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00화 (200/472)

<천검지애 200화>

200화. 변화의 중심(1)

“대장군님, 천호무적검은 아직 사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곁에 두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최소한 태양천의 살수들이 내 군막 안까지 들어와 내 대역을 죽이고 사라지는 일은 없게 할 것이오.”

“……대장군님께서 그를 본 적이 있으시단 말입니까?”

“나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요.”

진짜든 아니든, 주원장의 입에서 악불군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악불군의 위상은 한 단계 더 올랐다.

철장건권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는 없었다. 이미 주원장의 권위는 황제 맞먹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군, 악 대협에 대해 각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호형호제하신 적은 없지 않으십니까?

철장건권이 나가자 유백온은 의아한 듯 물었다. 주원장은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영웅회가 너무 설친다. 공은 인정하지만, 영웅회에 모든 힘을 몰아주는 것은 위험해. 그렇다고 믿기 어려운 마도놈들과 손을 잡을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럼 악 대협을 영웅회의 대항마로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무림인들은 어느 정도 분열을 시켜놓을 필요가 있어.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뭔가가 있어.”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말하는 주원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살짝 나타났다.

* * *

자신도 모르게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악불군은 오늘도 담수련의 곁에서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소군, 잠봉밀이 생각보다 재산이 많아. 이곳 총단 말고도 지밀이 여섯 군데나 있고, 자금 조달을 하기 위한 상회도 두 군데나 운영하네? 현찰도 금자로 육만 냥이나 있어. 전부 합치면 최소한 십오만 냥은 될 거 같은데?”

“다행이군요. 그런데 이제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수운 오라버니께서 상단으로 변신을 꾀한 것은 상당히 잘한 것 같아. 오라버니께서 안 하셨다면 내가 했을 거야.”

“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둘 다 상단을 하면 협력이 어려워. 우린 무림 세력으로 나가서 오라버니를 도와주는 방식이 세력을 키우는 데 가장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지금 잠봉밀이 움직이면 다른 세력들이 우리를 조사할 것이고, 그럼 곧 잠룡세가와의 관계도 알아낼 것입니다.”

“우선 이름부터 바꿔야지. 내가 생각해 놓은 이름이 있어.”

“벌써 거기까지 생각해 놓으셨습니까?”

“소군이 나 보고 불효녀는 되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서 우선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해 보려고.”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어차피 몇 년 하지도 못할 건데, 소군만 옆에 있으면 난 어디든 괜찮으니까 뭐.’

칭찬하는 악불군의 모습을 보며 담수련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오륙 년 안에 죽을 것을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담무룡의 당부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되, 무조건 악불군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할 생각이었다.

“추국아!”

“예, 아가씨.”

담수련의 부름에 추국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간부들 모두 모이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벌써, 분석이 끝나셨습니까?”

“분석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네? 숨어만 지내서 그런지, 벌려 놓은 것도 없고 수하도 이백이 채 안 돼.”

예상보다는 전력이 대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백 명은 담무룡이 나름 연구해서 남긴 수였다. 그 보다 적으면 너무 약하고, 더 많으면 숨어 지내야 하는 처지에서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누 장로입니다. 모두 모였습니다.”

모두 한 전각에서 생활을 하는 터라 모이는 것은 정말 빨랐다.

“들어오세요.”

누진봉을 비롯한 세 명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검토가 끝났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잠봉밀이 활동을 시작할 계획을 짜 보지요.”

담수련의 말에 모두는 탁자에 높이 쌓인 서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들이 서류를 전해 준 것이 아침이었다. 단지 읽는 데만도 최소 하루는 걸릴 양이었다. 그런데 고작 두 시진 만에 계획까지 짜 보자고 하다니…….

“설마 저 많은 것을 벌써 다 읽으신 것입니까?”

“제가 원래 읽는 속도가 빨라요. 누 장로님.”

“예, 아가씨.”

“우선 호칭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오늘부로 잠봉밀의 이름은 천신문(天神門)으로 바꿀 거예요.”

“천신문이요?”

“강호에서 저를 천상신녀라고 부르고 있어요.”

순간 모두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들도 천호무적검이 천상신녀라는 경국지색의 미녀를 보호한다는 소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담수련이 천상신녀라니…….

어찌 보면 천호무적검이 여기 있으니 당연히 담수련이 천상신녀라고 의심해 볼 만함에도 그들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잠룡세가의 천금과 천호무적검과의 연결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표정들을 보니 제가 천상신녀라고는 생각도 안 한 모양이네요? 강호 소문을 들었다면 그 정도는 유추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른 분은 몰라도 곽 화주님께서는 생각을 했을 것 아닌데, 아닌가요?”

“솔직히 어제 서류를 정리하면서 긴가민가했습니다. 다만 천호무적검과 아가씨께서 같이 계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그런 면이 있긴 하죠. 그래도 군사 역할까지 하시는 분이면 모든 상황을 다 상정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죄송합니다. 역할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군사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군사도 제가 겸임하겠어요.”

군사는 정세 판단과 정보 분석은 물론, 수장을 보좌하면서 책사 역할까지 해야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수장이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그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잔인하다는 마도조차, 그들 문파의 군사가 비위를 거스르더라도 그냥 놔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담수련이 군사까지 겸임한다는 것은 아예 그녀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여지까지 완전히 봉쇄한다는 의미여서, 그들에게는 견제할 수단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하였다.

“아가씨, 그래도 군사까지 같이 겸임하시면 일이 너무 많아지실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아가씨란 칭호도 불허하겠어요. 문주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세요.”

누진봉의 말을 담수련은 다른 화제로 묵살해 버렸다.

“……죄송합니다. 문주님.”

“여기 보니까 현찰로 금자 육만 냥이 있던데, 모두 제 집무실로 옮겨 놓으세요. 이제부터 모든 지출은 제 허락하에서만 사용합니다.”

“그게…….”

“하실 말들이 있으면 제 말이 끝난 다음에 하세요.”

그녀는 이미 그들이 어떤 반박을 할지를 알고 있었던 듯, 적절하게 말할 기회를 봉쇄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 당주.”

“예!”

“이곳은 은밀하긴 한데, 너무 외진 곳에 있어 확장성이 너무 부족합니다. 성도인 남창에 지밀이 있던데, 그곳을 천신문의 총단으로 하고 이곳은 지단으로 변경하겠어요.”

“아가…… 문주님, 남창에 총단을 둔다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될 것입니다. 저희의 정체가 드러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천신문으로 이름을 바꾼 거예요. 제가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보니, 새로운 문파가 정말 많이 생기더군요. 혼란의 시기이고, 무너진 중원 무림이 재건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 안에 새로운 세력들이 자리를 잡으려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들은 우리도 그런 신흥문파 중 하나로 여길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창에는 이미 사파 두 곳과 백교방이라는 마도 하나가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곳에 총단을 세운다면 그들과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곽부용이 너무 무리라는 듯 부언했다.

“곽 화주님, 저도 보고서 다 읽어 봤거든요? 사파라고는 하지만 무림 고수는 몇 명 없고 나머지는 다 왈패 수준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명목상 사파 두 곳을 세워둔 것일 뿐, 사실은 백교방의 하수인들입니다. 백교방은 만만치 않은 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파는 없더군요?”

“어찰단이 사파나 마도는 많이 눈감아 주었습니다. 뇌물을 많이 먹였으니까요. 하지만 정파는 탄압이 심해, 모두 숨어 버리거나 제거를 당했습니다. 정파가 들어서려면 약간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바로 그거예요. 지금 정파는 자신들의 문파를 재건하기에도 손이 부족해요. 다른 지역은 상관할 여유도 없을 거예요. 그러면서도 마음이 조급하겠지요. 새로 무림을 재건해야 하는데 마도는 계속 세력을 넓혀 가고 오룡세가는 여전히 버티고 있어요. 이럴 때 우리가 남창에서 마도와 사파를 몰아내고 정파를 표방한다면, 정파에서는 우리의 정체를 알아볼 생각도 없이 먼저 환영부터 할 거예요.”

“문주님, 정파의 정보망을 만만히 보시면 안 됩니다. 그들은 자리가 잡히면 정파를 표방하는 문파 중 그 근본이 알려지지 않은 문파는 반드시 조사합니다. 혼란한 시기일 때마다 마도나 사파에서 정파를 표방하며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려고 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정파인 척한다면 걸리겠지요. 하지만 진짜 장파가 된다면 달라집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협객으로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호무적검 악 대협이 있어요. 이분이 우리에 대해 보증을 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조사를 해서 천호무적검과 척을 지는 위험을 감수할까요? 더구나 악 대협께서는 정파의 정보망이라고 할 수 있는 남개방의 호법님과 사이가 아주 좋아요.”

누진봉은 담수련이 악불군과 어떤 관계인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담수련은 문주였고 악불군의 위치는 이미 그들을 넘어서 있었다. 그녀나 악불군이 먼저 말하기 전에 묻기엔, 차이가 너무 벌어져 있었다.

“문주님.”

담수련이 말에 타당성이 있다고 느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곽부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하세요.”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점을 제가 간과하고 있나요?”

“저희를 위협할 강력한 문파 두 곳이 강서에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지요?”

“강서 남쪽을 장악하고 있던 귀령문을 멸문시키고 새롭게 패자가 된 정천보라는 신흥 문파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천마성 역시 이번에 모습을 다시 드러내면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정천보는 화룡세가가 변신하기 위해 만든 위장 문파예요. 그들 역시 지금 부역 세력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라, 정파와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더 이상 북쪽으로 오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구천마성은 북진을 할 수도 있지만, 천신문이 장악한 구역은 감히 침범하지 않을 거예요.”

“백교방이 구천마성의 하부 조직일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그들을 남창에서 쫓아내는 순간 구천마성에서 직접 나설 것입니다.”

“뭐뭐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정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첩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첩보는 소문도 첩보가 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첩보가 있어서…….”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악 대협과 구천마성은 서로 먼저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을 했어요. 백교방을 천호무적검이 제거한다면 그들은 남창 지역을 포기할 거예요. 물론 잠시입니다. 그들은 언제라도 약속 따위는 그냥 저버리는 자들이니까요. 우린 그들이 배신하기 전에 탄탄하게 세력을 만들어 놓으면 돼요.”

누진봉을 비롯한 세 명은 담수련의 말을 들으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알기로 그녀는 강호에 나온 것이 아직 일 년이 채 안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분석은 그들보다 더 정확했다. 하나하나 짚어 나가면서 말을 할 때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떻게 자신들보다 상황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더구나 구천마성이 악불군 한 명 때문에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담수련에게 완전히 빨려들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이상할 정도로 그들에게 신뢰와 자신감을 주고 있었고, 담수련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는 악불군의 모습에서 그들도 같이 보호를 받고 있다는 안전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