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198화>
198화. 변화의 시작(1)
“마차에서만 숙식을 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사이 마차는 삼 일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슬슬 가까워 오는 모양이네. 소군.”
“예, 아가씨.”
“우리 쫓는 자들은 없지?”
“아직까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 대협과 구 대협이 계속 주위를 경계하고 있으니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둘의 대화를 듣던 연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 마 대협과 구 대협은 누구십니까? 이따금 두 분 대화에서 그분들 이름이 나오는데, 전 들어 본 적이 없는 분들이네요.”
“잠룡세가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야. 굳이 말하자면 소군의 수하들이라고 해야 할까?”
“악 무사님의 수하요?”
연화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얘기가 길어. 다음에 다 같이 모였을 때 설명해 줄게.”
그때, 어디선가 가느다란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저희 마차는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아가씨와 악 무사님께서는 지금 부엉이 소리가 난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부엉이 소리라…….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부엉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저 소리가 가짜라는 것을 즉각 알 수 있을 거야. 도착하면 신호 체계부터 바꿔야겠다.”
말을 마친 담수련은 악불군을 보았다. 그리고 순간 악불군과 담수련이 동시에 마차 안에서 사라졌다.
“뭐, 뭐야?”
연화는 둘이 사라지자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문이 꼭꼭 닫혀 있는 밀실 같은 마찬 안에서 다 큰 성인 두 명이 그대로 사라졌다.
“와아~ 세상에 이런 수법도 있구나.”
아무도 없는 마차 안, 연화의 입에선 이제 놀람이 아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갑자기 나오는 게 어디 있어?”
“아가씨를 안고 나오는 것을 연화가 봐서 좋을 것이 있겠습니까?”
“그게 어때서?”
“제가 아가씨를 안은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가씨 명예에 누가 될 수 있습니다.”
“난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하는데, 왜 소군은 이상한 생각만 하고 그래? 난 소군한테 안기면 좋기만 하던데.”
좋다라는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그려졌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는 터, 곧 표정을 굳혔다.
[이제 전음을 사용하십시오. 목적지에 다 온 것 같습니다.]
악불군은 나무 사이에 서더니 담수련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벌써? 어딘데?]
악불군이 가리킨 곳은 초저녁임에도 한밤중처럼 어두운 깊은 산속에 지어진 악묘였다.
야산이나 마을 가까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관우를 기리는 관묘와 달리 악비를 기리는 악묘는 원나라에게 반역도로 몰려, 깊은 산속에 지어진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꽤 사람들이 찾아가 기도도 하곤 했지만, 원체 외진 곳에 지어진 탓인지 대부분은 폐묘로 변했다.
[안에 몇 명이나 있어?]
[다섯 명 정도 있습니다.]
[무공 정도는 어떤 거 같아?]
[사화보다 두어 수 강한 정도입니다. 기가 익숙한 것이, 잠룡세가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함정은 아닌 것 같으니 가 보자.]
담수련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잠룡이 날면?”
악불군과 담수련이 모습을 보이자 악묘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비문이었다.
“잠봉이 따라 난다.”
그러자 안에서 중년인 한 명과 청년 네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사드립니다. 잠봉밀의 외당을 맡고 있는 한태성입니다. 아가씨께서 어렸을 적에 잠룡대의 대주의 지위로 호위도 해 드린 적이 있는데,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호위는 기억이 안 나지만 가주전을 경계하던 모습은 본 기억이 나네요.”
한태성은 담수련이 자신을 기억하자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가,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악불군을 보며 물었다.
“호위 무사가 한 명 따라온다고 하더니, 자네인가?”
악불군이 대답하려 하자 담수련이 쿡 찌르고는 직접 입을 열었다.
“한 당주님.”
“예.”
“이분은 호위 무사가 아니라 잠봉밀에 큰 도움을 주실 협력 세력의 장이에요. 함부로 대하시면 안 됩니다.”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명호가 어떻게 되시는지?”
세력의 장이라는 말에 한태성은 급히 사과하며 다시 물었다. 담수련은 확실하지만 만약을 위해 이름도 모르고 데려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이라고 합니다. 강호에서는 천호무적검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시…… 지금 천호무적검이라고 하셨습니까?”
형식적인 인사를 하려던 한태성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네 청년들도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 역시 현 무림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를 부르고 있는 천호무적검이 이곳에 나타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 그만 놀라고 안내하시지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담수련은 모두가 경악하자 기분이 좋은 듯 씨익 웃으며 재촉했다.
* * *
“군주님께 인사드립니다.”
호북의 우창에 도착한 금잔화는 몽고식 변발을 한 노인의 영접을 받았다.
“찰 대장, 오랜만이에요.”
그는 태양천의 최고의 무력 집단인 태양철기군의 대장인 찰나금이었다.
“고귀하신 군주님께서 이 위험한 곳까지 오시다니 뜻밖입니다.”
“절강보다는 태양천이 있는 이곳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그럼 절강은 포기하신 겁니까?”
“완전 포기는 할 수 없지요. 원체 나오는 것이 많은 지역이라서요.”
“여기보다는 하북이 더 안전했을 텐데요?”
하북은 아직까지는 원나라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하북으로 가는 것은 도망이지요. 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답니다.”
“천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대공 전하께는 아직 말씀 못 드렸어요. 아니, 드리고 싶어도 연락이 안 되더군요.”
“그렇다면 독단적인 판단으로 나오신 것입니까?”
“내가 그러면 안 되나요? 찰 대장, 내가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나 보네요?”
“군주님께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다만 절강은 큰 요충지이자 자금원이고 잠룡세가까지 접수했는데, 군주님의 능력으로 일 년을 못 버티고 나오신 것이 의아해서 드린 말일 뿐입니다.”
“찰 대장께 태양천 고수들을 보내 달라고 내가 여러 차례 전갈을 넣은 것으로 아는데, 아닌가요?”
“그 점은 죄송합니다. 사실 사방에서 모두 본 천의 도움을 바라고 있어, 손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해는 해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지금 금령무의 정보망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악불군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주실 수 있나요? 철뇌마궁이 그를 금방 찾아낸 것을 보면 태양천은 아직 정보망이 건재한 모양이더군요.”
“악불군을 찾기 위해서 여기까지 오셨단 말입니까?”
“대공 전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철뇌마궁 원로님께서 그를 찾았다는 것을 아신다면 군주님께서 직접 움직이실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찰나금의 반문에 금잔화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철뇌마궁이 죽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에요?”
“철뇌마궁 원로님께서는 예전에도 연락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오신 적이 많습니다. 지금 연락이 안 되고는 있지만, 곧 그놈을 생포했다고 연락하실 겁니다.”
“정말 답답하군요? 철뇌마궁이 연락이 안 될 때는 목표물을 찾지 못했을 때뿐이에요. 한데 지금은 이미 만났다고 연락이 왔어요. 더구나 그 이후, 목표물은 멀쩡하게 돌아다니는데 철뇌마궁은 연락 두절이에요. 그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머리에 딱 안 떠올라요?”
“원로님의 무공에 대해서 군주님은 모르십니다. 그런 애송이에게 당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더 말할 기운도 없네요. 최대한 빨리 악불군의 위치를 알아서 제게 알려 주세요.”
“명이시면 그렇게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원나라의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이런 때에 군주님 같이 고귀하신 분이 왜 적진이나 마찬가지인 곳을 직접 가시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상황을 바꿔 보려고 가는 겁니다.”
찰나금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세력도 없고 나이도 젊은 악불군이 천하 정세까지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는 믿기지 않아서였다.
아니,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금잔화는 악불군이 지금의 위기를 반전시킬 중요한 인물이라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악불군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었다.
* * *
상석에 앉은 담수련은 누진봉을 비롯한 네 명의 실세들을 천천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이제 인사도 끝났고, 누 장로님께서 말을 하실 차례 같네요.”
무공이 약하고 심약하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유징과 한태성은 물론 누진봉과 곽부용 역시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특히 담수련의 뒤에 서 있는 저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한태성에게 그가 천호무적검이라는 말은 들었다.
심지어 그의 명성은 담무룡에 필적할 정도였다. 그가 이긴 자들이 하나같이 대단한 고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앉지도 않고 서서 담수련을 호위하고 있었다. 진짜 천호무적검인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악불군을 슬쩍슬쩍 보며 나름 판단을 하고 있던 누진봉은 담수련의 말에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무슨 말을?”
“아버지께서 제가 잠봉밀을 찾아오면 어떻게 하라고 지시한 것이 있지 않나요?”
“아! 예, 있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우선 무림의 혼란이 진정되고 각 문파가 안정될 때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세력을 키우라고 하셨습니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잠룡밀과의 연계는 종리 단주님만을 통해 할 것이며, 안정이 되면 그때 둘이 힘을 합쳐 잠룡세가를 다시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다인가요?”
“하나 더 있습니다. 잠봉밀의 주인은 아가씨이며, 모든 명과 결정은 아가씨에게 일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곽 화주님이라고 하셨지요?”
“예, 잠봉화의 화주인 곽부용입니다.”
“지금 잠봉밀의 군사역까지 겸하고 있다고요?”
“능력은 미력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럼 몇 가지만 물을게요.”
“하명하십시오.”
“혼란이 진정되고 무림이 안정되어 부역 세력들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몇 년 정도 걸릴 것 같은가요?”
“그, 그건…….”
“그냥 생각하신 대로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보세요.”
“무림인들은 원한을 잘 잊지 않습니다. 과거를 완전히 탈피하려면 지금 세대를 살고 있는 자들이 모두 사라진 후나 될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대략 일 갑자. 아닌가요?”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여기 있는 우리가 다 늙어 죽을 때까지는 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때까지 어떤 수하가 계속 충성을 할까요?”
담수련의 말이 정곡을 찌른 듯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의 가장 큰 협력 세력인 잠룡밀과의 연계는 모두 종리 단주님을 통하라 했는데, 만약 종리 단주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운 나쁘게 다급한 사태와 종리 단주님의 위급이 동시에 진행이 된다면, 우린 그냥 다 죽겠네요?”
“…….”
이번에도 모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결정과 명은 나한테 일임한다. 아버지다운 독재적 발상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조치일 수는 있겠어요. 그래서 지금 이 시간부터 제가 하는 말은 모두 명이고 결정이에요. 네 분께서는 충성심이 강하신 분들로 알아요. 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어떤 명이라도 내려만 주십시오!”
“첫 명령은, 아버지의 당부를 모두 무효화하는 것입니다.”
순간 모두의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의 시선이 담수련에게 향했다. 잠룡밀을 세운 분의 모든 것을 지워 버리겠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일매일 나를 놀라게 하시는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일까……?’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악불군 역시, 그동안 몰랐던 위엄 넘치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