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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188화 (188/472)

<천검지애 188화>

188화. 새로운 시작(2)

“지금 천하는 최대의 격변기예요. 원나라가 완전히 새외로 밀릴지는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더 이상 장강 이남에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겁니다. 문제는 아직 장강 이남을 통치할 조직이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호로 불리던 사효조가 담수련의 말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 백인막에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주원장에 패한 진우량이 장사성에게 연합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주원장과 두 연합 세력 간의 전쟁이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느 쪽이 이길 것 같다고 하던가요?”

“군사의 수는 장사성 연합 쪽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원장의 군대는 근래 계속 승리한 터라 사기가 높다고 합니다. 막주님께서는 주원장이 이길 것으로 판단하고 계셨습니다.”

“전쟁은 언제쯤 벌어질 것 같다고 하던가요?”

“일이 년 안에 완전히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담수련은 결심한 듯 말을 이어 갔다.

“우선 악 대협은 잠룡세가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말해 드리겠어요.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세가에 들어왔고, 그 뒤로도 계속 무공 수련만 하다가 저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원나라에 부역한 적도 없고 아버님의 명령을 들은 적도 없어요.”

그녀의 말에 모두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잠룡세가에서 무공을 배웠고 생활해 왔다면 누가 그 말을 믿어 주겠는가…….

그러자 담수련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저도 제 말이 억지라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여러분들만은 믿어 주시기를 바라요.”

“믿고 자시고를 떠나, 저희는 이미 그분을 주군으로 삼았습니다.”

“저와 악 대협 간의 인연만 정리한다면 무림인들과 아무 문제없이 공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담수련의 말에, 귀도신영은 그것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아가씨, 이 늙은이가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세요.”

“중원 무림은 잠룡세가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오룡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가씨 말씀대로 주군께서 중원 무림과 공존하려면 잠룡세가에 대한 토벌이 시작될 때 모른 척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특히 아가씨는 잠룡세가의 천금이십니다. 그들과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주군께서 아가씨가 공격받는 것을 용인하실까요? 전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오래 살아야 십 년, 짧으면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습니다. 오음절맥을 타고났거든요. 오음절맥에 대해서는 들으셨을 거예요. 요절(夭折)은 누구도 피하지 못합니다. 이런 저 때문에 악 대협 같은 분이 천하를 적으로 삼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가씨,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가씨께서 요절하신다 해도 그것은 그때 일이고요. 지금은 현재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다는 건가요?”

“그거야 저희보다는 아가씨께서 생각을 하셔야지요. 주군의 무공에 아가씨의 머리, 그리고 제가 가진 정보망에다 여기 천호십영과 그동안 끌어들인 영온산장 같은 세력들까지 힘을 합친다면 천하의 어떤 세력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세력을 구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찰단조차도 버거운 상대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저희 백인막의 모든 세력도 합하셔야지요. 저희들 뒤에는 수백에 달하는 백인막의 살수들이 있습니다. 여간한 중견 문파 몇 개는 박살 낼 수 있는 전력이지요.”

‘됐다!’

담수련이 처음 감성에 호소한 것은 하나의 전략이었다. 어느 정도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들 스스로 힘을 합치겠다는 말까지 나온 것은 망외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아요. 우리 힘을 합해서 기적을 만들어 보자고요. 그럼 지금부터 제가 정한 계획에 따라서 움직여 주세요.”

“말씀하십시오.”

“우선 조직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나누어서 활동을 할 거예요. 우선 우리 조직은 가칭 천호방으로 할게요. 악 대협의 명호에서 따온 것이기는 하지만, 하늘을 보호한다는 뜻이 백성을 보호한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니, 악 대협의 뜻을 계승하는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저희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방주 대행은 고노가 맡습니다.”

“제, 제가요?”

담수련의 말에 귀도신영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입으로는 제일 수하라고 떠벌렸지만, 무공이나 무림에서의 위치로 보아 악불군을 대신하는 방주 대행은 정말 벼락감투이기 때문이었다.

“조직에는 무공이 강한 사람과 머리가 좋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조직의 화합을 이끌고 상황을 최대한 평정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연륜 있는 분도 있어야 합니다. 저는 고노야말로 그 일에 적격이라고 봤어요. 다른 분들도 동의하시죠?”

담수련은 천호십영을 보며 물었다. 이제부터 실질적인 모든 일을 담당하는 행동 대장이 될 이들이 동의를 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가씨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지휘자인 흑석영이 대답하자 모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열 분은 천호방의 호법으로 방주 대행과 모든 일을 의논해서 행하세요. 단 방주 대행이 명을 내리면 그대로 따르셔야 합니다.”

협의는 하되, 서열을 확실히 정해 주는 그녀였다.

“알겠습니다.”

“고노, 곧 영온산장과 광한궁에서 사람을 보낼 겁니다. 그들을 맞아 적절한 일을 맡겨 주세요. 그리고 이제부터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아직은 방주님이 천호무적검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공표는 하지 마세요. 그러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할 수는 있습니다.”

“주군과 아가씨는 어찌하시려고요?”

“저희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리면 천호방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전력이 보태질 것이고, 잘 안 풀리면…… 거기까지는 아직 저도 모르겠네요.”

“그럼 총단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원나라에 의해 중원 무림이 풍비박산 나기 전에 무림 세력이 없던 지역이 어디 있을까요?”

“글쎄요? 무림 세력이 없는 지역이 있을까요?”

“한 곳이 있었어요. 절강이에요.”

강소성과 안휘 그리고 복건에 둘러싸인 절강은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성 중에 하나였다. 중원 최대의 항구와 동정호와 이어지는 뱃길, 그리고 사방으로 연결되는 관도가 가장 발전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유한 곳에 무림 세력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만, 그랬기 때문에 누구도 그곳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을 수 없었다.

다른 문파의 견제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문파를 세운 세력들은 잠룡세가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모두 멸문당했다.

“잠룡세가가 가만히 있을까요?”

“잠룡세가의 세력까지 우리가 흡수하면 돼요.”

“중원 정파에서는 절강은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들었습니다. 마도나 사파가 나타나면 힘을 합쳐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총단을 세우고 잠룡세가의 세력까지 흡수한다면 난리가 날 텐데요?”

고노가 약간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반문했다.

“아마 대단히 큰 반향이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아직 자신들의 문파도 새로 세우지 못한 상황이에요. 그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세력을 구축해 놓는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천호십영은 담수련이 자신들을 보며 말하자 동의한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오룡세가와 백인막은 부역 세력으로 중원 무림인들에게 찍혀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제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방의 세력을 키우는 데 매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모은 돈이에요. 금자 십오만 냥 정도 될 거에요. 귀화단에서 삼만 냥이 더 올 거니까 총 십팔만 냥이네요. 세력을 키우는 데 자금으로 사용하세요. 부족하면 제가 더 구해 볼게요.”

“우선은 이 돈으로 충분할 겁니다. 그리고 저도 모아놓은 돈이 있으니 보태겠습니다.”

“백인막도 금자 십만 냥 정도는 비축되어 있습니다. 저희도 보태겠습니다.”

금자 삼십만 냥이면 무공을 모르는 사람도 꽤 큰 무림 세력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액수였다. 심지어 방주가 지금 천하를 떠들썩하게 하는 천호무적검이었다.

귀도신영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도 무시 못 할 세력을 일 년 안에 만들어 보겠습니다.”

* * *

“다 끝나셨습니까?”

관묘에서 담수련이 나오자 악불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옆에 서며 물었다.

“응.”

“시간이 꽤 됐는데 피곤하지는 않으십니까?”

“괜찮아. 참, 적설은 돌아왔어?”

“어젯밤에 돌아왔더군요.”

“귀화단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냈을까?”

“총단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어디로 움직였는지는 알아냈을 겁니다.”

“이제부터 적설에게 고노를 따라다니라고 해 줘.”

그녀가 세운 계획에서 연락망은 가장 구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전서구는 훈련을 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고, 사람을 통하려면 믿을 수 있는 자들이 수백 명은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적설은 그 고민을 단번에 해소해 주었다.

“고노가 어디 갑니까?”

“유모를 만나려면 어차피 그들과 함께는 어려워.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임무 하나를 줬어.”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슨 임무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녀가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달라고 했을 때 뭔가 계획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잘하셨습니다.”

“무슨 일인지 안 궁금해?”

담수련의 반문에 악불군은 씨익! 웃으며 다시 반문했다.

“제가 궁금하다고 하면 말해 주실 겁니까?”

“아니.”

“그래서 안 궁금해하기로 했습니다.”

“피!”

그녀가 입술을 살짝 내밀자 악불군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으니까 우리가 먼저 떠나자. 그런데 왜 그렇게 봐?”

“오랜만에 아가씨의 진면목을 보니까 정말 예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담수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악불군이 대놓고 그녀에게 먼저 예쁘다고 한 것은 처음이었다.

“소군, 갈수록 느끼해지는 거 알아!”

담수련은 가슴이 쿵쾅 뛰자 흰소리를 한마디 하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예쁘다고 하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한 말인데 반응이 좀 이상하네?’

악불군은 고개를 갸웃하며 마부석에 올라 마차를 몰았다.

* * *

악불군이 마차를 몰고 출발하자, 밖으로 나온 귀도신영은 사라지는 마차를 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안 가십니까?”

그의 뒤에 상당히 친해진 마진우와 구여풍이 붙으며 물었다. 천호십영은 각자 임무를 맡아 떠났고, 마진우와 구여풍은 십여 명의 백인막 살수들과 함께 귀도신영을 보호하기 위해 남은 것이다.

“아가씨 말이야. 오음절맥이라고 하셨는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자네들은 오음절맥의 여인을 본 적이 있나?”

“저희는 없습니다. 희귀한 병이라는데 쉽게 보이겠습니까?”

“예전에 난 두 번 본 적이 있어. 그런데 그 여인들은 진짜 얼굴이 창백해서 죽은 사람 같았고 삐쩍 말라 있었거든. 음기가 온몸에 차면 살이 빠지는 것은 피할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요.”

“내가 본 여인들은 나이가 지금 아가씨 나이보다 어렸어. 어린 시절이라 병증이 덜 나타날 텐데도 그런데, 아가씨는 알맞게 날씬하신 편이고 얼굴에 혈색도 돌고 계신단 말이야. 오음절맥이신 분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

“아가씨께서 거짓이라도 말했다는 말입니까?”

“아니, 거짓을 말할 분이 아니라서 더 의아한 걸세. 내가 보기에는 삼십 년은 너끈히 사실 것 같은 얼굴이라서 말이야.”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을 능가하는 눈썰미와 주의력이 필수 조건이었다. 거기다 그는 신투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사물을 섬세하게 살피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본 담수련은 오음절맥의 여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빙설초의 효과로 그녀의 몸이 차도가 생긴 걸까? 아니면 새편작이 죽어 가면서 했던, 필요 없을 것 같다는 그 말이 맞는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악불군과 담수련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새로운 곳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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