 수는 없습니다.”

“문을 닫으라는 것이 아니라 봉문을 하라는 거네. 소나기를 잠시 피하자는 거야.”

“형님, 영운산장은 사제지간으로 엮인 문파나 혈육으로 조직된 세가와는 다릅니다. 봉문을 하는 즉시 산장은 해체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유성빈의 말대로 영운산장 같은 중소 문파에 몸 담고 있는 무인들은 자신들을 의탁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위기도 나가면 죽기 때문에 버틴 것이지, 만약 퇴로를 열어 주었다면 최소한 반은 도망을 쳤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구천마성이 무서워 봉문을 하고 얼마간 숨어 지낸다고 한다면 측근이라고 할 이삼십 명을 제외하고는 다 떠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유성빈이 대단한 고수이거나 이들을 잡아 놓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지급한다면 모르지만, 그럴 만한 여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중원 상단의 지분은 일 년에 한 번 이익금을 받는 것과 경영에 참견을 할 수 있다는 정도이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찰은 아니었다.

중소 문파의 자금 사정에 대해서는 귀도신영도 잘 알고 있으니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유 제, 한 가지 방법은 있네.”

“방법이요?”

“지금 천하가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그렇지요.”

“지금 유 제 밑에 있는 무인들이 영운산장을 떠난다 해도 그들을 받아 줄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네. 오히려 낭인으로 변해서 고생만 하다가 죽기 십상이지.”

“그들도 알긴 알 겁니다. 하지만 구천마성이란 존재가 너무 공포스러우니…….”

“유 제도 주군의 수하로 들어가게.”

“수하요?”

“그래.”

“형님, 비록 작지만 저도 한 문파의 장입니다. 구파일방까지 다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아버님과 저는 영운산장을 지금까지 이끌어왔습니다. 그런데 남의 밑에 들어가겠습니까?”

“남의 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영웅의 길에 동참한다고 생각하게. 저분은 욕심도 없어. 유 제가 수하가 된다고 해서 저분이 영운산장을 탐내기라도 할 것 같나?”

“그건 아닙니다만…….”

“그냥 주군으로 모신다고 충성 맹세를 하는 거야.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식적으로 말일세. 그럼 자네에게는 일거삼득, 아니 일거오득이 될 수도 있을 거네.”

“…….”

다른 때 이런 말을 들었다면 그는 그런 어불성설이 어디 있냐며 화를 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악불군에게 그는 마음으로 승복한 상태였다.

귀도신영은 그가 갈등하는 것을 보자 급히 부언했다.

“모두 주군의 무공을 봤네. 유 제가 저분을 주군으로 모신다면 다른 수하들에게도 저분이 주군이 되는 거야. 무공을 다 봤는데 누가 배신을 하겠나? 잠시 봉문을 하더라도 끝까지 버틸 걸세. 그리고 지금까지 버텼으니까 이후에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은 말게. 예전에는 중립이라는 상황이 유 제를 보호했겠지만, 이젠 중립이기에 가장 먼저 제거 대상이 될 걸세.”

“…….”

유성빈이 여전히 아무 답이 없자. 귀도신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지금은 자네가 저분을 주군으로 모시냐 아니냐를 고민할 상황이 아니라, 저분이 자네를 수하로 받아들일지 아닐지를 걱정해야 할 상황일세.”

귀도신영의 말에 유성빈이 드디어 반응을 했다.

“형님 말대로, 악 대협께서 저를 수하로 받아들이기나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냥은 안 받아들이네. 진정한 충성심을 보여야 가능하지.”

“진정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보인단 말입니까?”

“그냥 유 제만 진정이면 돼. 그럼 그냥 알아보실 걸세.”

“제가 비록 장주이긴 하지만, 이 일은 저 혼자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간부들과 의논할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시간은 내가 주는 게 아니네. 주군께서 얼마나 여기 더 머물지는 나도 모르니까. 만약 당장 떠나겠다고 하면 난 막을 수 없네.”

“……최대한 빨리 결정하겠습니다.”

* * *

담수련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운기조식에 들어갔던 악불군이 눈을 뜨자, 담수련이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이제 괜찮아?”

“아까도 괜찮았습니다.”

“내상은 즉시 치료 안 하면 평생 안고 갈 수 있다는 거 몰라? 안 좋다 싶으면 빨리 운기조식부터 했어야지! 나 진짜 소군 때문에 속상해.”

방에 돌아온 담수련은 그제야 악불군이 내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악불군은 나름대로 숨기려 했지만, 악불군의 모든 것을 언제나 세심하게 보는 그녀가 그의 입가에 가느다랗게 만들어진 핏줄기를 놓칠 리 없었다.

“안 좋은 느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아가씨 걱정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왜 내 걱정을 생각해? 소군이 다치면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픈데.”

“아가씨 마음이 아프시니까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무조건 다치지 마. 이건 명령이야!”

“저번에 마지막 명령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응? 내가 그랬나?”

“아가씨 같이 머리가 좋으신 분이 그걸 기억 못하신다면 말이 안 되겠지요?”

“당연히 기억하지. 그런데 이거 알아?”

“뭘 말입니까?”

“소군한테만은 내 마음대로라는 거.”

커다란 눈으로 빤히 보며 당당하게 말하는 담수련의 모습은, 악불군에게는 정말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예, 맞습니다. 제게만은 무엇이든 아가씨 마음대로 하십시오.”

“히~”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배시시 웃었다. 그냥, 그냥 악불군만 보면 무조건 좋은 그녀였다.

“자, 이제 떠나셔야지요.”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딜 가나 다 똑같다면 사화나 유모 있는 곳이 더 낫겠지.”

담수련은 사실 악불군과 단둘이 강호나 유람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세상은 혼란했고 어딜 가던 싸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면 악불군의 미래를 자신의 고집 때문에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더 이상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자님, 드릴 말이 있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때 들려오는 귀도신영의 목소리에 악불군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귀도신영에게 말을 놓으라는 담수련의 말에 의도적으로 말을 놓고는 있었지만, 아직 어색한 탓에 자신도 모르게 계속 존댓말이 나오고 있는 악불군이었다.

‘고노는 수하로 참 잘들인 것 같아. 알아서 척척 일을 한단 말이야.’

그런데 담수련은 듣지도 않고 귀도신영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이미 아는 듯, 회심의 미소를 그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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