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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187화 (187/472)

<천검지애 187화>

187화. 새로운 시작(1)

지금 일어난 일은 귀화단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당연히 모두는 악불군을 태운 마차가 사라진 후에도 바로 떠나지 못하고 잠시 서 있었다.

귀화전랑의 옆으로 다가간 귀면괴인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랑님, 단주님께서 아시면 큰일 아닙니까?”

그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귀화전랑은 귀면괴인을 보며 물었다.

“이번 거래를 소개한 놈이 누구냐?”

“하오문에 심어 놓은 저희 첩자입니다.”

“그놈에게 연락해서 귀도신영과 천호무적검 사이의 관계를 알아내라고 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자를 가지고 와라.”

귀면괴인은 급히 바닥에 놓인 상자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 주기 시작했다. 큰 물건은 네 점이었고 자잘한 물건은 십여 점이었다.

“생각 외로 아주 정확하게 물건 값을 책정했군.”

“예?”

“이 정도 물건이면 금자 삼만 냥 이상을 받을 수 있으니 우리가 손해 날 일은 없다. 단주님께는 내가 알아서 말할 것이니, 내가 시킨 것부터 알아보도록 해라.”

“그런데 전랑 님.”

“뭐냐?”

“아까 어떤 자가 갑자기 나타나 마차에서 물건을 꺼내왔었습니다.”

귀면괴인의 말에 귀화전랑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맞아. 또 한 명이 있었지?”

“예, 제가 그자를 살피고 있었는데, 상자 뚜껑을 여는 것까지 봤는데 그 직후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네 말은 천호무적검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말이냐?”

“누구를 돕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자나 귀도신영이나 하나같이 천호무적검과 그 젊은 놈에게 굉장히 공손했습니다.”

귀화전랑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래……. 천호무적검 정도의 명성이면 사대 상단만 찾아가도 금자 일, 이만 냥은 가볍게 얻을 수 있을 거야. 고작 몇만 냥 벌려고 장물을 취급하고 우리 같은 장물아비 조직을 협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그럼 무슨 속셈일까요?”

“지금 천하는 완전 혼돈 그 자체다. 예전 같이 무림을 대표하는 조직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신생 문파가 자리를 잡기에는 아주 좋은 시기이기도 하지.”

“그렇다면 천호무적검이 문파를 세우려고 하는 걸까요?”

“조직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금이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명성에 흠이 나는 것까지 감수하며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아무래도 돈을 뜯긴 정도의 일이 아니다. 난 곧장 단주님께 보고할 것이니 너희는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라. 미행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고.”

귀화전랑이 명을 내리고 사라지자 귀면괴인과 흑면괴인들도 급히 몸을 날려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들을 미행하는 자들은 분명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공중에서 보고 있는 눈이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 * *

“소군, 아까 정말 너무 잘했어!”

“잘했다니 다행입니다.”

“솔직히 소군이 내가 말한 액수보다 더 높게 부를 줄은 몰랐어.”

“문득 양민들은 온갖 고생을 하는데 그런 자들은 돈이 그렇게 많으니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담수련은 귀화전랑에게 받은 전표를 넘겼다. 돈은 악불군이 전담해서 보호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돈 얼마나 돼?”

“금괴 판 돈하고 오늘 번 돈, 그리고 가주님께서 제게 맡기신 돈까지 하면 꽤 많습니다. 대략 금자 이십만 냥 정도는 될 것입니다.”

“이십만 냥이라……. 큰돈인 것은 맞지만, 내 계획을 완벽하게 이루기에는 아직 모자라.”

뭔가 부족함을 느낀 담수련은 마차 앞창을 열고는 물었다.

“고노, 다른 보물 창고의 물건들도 오늘 거래한 정도의 양은 돼?”

“대부분은 더 많습니다.”

“그럼 총 얼마나 될까?”

“오늘 물건들도 제가 직접 팔았다면 금자 삼천 냥도 받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 정도밖에 안 돼?”

“귀화단이 장물아비 중 가장 많이 가격을 후려치고 강압적이라 싫어하긴 하지만, 사실 다른 장물아비들도 원 가격의 십분지 일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 오늘처럼만 받아 낸다면 굉장하겠네?”

“오늘처럼 큰 가격을 받아 낼 수 있다면 대략 금자 칠십만 냥까지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 정도면 중원제일부(中原第一富)도 될 수 있겠는데? ”

잠룡세가의 일 년 예산이 많을 때 금자 삼십만 냥, 적을 때는 금자 이십만 냥 정도였다. 원체 많은 무사들을 거느리고 있기에 그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엄청났다.

조직이 아닌 개인이라면 금자 십만 냥만 가지고 있어도 큰 부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 칠십만 냥이라면 엄청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고가품들은 갑자기 많이 나오면 가격이 확 떨어집니다. 그래서 소량만 찔끔찔끔 팔아야 하지요. 칠십만 냥이 있다고 생각하시기보다는 비상금 개념으로 보시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귀도신영의 말에 담수련은 금방 이해를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보물 창고들은 우선 놔두자고. 나중에 돈이 많이 필요할 때 그때 꺼내는 것이 좋겠네. 그럼 형산 쪽으로 그냥 가.”

“알겠습니다.”

창문을 닫은 담수련의 표정이 살짝 무거워졌다.

“방금까지 기분이 좋으시더니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악불군은 금방 그녀의 변화를 느끼고는 물었다.

“솔직히 유모를 만나는 것이 점점 불안해.”

“유모님께서 아가씨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요!”

악불군의 반문에 담수련은 대답 없이 옆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광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종리화를 만난다 생각하니 현실적으로 그녀에게 닥칠 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압박으로 다가온 것이다.

‘아버님께서 유모에게 어떤 지시를 했을까? 아버님께서는 무사하실까? 그리고…… 휴우~’

여러 상념에 잠긴 그녀에게 또 다른 고민은 오빠인 담수운이었다. 잠룡세가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후 담수운에 대한 얘기는 금기 사항이 되어 버렸다.

담무룡과의 불화로 그녀와는 같이 보낸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피를 나눈 친형제였다. 담수운 역시 그녀에게만은 언제나 친절하고 그녀를 위하는 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악불군의 표정 역시 그리 밝지는 않았다.

* * *

“지계가 세 곳이나 전멸했는데 아직까지 범인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냐?”

혈해사계의 군사인 뇌혼광뇌는 부군사인 양뇌잔심의 보고에 검미를 찌푸리며 질책을 했다.

“아무래도 마룡세가에 저희가 모르는 특별한 무력 집단을 운영 중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마룡세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감시하고 분석해 왔다. 지계를 하루 만에 모조리 죽일 정도의 무력 집단이라면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일 수는 없다.”

“산우현 지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수하가 한 명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들으니, 우리가 들어 보지 못한 자들이 공격한 것은 분명합니다.”

양뇌잔심은 말이 끝나자 보고서 하나를 올렸다. 살아남은 수하가 남긴 설명을 정리한 것이었다.

“독? 우리가 시신들을 수습했을 때, 독에 의한 중독 증상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보고서를 읽던 뇌혼광뇌는 의아한 듯 반문했다.

“그 보고를 한 수하도 결국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도 독에 의한 중독 증상은 찾지 못했습니다.”

뇌혼광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나타난 자는 온몸을 검은 보자기로 덮어썼고 방어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건 팔이건 닿은 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 지계주의 무공은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채 삼 초를 못 견디고 죽임을 당했다.

보고서에 묘사된 것을 읽으며 그는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설명이 맞다면, 공격한 자는 단 한 명이라는 말이냐?”

“그자의 뒤로 같은 복장을 한 자들이 십여 명 더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격은 한 명만이 했고, 다른 자들은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매우 강력한 독이지만 사람 몸에 들어간 후 반 시진 정도 지나면 완전히 사라지는 독이 있긴 있다. 하지만 그 독은 평범한 사람이 사용할 수 없을 텐데……?”

뇌혼광뇌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주군께 보고를 해야겠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부군사는 계속 그자들의 종적을 찾도록 해라. 그리고 마룡세가에 대한 감시도 더 강화하고.”

지시를 내린 뇌혼광뇌는 급히 계주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는 듯했다.

* * *

귀화단과의 거래한 지 이틀이 지났다.

이동을 하던 중 추적추적 비가 내리자 담수련은 관묘 앞에 마차를 세우게 했다.

“소군.”

“예.”

“내가 고노와 천호십영에게 잠깐 할 얘기가 있어.”

막주에게 보고를 하러 갔던 백인막의 살수들이 돌아온 것은 어제였다. 담수련은 그들에게 천호십영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부과했고, 더 이상 일 호니 이 호니 하는 호칭을 쓰지 못하게 했다.

“아가씨께서 하시고 싶으면 하시면 됩니다.”

악불군은 담수련의 말에 의아한 듯 말했다.

“소군이 잠시 빠져 줬으면 해.”

“그건 안 됩니다.”

“왜? 저들이 나를 해치기라도 할 것 같아서?”

“가주님께서 세상에서 믿을 자는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 심복조차도 의심을 하라고 하셨지요.”

“아버님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배신을 당하신 거야. 소군, 진정한 충성을 받으려면 진정으로 믿어 줘야만 가능해. 저들을 수하로 받아들인 이상, 저들에게 믿음을 보여 줘. 그래야 저들도 소군을 믿고 주군으로 충성을 할 거야.”

“하지만……?”

“멀리 있을 필요는 없어. 우린 관묘 안에서 대화를 할 거니까 소군은 그냥 밖에 있으면 돼. 단, 안에서 하는 대화는 절대 듣지 마.”

“아가씨, 갑자기 이러시니까 제가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소군, 나 믿지?”

“당연하지요.”

“그럼 그냥 믿고 내 말대로 해 줘.”

악불군은 담수련을 자세히 주시했다. 그녀의 눈망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고요한 것이 이미 뭔가 마음을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목소리는 작게 부탁드립니다. 크게 들리는 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작은 소리는 일부러 안 듣겠지만 그녀가 위험을 느껴 크게 소리친다면 그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알았어. 다시 말하지만 들으면 안 돼.”

“……예.”

대답을 하긴 하지만 약간의 뜸을 들이는 것이 뭔가 찝찝해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노와 천호십영을 이렇게 따로 부른 것은 아주 중요한 부탁이 있어서예요.”

악불군까지 배제하고 그들만 부르자 모두는 약간 긴장한 듯했다.

“말씀하십시오. 아가씨의 부탁이시라면 뭐든 들어드려야지요.”

순발력 있게 귀도신영이 가장 먼저 대답을 했다.

“우선 먼저 여러분들은 악 대협께 충성을 맹세하실 수 있나요?”

“노복은 이미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이번에도 귀도신영이 재빨리 답하자 구여풍이 급히 뒤를 따라 말했다. 침묵은 진중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질문에 침묵은 진의를 의심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비록 살수 집단에서 살행을 업으로 살아왔지만, 한 번도 백인막을 배신한 적은 없습니다. 이제 막주님의 허락하에 악 대협을 주군으로 삼았습니다. 당연히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구여풍의 말을 들은 담수련은 나머지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담수련과 눈이 마주치는 사람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충성맹세를 했다.

“이미 눈치를 채신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말을 마친 담수련은 역용을 지웠다. 그리고 그녀의 진면목이 나타나자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천상신녀의 미모가 경국지색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실물을 보니 그 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담수련은 그들을 주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 잠룡세가의 천금인 담수련이에요.”

천호십영은 이미 그녀의 정체를 어느 정도 추측을 하고 있었고, 귀도신영 역시 그녀에게 약간의 언질을 이미 들은 터라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래도 좀 놀랄 줄 알았는데, 너무 태연하니까 좀 실망스러운데요.”

담수련의 말에 귀도신영이 급히 말을 받았다.

“전 굉장히 놀랐습니다. 다만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담수련은 그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어찌나 예쁜지 어두침침한 관묘 안이 갑자기 밝아진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여러분은 악 대협의 충성스러운 수하를 자처했어요. 그래서 이제 제가 생각한 향후 계획을 말하겠어요.”

“경청하겠습니다.”

모두는 상당히 중요한 얘기가 나올 것을 느끼고는 숙연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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