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180화 (180/472)

<천검지애 180화>

180화. 소문(1)

[이런 곳에 저렇게 큰 폐장원이 있을 줄은 몰랐네?]

적설이 머물고 있는 바로 밑에는 커다란 장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산속에 저런 장원을 지으려면 상당한 돈이 들었을 텐데, 저렇게 폐허로 변하다니 좀 아깝군요.]

[송나라 시대에 지은 것이 분명해. 그리고 태양천에게 멸문을 당했겠지. 당시 많은 장군과 고관대작들이 태양천에 의해 멸문을 당하고 장원은 버려졌다는 말이 많이 퍼졌었거든. 그런데 그자가 저 안에 있는 게 분명할까?]

[적설이 감시를 하면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분명 저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아가씨께서는 진 안에 잠시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빨리 올 거지?]

이럴 때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악불군에게 부담만 준다는 사실을 담수련도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오겠습니다.]

대답한 악불군은 그녀의 주위에 진을 치고는 백설을 보며 말했다.

“주위에 있다가 혹시 아가씨에게 위험이 닥치면 크게 소리치거라.”

백설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악불군은 미소를 지며 목을 몇 번 쓰다듬더니 스르르 사라졌다.

배교의 술법인 은밀잠영이었다.

* * *

“괜찮으십니까?”

철뇌마궁의 어깨에 금창약을 바르고 천으로 감싸던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다.”

철뇌마궁은 지금 머리가 무척 복잡했다.

‘고작 이따위 화살로 거기서 나를 맞췄어……. 얼마의 내공이 있어야 이게 가능할까?’

철뇌마궁의 손에는 자신의 어깨를 뚫고 지나간 혈단궁의 화살이 들려 있었다.

어깨를 다친 이상 활을 쏜다 해도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후퇴하긴 했지만, 진정 그 거리에서 쏜 화살이었을까? 여전히 믿기지 않는 그였다.

“천에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놈을 제거하기 전에는 보고는 없다.”

“죽이시면 안 됩니다.”

“천주께서 무슨 이유로 그놈을 생포하라고 하시는지 몰라도, 그놈은 생포는커녕 죽이는 것도 간단치 않는 놈이다.”

무림인을 생포하려면 최소한 두 배 이상 강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지금 그 말은, 악불군의 무공이 철뇌마궁 자신과 맞먹는다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 선배님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영광이군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철뇌마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를 못 챘다는 것은 그가 이기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이런 좁은 방 안에서 그의 성명절기라 할 수 있는 활은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스르르 자신의 앞에 건장한 청년이 나타나자 철뇌마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사람을 아주 놀라게 하는 놈이구나! 그 거리에서 우리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텐데?”

고수답게 곧 안정을 찾은 철뇌마궁은 활을 손에 꽉 잡으며 말했다.

사실 직선거리로 삼백 장이었지, 그가 있던 절벽까지 오려면 실지 거리는 일 마장에 달할 수도 있었다.

“제게 사람을 찾아내는 특별한 친구가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는 알면서 온 것이냐?”

“확실치는 않지만 태양천의 공포로 불리던 철뇌마궁 노선배님이 아닐까 짐작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내 이름을 기억하다니 기특하기는 하구나.”

“기특하다니 다시 한번 영광입니다. 노선배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중했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내가 궁술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느냐?”

“저야 모르지요. 하지만 제게 오늘 죽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악불군의 말이 끝나기도 전, 철뇌마궁은 활에 화살을 재었다. 실로 너무 빨라 원래부터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핑!

이 장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악불군의 심장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철뇌마궁은 연이어 화살을 활에 재고는 쏘아 댔다.

좁은 공간에서는 활이 약하다는 통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빠른 수법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검 역시 빨랐다.

어느새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은 화살들을 쳐 내기 시작했다.

핑!

탕!

악불군이 화살을 쳐 내며 다가서자 철뇌마궁은 화살을 그대로 던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냥 손으로 던진 화살의 위력은 활을 이용한 화살의 위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컥!”

그때 악불군의 등을 노리며 공격을 펼친 중년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살을 쳐 내던 악불군의 검이 순식간에 그의 가슴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이놈!”

철뇌마궁은 중년인의 죽음에 대노한 듯 화살 네 개를 던지고는, 그 뒤를 따라 활을 마치 검처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중원 무림인들에게 공포의 존재였다고 하더니, 과연 다르긴 다르군…….’

찰나 만에 십 초가 지났다.

악불군은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자들과 완연히 다른 그의 무공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구천마성의 호법들이나 혈교의 고수들을 상대하면서 악불군은 나름 자신의 무공에 대해 조금 자신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철뇌마궁의 무공은 분명 그들보다 한 수 위였다.

하지만 놀라기는 철뇌마궁이 더했다.

그는 전대의 원로로 태양천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수 중의 한 명이었다. 더욱이 그의 실전 경험은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 그를 상대로 악불군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특히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변식이 펼쳐지다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빨라지는 악불군의 검식은 말 그대로 현란했다.

‘도대체 이놈의 사문은 어딘 거야? 이런 검식은 듣도 보도 못 했거늘…… 설마?’

철뇌마궁은 갑자기 한 사람이 생각이 났다.

태양천의 최고위층인 그는 전대 태양천주가 이기지 못한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악불군을 생포하라고 한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이제 보니 네놈이 천륭검가의 무공을 익힌 놈이구나!”

“쯧쯧! 좀 더 수련을 하려고 했는데 그 말을 꺼내시다니,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겠군요.”

철뇌마궁의 말을 듣자 악불군의 공격이 갑자기 거세졌다. 벌써 사십 초가 지나가는데 공격이 더욱 강해졌다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이, 이놈이 미쳤나!”

오륙 초를 더 교환한 철뇌마궁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악불군이 방어를 하지 않고 그대로 그의 몸을 향해 검을 찔러 왔기 때문이었다.

철뇌마궁의 내공이 깃든 활시위는 검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방어를 도외시했다는 것은 동귀어진을 하겠다는 것으로, 철뇌마궁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수법이었다.

퍽!

“크윽!”

악불군의 목과 어깨 사이를 정확하게 철뇌마궁의 활시위가 강타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몸이 반으로 잘릴 엄청난 위력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몸에서 일어난 반탄강기와 그의 피부를 덮은 철포삼의 효과로 벌건 줄이 만들어졌을 뿐,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철뇌마궁의 가슴에 꽂힌 악불군의 검은 그의 심장과 허파를 완전히 조각을 내 버렸다.

“욱!”

입으로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 낸 철뇌마궁은 가래끓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 뱉었다.

“원나라가 이제 끝날 때가 된 모양이구나. 너 같은 놈이 나타나다니…….”

“백성들을 위한 정치만 한다면 저는 원나라건 뭐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태양천 역시 적으로 삼을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먼저 건드린 쪽은 바로 태양천입니다.”

악불군은 철뇌마궁이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자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리고는 급히 밖으로 사라졌다.

그는 이 소문이 퍼질 경우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반향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무형의 도살자로 불리며 수많은 무림 고수들을 죽였던 공포의 철뇌마궁을 천호무적검이 죽였다.’

악불군에게 철뇌마궁이 죽은 지 겨우 삼 일.

귀도신영은 놀랍게도 삼 일 만에 그 소문을 장강이남의 모든 성에 퍼뜨렸다.

그러자, 악불군은 단숨에 무림의 구성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명성이 올라갔다.

구천마성의 장로와 호법 세 명을 홀로 죽인 신성에서 중원의 진정한 힘을 보여 줄 중원 무림의 영웅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다.

* * *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은 것 같군.’

책사인 유백온이 가져온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던 주원장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나타났다.

“유백온.”

“예, 주군.”

“내 구상의 중심점을 이 아이로 했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주원장의 말에 유백온은 잠시 고민하듯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주군, 그동안 명멸했던 수많은 황조들이 무림을 장악하지 못하고 타협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림이 반역을 일으킬 것을 걱정했던 것이 아니더냐?”

“맞습니다. 원나라는 자체적으로 태양천과 새외무림을 이용해 중원 무림을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언젠가 무림인들이 황실에 우환이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당시 원나라는 누구도 당하지 못할 무적의 군단을 운용 중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포기하라는 의미냐?”

“처음부터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유화책을 쓰다가 시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백온. 황조가 새로 만들어지는 지금, 무림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다음은 없다.”

후일 패황으로 불릴 정도로 패도적인 성정을 가진 주원장은 무림이라는 작은 세상까지 자신의 그늘 아래 둘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무림인으로 생활을 하며 무림이라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관과 군까지 무시하며 정파와 사파로 나뉘어 대규모 전쟁까지 벌이는 자들이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예전처럼 그냥 풀어 준다면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화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주군의 구상을 반드시 관철하려고 마음을 먹으셨다면 구파일방이나 영웅회를 이용하는 것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느냐?”

“지금은 주군께 호의적이지만 원나라를 완전히 몰아낸 후에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때마다 그들을 군을 동원해 토벌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주군께 좋을 것이 없습니다. 큰 세력을 가진 자들을 이용하는 것이 주군의 전력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림인을 이용해 무림을 장악하라? 이이제이(以夷制夷) 후 토사구팽(兎死狗烹)을 하라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책사로서 아주 좋은 계책이긴 하지만 넌 무림인들의 본성을 아직 모른다. 이이제이는 가능하다. 하지만 토사구팽을 하는 것은 어렵다. 무림인들은 황실에 대한 충성보다 명분을 더 중요시한다. 토사구팽을 하는 순간 오히려 그들에게 반역할 명분을 주게 된다.”

“주군께서는 그 악불군이라는 자를 믿으십니까?”

“난 누구도 완전히 믿지 않는다. 하지만 악불군은 다른 무림인들에 비해서는 낫다고 본다. 우선 장사성을 물리치는 것이 우선이니 아직 시간은 있다. 유백온 너는 내 구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다듬어라. 네 말대로 구파일방이나 영웅회와 손을 잡을지, 아니면 내 판단대로 악불군과 손을 잡을지는 네가 계책을 완성하면 그때 다시 의논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악불군에 대한 소식은 들어오는 대로 내게 올려라.”

“존명!”

유백온이 나가자 다시 보고서에 눈을 돌린 주원장은, 악불군이 태양천의 철뇌마궁을 제거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장을 읽으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 * *

“고노!”

마차를 타고 가던 담수련이 갑자기 귀도신영을 불렀다.

“예, 아가씨!”

“고노의 보물 창고는 아직 멀었어?”

“이틀만 가면 도착합니다.”

“알았어.”

귀도신영의 대답을 들은 담수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자 악불군은 의아한 듯 물었다.

“아가씨, 지금 돈이 있어 봐야 사용할 곳도 없는데 왜 그리 재촉을 하십니까?”

“난 사용할 곳이 있어.”

“제게 가주님께서 주신 제법 큰돈이 있고, 금자 구만 냥 전표도 받았고, 종리 단주님을 만나면 또 돈이 들어올 텐데 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 쓰시려고요?”

“비밀이야.”

“비밀이요?”

담수련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그로서는 그녀에게 비밀이 생겼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군을 위해 내가 계획한 것이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담수련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그려졌다.

악불군을 위한 그녀의 계획에서 가장 문제가 바로 자금이었다. 그것만은 머리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었고, 장사를 한다 해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너무 쉽게 풀리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녀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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