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192화 (192/472)

<천검지애 192화>

192화. 사람들(1)

“종리 단주님의 연락을 기다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양호철은 담수운의 표정이 어둡자 의아한 듯 물었다.

“당연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연락이 왔던가요?”

“저희가 상단으로 변모한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제부터 잠봉밀과 연계해서 세력 보호를 시작하자고 하셨습니다. 총수님께서 그렇게 걱정하시던 아가씨도 잠봉밀에 잘 계시다는 말도 같이 전해 왔습니다.”

담수련이 잠봉밀에 있다는 말에 담수운의 표정이 오랜만에 밝아졌다.

“정말 다행이군요. 잠룡세가와 연락이 전혀 안 돼서 걱정했는데, 무사히 빠져나온 모양이네요. 그럼 수련이가 잠룡세가의 근황도 알고 있을까요?”

“아직 거기까지는 연락이 없으셨습니다.”

양호철은 천호무적검과 천상신녀에 대한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그들과 담수련을 연결하지는 못했다. 그는 악불군이 잠룡세가에 들어오기 전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종리 단주와 접선할 방법은 있습니까?”

“가까운 시기에 다시 연락을 주기로 하셨습니다.”

“총행수.”

“예.”

“어찌하여 종리 단주는 우리를 아는데 우리는 종리 단주에 대해 아는 것이 이렇게 없는 겁니까?”

“가주님께서 이번 계획의 총괄 책임자를 종리 단주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담수운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결국 아버지가 끝까지 자신을 믿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담무룡의 판단이 맞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담수운이 영웅회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종리 단주님께 제가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십시오.”

“저희는 연락할 방법이…….”

“총행수! 종리 단주가 우리에 대해 안다는 것은, 상단 안에 정보를 알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것을 티를 내십시오. 그러면 그자가 전해 줄 것 아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이만 나가 보세요.”

“예.”

양호철이 나가자 담수운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종산은자는 중원 무림인들의 담무룡에 대한 원한이 깊어 잠룡세가인 모두를 보호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런 종산은자의 말에 담수운이 바란 것은 담수련과 태산종가의 안전이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어…….’

그는 나름 용서를 빌 방법을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종산은자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모든 것을 잃고 겨우 가족의 안전만을 약속받은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의 계획도 무산되는 것이다.

* * *

주주현은 동정호의 지류가 이어지는 물류의 중심지로 호남에서는 장사와 악양 등과 함께 오대 성에 드는 큰 현이었다.

그리고 천화궁의 총단은 뜻밖에도 주주현에 있었다. 주주현에서 가장 큰 주루인 영화루, 그 중심에 천화궁이 있었던 것이다.

천화궁 총단은 금남의 지역으로 남자가 안까지 들어온 것은 악불군이 최초였다. 그런데 그 남자가 너무 잘생겼고 심지어 명성까지 높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천화궁의 제자들은 악불군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미 정문을 지키던 제자에 의해 너무 멋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악불군과 담수련이 식사하러 갈 것을 짐작하고 그 통로 주위를 배회하던 제자들은, 총관인 유연향이 나타나자 급히 일하는 척을 했다.

“청소하는 중입니다.”

한 제자의 말에 또 다른 제자가 말을 받았다.

“먼지들이 많은 것 같아서 터는 중입니다.”

“반 시진이면 끝나는 청소를 왜 이렇게 오래 하는 건데?”

“아가씨께서 오셔서 더 깨끗이 하려고 그럽니다.”

유연향은 주위를 보더니 아미를 찌푸렸다.

평시에 한두 명이 하던 복도 청소를 여섯 명이 하고 있었고, 복도 주위의 바닥 청소에도 열 명 가까이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것들 봐라? 청소하라고만 하면 살살 빠지던 것들이!’

천화궁의 제자들은 대부분 무공과 함께 기녀 수업까지 받는 여인들이라, 무림 문파와는 달리 분위기는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너희들이 왜 이러는지는 알겠는데, 까불지 말고 다 들어가!”

유연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안쪽에서부터 제자들이 뛰어나왔다.

“아가씨와 악 대협께서 나오십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후다닥 통로의 양쪽으로 시립했다. 원래대로라면 이곳을 떠나 비워 주어야 했지만, 그녀들의 악불군을 보겠다는 의지는 생각보다 강했다.

‘이것들이 무공 수련은 게을리하면서 남자한테 꼬리치는 법은 빨리도 배웠네!’

유연향은 이미 그들을 보내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하고는 악불군과 담수련이 나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그녀 역시 악불군이 얼마나 잘생겼길래 어제 본 제자들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소문을 냈는지 알고 싶어서 나온 터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면사를 쓴 담수련과 그녀의 뒤를 따르는 악불군을 본 유연향은 살짝 입이 벌어졌다. 그녀가 꿈에 그리던 남자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유연향은 담수련과 악불군이 그녀의 바로 앞에 도착해서야 정신이 든 듯 급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천화궁의 총관인 유연향입니다. 혹, 식사를 하시러 가시는 거라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식사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고, 천화궁 구경 좀 하려는데 가능할까요?”

“물론이지요. 아가씨께서 보신다는데 누가 막겠습니까? 저를 따라오십시오.”

하오문의 방계 조직으로 만들어진 천화궁이 지금처럼 체계가 잡히고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한 데에는 담무룡의 지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조직이 원활히 굴러 가려면 돈은 필수적이었다. 특히 천화궁 같이 기녀들이 조직의 근간을 이루기 위해서는, 직접 경영하는 주루는 필수적이었다.

거기에 드는 엄청난 재원을 마련해 준 사람이 바로 담무룡이었다.

더욱이 흑도들이나 사파들이 기루를 장악하려고 할 때마다 그들을 제거해 준 것도 잠룡세가였다. 물론 그 도움은 모두 종리화를 통해 전해졌다.

천화궁주가 의자매라고는 해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종리화를 받들고 담수련에게 아가씨라고 또박또박 공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천화궁을 산책하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여인들이 둘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물론 지나가는 척하며 슬쩍 보거나 숨어서 보기는 했지만, 담수련이 그것을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확실히 여긴 나하고 좀 안 맞는 것 같아.’

담수련은 여인들의 이목이 악불군에게 쏠리고 있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녀가 천하제일미 소리를 듣는다 해도,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여인들의 관심이 과하게 쏠리는 것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총관님.”

그때 한 여인이 다가왔다. 궁주전에 있는 제자였다.

“궁주님께서 찾으시냐?”

유연향은 그녀를 보자 왜 왔는지를 즉각 알아챈 듯 말했다.

“예, 궁주님께서 아가씨와 악 대협께 아침 식사를 같이하시자고 하십니다.”

“오늘 구경은 이만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담수련도 총단 구경에 이미 흥미를 잃어 가고 있는 터라 선선히 대답했다. 전각들은 모두 알록달록했고 화려한 기녀복을 입은 여인들이 수두룩하니 구경할 맛이 날 리 없었다.

“총관님, 정말 멋있으시지요? 가까이서 보니까 어때요?”

악불군과 담수련이 궁주전 제자를 따라 사라지자, 사방에서 훔쳐보고 있던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묻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런 것에 관심 갖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겠지만, 천하제일 기남(奇男)으로 소문난 악불군이니 기녀 수업을 받는 제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을 무조건 말릴 수는 없었다.

“늠름하시더라. 아가씨는 저런 분과 매일 같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실까?”

“캬아악!”

유연향의 말이 끝나자 제자들이 괴성을 질렀다. 너무 흥분할 때 나오는 소리였다.

“그런데 아가씨는 얼마나 예쁘실까요? 천하제일 미녀라고 하던데?”

“아마 남자들은 악 대협을 부러워할 거야. 천하제일 미녀와 매일 같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호호호호! 맞아, 맞아.”

한 제자의 말에 모두 까르륵 웃으며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녀 수업이라고 재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었다. 거기다 천화궁의 제자들은 무공까지 익혀야 했다. 언제나 지쳐 있던 그녀들에게 악불군의 등장은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될 듯 보였다.

* * *

예상대로 아침 식사 자리에는 종리화가 끼어 있었다.

둘은 담수련과 악불군이 들어서자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했다.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오랜만에 푹 잤어요. 어젠 제가 유모에게 좀 무례했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이제 아가씨도 성년이신데 제가 너무 나섰던 것 같습니다. 우선 앉으시지요.”

담수련이 자리에 앉자 악불군의 그녀의 뒤에 섰다. 그러자 천화궁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악 대협께서 서 계시면 저는 앉지를 못합니다.”

“궁주님께서는 앉으셔도 됩니다.”

“악 대협과 저는 무림에서의 명망이 하늘과 땅 차이랍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제가 먼저 앉을 수 있겠어요? 악 대협께서 앉으셔야 제가 앉을 수 있답니다.”

“그래, 앉거라.”

종리화도 악불군에게 앉기를 권했다. 예전에는 어찌 됐건, 이미 그는 그녀들을 능가하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악불군은 고개만 살짝 숙일 뿐 앉지 않았다. 그러자 담수련이 악불군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앉아.”

“예.”

그제야 자리에 앉는 악불군을 보며 종리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도했건 안 했건 악불군은 담수련 이외에는 누구의 명도 듣지 않겠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준 것이다.

그것은 악불군을 이용하라고 했던 담무룡의 계획에 차질이 벌어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우선 드시지요.”

천화궁주는 분위기가 좀 싸해지자 급히 특유의 친화력 있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악불군은 담수련이 먹자는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종리화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못 하지만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유모, 아버님께서 저희가 유모를 만나야 한다고 하신 이유가 뭐예요?”

“전 아가씨를 뵙고 너무 좋았는데, 아가씨는 아닌가 보네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저도 유모 보고 너무 좋았어요. 사실 저한테는 유모는 어머니나 마찬가지니까요. 솔직히 유모가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저와 같이 살자고 하면 전 그럴 생각이 있어요. 그러나 유모는 아버님의 계획을 실행하실 거잖아요?”

“아가씨, 가주님의 계획은 소가주님과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저나 오라버니를 구하기 위한 계획을 짜기 전에 고통 받는 양민들을 위한 계획을 짜셨다면, 오히려 저희는 안전했을 거예요.”

“아가씨께서는 가주님의 천금이십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가씨께서는 아버님을 비난하시면 안 됩니다.”

“전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셨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가주님께서도 나름 많은 고심을 하시면서 지내셨습니다. 반원을 대놓고 하던 태산종가가 무사한 이유를 아십니까? 원나라에서는 태산종가가 숨은 후 태산을 샅샅이 뒤져 없애려고 했어요. 가주님께서 대공을 돕기로 하면서 태산종가에 대한 압박이 사라진 겁니다.”

종리화의 말에 담수련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면 종리화와 의미 없는 말싸움을 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천화궁주가 다시 나섰다.

“가주님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느끼는 점이 다를 수 있어요. 그러니 이제 건설적인 대화를 해 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요. 다른 면에서는 유모와 저는 정말 잘 맞는 것 같은데, 아버님 얘기만 나오면 좀 대화가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아요. 궁주님, 그럼 건설적인 얘기를 한번 해 보세요. 저도 돌아가는 상황을 좀 알면 얘기를 하겠는데,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음~ 소가주님 얘기는 어떨까요?”

“오라버니에 대해서 아세요?”

담수운의 얘기가 나오자 담수련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분명 자신의 오라버니였지만, 이상하게 그녀는 담수운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그럼요. 며칠 전 서찰까지 보냈는데요!”

담수련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안전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기뻤다.

“소군, 오라버니께서 무사하신가 봐?”

“그래야지요. 누구든 아가씨나 소가주님을 건드린 자들은 제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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