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159화 (159/472)

<천검지애 159화>

159화. 세력(2)

“공자님, 유 장주가 공자님을 주군으로 모시고 싶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 문파의 장인 유 장주님을 제가 어떻게 수하로 들입니까? 고노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전 그럴 처지가 못 됩니다.”

“이 처지 저 처지 보면서 문파를 세우는 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지요. 공자님께서 충분히 자격이 있으십니다.”

“제가 떠돌이인데 누구를 수하로 들입니까? 고노는 어차피 홀로 다니시니까 괜찮았지만, 유 장주님은 거느린 식솔만도 백 명이 넘으시는 분입니다. 제가 유 장주님을 수하로 들인다면 그 백 명이 넘는 식솔도 다 수하로 받아들인다는 말인데,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귀도신영은 악불군이 생각 외로 완강하자 슬쩍 담수련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모른 척하자 결심한 듯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모른 척한다는 것은 찬성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반대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그려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언감생심이신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고노가 제 수하가 되었으니 말하는 거지만, 난 아가씨의 호위 무사로 키워진 사람입니다. 누구를 수하로 거느리고 할 재목이 아니라는 겁니다.”

호위 무사로 키워졌다는 말에 귀도신영은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저 같은 도둑들도 도문을 세웠고, 거지를 하다가 천하제일방을 만든 개방의 조사 같은 분도 있습니다.”

“단순히 보자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많은 수하를 거느리려면 그들을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는 겁니다. 지금 저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 수하를 두셔야 합니다. 소림이나 무당 같이 처음부터 조직이 되어 있다가 대종사가 나타나 무공을 창조하면서 문파로 변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생명과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문파를 세웁니다. 사파나 마도는 떼로 덤비니까요. 주군께서도 지금 혼자 몸이니까 바쁘신 겁니다. 수하들이 있다면 아가씨에 대한 호위도 더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원래 이렇게 말을 잘하셨습니까?”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상식입니다. 지금처럼 혼자 모든 것을 하시려고 하다가는 결국 인해전술에 견디지 못하십니다.”

“소군, 이제 왜 내가 그러는지 알겠어?”

그제야 담수련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녀가 수하로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악불군은 이번에도 허락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강요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악불군이 스스로 수긍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귀도신영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었다.

“받아들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난 소군이 판단하라는 말이야. 우리의 적은 너무 많고, 우리는 그들의 움직임이나 전력을 전혀 몰라. 거기다 어떤 적이 우리를 공격할지도 예상할 수가 없어. 정보가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수하들이 있으면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해져. 물론 우리를 보호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고.”

악불군에게 판단하라고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은 받아들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받아들인다 해도 같이 다닐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얼마간 산장을 봉문하고 숨어서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연락은 제가 맡으면 됩니다. 도문이 은근히 연락망이 좋습니다.”

“봉문을 하겠답니까?”

“오늘을 어떻게 넘겼지만, 구천마성이 이대로 포기하겠습니까? 주군께서 떠나시면 이들은 죽은 목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려면 숨어야지요.”

“딸린 수하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동의를 했습니까?”

“의논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니까 그 문제는 주군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까부터 자꾸 주군이라고 하시는데, 공자님이라고 부르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악불군은 주군이라는 말이 은근히 거슬리는 듯했다.

“주군께서도 제게 말을 놓기로 하셨는데, 잠시 말을 놓으시더니 지금은 존댓말을 하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신데 반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황제도 나이 많은 신하한테는 존대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셔야지요. 저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만 공자님이라고 하겠습니다.”

“고노 말대로라면 제가 주군인데 은근히 맞먹으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원래 첫 수하는 좀 봐주시는 겁니다.”

귀도신영의 너스레에 담수련은 킥!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소군이 고노에게 말로는 못 이길 것 같다.”

“아가씨께서 그러시니 이번까지는 수하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수하로 받아들이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있으니까, 진짜로 충성할 것 같은 사람만 골라 줄게.”

같은 생각이라고 했지만, 담수련의 말은 결국 수하가 되겠다는 사람은 다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누구의 말인가……. 악불군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그럼 나가 보시지요.”

귀도신영의 안내를 받으며 연무장에 도착한 악불군은, 영운산장의 모든 식솔들이 모여 있자 살짝 당황했다. 유성빈만 만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유성빈, 악 대협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유성빈이 악불군을 보고 크게 외치며 그 앞에 부복하자, 뒤에 서 있던 수하들도 크게 외치며 부복했다.

악불군은 누가 자신에게 부복하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일어나십시오.”

크게 소리치며 손을 들어 올리자, 부복했던 모두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그들의 몸이 저절로 일어서졌기 때문이었다.

유성빈과 간부급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일류 초입이거나 이류 무인인 그들을 허공섭물로 일으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백 명 가까운 인원 모두를 동시에 일으키는 것은 여간한 고수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혈교의 사자들과의 싸움으로 유성빈을 비롯한 영운산장의 모든 제자들은 악불군을 이미 신인(神人)으로 받들고 있었다.

물론 악불군 역시 그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손바닥 뒤집듯 쉬운 것은 아니었다. 실지로 미약하게나마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내상까지 입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사정까지는 알 수 없는 그들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분신십이수와 무황들과 십대고수나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진 이기어검까지 펼치는 악불군은 이미 십대고수의 반열에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악불군의 한 수는 모두에게 반드시 따라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는 데 일조하기에 충분했다.

귀도신영이나 영운산장이 대단한 전력은 아니지만, 점점 명성과 함께 세력을 만들어 가고 있는 악불군의 북상이 천하 정세에 어떤 변수가 될지는 아직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 *

“소군, 이런 식으로 가면 금방 큰 문파 하나 만들겠다.”

영운산장을 떠난 담수련은 기분이 좋은 듯 말했다.

“가주님께서는 제게 문파를 세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 아가씨를 보호하는 것이 임무니까요.”

“소군, 다시는 내 호위 무사라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마. 내가 소군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 자꾸 그래?”

“고노라서 해 준 말입니다. 저보다 아가씨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 같았습니다.”

“고노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마.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우습게 안 봅니다. 대화를 해 보니 생각 외로 아는 것이 많더군요.”

“귀도신영은 천하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야. 스스로 도둑이라고 하니까 그냥 받아주는 거지만, 실지로는 신투로 더 유명해.”

“아가씨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유모가 무림의 특이한 인물들에 대해서 많이 얘기해 줬어. 신투이자 천하제일의 양상군자, 거기다 역용의 대가. 무공은 좀 약하지만 신법에 한해서는 백대고수 안에 들 정도라고도 하셨어. 그리고 대화해 보니까 진법과 기관에 대해서도 상당히 조예가 깊더라고. 보통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려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긴 하지만.”

“듣고 보니 대단한 수하를 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용의 대가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소군은 지금 우리가 보는 고노의 얼굴이 진짜라고 생각해?”

“제가 보기에는 진짜 같던데요?”

“내가 봐도 그래. 그런데 가짜일 수도 있어. 왜냐하면 수백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들었거든.”

“그래요? 한번 물어볼까요?”

“놔둬. 어차피 소군은 이제 얼굴을 바꾼다 해도 알아볼 거 아니야?”

“사람마다 고유의 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제 고노의 기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지도자는 모든 일을 자신이 하는 자가 아니라 수하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자였어. 소군도 그걸 잊지 마.”

“……?”

무엇이든 그녀가 말하면 무조건 알았다고 하던 그였지만, 이번만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이 세력을 가지도록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악불군의 생각을 눈치챈 그녀는 다시 부언했다.

“소군 혼자만 싸우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 그리고 그때마다 마음 졸이는 것도 싫고. 그래서 그러는 거니까 소군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 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악불군은 결국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악불군은 그녀가 죽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이 죽은 이후를 생각해서 세운 계획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

* * *

“언니, 복건에서 또 대단한 소문이 들려왔어요.”

급히 뛰어온 천화궁주가 꺼낸 말에 종리화는 즉시 감을 잡은 듯 반문했다.

“소군에 대한 소문이야?”

“하여간에 언니는 눈치도 참 빨라. 소군이 북상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가 봐요. 올라오는 도중에 구천마성의 구천마혈과 시비가 벌어진 모양인데, 혼자서 오십 명을 다 죽였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구천마혈이면 어찰단의 정예들과 맞먹을 텐데 말이에요.”

“……난 정말 지금 둘이 뭘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신나하는 천화궁주와 달리 종리화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소군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아가씨에게는 좋잖아요?”

“좋긴 하지. 하지만 그만큼 더 무서운 자들이 쫓을 수도 있어. 해남도에서 홍항으로 빠진 것을 보면 추적자들을 따돌리려고 한 것 같은데, 왜 스스로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는 행동을 할까? 우리가 알 정도면 추적하는 자들도 다 알고 그쪽으로 몰려갈 것이 아니냐?”

“우리 아이들이 보낸 정보에 의하면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그렇게 된 모양이더라고요. 한마디로 눈에 거스르는 상황이 보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소군은 호위 무사다. 아가씨를 보호하는 것이 임무인데, 그런 식의 행보가 위험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모를까?”

“소군이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가씨께서 그러라고 한 것일 수도 있지요. 소군은 아가씨의 명만 듣는다면서요?”

천화궁주의 말에 종리화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가씨는 마음이 약해서 싸움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누구를 죽이는 것도 대단히 싫어하시고. 그런데 그런 명을 진짜 내리셨다면…….”

종리화는 오음절맥의 부작용으로 인해 담수련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이 담룡세가를 떠나기 전의 담수련만 생각을 하니, 지금 상황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를 보면 소군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좋아하는 것보다는 불안해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믿으신다면서 자꾸 왜 그러세요?”

천화궁주는 종리화의 표정에서 불안함을 느끼자 의아한 듯 물었다.

“역사를 보면 황제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된 수하들은 언제나 반역을 했다. 그건 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힘의 역학 관계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

“소군이 점점 강해지니까 아가씨를 배신할까 걱정하시는 거예요?”

“소군은 아가씨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아가씨께서 잠룡세가를 버릴까 그게 불안한 거다.”

악불군이 아니라 담수련을 걱정한다는 종리화의 말에, 천화궁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설마 아가씨께서 그러시겠어요? 제가 보기에 노파심 같아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행보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 자꾸 이상한 생각만 드는구나.”

“복건 쪽은 천화궁도들의 움직임이 자유로우니, 곧 아가씨와 연락이 될 거예요.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일로 걱정하지 마시고, 만나서 직접 물어보세요. 그게 답일 것 같네요.”

“나도 빨리 만나서 알아보고 싶다. 서령아, 최대한 빨리 만날 수 있도록 힘 써 줘. 부탁할게.”

“이미 그러고 있어요. 어쩌면 지금쯤 만났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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