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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185화 (185/472)

<천검지애 185화>

185화. 보물(2)

“어떤 자들이기에 야심한 시각에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하는 걸까?”

마차의 창문으로 살짝 밖을 보던 담수련이 의아한 듯 물었다.

“함부로 나서기 어려운 자들이 아닐까요?”

귀도신영의 말대로, 하루도 안 되어 특수 장물을 취급한다는 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들이 삼경이라는 가장 야심한 시각에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는 야산의 공동묘지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고노는 위험하지 않을까?”

담수련은 밖에 나가 있는 귀도신영이 살짝 걱정이 되는 듯했다.

“마 대협과 고 대협이 주위에 숨어서 보호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딴 사람들은 어떻게 한대?”

“막주를 만난 후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 충성심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킬 사람들이더라. 그리고 무공도 높으니까 쓸데가 많을 거야.”

“아가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러려니 하긴 하는데, 어디에서 쓸모가 있을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예?”

“그들을 쓸 일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말이야.”

“그런데 걱정은 좀 됩니다.”

“무슨 걱정?”

“영온 산장에서도 믿을 만한 수하들을 보내겠다고 했고, 광한궁에서도 정소란 소저가 제자들을 선별해서 오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많이 끌고 다니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거기다 사화와 잠봉단은 또 어떡합니까?”

“사화와 잠봉단은 그들하고 좀 다르지.”

“다른가요?”

“그럼! 사화와 잠봉단은 내 수하고 다른 사람들은 소군 수하잖아?”

“네? 제 수하라면 아가씨 수하이기도 한데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소군이 내 수하가 아닌데 왜 그 사람들이 내 수하가 돼? 소군과 나는 평등해. 우린 주종 관계가 아니라고. 난 소군이 내게 너무 깍듯이 존댓말을 하는 것도 사실은 마음에 안 들어.”

“아가씨와 저 사이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맞아. 내가 소군을 처음 봤을 때 오빠라고 한 거 기억나?”

“그때야 아가씨께서 어려서 멋모르고 하신 말씀이시고요.”

“아니거든! 난 소군을 부를 때마다 소리 안 나게 오빠 소리 꼭 붙였어. 그러니까 소군도 이제 나한테 말 놓고 연매라고 하면 어떨까?”

“험!”

악불군은 곤란하다는 듯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창문에 귀를 갖다 대며 말했다.

“그자들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말 돌린다. 조금만 답하기 곤란하면 말 돌리는 버릇 좀 고쳐 줬으면 좋겠는데?”

“제가 감히 아가씨께서 얘기하시는데 어찌 말을 돌리겠습니까? 진짜 그자들이 다가와서 하는 말입니다.”

“그게 말이 돼? 어떻게 매번 중요한 대화를 할 때마다 누가 나타나냐고! 우연이 그렇게 많으면 우연이 아니거든!”

“그런 대화를 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 아닐까요?”

“여기서 하늘이 왜 나와? 난 하늘 같은 거 안 믿거든! 내 말은 우연이 아니라 소군이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는 얘기야.”

“설마 제가 그럴 리가요.”

“내가 그들이 오고 있다니까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는 나랑 심도 있게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해야 할 거야.”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께서는 심도 있는 대화를 너무 좋아하신단 말이야. 그런데 오빠……라. 아가씨께 오빠 소리 들으면 기분은 참 좋긴 할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생각을 한 악불군은 급히 머리를 저었다.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것은 마음만 아플 뿐이기 때문이었다.

마차에서 오 장 정도 떨어진 한 묘지 앞에 서 있던 귀도신영은 새파란 귀화 십여 개가 나타나자 인상을 찌푸렸다.

‘귀화단? 이런 개자식! 감히 나를 속여?’

귀화단은 불법 장물을 거래하는 장물애비들 중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도문이 가장 피하는 조직이었다.

그들은 대놓고 강도짓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조건 물건 값을 후려친 후, 상대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반 강제적으로 물건을 인수하곤 했다.

굳이 강도와 다른 점을 찾는다면 사지 중 하나를 자를지언정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과, 상대에게 동의를 얻은 후 돈을 주고 물건을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귀화단을 찾는 자들이 있긴 했다. 장물의 특성상 어차피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이상, 그들이 제시한 가격만 받아들인다면 아무 일 없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귀도신영은 분명 자신이 도문 소속이라고 말했다. 하오문의 장물애비들은 도문이 귀화단과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들이 나타난 것은 그가 배신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귀화는 공중을 훨훨 날아 귀도신영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진짜 귀신들이 나타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때 귀화 중 하나가 귀도신영의 앞에 떨어졌다.

귀도신영은 귀면탈을 쓰고 온몸을 커다란 천으로 감싼 괴인이 나타나자 놀란 눈으로 말했다.

“나는 진짜 귀신이 나타난 줄 알고 깜짝 놀랐소이다.”

다른 때 같으면 무조건 도망을 쳤겠지만, 지금은 그도 믿는 것이 있었다.

귀도신영의 말에 귀면괴인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를 보더니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여기 목록에 적힌 물건들을 팔겠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렇소.”

“우리 귀화단에 대해 들어는 봤겠지?”

“장물을 취급하는 자들 중 귀화단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소이까? 다만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요.”

“여기 목록에 있는 물건이 없거나 가짜라고 판명이 나면 너는 오늘 여기서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소문은 들었소이다.”

“그럼 물건을 가져와라.”

“잠시만 기다리시오.”

귀도신영은 마차로 가더니 문을 열었다.

[주군, 이들은 귀화단이라고 하는데, 장물아비 중 가장 비열한 놈들입니다.]

귀도신영은 상자에서 아름다운 도자기 하나를 꺼내며 악불군에게 전음을 보냈다.

“뭐래?”

귀도신영이 마차 문을 닫고 가자 담수련이 물었다.

“귀화단인데 장물아비 중 가장 비열하답니다.”

“비열한 걸 알면서 왜 저들과 거래를 하지?”

“거래하는 상황을 보면 이유를 알지 않을까요?”

고개를 끄덕인 담수련은 창문을 살짝 열고 밖을 보았다. 귀도신영의 주위에는 여전히 여러 개의 퍼런 귀화가 계속 공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은 아름답기가 천하에서 제일이라는 말을 듣는 고려의 청자라는 도자기요. 아마 목록의 첫 번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게요.”

그러자 귀화 중 하나가 또 날아오더니 귀도신영의 앞에 섰다. 그러자 흑면탈을 쓴 괴인이 나타나더니 도자기를 받아들였다.

“조심하시오. 깨지면 물어내야 합니다.”

귀도신영은 조심스럽게 건네며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처음 나타난 귀면괴인에게 도자기를 가져갔다.

귀면괴인은 도자기를 받아 공중으로 들어 달빛에 비춰보더니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달빛이 비춘 고려청자는 마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상감된 표면은 달빛의 각도에 따라 여러 색감의 비취빛을 보여 주었다.

“내가 거래하는 물건은 전부 진품밖에 없소이다.”

“다른 물건들은 어디에 있느냐? 저 마차 안에 있느냐?”

“거래에는 순서가 있는 법 아니겠소이까? 우선 첫 번 거래를 잘해서 신뢰를 쌓아야 그다음 거래도 순조로운 법이외다. 도자기부터 거래를 끝내는 것이 어떻겠소?”

귀면괴인은 마차를 한 번 보더니 간단하게 말했다.

“금자 열 냥 주겠다.”

귀면괴인의 말에 귀도신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더니 도자기를 돌려 달라는 듯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귀화단이 무조건 물건 값을 후려친다는 말은 들었지만 고려청자의 가격을 금자 열 냥을 부를 줄은 몰랐소이다. 그만둡시다. 내가 다른 장물아비를 알아보겠소.”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모양인데, 지금 도자기 한 개에 금자 열 냥이나 쳐 줄 장물아비는 우리밖에 없다. 그리고 이 도자기는 현금화하기가 그다지 쉬운 물건이 아니다.”

“그러니까 안 팔고 내가 가지고 있겠다는 말이외다.”

“그럼 원하는 가격을 말해 봐라.”

귀면괴인은 도자기를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흑면괴인에게 도자기를 넘기고는 다시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격과 귀하가 말하는 가격의 차이가 너무 커서, 말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소이다. 그냥 돌려주시오.”

“하하하하! 귀도신영. 그대의 명성을 생각해서 최대한 대우를 해 주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더 이상 예의를 갖추기는 어렵다.”

귀면괴인의 말에 귀도신영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는 지금 사십 대의 중년인으로 역용을 하고 있던 터라,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낸 것이 사실 무척 놀라웠다.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일개 좀 도둑을 그분 같은 대도로 봐주시니 고맙기는 한데, 솔직히 예의를 갖춘 것도 없는 것 같소이다. 귀도신영의 나이가 얼마나 많은 줄 아시오?”

정말 귀도신영이라면 왜 계속 반말을 하는 거냐며 귀면괴인을 은근히 힐난한 귀도신영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분명 말하지만 내가 생각한 가격 이하로는 난 물건을 넘길 생각이 없소이다.”

“귀화단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고 하더니 자세히는 모르는 모양이군.”

그의 말이 끝나자 귀도신영의 주위를 떠돌던 귀화들이 갑자기 멈추더니 흑면을 쓴 괴한들로 변했다.

“지금 뭐하자는 거요? 설마 강도짓이라도 할 생각이오?”

“우리는 특수한 상인이지, 강도는 아니다. 우선 가져온 물건부터 다 꺼내 봐라. 그리고 가격을 잘 쳐 줄 테니 우리에게 팔고 가라. 어차피 넘길 것이니 괜한 고집 부려서 언성을 높이거나 표정이 구겨지는 일은 없게 하는 것이 좋을 게다.”

그때 마차의 창이 열리며 담수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 대협, 여기 상자 좀 가지고 가세요.”

그러자 마진우가 마차 옆에 스르르 나타나더니 문을 열었다. 그는 보물 상자를 들더니 귀도신영의 앞에 내려놓았다.

‘뭐야, 이건?’

귀면괴인은 갑작스런 마진우의 등장에 움찔했다. 그를 지금껏 못 느꼈다는 사실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와 거래할 때는 혼자만 나와야 한다고 했을 텐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당신들은 떼거리로 나타나고 우리는 혼자만 나타나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다시 목소리가 들리며 학사 차림의 담수련이 악불군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챙! 챙! 챙……!

흑면괴인들은 긴장을 한 듯 무기를 뽑아 들었다.

“물건 거래를 하는 데 무기는 왜 뽑는지 모르겠네요.”

담수련과 악불군이 다가오자 귀도신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들에게 자신은 수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행동 하나로 완벽하게 전달한 것이다.

“넌 누구냐?”

귀면괴인은 담수련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악 대협, 저자는 너무 예의가 없는 것 같아요. 또다시 반말을 꺼낸다면 치아를 몇 개 뽑아 버려 주세요.”

담수련은 그가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그리 문제 삼지 않았다. 그녀의 나이가 원체 어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귀도신영에게 계속적으로 강압적인 반말을 하는 것에는 심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악불군이 대답하자 귀면괴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이것들이 쌍으로 미쳤나? 우리가 누군 줄…….”

퍽!

“아이구!”

말을 하던 귀면괴인은 안면에 커다란 충격을 받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비칠비칠 물러났다. 귀면탈의 아래쪽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고 그의 입은 피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이, 이…….”

“악 대협, 저자 또 무례하게 반말하면 이번에는 목을 잘라 버리세요.”

손을 입에 갖다 댄 귀면괴인은 피와 함께 이빨 세 개가 손바닥에 떨어지자 대노한 표정으로 소리를 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담수련의 말에, 나오던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귀면괴인을 입을 막은 담수련은 주위를 포위한 흑면괴인들을 보며 다시 경고했다.

“그냥 그렇게 포위만 하고 있어요. 만약 허튼 수작을 부리면 그땐 죽습니다.”

말을 마친 담수련은 마진우를 보며 말했다.

“마 대협, 상자를 여세요.”

“예.”

마진우가 상자를 열기 시작하자 모두의 시선에 그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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