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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02화 (202/472)

<천검지애 202화>

202화. 시작(1)

“악 대협께서는 천호방의 방주예요. 그동안에는 방도들에게 임무를 맡겼었는데, 이번에 이곳에 와서 일 좀 도우라고 했어요.”

“문주님, 백교방주는 칠령마검이라 불리는 자로, 말석이기는 해도 백대고수에 이름까지 올린 초절정 고수입니다. 간부들도 대부분 초일류급의 무공을 가지고 있고, 수하가 무려 삼백 명이 넘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간한 전력으로는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천호방의 전력은 생각 외로 대단하니까 걱정 마요. 악 대협, 내가 전한 대로 하겠지?”

“예. 아마 벌써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백교방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은 백인막의 살수는 백 명이었다. 거기에 천호십영을 비롯해 다섯 명의 초특급 살수들까지 합세해 있었다.

원래 악불군이 직접 나설 예정이었지만, 너무 쉽게 제거하면 지은 죄에 맞지 않는다며 천호십영에게 최대한 공포를 느끼도록 하라고 담수련이 조언한 것이다.

“매향과 흑란이는 준비됐지?”

담수련의 질문에 추국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문주님의 명대로 준비했습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여 볼까?”

몸을 일으키는 담수련을 보며, 누진봉은 어쩌면 살아남는 것을 넘어 큰소리까지 치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 * *

“방주님.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있으십니까?”

포양상회로 수하들을 보낸 백교방주가 이상하리만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백교방의 장로인 후장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부터 기분이 영 안 좋아. 근래에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야.”

초절정 고수가 되면 저절로 느낀다는 위험 감지 능력이 발동한 것이었다.

“어떤 기분이신지요?”

“……예전에 이런 느낌을 받은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내가 죽을 뻔했다.”

“예에?”

“후 장로.”

“예!”

“수하들에게 경계를 강화하라고 해라. 아무래도 위험 신호 같다.”

“아직 날이 밝습니다. 그리고 남창에서 감히 본 방에 대적할 세력이 어디 있다고 위험하겠습니까?”

“토 달지 말고 당장 시행해.”

“알겠습니다.”

후장룡은 백교방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자 급히 외치며 일어섰다.

그때, 총관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백교방주는 그의 표정에서 자신의 느낌이 맞았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얼굴이 구겨졌다.

“방주님! 큰일 났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사색이 된 총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주 다급했다.

“뭐냐?”

“추, 추 당주님께서 정문 앞에서 데리고 가던 수하들과 함께 피살되셨습니다.”

쾅!

백교방주는 자신의 의자 손잡이를 주먹으로 치며 버럭 소리쳤다.

“어디의 정문에서 추 당주가 죽었다는 거냐?”

“본 방의 초, 총단 정문 앞입니다.”

“뭐? 본 방의 정문이라고?”

백교방주는 어불성설이라는 듯 반문했다.

“예, 정문을 나서고 삼 장 정도 움직였을까, 갑자기 방도들이 픽픽 쓰러지더랍니다. 그리고 추 당주님께서 홀로 공중과 땅을 향해 무기를 막 휘두르더니 피를 흘리며 쓰러지셨답니다.”

“적은 어떤 놈들이라고 하더냐?”

“모르겠습니다.”

“추 당주가 싸웠다고 했지 않느냐?”

“싸운 것이 아니라, 그냥 빈 허공에 무기를 휘두르셨다고…….”

“추 당주가 얼마나 고수인데, 혼자 무기를 휘두르다 죽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후장룡의 질책에 총관은 사색이 된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또 뭐가 있단 말이냐?”

“당주님과 방도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나간 수하들까지 알 수 없는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합니다.”

“어떤 놈이 그런 미친 보고를 한 거냐? 내가 직접 나가 보겠다.”

후장룡이 대노한 표정으로 무기를 뽑으며 나가려 하자 백교방주가 말렸다.

“잠깐 기다려라.”

“무슨 하명하실 거라도?”

“후 장로는 강호 경험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아직 경솔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느냐? 총관의 보고가 맞다면 이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문제다.”

공격한 자는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경우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독이었다. 하지만 정문 앞이면 독에 중독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추 당주는 직접 검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백교방주는 판단을 끝낸 듯 살기 띤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추 당주까지 그런 식으로 죽일 정도라면 대단한 살수들이 밖에 있음이 분명하다. 우선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전투 준비에 들어가라 해라. 그리고 백교단을 소집해라.”

“예!”

후장룡과 총관이 뛰어나가자 백교방주는 주위에 서 있는 간부들을 보며 다시 소리쳤다.

“너희들은 뭐 하고 있어. 너희도 나가서 수하들을 지휘해라.”

“예!”

‘마도놈들은 도대체 머리가 없어. 상황을 보면 심각한 것이 뻔히 보이는데 명령을 내리지를 않으면 움직일 생각도 안 하니, 에잉!’

백교방주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더니 벽에 걸려 있는 자신의 애검을 잡았다.

“일개 살수 따위가 감히 백교방을 건드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네놈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내가 분명하게 보여 주마!”

백교방주는 대노한 듯, 이를 바드득 갈며 자신의 애검을 손으로 한 번 쓰다듬었다.

그는 방금 전 위험 신호까지 느꼈음에도 여전히 상황이 위급하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 * *

“이렇게 대놓고 살행을 한 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걸?”

마진우의 말에 이 호인 사효조도 미소를 지며 말했다.

“그래도 언제나 우리보다 강한 자들만 상대해서 그런지 이놈들은 좀 싱거운 느낌은 들긴 하네.”

살인에 익숙한 그들답게, 백교방 정문에 쌓인 삼십여 구의 시신들을 보고도 다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법 강한 놈들이 나오고 있는데?”

마진우는 커다란 대감도를 든 중년인이 십여 명의 무인들과 함께 정문을 나오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백교방에서 자랑하는 정예 집단인 백교단 중 이 대였다.

“어떤 놈들인지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이 대주인 서칠은 대감도로 사방을 겨누며 소리쳤다. 백교대원들은 무기를 빼어 든 채 그의 주위를 빙 둘러쌌다. 그중 한 명이 시체에 다가가더니 사인(死因)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 대주를 보며 소리쳤다.

“대주님, 이놈들이 컥!”

소리치던 그는 갑자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사인을 말하기도 전에 무엇엔가 공격을 받고 즉사한 것이다.

순간 모두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지금 보이는 상황은 구천마성에서 상대에게 공포를 심어 줄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구천마성에서 그들에게 이럴 이유가 없었다.

‘어떤 놈들이 구천마성의 수법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거야?’

이 대주는 당황한 표정으로 총단 안쪽을 바라보았다. 백교단이 모두 모인 후 같이 나와야 했는데 괜한 공명심에 먼저 나온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은 무림 백대고수는 돼야 청부를 받는다는 백인막의 초특급 살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억!”

이 대주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수하 중 한 명이 땅에서 뚫고 나온 기다란 창에 사타구니를 찔리고는 비명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죽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지둔술이 특기인 팔 호 육자추의 공격을 시작으로 육관우의 혈단궁과 대독관의 암기 등이 연달아 날아들며 순식간에 열 명의 수하들이 전멸한 것이다.

이 대주는 사색이 되어 급히 총단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서 있던 곳에서 총단문까지의 거리는 겨우 일 장으로, 평소였다면 발구르기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수하들을 두고 혼자 도망가는 놈이 어디 있냐?”

그때 그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의 옆에 딱 붙어 있는 누군가를 보며 경악했다. 그 직후 그의 목이 그대로 땅을 굴렀다. 찰나 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백인막 최고의 살수인 일 호 흑석영답게 초일류고수인 이 대주를 너무 간단하게 처리했지만, 문 안에 있는 자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고 도우러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그때 후장룡을 비롯한 간부들이 사십여 명의 수하들과 함께 나타났다.

“배, 배, 백교단 이 대가 순식간에 전멸했습니다.”

말하는 자는 공포에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남창성에서 공포의 존재로 불리던 백교방도들이 지금 공포에 사색이 된 것이다.

그때 검을 든 백교방주가 걸어오는 것을 본 후장룡이 급히 다가가 그를 잡았다.

“방주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왜 잡는 거냐!”

“방주님,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 죽은 방도들이 오십 명이 넘습니다. 내당주와 이 대주까지 당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아직 적들의 모습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선 어떤 자들이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먼저 알아본 후에 상대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방주님께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마시고 잠시 상황을 살피십시오.”

백교방주는 나름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었지만 후장룡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그럼 나는 두고 볼 테니 장로가 맡아서 처리해 봐라.”

“예!”

답한 후장룡은 불안한 표정으로 밖을 살피고 있는 총관에게 다가갔다.

“총관.”

“예, 장로님.”

“네가 나가서 무슨 일로 이러는지 알아봐라.”

“예?”

“왜 놀라?”

“장로님, 나가기만 하면 죽이는데 말이 통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정중하게 물어봐. 구천마성과 우리가 특별한 관계라는 것도 말해라. 내가 어떤 놈들이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지 직접 보고 있을 것이니 걱정 말고.”

총관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여기서 싫다고 하면 그것 역시 죽음이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총관은 밖으로 한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넘어섰다. 반 장쯤 앞으로 걸어나간 그는 뒤를 한 번 쳐다보았다. 후장룡이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피는 것이 보이자 조금 안심이 되는지 전면을 향해 포권을 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저는 백교방의 총관인 오박성입니다. 본 방은 구천마성의 협력 세력으로, 남창성을 세력권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강호의 영웅들께서 이런 행동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선 대화로 풀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오박성은 아무런 대답이 없자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후장룡도 눈과 귀를 총동원해 주위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방주님, 주위에 최소한 오십 명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살수들이다. 그런데 나를 혼란시킬 정도로 은신술이 뛰어난 놈들이 있다. 이 정도면 보통 살수 조직이 아닌데?]

[어떤 놈들이 살수 조직에 우리를 없애 달라고 청부한 것은 아닐까요?]

[이 정도로 많은 살수들을 움직이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거기다 우리 뒤에는 구천마성이 있는데, 어떤 살수 조직이 그런 청부를 맡겠느냐?]

[본 방과 구천마성의 관계를 모르고 맡았을 수도 있습니다.]

[몰랐어도 이제는 알게 되었을 거 아니냐? 잠깐, 무언가 오고 있다. 살펴봐라.]

짜증스럽게 말하던 백교방주가 무엇인가 느낀 듯 급히 말하자 후장룡은 좌우를 살폈다. 그러자 길 한쪽에서 가마 하나가 오는 것이 보였다.

백교방의 총단 앞 도로는 원래부터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다. 괜히 그곳을 걷다가 백교방도들에게 험한 꼴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마가 나타났다. 그것도 여인들이 가마꾼을 하고 있었다.

“천신문? 저게 뭐지?”

후장룡은 가마에 달려 있는 깃발에 적힌 글귀를 읽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장로님, 포양상회가 천신문으로 바뀌었다고 내당주가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외당당주의 말에 후장룡은 백교방주를 쳐다보았다. 뒤로 물러나 있던 백교방주도 눈이 살짝 커졌다. 이 일의 발단이 무엇인지 감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마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 밖으로 아무도 살아서는 못 나오게 하라고 했는데, 왜 저자는 살아 있지?”

누가 들어도 그녀가 말한 사람은 총관임이 분명했다.

“저, 저, 저는 사, 사신(使臣)입니다.”

총관은 급히 소리쳤다.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럼 백교방도가 아니야? 만약 아니면 커다랗게 ‘난 백교방도가 아닙니다’ 하고 소리쳐 봐. 그럼 그냥 보내 줄 테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총관에게는 생사판관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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