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183화 (183/472)

<천검지애 183화>

183화. 시험(2)

“저기가 보물 창고라고요?”

주루에 앉은 담수련은 귀도신영이 가리킨 곳을 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

담수련이나 악불군은 보물 창고라고 해서 심산유곡의 동굴 같은 데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러나 그가 가리킨 곳은 형양현의 중심가에 위치한 커다란 포목상회였다.

형양현은 강서와 광동 그리고 광서까지 세 곳으로 가는 관도가 합쳐지는 교통의 요지로, 상업이 많이 발달한 곳이었다. 당연히 현의 크기도 거의 성도에 맞먹을 정도였다.

“귀중한 물건일수록 너무 깊숙한 곳에 숨기면 안 됩니다. 저같이 경험 많은 도둑은 깊숙할수록 더 잘 찾거든요.”

귀도신영의 말에 담수련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도 여긴 좀 너무 사람이 많잖아요? 거기다 포목점이라니? 여기 점원이나 주인의 눈은 어떻게 피하고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 포목점의 주인이 바로 저니깐요.”

귀도신영의 말에 악불군과 담수련은 상당히 놀란 눈으로 다시 창밖을 보았다. 포목점은 대단히 커서, 척 보기에도 가게 주인이 대단히 부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노, 정말 부자네요?”

“부자면 뭐하겠습니까? 언제 정체를 들킬지 몰라서 돈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는걸요.”

“도문에서 나와서 여기 경영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딴은 그런데, 이 도둑질이라는 것도 조금은 중독기가 있어서 편안히 쉬면 온몸이 간질거립니다.”

“그럼 어쩌실 작정이세요?”

“주군이나 아가씨께서 들어가시면 저희를 쫓는 무림인들이 저 가게를 의심할 것이니, 저 혼자만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보물을 혼자 가지고 나올 수 있겠어요?”

“하북에 있는 제 보물 창고에는 물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만, 여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원래 하북에서 활동하셨어요?”

“하북은 고관대작들이 많이 삽니다. 그러다 보니 귀한 물건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지요. 그런데 호남은 상인들이 많아 돈은 많은데, 귀한 물건을 가진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 다녀오세요. 우린 여기서 식사나 하고 있을게요.”

“알겠습니다.”

귀도신영은 인사를 하더니 천천히 주루를 빠져나갔다. 누가 봐도 무공을 모르는 평민의 발걸음이었다.

“소군.”

귀도신영이 계단을 내려가자 담수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아무래도 고노가 우리 편이 되어 준 것은 정말 행운인 것 같아.”

담수련의 말에, 처음에는 반대했던 악불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귀도신영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소군.”

악불군이 말이 없자 담수련이 다시 불렀다.

“예.”

“백인막 말이야. 오늘 저녁이면 이제 네 시진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언제 공격하려고 이러는 거지?”

이곳까지 오는 동안 험준한 산 두 개를 넘었고, 인적이 드문 평원도 한 곳 지나쳤다. 그들이 공격을 하려고 했다면 이미 그런 곳에서 했어야 한다는 것이 담수련의 생각이었다.

약간의 단서를 가지고 전체를 파악할 정도로 그녀의 머리는 대단했지만, 직접적으로 싸운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보통 무림인들과 살수들의 싸움은 그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미 두 번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정말?”

“예.”

“난 한 번도 못 느꼈는데? 두 번이나 공격이 있었다니 놀랍네.”

“저도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예전 만났던 살수들이나 어찰단의 기습 공격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식사 나왔습니다.”

그때 점소이가 요리를 들고 왔다.

그녀가 좋아하는 어향탕과 악불군이 자주 먹는 소채였다.

전에는 악불군에게 좀 든든하게 먹으라고 자주 권했지만, 몸이 가벼워야 최고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악불군의 말에 더 이상 먹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왜?”

어향탕을 한 모금 마시려던 담수련은 악불군의 제지에 의아한 듯 물었다.

“세 번째 공격은 좀 치졸한 것 같습니다.”

악불군은 그녀가 들려던 어향탕을 슬쩍 치웠다. 그러자 두 개의 암기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왔다.

만약 그녀가 직접 어향탕에 손을 댔다면 얼굴이나 목에 그대로 박혔을 상황이었다.

“이자들이 진짜 치졸하네? 어떻게 노려도 얼굴을 노리지?”

담수련은 화난 듯 고개를 돌렸다. 그때 그녀의 허리를 향해 무엇인가 날아왔다. 그러자 악불군은 그녀의 손을 잡아 공중으로 살짝 던졌다.

악불군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손을 쓴 순간은 정말 찰나였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에 악불군의 발밑에서 검이 하나 올라왔다.

‘백인막 최고의 살수라고 하더니, 이유가 있었군!’

담수련에 대한 공격은 모두 악불군에게 감지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공격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흑석영의 공격은 악불군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완벽한 살수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살수 무공은 사실 무공이라기보다는 술법에 가까웠다. 그리고 악불군은 술법의 최고봉인 배교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이게…… 어찌?’

그는 분명 악불군의 발바닥에 정확하게 검을 꽂았다. 아니, 꽂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검이 박힌 곳은 의자의 다리였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흑석영은 급히 몸을 숨겼다.

[다치게는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냥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때 그의 귀에 악불군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번까지 악불군의 전음을 들은 사람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모두 지금과 똑같은 전음이었다.

첫 공격은 마차에 타고 있는 담수련에게 행해졌다. 마차의 뒤와 지붕 그리고 바닥에서 동시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검을 찌른 것이다.

물론 그 공격이 성공하지 못하리란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격으로 악불군의 방어에 빈틈이 생긴다면 곧이어 나머지가 악불군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격을 감행한 세 명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마차에서 튕겨 나왔고, 곧이어 그들의 귀에 들려온 것은 방금 흑석영이 들은 것과 똑같은 악불군의 전음이었다.

그들은 그냥 보내 주겠다는 악불군의 전음에 대해 갑론을박을 잠시 벌였다.

진짜 악불군이 손을 썼다면 그들이 죽었을 것이냐, 아니면 그냥 한 말이냐에 대한 공방이었다.

마진우와 구여풍은 실지였다면 셋 다 죽었을 것이라고 했고, 공격했던 세 명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다른 다섯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특히 가장 강한 흑석영이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자 모두는 두 번째 공격을 해 보고 결론을 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공격은 마차에서 내리는 담수련에게 시작되었다.

하나, 이번에는 공격을 시작도 못 해 보고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첫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던 네 명이 맡았다.

그러나 담수련이 밖에 나오기 전, 먼저 나온 악불군이 주위의 자갈을 발로 찼다. 그러자 자갈은 숨어 있던 네 명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살행을 하려던 살수가 자신의 위치를 간파당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에 세 번째로 악불군의 전음을 들은 것이다.

“아가씨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됐는데, 죄송합니다.”

사뿐이 담수련을 의자에 다시 앉힌 악불군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용서를 빌었다.

암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다른 공격은 흑석영만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그녀가 모르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놀라긴 뭘 놀라? 좋기만 했는데! 다음에 기회 되면 공중으로 또 던져 줘. 생각보다 재미있더라.”

담수련의 활짝 웃는 모습에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불군에게 그녀는 무슨 말, 무슨 행동을 하건 무조건 다 예쁘기만 했다.

“그런데, 소군.”

“예.”

“방금 나 공격받은 거 맞지?”

악불군이 갑자기 그녀를 공중으로 던졌다는 것은 급박한 상황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심지어 몇 명은 앞 사람에게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돌리고 있었다.

“그들의 은신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주위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야? 그럼 저 사람들 보기에는 나 혼자 미친 사람처럼 밥 먹다 말고 펄쩍 뛰었다 앉은 것으로 보겠네?”

“미친 사람으로까지야 보겠습니까?”

“어쨌든 이상한 사람으로 볼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굉장히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 겁니다.

“소군은 내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도 괜찮다는 거야?”

담수련의 목소리가 살짝 날카로워지자 악불군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급히 부언했다.

“제 말은, 아가씨께서 어차피 역용을 하고 계시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예쁘기만 했습니다.”

지금 대화상 예쁘다는 말은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데 적합했던 모양이었다. 담수련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나타난 것이다.

* * *

“일 호, 왜 공격을 하다 말고 그냥 피한 거냐?”

다시 모인 백인막의 살수들은 최종 공격을 담당했던 흑석영을 보며 물었다.

그들이 보기에 이번 작전은 상당히 성공적이었고, 흑석영의 공격도 악불군의 빈틈을 정확하게 찔러 갔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흑석영이 더 이상의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서자,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자들 역시 어쩔 수 없이 물러선 것이다.

“내 공격은 완전히 실패했다.”

흑석영의 말에 모두는 무슨 말이냐는 듯 서로를 보더니 다시 말했다.

“우리가 보기에 정확했는데 무슨 말이냐?”

그들의 말에 흑석영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자신은 분명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물러선 것인데, 주위에서 기회를 엿보던 다른 동료들은 아니라고 하고 있었다.

수많은 살행을 나갔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은 공격을 한 자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고, 보는 사람들은 위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허허! 사 호, 네 말이 맞았다. 우리가 재단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나 보다.”

흑석영의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는 몇 번의 공격이 실패했다 하여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더욱이 아직 전력을 다한 공격은 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결정한 것이냐?”

마진우는 흑석영의 말에 급히 물었다.

“그래, 그분에게 우리의 생사를 맡겨 보자.”

흑석영이 처음 주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쉽게 승복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 번의 공격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씩만 들었던 악불군의 전음을 그는 세 번이나 들었다는 것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 * *

“그게 보물 창고의 물건을 다 가지고 온 거예요?”

귀도신영이 등에 매고 온 상자를 본 담수련은 약간은 실망한 듯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물 창고라고 하니까 최소한 마차 한 대분은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귀도신영이 가져온 상자는 보물 창고의 보물을 다 챙겼다고 보기에는 작았다.

귀도신영은 담수련이 실망한 듯 말하자, 상자를 마차 안에 넣으며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시시한 것은 보물 창고에 안 두거든요. 이게 작아 보여도 모두 값이 상당한 것들입니다. 제가 마찬 안에 넣어 둘 테니, 보시고 마음에 드시는 것이 있으시면 가지셔도 됩니다. 패물하고 장신구들도 좀 있으니까요.”

“정말 예쁜 거 있으면 제가 가져도 돼요?”

“당연하지요. 주군하고 주군이 가장 아끼시는 분인데 제가 무엇을 아까워하겠습니까?”

귀도신영의 말에 담수련은 기분이 좋은 듯 마차에 탔다.

마차가 출발하자 담수련은 악불군에게 상자를 열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곧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안에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고려청자부터 척 보기만 해도 비싸 보이는 장신구와 조각품들이 가득했다.

“이거 예뻐?”

담수련은 그중 눈에 띄는 팔찌를 하나 꺼내 자신의 팔목에 끼워 보더니 물었다.

“아가씨께서 하시면 그냥 밧줄도 예쁩니다.”

담수련의 아부성 칭찬에 담수련은 배시시 웃으면서도 뭔가 답이 탐탁지 않은 듯 다시 물었다.

“그런 말 말고, 이거 예쁘냐고?”

“당연히 예쁩니다.”

“소군은 무조건 예쁘다고 하니까 정말인지 아닌지 헷갈려.”

“전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알아. 그래서 더 헷갈려.”

“……?”

악불군은 무슨 의미인지 모를 때는 침묵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이젠 알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