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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05화 (205/472)

<천검지애 205화>

205화. 변화의 중심(2)

귀도신영의 보고를 다 들은 담수련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노 생각은 어때요?”

“진유량이 대패하고 그의 거점이던 호북이 주원장의 손안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기세로 보면 장사성 혼자 주원장을 막아 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천하의 주인은 주원장이 될 공산이 크겠군요. 안개에 가려져 있던 권력의 추가 어디로 향했는지가 확실하게 보이게 되었으니, 주원장에게 줄을 댔던 사람들은 값어치가 급등하겠네요.”

“정파인 영웅회가 줄을 아주 잘 섰습니다. 운이 아주 좋았다고 봐야지요.”

“고노, 권력의 줄을 정확하게 잡은 것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능력이에요.”

“진유량을 도운 구천마성이나 장사성을 도운 혈해사계로서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겁니다.”

“그럴 것 같으세요?”

“제가 그런 분석력이 있겠습니까? 정보 상인들이 하는 얘기를 귀동냥한 것뿐입니다.”

“제가 악양에 머물 때 장사성을 영웅회가 돕고 있었어요. 그 말은 모든 세력이 반군 모두와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에요.”

“그럼?”

“맞아요. 구천마성이나 혈해사계 역시 은밀하게 주원장에게 선을 대고 있을 거라는 말이지요.”

“하긴 어떤 줄이 진짜인지를 모를 때에는 모든 줄을 잡고 있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기는 하지요.”

“영웅회가 주원장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긴 했을 거예요. 하지만 주원장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에요.”

“주원장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 아주 특이한 분이셨어요. 한 사람에게서 패왕과 효웅 그리고 영웅의 모습까지 다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심지어…….”

담수련은 그에게서 마웅의 모습까지 보였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제 천하제일의 권력을 차지할 자의 험담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담수련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고노, 절강은 상황은 어떻던가요?”

“잠룡세가가 몰락했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여전히 무시 못 할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위태위태한 상황이더군요.”

“자세히 말해 보세요.”

“잠룡세가 내에서 내분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담 가주님을 배신한 자들과 여전히 충성을 하는 자들 간의 알력이 대단한 듯했습니다.”

담수련은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표정을 보였다. 어찌 됐건 그녀를 항상 받들어 주던 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알력이라는 것이 다른 때 같으면 더 강한 힘으로 응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혹시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들은 것이 없나요?”

“담 가주에 대한 정보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정보 상인들조차 거기에 대해서는 가진 정보가 없더군요. 하지만 살아 계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지요?”

“하오문의 정보 상인들의 능력은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돌아가셨다면 그들의 눈과 귀에 반드시 포착되었을 것입니다.”

“아가씨, 가주님께서는 누군가에게 쉽게 당할 분이 아닙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제가 반드시 가주님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던 악불군이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을 느꼈는지 위로의 말을 던졌다.

“아니야, 찾을 필요는 없어. 살아만 계신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거야. 지금 아버지께서 나타나시는 것은 상황만 더 악화시킬 뿐이야.”

담무룡의 등장은 잠룡세가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커다란 혈겁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잠시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담수련은 주원장이 장사성을 이긴다는 가정 하에 이후 일어날 상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담수련이 분석을 끝낸 듯 입을 열었다.

“고노, 여기 남창에서 항주까지 왕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그건 상황마다 다르지요.”

“말을 잘 다루는 무인들이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릴 때와, 고노처럼 경신술이 뛰어난 고수가 신법을 최대한 발휘하여 달리는 두 경우를 말해 보세요.”

“제가 전력을 다해 달린다면 오 일이면 왕복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건 계속 달린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고, 중간중간 쉬어야 하니 육 일에서 칠 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백설 같은 명마가 아니라 보통 말을 타고 달린다면 사 일이면 될 것 같습니다.”

“중간에 분타 하나 설치하면 딱 알맞은 거리네요.”

“알맞은 거리시라면?”

“절강에 천호방과 이곳의 천신문이요. 너무 가까우면 한패로 오인받을 수 있고, 너무 멀면 급할 때 도움을 청하기 어렵잖아요?”

“천신문의 문주가 천상신녀라고 직접 말하셨고 백교방주를 주군께서 제거하셨으니, 두 분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천호방과 천신문이 한편이라는 것을 눈치챌 겁니다.”

“우리 관계가 어떤데요?”

“호사가들은 두 분이 부부거나 최소한 서로 사랑하는 연인일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귀도신영의 말에 담수련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호사가들은 이야기꾼들 아니에요?”

“예, 사람들 앞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던져 주는 잔돈이나 술을 얻어먹는 자들이지요. 양민들은 무림인들 얘기를 제일 재미있어 하니까 주로 무림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요?”

“예? 그럼 두 분이 부부이신 것이 맞는 것입니까?”

“고노! 아가씨 말은 우리가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요. 그런 황망한 얘기를 어찌!”

말하던 악불군은 담수련이 자신을 흘겨보며 입술이 삐죽 나오자 급히 달래듯 말했다.

“고노가 잘 모르고 한 말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마십시오.”

“그 문제는 다음에 다시 얘기하고, 고노.”

악불군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귀도신영은 담수련의 표정을 살피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흑야신하고는 연락이 됐나요?”

“주군께서 알려 주신 비문을 사용했더니 금방 연락이 오더군요. 지금 절강에 있습니다.”

“몇 명이나 모았다고 하던가요?”

“아직 거기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천호십영 중 다섯 분과 수하 살수들은 이곳 천신문에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절강으로 가세요. 그리고 이 돈으로 항주 가까운 곳에 장원 하나 사세요.”

담수련은 백교방을 멸문하고 거기서 얻은 상당량의 전표를 넘겼다.

“그럼 저번에 말씀하신 계획을 그대로 진행할까요?”

“예, 대신 전력만 강하게 구축하고 계세요.”

“사방에 널린 게 낭인입니다. 지금 자금이 넉넉해서 금방 큰 세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고수는 제가 구할 수 없습니다.”

“고수들은 곧 모일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고노.”

귀도신영이 일어나자 악불군이 불렀다.

“예.”

“연세도 많으신데 힘든 일을 맡겨서 죄송합니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나이가 들어 도둑질도 못하고 그동안 심심해서 죽을 뻔했는데, 요즘은 정말 살맛 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가 보겠습니다.”

귀도신영이 나가자 담수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머리 아프시지요? 지금 같은 상황이면 아가씨께서 아무리 총명하셔도 골치는 아프실 것 같습니다.”

“나 지금 딴생각했거든!”

“다른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서.”

“무슨 일이신데요?”

“호가사들이 우리를 부부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왜 소군한테는 그렇게 황망한 말이야?”

악불군의 눈가가 파르르 흔들렸다.

“그, 그게 감히 저와 아가씨를…….”

“감히? 내가 그렇게 소군한테 감히야?”

“무슨 그런 말씀을 아가씨가 아니라 제가 감히지요!”

“부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부부일지도 모른다고 했다잖아? 그건 그냥 짐작이란 말인데 왜 소군에게는 황망한 말이냐고? 저번에는 어불성설이라고 했지? 내가 그때는 참았는데, 이번은 정말 이해를 못하겠어! 내가 그렇게 소군한테 모자라?”

“아가씨 왜 자꾸 말을 거꾸로 하십니까? 아가씨께서 모자라신 것이 아니라 제가 모자란 것이지요.”

“난 맨날 소군의 보호를 받고 소군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모자라면 내가 모자란 거지! 부부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이러니, 부부라고 했으면 살인이라도 했겠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부부일지도 모른다는 말에는 그냥 가만히 있겠습니다.”

두 손을 든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의 튀어나왔던 입술이 슬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그녀의 얼굴에 귀여운 미소가 그려졌다.

* * *

“뭔가 사건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저지르실 줄은 정말 몰랐어.”

담수련이 천신문을 만들고 첫 행보로 남창을 장악했다는 말에, 종리화는 경탄과 걱정이 어우러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셨지만, 이렇게까지 전격적으로 일을 벌이시다니……. 아가씨께서 원래 이렇게 과단성이 있으셨나요?”

천화궁주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러신 분이 절대 아닌데, 소군 말대로 오음절맥의 부작용으로 인해 성격이 조금 바뀌신 것 같다.”

“어쨌든 백교방을 하루 만에 멸문시키다니 정말 감탄스럽지 않아요? 백교방주의 귀령마검은 마도에서는 알아주는 절기잖아요?”

“나도 쉽게 이기기 힘든 자지. 소군의 무공이 정말 대단해진 것 같긴 하구나.”

“그런데 언니, 백교방을 칠 때 도왔다는 자들 말이에요.”

“소군의 수하라는 자들 말이냐?”

“아가씨께서 소군을 한 문파의 장이라고 했다던데, 언제 그런 조직을 만든 걸까요? 그것도 가주님께서 준비하신 걸까요?”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내게 말해 주셨을 거야.”

“그럼 언제 그런 것을 만들었을까요? 제가 소군과 아가씨께서 움직인 동선과 행위들을 다시 한번 살폈는데, 그럴 시간이 없더라고요.”

“가주님께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남창을 장악했으니 강서 북부에서는 가장 강한 문파 소리를 듣게 됐는데 언니 표정은 여전히 어 두우시니, 무슨 걱정을 하시는 거예요?”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다. 가주님께서 자신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라고 하신 이유도 그래서다. 소군의 명성이 십대고수를 능가할 정도이고, 아가씨는 경국지색의 미인인 천상신녀로 불리고 있다. 강한 무공과 아름다운 미모는 사람들의 이목을 가장 잘 끈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언니, 모난 돌은 정으로 맞을지 모르지만, 날카롭게 갈린 검에는 사람들이 다칠까 봐 가까이 가지 못해요. 그리고 대충 예쁘면 탐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여인은 사람들이 알아서 보호해 주는 법이지요. 이미 일어난 일이니 우선 두고 보자고요.”

“그래 네 말이 맞기를 바라보자.”

답하던 종리화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화궁도 한 명이 급히 달려오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궁주님, 아가씨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가씨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들어와라.”

“예.”

궁도는 들어서자 천화궁주에게 쪽지 하나를 바쳤다.

쪽지를 본 천화궁주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더니 종리화에게 쪽지를 건넸다.

“호남 북부 쪽으로 자리를 잡으라고 했는데도 왜 남창으로 갔나 의아했는데, 결국 그 이유였구나.”

쪽지를 읽은 종리화는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남창과 담수운이 세운 대룡상단이 있는 도창과는 말로 달리면 두 시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웠다.

쪽지에는 담수운이 세운 대룡상단과 접촉을 하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 달라는 청이 적혀 있었다.

“언니, 어떡하시겠어요?”

“이미 도창에 있는 것을 아시고 계시다. 지금 이건 그냥 예의 차원으로 보낸 거야. 내가 안 된다고 해도 만나실 것 같구나.”

“그럼 허락하시는 것이 서로 간에 좋을 것 같네요.”

천화궁주의 말에 종리화는 이마를 손을 짚었다.

결국 담무룡의 계획이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아가씨께 알겠다고 전하고, 소가주님께도 아가씨께서 조만간 찾아갈 것 같다고 연락을 드려라.”

종리화는 이제 담수련의 생각대로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변화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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