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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177화 (177/472)

<천검지애 177화>

177화. 철뇌마궁(1)

담수련도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재빨리 악불군의 목을 꼭 껴안았다.

마차 밖으로 튀어나온 악불군은 백설에게 소리쳤다.

“백설, 가까운 숲으로 도망가!”

백설은 악불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달리고 있었다. 백설은 동물 특유의 위기 감지 능력을 통해 이미 강한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에 대한 충성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인데, 악불군의 외침에 무슨 말을 할지 눈치채고는 먼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악불군에 의해 갑자기 뒤로 던져진 귀도신영 역시 눈치라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착지하자마자 재빨리 커다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위이이잉~!

힝!

쾅!

악불군은 나오자마자 말의 고삐를 자르려고 했지만 이미 시간이 촉박해, 어쩔 수 없이 먼저 몸을 피했다.

악불군의 목을 꼭 잡은 채 뒤를 돌아본 담수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른 말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죽어 있었고, 그 뒤로 마차 역시 중앙에 큰 구멍을 뚫려 있었다.

만약 그대로 마차 안에 타고 있었다면 악불군이라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했을 수도 있었다.

“누, 누구의 짓이지?”

말의 죽음을 본 담수련이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또다시 귀를 찢을 듯한 파공음이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위이이잉~!

악불군이 급히 몸을 피하자 커다란 철시가 그가 서 있던 자리로 날아들었다.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온 철시는 땅을 석 자 가까이 파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실로 엄청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더욱 놀라운 것은, 화살을 쏜 자를 전혀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소군!”

“예.”

“누굴 거 같아?”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긴 악불군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모르겠습니다.”

위이잉~!

대답하던 악불군은 또다시 파공음이 들리자 급히 다른 나무 뒤로 숨었다. 정확히 악불군이 숨었던 나무를 향한 철시는 이번에도 맹렬히 회전하며 그 큰 나무를 그대로 관통한 후 바닥에 박혔다.

[주군! 아무리 봐도 태양천의 철뇌마궁인 것 같습니다.]

바위 뒤에 숨어 상황을 보던 귀도신영이, 가히 절정이라 할 수 있는 화살의 위력에 누군가 머리에 떠오른 듯 급히 악불군에게 전음을 보냈다.

철뇌마궁은 태양천 최고의 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태양천이 무림을 공격할 때 무림인들에게 가장 큰 공포를 안겨 준 자였다.

중원 무림을 떠받치던 수많은 절정 고수들이 그의 활에 제대로 된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고혼이 되었다.

그는 중원이 원나라에 완전히 굴복한 이후에도 거의 십 년간 숨어 버린 무림인들을 찾아다니며 제거했지만, 그 후 거의 오십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철뇌마궁이라는 말을 들은 악불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림인들이 가장 꺼려하는 무기가 활이었다. 하지만 활을 사용하는 무림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가깝거나 좁은 지역에서는 활이 그다지 효용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혼자서 쏘아 대는 화살을 피하거나 쳐 내는 것이 고수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활을 쏘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고, 화살에 이갑자에 달하는 내공까지 곁들여 있으면서, 목표물에 근접해 있을 때나 들릴 정도로 파공음이 작다면 얘기가 또 달랐다.

애초에 악불군이 화살 공격을 먼저 알아채고 귀도신영까지 피신시킬 수 있었던 것만도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어디지? 화살이 날아 오는 기는 감지했는데, 쏘는 사람은 감지가 안 돼? 설마 이백 장 이상 떨어져 있다는 말인가…….’

근래 상대의 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급속도로 발전한 악불군이었지만, 운기조식을 하며 능동적으로 감지하려고 들지 않는 이상 이백 장이 넘는 거리에 있는 자의 기를 감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악불군은 이백 장이 넘으면서 자신들의 모습까지 훤히 볼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일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절벽 위에 어른거리는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저 거리에서?’

삼백 장이 넘어 보이는 거리에 위치한 절벽.

사람을 죽이기는커녕 화살이 날아오기도 어려울 정도로 먼 거리였다.

“소군, 활을 쏘는 자가 어디 있는지 파악했어?”

“아무래도 저기 보이는 절벽 위에서 쏘는 것 같습니다.”

담수련은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더욱이 저 거리에서 화살이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와?”

악불군의 말은 무조건 믿는 그녀조차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악불군이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다시 다른 나무로 자리를 옮겼다.

휘이이잉!

퍽!

“세상에! 이건 명궁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신궁이네?”

놀랍게도 화살은 담수련이 고개를 내민 그 자리를 그대로 관통하며 다른 나무에 박혔다.

“더구나, 소리를 감지하고 피하면 이미 늦을 정도로 빠릅니다.”

“이러면 소군이라 해도 속수무책 아니야?”

악불군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삼백 장이 넘는 거리를 달려가기 위해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아는 어떤 수법도 그 먼 거리를 공격할 수 없었다.

[마 대협!]

악불군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마진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예!]

[혹시 활을 사용하는 분이 계십니까?]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소궁이라 짧은 거리에서만 사용합니다.]

살수들의 암살 방법에 활을 빼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악불군의 짐작대로, 백인막의 살수 중 한 명에게 활이 있었다.

[상관없으니 그거라도 주십시오.]

[육 호, 공자님께 혈단궁을 갖다 드려라.]

마진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악불군을 향해 뭔가가 날아갔다.

“그게 뭐야? 활이야?”

“백인막 사람들이 사용하는 암살기구입니다. 급해서 하나 빌렸습니다.”

“겨우 그걸로 저자를 상대할 수 있겠어?”

정상적인 활로도 보내기조차 어려운 거리를 고작 한 자 정도 되는 활로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의아한 듯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당할 수는 없으니까 시험해 보려고요. 다행히 화살대는 아주 견고하네요.”

육관에서 궁술은 필수적인 수련 과정이었다. 하지만 육관을 나온 후 활을 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악불군은 잠시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내밀어 절벽을 보았다. 정확히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절벽 위의 하늘이었다.

검은 점. 그것은 혈응이었다.

악불군은 화살을 재더니 혈응이 있는 바로 밑을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뽑아낼 수 있는 모든 내공을 화살에 담아 날린 것이다.

* * *

“대단한 놈이군! 내 화살을 피하다니.”

철뇌마궁은 목표를 정한 후 두 번 이상 화살을 날린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그것도 이미 수십 년 전 일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때보다 두 배 이상 강해져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악불군이 자신의 화살을 세 번이나 피한 것이다.

“천주님께서 죽이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철뇌마궁의 옆에 서서 망원통을 보고 있던 중년인이 약간 불안한 듯 말했다.

“그래서 죽지 않을 정도로 날린 거다. 하지만 저런 놈은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정확한 타격점이나 말해라.”

중년인은 철뇌마궁을 따라 다니며 망원통을 이용해 적의 움직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철뇌마궁이 그 먼 거리에서 살짝 내민 머리까지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정확한 좌표 설명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철수한 님, 좌측…….”

공격점을 말하던 중년인은, 악불군이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팔을 죽 뻗자 의아한 듯 다시 말했다.

“저자가 아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에게 화살을 날리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데요?”

“흥! 나 이외에 여기까지 화살을 날릴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리고 저놈에게 우리가 보이기나 하겠느냐?”

말을 마친 철뇌마궁은 활에 화살을 세 대나 장전하더니, 중년인이 알려 준 위치를 향해 활을 뻗었다. 이번에는 좌우로 피할 곳까지 염두에 두고 날릴 생각이었다.

철뇌마궁은 활시위를 한 바퀴 이상 비틀었다. 강력한 회전을 걸어 최대한 강한 위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곧 화살이 맹렬하게 회전을 하며 공간을 찢듯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화살이 거의 목표에 다가가서야 소리가 나는 이유는 화살이 거의 소리의 속도와 맞먹게 날아가다가, 마지막에는 소리의 속도를 넘어가면서 강력한 파열음을 내기 때문이었다.

화살을 쏜 철뇌마궁은 다시 화살을 쟀다. 만약 악불군이 이번에도 피한다면 연사를 할 생각이었다.

“윽!”

화살을 잰 활을 들어 올리던 그의 입에서 갑자기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망원통을 보던 중년인은 고개를 돌리곤 깜짝 놀라 소리쳤다. 철뇌마궁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뇌마궁은 급히 지혈을 하더니 뒤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곧 그는 나무에 박혀 있는 짧은 화살 하나를 발견했다.

‘설마…… 활을 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더니, 정말 쏘았단 말인가? 이런 짧고 약한 화살로…….’

철뇌마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서 있었다. 거기다 소리까지 그는 듣지 못했다.

“철수한 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중년인은 철뇌마궁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 그를 이십 년이 넘게 보필해 왔지만 이런 표정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깨를 다쳤으니 더 이상 활을 사용하기 어렵다. 오늘은 이만 물러간다.”

철뇌마궁은 작은 화살을 중년인에게 건네고는 침중한 표정으로 몸을 날렸다.

중년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급히 망원통을 자신의 눈에 갖다 댔다. 악불군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급히 망원통을 눈에서 떼고는 철뇌마궁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악불군이 또다시 활을 쏘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 * *

“물러난 것 같습니다.”

악불군은 혈응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더니 소궁을 육 호에게 던지며 말했다.

“물러난 것을 어떻게 알아?”

“적설이 그자의 위에 떠 있습니다.”

적설은 담수련이 혈응에게 붙여 준 이름이었다.

“언제 또 적설에게 그런 일을 시켰어?”

“아까 전음으로 부탁했습니다.”

“그럼, 소군이 쏜 화살을 저자가 맞기라도 했다는 거야?”

“솔직히 저도 긴가민가하고 쏘았는데, 다행히 성공한 모양입니다.”

담수련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대체 악불군의 능력이 어디까지 높아질 것인지 그녀도 감을 잡을 수 없어서였다.

“아가씨, 다시 마차를 구할 때까지 백설을 타고 이동하셔야겠습니다.”

“나야 상관없지만…….”

담수련은 악불군의 얼굴을 존경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너무 멋있어서!”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그 역시 담수련이 자신을 칭찬하면 그 어떤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만 내려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담수련은 그제야 자신과 악불군의 얼굴이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 두 팔로 목을 안고 있으니, 가까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화들짝 놀라 품에서 떨어졌다. 방금까지 못 느꼈는데, 악불군의 말을 듣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고노!”

“예, 공자님!”

귀도신영은 중원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태양천의 철뇌마궁이 그냥 물러났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었다.

하지만 악불군이 빈말을 할 리도 만무했고, 조금 전까지 조금만 모습이 보여도 날아들던 화살이 더 이상 날아오지 않으니 물러난 것은 사실인 듯했다.

“다음 현에서 마차와 말을 좀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귀도신영의 말투는 더욱 공손해져 있었다.

담수련을 백설에게 태운 악불군이 사라지자 열 명의 백인막 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천의 철뇌마궁이 분명하지?”

이 호의 말에 구여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아니라면 저 먼 거리에서 이런 위력의 화살을 쏠 자는 없다. 마지막 세 발의 화살은 정말 대단하지 않았냐?”

구여풍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부러져 있는 좌우를 보며 말했다.

철뇌마궁이 마지막에 쏜 세 발은 앞의 화살들보다 위력이 더 강했다. 심지어 전과 다르게, 악불군은 그 화살들을 검으로 쳐 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주위의 나무들이 부서져 나간 것이었다.

“내가 혈단궁을 주고 난 후 몸을 다른 곳으로 피했는데, 정확히 알고 내게 던져 주더라. 이미 우리가 어디에 은신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말인데, 굳이 시험을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육 호가 일 호를 보며 말했다.

그 역시 하루 만에 악불군에게 승복을 한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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