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206화>
206화. 변화의 중심(3)
“문주님, 도창으로 가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누 장로님, 동생이 오라버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왜 위험하다는 거예요?”
대룡상단으로 담수운을 만나러 가겠다는 담수련을 누진봉은 극구 말리고 있었다.
“그게…….”
“답답하니까 빨리 말해 보세요!”
“가주님께서 잠룡밀과 잠봉밀을 둘로 나눈 것은 소가주님과 문주님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려는 것도 있지만, 내부의 배신자도 걱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내부의 배신자요?”
“가주님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수하들로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세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아신 후, 우리 중에도 배신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배신자가 나와 한 곳이 적에게 당하면 남은 한 곳이라도 빨리 도망가라? 그리고 그 양쪽을 감시하는 임무는 종리 단주에게 맡긴 것이고요?”
“그렇습니다.”
“누 장로는 그것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요?”
“당주와 화주에게는 모르는 척했지만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잠룡밀에서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겠네요?”
“양 장로가 알고 있을 겁니다.”
“양 장로면 누구를 지칭하는 거지요?”
“양호철입니다. 저와 함께 가주님을 처음부터 모셨던 몇 안 되는 가신들입니다.”
“그런데 배신자가 있었다면 이미 그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을까요?”
“저희도 현재는 배신자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신자라고 처음부터 배신자는 아니니까요.”
“우리가 위험에 처하면 배신자가 나올 수도 있다? 아버지다운 대비시네요. 그런데 전 달라요.”
“그게 무슨?”
“아버지께서는 현재 없는 배신자가 생길 것까지 염두에 두신 모양이지만, 저는 배신자가 생기지 않도록 할 거니까요.”
“배신자가 생기는 것을 막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황제들조차 배신자를 막지 못해 역모라는 엄청난 죄를 만들어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배신의 이유를 원천봉쇄하면 배신하지 않아요.”
“배신의 이유요?”
“그래요. 물론 배신의 이유는 너무 많아서, 그것을 찾아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요. 하지만 큰 틀 안에서 살펴보면 결국 세 가지 범주 안에 모든 이유가 들어 있어요.”
“노부는 머리가 안 좋아서 이해가 안 됩니다.”
“별별 이유를 다 대지만, 결국은 약한 주인을 제치고 자기가 두목이 되려고 하거나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싶은 것이 주요 요인이라는 거예요.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데, 배신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울 때도 배신을 하지요.”
“그렇게 잘 아시면서 소가주님을 벌써 만나러 가신다는 것입니까?”
“아직 배신자가 생긴 것도 아닌데 그게 무서워 오라버니를 지척에 두고 만나지도 말라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여기 악 대협이 내 옆에 있는 이상 아무도 배신하지 못해요. 그렇지?”
“아가씨를 배신하는 자가 있다면 황제라도 제 손에 죽을 것입니다.”
누진봉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원나라가 하북으로 물러나고 아직 새로운 황조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황제라도 죽인다는 말은 평범한 무림인이라면 금기로 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잠룡세가보다 큰 세력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구나…….’
누진봉은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며 말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나섰습니다. 문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순간 담수련의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드디어 완벽하게 승복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 *
“이게 무슨 소리야? 수련이가 이곳을 올 거라고?”
종산은자의 제안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그는, 종리화의 서찰을 보자 깜짝 놀라 말했다.
“저도 아가씨께서 왜 갑자기 오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분명 가주님께서는 최소한 오 년 동안은 서로 접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종리 단주도 분명 알고 있을 터인데…….”
양호철 역시 담수련이 온다는 전갈에 매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종리 단주님은 아주 현명하신 분입니다.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짐작은 했습니다. 하지만 정세는 여전히 급박하고, 영웅회와 구천마성은 호남 북부에서 이미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혈해마계가 마룡세가에 막혀 아직 동진은 못 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고수들이 은밀하게 넘어와 진유량과 장사성을 돕고 있다는 정황도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우리에게는 잠재적인 적들인데, 아가씨와 벌써 만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이에게 오지 말라고 할 방법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총행수님.”
“예.”
“본 상단의 물품을 사러 오는 것처럼 한다고 하니, 수련이가 오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누구라 하시면?”
“행수들과 접주들도 모르게 해 달라는 겁니다.”
“행수와 접주들은 저희가 가장 믿는 수하들인데, 그들까지 숨기실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냥 제 말대로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양호철이 나가자 담수운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심에 빠졌다. 종산은자가 결정을 하라고 한 날짜가 이제 오 일이 채 안 남았다. 거기다 담수련의 행방이 그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그였다.
‘수련아……. 하필 왜 지금 온다는 것이냐……. 휴우~’
담수운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 * *
척 보기에도 거지 소굴인 허름한 천으로 둘러싸인 움막 안.
세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남개방의 방주인 무룡신개와 태상호법인 사해신개 그리고 수석장로인 헌원신개였다.
남개방을 지휘하는 최고 서열 세 명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것은 근 이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동안 궁가방과 어찰단의 추적에 셋은 언제나 흩어져 서찰로만 대화해 왔다. 같이 있다가 몰살당해 개방의 무공들이 실전되고 지휘 체계까지 무너지면 존속 자체가 위태해지기 때문이었다.
“태상호법 그리고 수석장로.”
“예, 방주님.”
“예.”
“제가 두 분을 갑자기 소집한 이유를 짐작하십니까?”
“드디어 때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림 방장이신 무진 대사님께서도 소림의 제자들을 소집했다고 합니다. 하남에서 원나라가 물러난 지금 최대한 빨리 문파를 재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니까요.”
“소림사를 지키는 라마승놈들이야 소림의 무승들이 쉽게 쫓아낼 수 있겠지만, 궁가방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헌원신개의 말에 무룡신개 역시 고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석 장로님 말씀이 맞습니다. 궁가방은 우리가 하남에 입성한다 해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전의 개방을 재건하는 것은 우리들의 염원이었습니다. 희생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대로 총단을 그들 손에 맡기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방주님.”
“말씀하십시오.”
“원나라가 물러난다 해도 그것은 정치적으로 마무리가 된 것뿐, 무림의 전쟁은 어쩌면 그때부터 새롭게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궁가방과의 전쟁으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본방의 고수들이 죽는다면 본 방은 정파의 정보통 노릇만 하게 됩니다.”
“회주께서 무림맹 얘기를 꺼냈습니다. 모두 고심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은 무림맹 창설은 대세가 될 것입니다. 그때 어느 문파가 먼저 재건을 하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아무리 원나라 전에 이름이 높았다 해도 자신의 총단조차 찾지 못한 문파를 대접해 줄 리 만무했다.
뭔가 생각에 잠겨 있던 사해신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방주님,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실을 묶어 바느질을 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 방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태상호법께서는 묘책이라도 있으십니까?”
“지금 궁가방에는 개방의 전통적인 제자들과 태양천에서 심어 넣은 가짜 거지들이 섞여 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 둘 간의 알력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요?”
“개방의 정식 무공을 익힌 자들을 저희가 받아 준다면 궁가방의 전력을 당장 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사해신개의 말에 무룡신개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사해신개의 의견은 정말 묘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궁가방에는 개방의 전통을 따르는 진정한 개방의 제자들도 꽤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흡수할 수 있다면 개방의 전력도 크게 높일 수 있었고, 궁가방을 무너뜨리는 것도 훨씬 쉬어질 수 있었다.
더욱이 그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던 태양천의 수하들도 더 이상 태양천이나 어찰단의 도움을 못 받는 상황이니, 그들 역시 상당한 갈등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태상호법님의 의견은 일견 타당성도 있고, 현 상황에서 본 방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도임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역자들입니다. 원나라가 다 패망해 가는 지금 돌아온다고 받아준다면, 그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목숨까지 바치며 원나라에 저항하던 남개방의 제자들과의 형평성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더욱이 영웅회에서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헌원신개의 말에 무룡신개는 이번에도 즉답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사해신개의 방법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영웅회에서는, 중원 무림을 배신했던 자들을 완전히 청산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또 배신해도 괜찮다는 풍조가 생길 수 있다며 완전 청산을 하는 것으로 만장일치 결의를 했었다. 그런데 구파일방의 일원이자 영웅회의 중추를 담당하던 그들이 자파의 이익을 위해 부역자를 받아들인다면 천하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것이 뻔했기에 포기한 터였다.
“방주님. 그 문제는 제게 전권을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사해신개의 말에 무룡신개와 헌원신개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아직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해 놓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태상호법패를 넘겼다는 천호무적검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까?”
“보고받으셨습니까?”
“태상호법패는 본 방의 삼대 지보 중 하나입니다. 그 패 하나로 본 방의 모든 제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정보까지 마음대로 요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패를 신분도 확실치 않은 자에게 주었다는 말을 듣고, 누구기에 그런 파격적인 대우를 해 준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호법님 말씀을 듣다 보니 그자가 갑자기 떠올랐을 뿐입니다.”
“천호무적검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명호는커녕 강호 경험까지 일천한 후기지수였습니다. 당시 그의 무공은 저와 최소한 백 초는 겨뤄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단 몇 달 만에, 저와 맞먹는 무공을 지닌 구천마성의 호법과 장로 세 명의 협공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모두 물리치는 쾌거를 보였습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헌원신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사해신개의 말이 맞다면 몇 달 만에 세 배 이상 무공이 늘었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났으니 어찌하겠나? 방주님, 전 개방을 재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파일방으로 불릴 때의 영향력까지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어렵겠지요. 그래서 외부에 조력자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호법님께 전권을 드리지요. 하지만 시간은 백 일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무림맹이 창설되기 전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려면 최소 육 개월은 잡아야 합니다. 그중 절반이나 되는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최선은 다하겠습니다.”
* * *
탕!
강력한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검의 반이 그대로 부러져 내리자, 악불군은 의아하다는 듯 부러진 검을 던지고는 다시 새 검을 뽑아 들었다.
‘이게 마지막이군.’
타앙!
검치고는 상당히 두꺼워 보이던 무쇠검이었지만 그것이 부러지는 데는 그저 찰나의 시간으로 족했다.
‘다른 검으로는 그 검식은 사용이 불가능해. 그렇다면 이 검에 비밀이 있다는 건데…….’
악불군은 백교방주와 싸울 때 벌어진 현상을 재현하기 위해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법만 쓰면 검들은 휘기는커녕 그대로 부러졌다.
악불군은 천륭검을 꺼내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